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4 성병기
커다란 붉은 점이 프라시온으로 향하고 있다.
맵을 통해 그 움직임을 눈에 담고 있자니 문득 뇌리를 스치는 의문이 있었다.
“···사령관님. 혹시 예전에 버그들한테 도시 앞까지 뚫린 적이 있는 겁니까?”
버그들에게는 특별하게 발달된 관측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버그 무리의 일부가 ‘도시’를 직접 본 적이 없다면, 도시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제39구역에 들어올 때마다 부대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섬멸당하던 녀석들이다.
─아니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시까지 버그들에게 뚫린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버그들이 어떻게 도시의 위치를 저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 겁니까?”
─그건···.
리엔이 대답을 못 하고 말끝을 흐린다. 아무래도 그녀도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일단 네토루는 그 답을 고민하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데스 웜이 어떻게 도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느냐가 아니다.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던 거겠지.
애초에 추격형 센티페드들의 움직임도 그렇고, 이미 녀석들은 어딘가 비정상적인 변화를 보이는 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리엔은 관측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차분한 목소리로 전했다.
─···방금 새로운 지하 통로가 확인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데스 웜이 새로운 굴을 파고 후방으로 몰래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버그들은 없습니까? 데스 웜 혼자서 움직일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음성 채널 너머로 리엔이 신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토루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맵에 데스 웜뿐만 아니라 다른 버그들의 아이콘도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관측된 숫자는 총 137마리입니다. 지금도 계속 지하 통로를 통해 추가되고 있고요. 그런데 그중 대다수가 스파이더입니다. 어쩌면 지금 저곳에 나타난 버그들이 주력 부대일지도 모릅니다.
주력 부대라고?
리엔은 보고에 네토루는 입술을 비틀었다.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지금껏 몰랐던 버그 무리의 존재가 네토루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러면 지금 신나게 때려 부수고 있는 버그 무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미끼라도 된다는 건가.
하기야 어째 로커스트와 센티페드의 비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은 했다. 덕분에 포병 진지를 구축하던 스파이더를 날려버린 순간부터 싸움은 반쯤 끝난 거였으니.
‘설마 우리를 속인 건가.’
어쩌면 둥지를 틀 것처럼 주변에 방어 진형을 갖추고 있던 건 전부 눈속임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버그라서 ‘그럴 리가’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전략전술 따위는 없는 녀석들과의 싸움에 너무 길들여진 탓에 머리가 굳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네토루조차도 말이다.
적에게 익숙해진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적을 너무 잘 이해하게 된 탓에, 어느새 자기 자신도 녀석들처럼 사고하게 되어버렸다.
애초에 전술 마법탄이 사용되자마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지하에서 버그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너무 노골적이다.
“···쯧."
뭐든 좋다. 먼저 지금 상황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네토루는 맵을 확인했다. 당연하지만 거리는 멀다.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쳤지만, 고민은 짧았다. 네토루는 판단이 서는 순간 음성 채널로 주변에 있던 1소대장 챈들러에게 말했다.
“챈들러. 우리 소대 애들 좀 같이 챙기고 따라와 줘. 내가 먼저 가서 녀석들을 막고 있을 테니까.”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네토루는 그 말을 전부 듣기도 채 전에 성기병의 출력을 높이며 땅을 박찼다.
그러자 이어서 리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겠습니까?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시간을 끄는 건···.
“그렇다고 그냥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을 텐데요. 다른 부대원들과 속도를 맞췄다가는 늦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먼저 가서 시간을 끌어줘야 합니다.”
─······.
차마 부정은 못 하겠는지 리엔이 침묵했다.
비록 이제는 옛날의 영광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프라시온은 여전히 수만 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다.
이대로 데스 웜이 도시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자칫하면 수천 명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어 병력이라고 해봤자 치안 유지를 위한 병사가 전부였으니까. 성기병도 없이 버그들에게 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세레스의 이름을 불렀다.
“세레스.”
“···. 저는 괜찮으니까 출력 높여요.”
세레스도 이미 각오는 해둔 상태인 듯했다. 조정간을 강하게 쥐어 잡은 네토루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마력 패스를 확장하며, 거칠게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레스의 성기병이 밟고 있던 지면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해 으깨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움직임에 주변의 대기가 요동쳤다.
2.
이대로 계속 땅을 파서 바로 도시까지 갔으면 좋았겠지만,
지하를 통해 움직이는 건 한계가 있었다.
