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3 공략전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을 시간이지만, 여전히 지상 위에는 옅은 어둠들이 잔류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늘 속에 몸을 숨기듯 수십 기의 성기병들이 목표 지점을 향해 묵묵히 움직였다. 긴장감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음성 채널로는 간단한 농담조차 없었다.
네토루는 리엔이 데이터 링크해주고 있는 맵을 확인해보았다. 무수한 붉은 점들이 점철된 언덕에는 어제 리엔이 말했던 대로 상당한 숫자의 스파이더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스파이더들에게 발각되어 포격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경로는 바꾸지 않는다. 리엔이 제대로 제 역할만 한다면 여기를 돌파하는 게 옳다.
이윽고 스파이더들이 포진되어 있는 언덕을 껴안고 있는 평야에 도달했을 때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포탄을 날아올 것 같은 개방적인 공간 속에서,
─첫 번째 전술 마법탄이 사출되었습니다. 모두 마법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낭랑한 리엔의 목소리가 음성 채널로 전해졌다.
네토루는 그와 동시에 근처에서 같이 움직이던 소대원들을 모두 멈춰 세웠다. 리엔의 말대로 너무 접근했다가는 휘말릴 수가 있었다.
─투하 목표 지점은 예정대로 포인트 164입니다.
마침 네토루가 보고 있는 곳이었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이 전개를 끝 맞춘 장소.
기지에서 사출된 전술 마법탄이 이 근방에 도달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러한 틈새 속에서 세레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설마 제39구역에서 전술 마법탄 같은 게 사용될 줄은 몰랐네요.”
“뭐, 쉽사리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무기지.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녀석이니까.”
전술 마법탄을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위력의 매력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단번에 수십 마리의 버그를 괴멸시킬 수 있는 무기니까.
사령관은 물론이고 성기병 파일럿들도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막말로 전술 마법탄만 있다면 누군가가 죽을 위험 없이 버그들을 막아낼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리엔이 전술 마법탄을 하나 보유하고 있다고 했을 때는 네토루도 많이 놀랐다. 그 귀한 걸 설마 393부대 따위한테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어느 부대를 가도 전술 마법탄을 달라고 난리다. 그런데도 리엔이 그들 틈새에서 하나 받을 수 있던 건, 그만큼 상부에 끈질기게 요청했다는 소리겠지.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하늘 위에서 조그마한 투사체가 푸른 마력광을 아낌없이 흘린 채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게 보였다.
저게 바로 전술 마법탄이었다.
마법사들이 버그들의 공격 방식에서 영감을 받고 만들어낸 전술 무기.
이윽고 그대로 지상을 향해 내려꽂힐 것 같던 전술 마법탄은 눈이 멀것만 같은 엄청난 마력광을 방출하며 허공에서 팡─ 하고 터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무수한 마법진들이 하늘을 색칠하듯 허공에 다채로운 색채로 물감처럼 펼쳐졌다.
전술 마법탄이라는 것은 무수한 공격 마법들을 ‘포탄’에 응집해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
지상 위로 빛과 어둠이 반전하며, 어스름했던 그늘에 잠겨 있던 대지가 순식간에 환해진다.
아침이 밝아서가 아니다.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 아래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무수한 공격 마법 때문에 지상에 내려앉아 있던 어둠이 찢겨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마법진에서 생성된 엄청난 양의 불꽃과 번개가 지상을 거침없이 내려치고 있었다.
그것들은 목표를 쫓지 않고 그저 지상에 떨어지고 있을 뿐이지만, 그 숫자가 수백 수천 개가 되면 어떻게 피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목표 지점의 산과 언덕이 폭발에 휘말리며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렸다. 그 위치에서 마법의 세례에 두들겨 맞고 있는 버그들은 별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폭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마법으로 구현된 듯한 대규모 포격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럴 수밖에.
마법사들이 영감을 받은 것은 스파이더들의 대규모 포격 공격이었으니까.
오랜만에 전술 마법탄의 위력을 구경하던 네토루는 맵을 확인해보았다.
어느새인가 방금까지 붉은 점들로 점철되어 있던 언덕과 산이 제법 깨끗하게 변해 있었다. 그나마 잔존하고 있던 버그들도 이어지는 마법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멋진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끊임없이 마법을 토해내던 수백 개의 마법진들은 1분도 안 되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 힘을 다한 것이다.
이윽고 그렇게 허공에 수를 놓았던 마법진들이 전부 사라졌을 때였다. 리엔이 말했다.
─총 89마리. 목표 지점에 있던 버그의 90% 소멸 확인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스파이더가 몇 마리 남아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런데도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 있는 건가.
