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71화 (71/148)

EP.71 공략전

작전 브리핑이 끝나고 리엔은 네토루와 카렌만 남겨두었다. 네토루가 요청한 세컨드 일로 이야기할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렌은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다.

“네토루. 카렌을 세컨드로 두겠다는 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싶습니다.”

“즉···. 세레스가 오버 히트 상태에 도달했을 때를 고려하고 싶다는 건가요?”

“예. 성병기로 데스 웜을 죽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실패하면 분명 세레스는 기동 불능 상태가 될 테니까요.”

“···그러는 당신은 괜찮고요? 세레스가 성병기로 오버 히트가 될 정도면 당신도 성치 않을 텐데요.”

“문제없습니다.”

어째서일까. 혼자서 여자 두 명을 커플링 파트너로 연달아 상대할 수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지만, 네토루의 말은 전혀 오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카렌은 알고 있었다.

네토루라면 가능할지 모른다는 걸.

심지어 저번에 콕피트 안에서 세레스를 치료해주었을 때만 해도 그렇다.

여기사인 세레스가 오버 히트 상태에 도달했음에도 정작 네토루 혼자 멀쩡하지 않았는가.

이런 건 사실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성 파일럿이 오버 히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기동했다면, 남자도 그만큼 많은 마력과 체력을 소모했을 게 뻔한 일이니까.

카렌이 저번에 괜히 나츠오랑 같이 병원에 입원한 게 아니었다. 누구 한쪽이 무리했다면, 다른 한쪽 역시 무리하게 되는 게 커플링이었다.

···물론 이건 카렌과 나츠오가 서로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네토루처럼 여성 2명과 연달아 커플링을 하겠다는 건, 남들보다 2배 더 많은 전투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마력도, 체력도, 그 소모량은 분명 엄청나겠지.

“···그러면 그 전에 먼저 카렌에게 물어보죠.”

리엔은 시선을 돌려 카렌을 응시했다.

“카렌. 네토루의 세컨드가 돼도 괜찮겠어요? 저번에 몸이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1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들었는데요.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오버 히트 상태였던 걸로 알고요.”

“그건···.”

사실 몸 상태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비록 네토루의 치료를 받으면서 빠르게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리엔이 말했던 대로  원래는 1주일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할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 몸 상태면···.

거기서 카렌은 네토루를 힐끔 쳐다보았다.

역시 여전히 녀석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왠지 죄를 진 것처럼 긴장된다고 해야 할까. 여전히 머릿속에는 어젯밤 일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감정 따위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카렌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알겠습니다.”

리엔은 굳이 두 번 이상 묻지 않았다. 그건 작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걸 내심 인정하기 때문이겠지.

정말로 네토루가 2명과 연달아 커플링 할 수 있다면 말이다.

2.

작전은 내일 아침에 시작된다. 그렇기에 카렌은 곧바로 성기병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만약 정말로 세레스와 네토루가 실패했을 경우,

그러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성기병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심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성기병 활성액에 들어가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외부와 단절되기 때문에 명상을 하기에는 좋았다.

카렌은 어젯밤에 보았던 일을 전부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남녀가 잠자리 좀 가질 수 있지, 뭘 그런 걸 계속 신경 쓰는가.

스스로를 그렇게 납득시킨 채,

성기병 조정 작업을 끝내고 나왔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끈적끈적한 성기병 활성액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콕피트를 열고 나오니,

“···응?”

카렌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머리 위에 수건이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네토루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주고 있었다.

갑자기 이건 뭘까. 카렌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뚱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뭐야, 갑자기.”

“수건 가져다 주면 좋겠다며.”

“···내가? 나는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대신 나한테 눈치는 줬지.”

“······”

점심때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건가.

차마 부정할 수는 없기에 카렌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의 손길에 조용히 몸을 맡긴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언뜻 무뚝뚝해 보이는 눈을 하면서도 손길은 세심하기 그지없다.

세레스한테도 이렇게 해준 건가?

자연스레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카렌은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웠다. 갑자기 여기서 세레스는 왜 나오는 건가.

어쨌든 조정 작업을 하면서 머릿속을 말끔히 정리한 덕분일까. 낮과 다르게 어색함 없이 예전처럼 네토루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카렌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뭐가.”

“세레스가 나랑 커플링 하는 거 싫어할 텐데.”

세레스는 카렌에게 말했다. 커플링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괜히 몸만 다칠 거라고. 그래서 그녀는 카렌이 네토루랑 커플링 하지 않기를 원했다.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상황이 이런데 뭐 어쩔 수 있나. 대신 너 차례가 오지 않게 자신의 선에서 끝내겠다고 말하던데.”