몸안에 내장된 굴착기로 굴을 파면서 움직이는 건 많은 에너지가 들기에 긴 휴식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그로 인해 생긴 부산물이 특정 이상으로 몸 안에 쌓이게 되면 지상에 올라가 토해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상 위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을 가로막는 단단한 암석들을 애써 굴착할 필요 없이 그저 몸만 움직이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체력 소모도 적고, 그 이동속도 또한 빠르다.
그런 점에서 데스 웜에게 지상은 개방적이고 몸을 움직이기 편한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우어어어어!
데스 웜은 전달받은 데이터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지상 위를 가로질렀다. 100m가 넘는 거대한 몸길이가 꿈틀거릴 때마다 너저분한 흙먼지가 일어나며, 주변의 나무와 수풀들이 뜯겨 나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가히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혼자서 숲 하나를 밀어버리며 괴물은 맹렬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현재 데스 웜에게 내려진 명령은 간단했다.
최대한 빨리 ‘목표 지점’에 도달할 것.
그 이유는 모른다. 단지 명령이 내려졌기에 따를 뿐. 그렇기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은 채 데스 웜은 충실하게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그런 데스 웜을 지켜보면서 괴물은 생각했다.
생각보다 인간들의 대응이 빨랐다고.
덕분에 병력이 제대로 모이지를 않았다.
원래라면 이것보다 배는 많은 병력으로 도시를 점령하려고 했다.
‘···너무 얕보았나.’
그동안 지켜본 결과 제39구역은 다른 곳보다도 유독 빈약한 면이 많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괴물은 적당히 겁을 주면 제법 시간을 질질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단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아무리 못해도 1주일 정도는 시간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예측이 완벽하게 빗나간 것이다.
그나마 ‘수명’이 끝나가는 것들을 미끼로 전술 마법탄의 공격을 유도하기 했지만, 이래서는 본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관 없다.
어차피 적들은 미끼를 상대하느라 체력을 소모하는 중이었고, 그런 상태로 이쪽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도 남겨두고 온 버그들은 철저하게 시간을 끌기 위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대로 도시를 점령하면 적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버그들과 달리 인간들은 행동 제약이 많았다. 그들은 동족의 죽음 앞에서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었기에 괴물은 그러한 인간들의 습성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도시 안에 있는 수만명의 인간을 통째로 인질로 잡으면, 인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
그런데 그때였다.
괴물은 진군하던 버그들의 군세가 잠시 주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괴물이 그 이유를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적성 개체 발견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곧바로 전달된다.
그리고 적성 개체를 발견한 순간 움직이던 스파이더들이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포구를 망설임 적에게 돌리며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연달아 포성이 울리며 지면 위로 포탄이 빗발친다.
흙무더기가 사납게 치솟아 오르며, 폭발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품은 검은 연기가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일제 사격이었다. 회피한다고 하기에는 집중된 포탄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런 맹포격을 받고도 검은 연기를 걷어내며 모습을 드러낸 성기병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뒤늦게 다른 버그들이 다가오는 적성 개체를 향해 총구에서 불을 뿜어내고 있지만, 성기병의 질주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성기병을 지키고 있다. 무수한 숫자의 총탄이 그 몸체에 닿기도 채 전에 끝자락부터 찌그러지고 있었다.
괴물은 저것이 마력이라 불리는 불가해한 힘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버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해준 신비한 힘.
이윽고 기사의 맹렬한 돌진은,
───푸우욱!
데스 웜의 몸통에 커다란 검날이 박아넣으며, 엄청난 충격을 가함으로서 겨우 멈추었다.
그곳은 혁명이 시작된 도시─프라시온에서 거리가 불과 2km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다.
3.
그 시각 프라시온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시커멓던 하늘 서서히 푸르게 시린 색으로 물들고 있는 중이었지만, 아직 시민들이 깨어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
그래도 그나마 몇몇 부지런한 시민들이 하루일과를 준비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있을 뿐,
그런데 그때.
──콰아아앙!
“······!”
포성이 들렸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나츠오는 곧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흐릿했던 의식이 순식간에 각성했다. 전장에서 지겹도록 들은 소리였기에 순간 꿈인가 싶었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뭐, 뭐야? 방금 이 소리는···.”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버그? 버그가 이곳까지 왔다고?”
같은 병실을 쓰고 있던 부대원들 역시 다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소란스러워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도 방금 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이 근처에서 포격이라고?”
역시 잘못들은 게 아닌 건가. 나츠오는 등줄기로 차가운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뒤늦게 도시 전체에 비상 상황을 알리는 종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잠자고 있던 도시가 그렇게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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