버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며 네토루는 소대를 이끌고 성기병을 움직였다. 진정한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비록 기습적으로 떨어진 전술 마법탄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버그들이지만, 반응은 신속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당황할 것 없이 넓게 퍼져 있던 버그들이 반격을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의 첫 번째 결집 장소는 역시나 예상대로 방어 진형의 중심이자 두 번째 목표 지점─ 데스 웜이 만들어낸 지하 통로였다.
심지어 아직도 지하 통로 밑에 숨어 있는 녀석들이 남아 있는 것인지, 슬금슬금 새로운 버그들이 지상 위로 올라오며 병력의 수를 늘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 없다.
오히려 마치 그것을 노리고 있던 것처럼.
─두 번째 전술 마법탄을 사출하겠습니다.
리엔은 두 번째 목표 지점에 망설임 없이 전술 마법탄을 쏘아 보냈다. 우습게도 버그들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굳이 타이밍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신속한 결집이 되려 화를 부르듯,
한 곳에 응집하던 수백 마리의 버그들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마법 세례에 다시 한번 처참히 녹아내렸다.
2.
포병 진지를 꾸리고 있던 스파이더와 그 주변의 방어 병력들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자, 각 소대마다 목표했던 지점에 진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술 마법탄의 투하로 인해 버그들의 진형에 일시적으로 커다란 구멍이 생긴 지금,
사방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버그들을 각개격파하며 최대한 그 숫자를 줄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가히 일방적인 사냥에 가까웠다. 버그들은 인간들의 위치를 모르지만, 인간들은 버그들의 위치를 안다. 그렇기에 가능한 압도적인 우위.
하지만 그러한 사냥꾼 역할은 다른 소대의 몫이다.
네토루의 목표는 데스 웜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이끄는 2소대와 챈들러의 1소대와 함께 우직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도착한 제2 목표 지점이자, 두 번째 전술 마법탄의 투하 지점 인근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드넓은 평야였던 곳이 지금은 포탄 세례라도 맞은 것처럼 이곳저곳에 구덩이들이 가득하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구덩이 안쪽에서 녹아내린 흙들이 희멀건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200여 마리가 넘는 버그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이곳에서 죽었다. 아무런 엄폐물 없이 평야 위에서 응집하고 있던 결과물이었다.
──끼이익?
그래도 아직 죽지 않은 녀석들이 있는 것인가.
여러 기의 성기병들이 가로지르고 있자니,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 꿈틀거리던 버그들이 적을 인식하고서 곧바로 반응하였다.
당연하지만 전술 마법탄에 휩쓸리면서도 간신히 목숨줄을 붙잡고 있던 녀석들은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 마법의 여파로 반쯤 몸이 날아간 채,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토루는 그러한 버그들을 하나둘씩 가볍게 여기지 않고 모두 정리하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도, 총구와 포구는 아직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콰아아아앙!
그러던 중 웬 포탄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 떨어졌다. 아무래도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가 어디선가 자리를 잡고 포격한 듯했다.
‘···멀군.’
리엔이 관측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맵에서 그 위치를 찾아본다.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네토루는 다른 소대에게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정리를 맡기기로 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격이 멈추었다.
칼라일이라는 사내가 이끄는 소대의 빠른 대응 덕분이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이는 헛되게 먹은 건 아닌듯하다.
네토루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리엔을 호출했다.
“사령관님. 데스 웜의 위치는 확인됐습니까?”
─···아니요. 아직 확인 안 됐습니다.
혹시 도망이라도 간 걸까. 만약 녀석한테 지능이 있다면 후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방어의 핵심이었던 스파이더의 포병 진지가 순식간에 괴멸당하고,
대응하기 위해 신속하게 결집하던 수백 마리의 버그 무리가 별다른 대응도 못 하고 괴멸당했다.
그리고 방어를 위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버그 무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때 합류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각개격파 당하는 중이었다.
아직 300여 마리 정도의 버그들이 남아 있지만 그중 대부분이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로커스트들과 센티페드들 뿐이었다. 화력보다는 척후와 기동성에 특화된 버그들.
그러니 사실상 성기병에게 위협이 될만한 화력을 지닌 버그들은 지금 전멸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쯤 되면 작전이 너무 순조로워서 걱정일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네토루는 생각 이상의 결과에 기뻐하기보다는 가슴 한쪽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이거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리고 그러한 불길한 예상이 맞았다는 것처럼,
리엔이 갑자기 아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데스 웜이 왜 저곳에?
"사령관님. 무슨 일입니까?"
─···지금 바로 데이터를 링크해드리겠습니다.
네토루는 맵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는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데스 웜, 저 녀석이 갑자기 제39구역의 후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그래도 만약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커다란 붉은 점은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혁명의 도시─프라시온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혁명기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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