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72화 (72/148)

EP.72 공략전

버그는 생명체였다.

아무리 싸우기 위한 전쟁 병기로 몸이 개조되었다고 하지만 녀석들의 근본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녀석들 역시 인간처럼 식량을 먹고, 잠은 자야 했다.

그런 점에서 아직 해도 완전히 뜨지 않아 먼 지평선도 그저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다음 날 새벽은.

녀석들을 공격하기에 제일 이상적인 시간이었다.

리엔이 괜히 새벽부터 작전을 시작하려고 계획한 게 아니었다. 밤과 아침의 경계가 느슨하게 허물어지는 시간대가 곧 녀석들의 생체 리듬이 제일 무너질 때였으니까 말이다.

“···역시 한 번 더 일치율을 올려두는 게 좋았을까요?”

조종석에서 성기병과 커넥팅을 하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던 세레스가 문득 그리 말했다.

한 번 몸을 섞었던 탓일까.

네토루는 슈트를 차려입은 세레스의 몸이 평소보다도 고혹적으로 느껴졌다. 분명 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움직임인데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게다가 은근슬쩍 엉덩이골 사이에 낀 슈트를 손으로 고쳐 입는 것이, 묘하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방금 한 말도 그렇고, 눈앞에 보이는 행동도 그렇고 이 여자는 지금 일부러 날 유혹하고 있는 건가?

덕분에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올려두면 좋았겠지.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이 높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러면 역시···.”

“하지만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무리한 관계는 좋지 않다고 보는데.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크거든. 실제로 어제 많이 피곤하지 않았어?”

“···. 조금 피곤하기는 했죠.”

뭘 기대하는지 대충 이해는 하지만,

애초에 세레스가 처녀였기에 그런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무리하게 한 번 더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도, 티끌만큼 오른 일치율로는 이번 전투에 큰 도움이 안 됐을 것이다.

오히려 전투하기 전에 괜히 육체적으로 체력만 소모하는 꼴이라 부정적인 면이 더 컸겠지.

뭐···. 그래도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지만 아무리 네토루라도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그런 방탕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윽고 세레스가 성기병과 커넥팅을 끝냈을 때였다. 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네토루.”

“왜?”

드문 일이었다. 세레스가 이렇게 선뜻 이름을 부른 건. 뭔가 싶었는데 그녀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작전은 반드시 제 선에서 끝내죠.”

카렌이 싸우게 하고 싶지는 않은 건가.

사실 네토루도 카렌과 커플링할 차례가 오지 않는 게 제일 좋은 결과이기도 했다. 뭐가 되었든 세레스의 성기병이 제일 성능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

그런데 그때 세레스가 한 가지 더 말을 덧붙였다.

“만약 이번 작전이 제 선에서 무사히 끝나면 당신이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게요.”

“그거, 꽤나 솔깃한데. 정말 내가 원하는 거 다 들어주는 거야?”

“···이상한 부탁만 아니라면요.”

“그러면 앞으로 나랑 커플링할 때마다 기사 전용 슈트를 입어주면 좋겠는데.”

“네? 기사 전용 슈트요?”

생각지 못한 요구였을까. 조종석에 몸을 눕히고 있던 세레스가 흠칫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당혹스러운 눈빛이었다. 자색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린다.

여기사들이 입는 기사 전용 슈트는 기본적으로 노출이 많다.

지금 세레스가 착용하고 있는 바디슈트가 노출 하나 없이 전신이 착 달라붙는 전신 타이츠 같은 형태였다면,

기사 전용 슈트는 반쯤 수영복 느낌으로 가슴골과 배꼽, 허벅지 같은 신체 부위를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디자인이었다.

“ 그, 그건 곤란한데요···. 아무리 그래도 기사 전용 슈트는 조금···.”

“ 왜? 기사단에서 항상 입었을 거 아니야.”

“그건···. 그런데···.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어요? 애초에 393부대에 기사 전용 슈트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사령관님한테 구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아, 몰라요. 어쨌든 제가 싫으니까 안 돼요.”

“소원 들어준다고 했으면서, 깐깐하기는.”

“읏···. 그렇지만 남들 전부 평범한 파일럿 슈트를 입고 있을 때, 저만 그걸 입으면 이상하다고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죠?”

그래서 요구하는 것이었다. 애들 사이에서 혼자 부끄럽게 서 있는 세레스를 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일종의 가학심에 가깝다.

하지만 세레스는 정말로 입기 싫은 듯했다.

단순히 노출이 많아서 때문이 아니라, 그냥 기사 전용 슈트 자체에 나쁜 기억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일단 기사단에서 쫓겨난 몸이니까.

세레스는 우물쭈물하다가 설득하는 어조로 말했다.

“···다른 거 말해봐요. 정말로 기사 전용 슈트는 안 되니까요.”

“다른 거라···. 일단 생각은 해볼게.”

네토루는 입술을 비틀었다. 기사 전용 슈트를 거부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세레스치고 제법 제대로된 유혹이었다.

