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77화 (77/148)

EP.77 프라시온

1.

────콰아아앙!

포성소리가 울리며 주변의 건물이 흔들렸다. 위에서 부서진 벽돌조각 같은게 비처럼 툭툭 떨어지자 도망치고 있던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더욱 바쁘게 다리를 움직였다.

지금까지 포성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시민들은 포성이 울릴 때마다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들썩였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사람들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새겨 넣었다.

격렬한 전투의 소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가 죽고, 죽이는 그 소리가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형태의 성기병이 버그들과 싸우는 게 보였다.

393부대의 성기병이었다.

병원 안에서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 이송을 돕던 부대원 중 한명이 그걸 멍하니 보고서 중얼거렸다.

“버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설마 다른 부대가 버그들에게 전멸이라도 한 건가?”

“개소리 마! 그럴리가 없잖아!”

“하,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버그들이 이렇게 도시까지 쳐들어올리가 없잖아! 아니, 애초에 왜 우리 부대 혼자 도시까지 와서 버그들이랑 싸우고 있는 건데!”

도시 병원에 입원 중이던 393부대원들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정신을 차려보니 버그들이 도시 코앞에 당도한 상태였다.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츠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나츠오는 지금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제발 누군가가 현재 상황 좀 알려주면 했다.

왜 챈들러 혼자 부대원들을 이끌고 도시를 지키고 있는 거지?

세레스 누나는? 린과 란은?

아니─ 카렌,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지?

혹시 전투 중에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걸까?

온갖 걱정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이 지금 나츠오를 미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그 녀석 혼자 퇴원했던 걸로 쌓여 있던 답답함과 무력감이 지금 이곳에서 부글부글 폭발한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그 녀석이랑 같이 퇴원하는 건데. 순간 그런 후회마저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카렌.”

가슴이 막막해지는 심정에 녀석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슈우우웅──쾅!

갑자기 무언가 날아오며 공기가 찢어지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귓가에 닿기 무섭게, 근처에 있던 건물이 폭발과 함께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어디선가 쏘아진 스파이더의 포탄이 인근의 건물에 명중한 것이다. 마침 옆에 있던 병원의 창문이 폭발의 여파로 생겨난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와장창 깨졌다.

“으윽! 뭐, 뭐야!?”

병원 안에 있던 부대원들이 기겁하며 바닥에 업드렸다. 그렇게 머리 위로 수많은 유리 조각이 스치고, 병원 복도 바닥이 순식간에 너저분하게 변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민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사, 살려줘! 누가 제발!

─꺄아악! 안 돼! 여보!

그 소리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점점 비워진다. 피가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나츠오는 더듬더듬 몸을 일으키며 깨진 창문을 통해 밖을 확인하였다.

“······”

그곳은 지옥이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 그 아래에 무수한 사람들이 깔려 있다. 대피소로 향하던 무리가 방금 전의 포격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에 운없이 깔린 것이다.

몇 사람의 것이 섞였는지 모를 엄청난 양의 핏물이 바닥에 흐르고, 이름 모를 사람의 팔과 다리가 잔해 사이로 듬성듬성 튀어나와 있다.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즉사 했으나, 그래도 몇몇은 운좋게 잔해 사이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

─도, 도와주세요!

─누, 누가 좀 꺼내줘···! 나 좀 꺼내달라고!

운 좋게 재해를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치기 바빴다.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돕는 건 친구, 가족 관계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 뿐.

나츠오는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이곳도 위험하다. 방금 전의 포격은 단순히 운이 없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버그들이 이곳 근처에 도달했다는 신호이자 경고였다.

그러니 어서 대피소로 향해야 한다.

어차피 성기병도 없는 성기병 파일럿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부대 치안을 지키던 병사들도 이미 도망친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카렌.”

그 녀석한테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츠오는 가슴 안쪽에서 피어오르던 망설임을 죽였다.

“나츠오 형! 이제 우리도 대피소로 가자! 노인분들은 간호사님들이 방금 전부 데리고 갔어!”

“···아니, 너희들 먼저 가. 나는 저 사람들 좀 돕고갈테니까.”

“아, 아니! 지금 우리도 위험···!”

───콰아앙!

“꺄아아악!”

또 다시 날아온 포탄이 병원 인근에 처박혔다. 건물이 흔들린다. 열기를 품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나츠오는 부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어서 대피소로 가라고 말하고는 혼자 땅을 박찼다.

2.

─젠장! 페르아, 그쪽으로 스파이더가 못 가게 막아!  거기를 그냥 보내주면 안 돼!

─네, 넷? 알겠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 절대로 버그들이 대피소에 접근하게 놔두지 마!

─으윽! 하, 하지만, 챈들러! 버그들이 너무 많아!

“······”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하다.

다급한 부대원들의 목소리가 울린다. 음성 채널로 끊임없이 도시의 상황이 전해지고 있었다. 네토루는 차분한 얼굴로 그 소리를 귀에 새겼다.

“···상황이 좋지 않네요.”