“그래?”

아무래도 세레스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나 보다. 이렇게 되니 정말로 그날 아침에 세레스랑 싸웠던 게 바보처럼 됐다.

이럴 거면 왜 그리 싸운 건지 정말···.

비록 이제 화해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볼수록 쓴웃음만 나오는 해프닝이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역시 걱정이 되는 게 하나 있다.

“이건 정말 만약인데. 혹시라도, 내 차례가 오면 너는 괜찮은 거야? 계속 싸울 수 있겠어?”

“내가 마력 탈진이라도 될까 봐 걱정해주는 거야?”

“그야, 그렇지.”

만약 다른 남자들도 네토루처럼 여성을 바꿔가며 연속 전투가 가능했다면, 지금처럼 커플링 파트너가 한 명으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실력 좋은 한 명에게 몰아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세컨드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성 파일럿이 오버 히트로 몸에 무리를 느낀다면, 남자들의 경우 마력 탈진으로 인해 고생하게 된다.

아무리 서로 역량 차이가 난다고 해도 남자든, 여자든 성기병 기동 시간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지만 네토루는 평소의 그것처럼 입매를 살짝 비틀고는, 평소의 그것처럼 뻔뻔스럽게 말했다.

“걱정 마. 문제없을 거니까.”

“···또 그 뻔뻔한 얼굴. 정말 믿어도 되는 거지?”

“물론.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나?”

카렌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없기는 하다.

맨날 네토루 특유의 뻔뻔한 얼굴로 문제없을 거라고 말하면, 대체로 그랬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을 수밖에. 카렌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당돌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한 번 믿어볼게. 물론, 내 차례 오지 않고 세레스 선에서 끝나는 게 제일이지만.”

“그래. 이제야 겨우 너 다운 얼굴을 하네.”

“······”

갑작스러운 네토루의 말에 카렌은 입가에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는 진지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네가 생각하는 나 다운 얼굴이 뭔데?”

“자신감 넘치고, 씩씩하고 당돌한 얼굴.”

한 치의 고민도 없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네토루가 생각하는 내 모습은 이런 건가. 뭔가 기분이 묘해지는 표현이었다.

“카렌. 너, 낮에는 정말 이상했어.”

그 정도로 낮에 내가 이상하게 보였던 건가.

점심때의 일을 되새겨보던 카렌은 네토루를 흘겨보며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렌은 조용히 속삭였다.

“···좀 있다가 방으로 갈 테니까, 치료 해줘.”

점심에는 일부러 피했지만,

그래도 내일 출격할지 모르니 지금은 치료가 필요했다. 성기병을 조정했으니, 이제 몸 상태를 조정해줄 필요가 있었다.

3.

늦은 저녁 무렵의 숙소 안은 비장함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작전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온 파일럿들에게는 393부대원들이 쓰는 숙소가 그대로 배정되었다. 다행히 방은 널널했기에 하루 정도는 머무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세컨드라니.”

숙소 복도를 걷던 칼라일은 매우 드문 것을 보았다는 것처럼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네토루, 그 남자는 정말로 감당할 수 있는 건가?

세컨드를 두겠다는 건, 단순히 여성 2명을 커플링 파트너로 두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번 작전을 위해서 여성 2명과 번갈아 가며 연속으로 전투를 하겠다는 소리였다.

당연하지만 흔하지도 않고, 쉬운 일도 아니다.

대규모 교전에서 에이스 파일럿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드문 전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혹사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한 전투에서 가끔 나타난다고 하는 게 옳겠지.

애초에 연속으로 여자 2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는 건가.

그리고 왜 그런 녀석이 제39구역에 있는 거지.

그런 수준이라면 이런 유배지에 처박혀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게다가 성병기를 사용한다는 건, 파트너 중 한 명이 여기사라는 건데···. 그런데도 세컨드를 둔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녀석이다.

여러 전장을 돌아다녀 본 탓일까. 세컨드를 두고 싸우는 파일럿은 몇 번 본 경험은 있다.

그렇지만 여기사가 파트너인데도 세컨드를 두는 건 칼라일도 처음 봤을 뿐더러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러던 그때였다.

“···카렌?”

복도를 걷던 칼라일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늦은 시간에 카렌이 조심스레 남자 방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늦은 시간에 남녀가 같은 방에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게다가 묘하게 얼굴이 붉은 그녀를 보며 칼라일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착각이면 좋을 텐데.

나츠오, 이 녀석 정말 괜찮은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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