어떻게든 이번 작전이 성공하도록 출격 전에 전투 의지를 끌어 올려줄 생각이었던 걸까.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성공이다.

그렇지만 정작 세레스도 자기가 한 제안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붉다. 애써 정면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하는 게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후로도 경직된 긴장감을 풀기 위해 세레스에게 적당히 농담을 건네고 있자니,

─네토루, 세레스. 지금부터 너희들이 사용할 성병기에 대해서 설명할 거니까 잘 들어.

슬슬 무장 준비가 끝난 걸까. 아스나의 목소리가 음성 채널로 전해졌다.

─이번에 상급 부대에서 지원해준 성병기의 원전은 「알슈트페론」이라는 유물이야.

“···알슈트페론. 그거, 혹시 용살자 페리온의 검을 말하는 거야?”

─뭐야. 알고 있네?

“용살자 페리온은 유명한 전설이니까.”

전설에 따르면 영웅 페리온은 악룡의 목을 일격에 베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기타 여러 전설들이 그러하듯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온갖 허구가 뒤섞이길 마련인지라 그 내용을 완전하게 신뢰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페리온이라는 존재가 악룡의 목을 베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다루던 알슈트페론이라는 검 역시 실존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병기는 만들어질 수 없다.

성병기를 만들기 위해선 원전이 되는 무구의 일부가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성병기가 귀한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튼, 페리온의 전설을 알고 있으면 설명을 이해하는 건 쉽겠네.

아스나의 말과 동시에 네토루는 보았다.

격납고 안쪽에서 보관되어 있다가 세레스의 성기병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성기병용 무기를.

그것은 커다란 대검이었다.

무언가 화려한 색채나 양식은 없지만 성기병의 몸체만큼이나 두텁고, 넓적한 검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이쯤 되면 출력이 약한 성기병은 저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네토루가 그 단순무식한 무기의 형태에 감탄하고 있자니 아스나가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했다.

─너희들이 사용할 성병기의 능력은 매우 단순해. 페리온이 용의 목을 베었던 일격의 재현이야.

“그거 심플하고 좋은데.”

용을 베었다는 일격으로 데스 웜을 죽이라는 건가.

2.

한 편 그 시각 카렌은 세레스의 성기병에게 전달되고 있는 성병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무식한 형태의 검을 보며 감탄하던 카렌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스나. 저거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어요?”

“평범한 성기병은 좀 힘들지. 세레스 정도 되니까 가능할걸? 저거 겉으로 보이는 거 이상으로 엄청 무거워.”

“확실히 무거워 보이기는 하네요.”

내 성기병이라면 과연 저걸 휘두를 수 있을까?

아니, 아무리 네토루가 커플링 파트너라고 해도 저런 걸 제대로 휘두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각 성기병마다 낼 수 있는 힘의 차이는 뚜렷하니까 말이다. 민첩한 기동이면 모를까 카렌의 성기병은 힘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커플링까지 끝낸 걸까.

세레스의 성기병은 자신의 앞으로 전달되고 있던 성병기─알슈트페론을 자연스레 손에 쥐고는 앞으로 나왔다.

다른 성기병보다 육중한 몸집을 지닌 탓인지, 대검을 쥔 모습이 상당히 멋스러웠다. 마치 그녀만을 위한 전용 무기를 지급받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 녀석 대검 쓸 줄 아나?’

그러면서도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아마 큰 문제는 없겠지. 왠지 모르게 저 녀석은 아무 무기나 쥐여주어도 잘 싸울 것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그렇게 무장을 마친 세레스의 성기병을 선두로, 격납고에 있던 다른 성기병들도 하나둘씩 출격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철문이 열리며, 거인들이 밖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격납고 안쪽에 외로이 남겨진 채 지켜보던 카렌은 등을 돌렸다. 세컨드라고 하지만 여기서 무작정 네토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카렌 나름대로 할 일이 있다.

만약 혹시라도 정말로 파트너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면, 신속하게 전투에 투입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기지까지 와서 파트너를 교체하는 건 너무 늦다.

마침 아스나도 준비가 끝난 것인지 성기병 운송 차량을 이끌며 격납고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 위에는 카렌의 새하얀 성기병이 안치되어 있었다. 카렌과 아스나는 이대로 성기병 운송 차량을 가지고 전장 주변에서 대기할 생각이었다.

근처에서 기다리던 카렌이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자 아스나가 표정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혹시 우리한테 포탄이 날아오지는 않겠지?”

“···. 마법으로 못 막나요?”

“막아봤자 아마 그대로 폭사할걸? 리엔이면 한두 발 정도 막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방어 마법에 그다지 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결계 구축하는 것도 조금 연습해둘걸. 은폐 마법도 잘 못하는 편인데···. 쯧, 잘 숨어 있어야 겠네.”

“······”

아스나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버그들의 눈에 띄면 목숨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듯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약간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카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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