하지만 네토루와 달리 세레스가 안절부절 못한 얼굴로 그리 중얼거렸다. 음성 채널로 포성이 울릴 때마다 부대원의 비명도 같이 전해졌기에 세레스의 몸도 덩달아 움찔거렸다.

비록 전해지는 것은 음성 뿐이지만, 굳이 현장을 보지 않아도 도시 안에서 얼마나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전사자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도시에 침투한 버그들을 막기에는 성기병의 수가 너무 적었다. 현재 도시 내부에서 방어 중인 건 소대 2개 뿐이었다.

그나마 챈들러가 도시 내부의 건물을 이용해 버그들을 상대로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도록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네토루는 맵을 확인했다.

‘···다른 소대는 아직인가.’

보아하니 다른 성기병들은 미끼였던 버그들에게 아직도 발이 묶여 있는 듯했다.

그나마 몇몇 소대가 뒤늦게 빠져나오고 있는 모양이지만 버그들의 움직임은 끈질겼다. 그러니 저들이 도시 방어에 합류하려면 시간이 걸릴 터.

네토루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의식하지 않아도 오래 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갑자기 떨어진 애니메이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 없이 방황하던 초창기의 기억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애니메이션 PV에서 짤막하게 소개되었던 세계관 뿐. 정작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본편이 시작도 되지 못한 과거였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PV에서 보았던 내용이 맞다면 지금 자신이 있는 왕국은 멀지 않은 미래에 버그들에게 멸망하는 것이 확정된 곳이었으니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그게 안되자 그 다음에는 화를 냈고, 그것도 안 되자 결국 현실과 타협하였다.

아니, 타협 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 화를 내봤자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것은 폐허가 된 도시와 무수한 인간들의 시체들 뿐.

버그들은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이었다면 여성과 어린아이들 쯤이야 살려두었을지 몰라도, 버그들에게는 그런 자비가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공평하게 죽었다.

그 참혹한 풍경을 보고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참상이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네토루에게 진정한 의미로 이 세계에서의 첫 기억은.

이제는 사라진 도시─바르베르크.

버그들에게 함락당한 도시의 풍경이었다.

─네토루.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준비해.

그때 아스나의 목소리가 의식을 깨웠다.

드디어 도착한 것인가. 네토루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조종석에서 일어나 콕피트를 열었다.

그러자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수송 차량이 하나 보였고, 그런 차량 위에는 반가운 새하얀 성기병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카렌의 성기병이었다.

네토루는 성기병의 콕피트에서 땅으로 내려갔다. 아니,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가려던 네토루에게 세레스가 뒤에서 말했다.

“···조심히 갔다 와요. 괜히 카렌 데리고 무리하게 싸우지 말고.”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러면 괜히 방금처럼 영웅 노릇 하지 말고, 어떻게든 무사히 돌아와요.”

“그건 노력해볼 테니까, 걱정말고 뒤에서 응원이나 해줘.”

네토루는 세레스에게 가볍게 농담을 건네고는 그대로 세레스의 성기병에서 뛰어내렸다. 높이가 제법 되었지만 충분히 단련된 성기병 파일럿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가벼운 착지였다. 내려오기 무섭게 그는 다가오는 수송 차량을 향해 뛰었다. 거리를 좁히자 제일 먼저 운전석에 있는 아스나가 보였지만 한가롭게 인사할 시간은 없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치며 차량이 수송하고 있던 성기병으로 향했다. 마침 오르기 쉽도록 카렌의 성기병이 앉아 있었기에 구조물 없이도 콕피트에 도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네토루는 콕피트를 열었다.

그러자  조종석에서 이미 커넥팅 준비를 끝내둔 채 몸을 눕혀두고 있는 카렌이 보였다. 콕피트가 열리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네토루를 응시했다.

“······”

“······”

티끌만큼의  더러움도 없는 검은 눈동자가 네토루의 얼굴을 비춘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라는 게 이런 것일까.

짤막한 침묵 속. 그렇게 서로의 시선 교환이 이루어지고, 네토루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왠지 너랑 커플링 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네.”

“···오랜만은 무슨. 내가 너랑 마지막으로 커플링 한지 아직 1주일도 안 지났어.”

“그런가?”

“그것보다 몸은 괜찮은 거야? 혼자서 데스 웜이랑 싸우면서 마력 엄청 썼을 텐데.”

“괜찮으니까, 걱정 마.”

“···또 그 소리야. 맨날 걱정 말래.”

이제는 이것도 서로 습관이 된 걸까.

이미 전에 한 번 했었던 것 같은 익숙한 대화를 반복하며 네토루는 조종석에 앉았다. 그러자 곧 카렌과 마력 패스가 연결되며, 커플링이 형성되었다.

네토루는 그녀의 조종간을 쥐며 말했다.

“오늘 고생 좀 할 거야.”

“언제는 안 그랬던 적 있어?”

그러자 당돌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척이나 카렌다운 씩씩한 대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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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 가슴이 아주 웅장한 것이 마음에 드네요. 헤헤

마지막으로 추천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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