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0 공략전
카렌.
짧은 시간 동안 칼라일이 지켜본 그녀는 풋풋한 느낌의 귀여운 아가씨였다. 겉으로는 차분한 척해도 역시 어린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건가.
나츠오에 대해 적당히 장난 좀 쳤더니 곧바로 순진하게 심각해지는 얼굴이란,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해서 웃음만 나올 정도였다.
···좋은 아가씨를 파트너로 두고 있다.
이렇게 직접 확인하고 나니 정말 운 좋은 녀석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이쯤 되면 남자로서 샘이 날 정도다.
'왜 나는 소꿉친구가 없는 거지.'
칼라일이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네토루?”
카렌이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더니 한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옆에 있던 칼라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렌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으니까.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 시선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구경하던 칼라일은 방금 나타난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흠.’
탁한 느낌의 금발과 구릿빛 피부. 그러면서도 잘 정돈된 분위기와 육체가 제법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사내였다. 얼핏 봐도 부대 안에서 흔히 보이던 꼬맹이들과는 존재감부터가 다르다.
···혹시 저 녀석이 카렌의 커플링 파트너인가.
“···그,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니. 이제 곧 작전 브리핑 시간이야.”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사내의 지적에 카렌이 허둥지둥 시간을 확인하는 척했다. 그러면서도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사내의 눈치를 살핀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칼라일은 미간을 좁혔다. 뭘까 이건. 방금까지 당차 보이던 아가씨의 분위기가 너무 바뀌었다.
“···오늘 따라 정말 너 답지 않은 걸.”
“그, 그런가? 미안.”
이제는 아예 얼굴까지 붉히고 있었다. 은연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 둘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거 좋지 않은데.’
옆에서 그런 둘의 관계를 보고 있자니 칼라일은 상당히 가슴이 불편해지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던 칼라일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큼큼··· 혹시 당신이 카렌의 커플링 파트너야?”
“자, 잠시만···. 칼라일 씨? 이 녀석은 지금 제 커플링 파트너가···”
카렌이 옷자락을 잡으며 말렸지만, 칼라일은 멈추지 않았다. 네토루라는 이름의 사내는 그제야 칼라일을 인식하듯 시선을 돌렸다.
“그러는 당신은 이번에 지원 온 파일럿인가?”
“뭐, 당연히 그렇겠지? 외부인이 부대 안에 갑자기 들어올 리는 없을 테니까.”
“이름은?”
“칼라일. 391부대에서 왔어.”
자기소개와 함께 칼라일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보았다. 네토루는 그런 칼라일의 손을 잠시 빤히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받아주었다.
─꽈득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칼라일은 살짝 고개를 들어 네토루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당황하거나, 화내는 기색 없이 여전히 무덤덤하다.
단지 조용히 장난에 응수해주고 있을 뿐.
역시 쉽지 않은 상대다. 어쭙잖은 장난을 이렇게 당연히 받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상태로 칼라일은 생긋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좀 더 깊숙하게 알아보고 싶지만, 여기서 외부인이 어설프게 개입했다가는 괜히 상황만 악화시킬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면 좋겠는데.’
단지 칼라일은 속으로 조용히 혀를 찼다.
2.
곧 리엔의 작전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현재로서는 커플링 파트너가 없기에 출격할 일은 없겠지만, 카렌도 393부대원으로서 리엔의 브리핑을 듣는 건 당연했다.
“···작전은 내일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에 곧바로 시작할 겁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긴급한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스 웜이라는 괴물이 만든 지하 통로를 통해 버그들이 지상으로 끊임없이 올라오며 진을 꾸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이건 상당히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현시대에서 인간들이 버그들과의 전투에서 크게 압도하고 있는 것은 정보였다. 버그들이 관측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압도적인 정보의 우위로 원하는 형태의 전투가 가능한 것이다.
지난 수년간 버그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던 건 이러한 정보의 우위로 철저하게 방어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반대였다.
인간들의 영역에서 버그들이 방어를 한다.
이것은 본래라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기본적인 방침부터가 어그러졌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데스 웜이 만든 지하 통로도 큰 문제였다.
빠른 생장만큼이나 버그들의 수명은 극단적으로 짧다. 그렇기에 최악의 경우 장기전으로 이끌어서, 지원 병력이 추가되는 걸 어떻게든 틀어 막는다면 자연적인 소멸을 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땅밑에서 관측을 피해 병력이 추가되면, 어떻게 따로 지원 병력을 끊기 위해 요격을 나갈 수도 없었다.
막말로 보급을 담당하는 엔트조차도 섬멸할 수 없는 게 현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지하 통로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찾기에는 시간의 여유가 없다.
“···현재까지 관측된 버그들의 숫자는 총 694마리입니다. 그중에서도 상당수의 스파이더가 이미 고지를 잡고서 포격 준비를 끝낸 상태죠.”
리엔이 허공에 맵을 띄웠다. 상세한 지형 정보가 표시되고, 스파이더라는 태그가 표시된 붉은 점들이 점철된 언덕이 모습이 드러냈다.
이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393부대원들과 다르게 다른 부대에서 온 파일럿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버그들의 숫자도 문제였지만,
제일 큰 문제점은 버그들이 이미 완벽하게 방어 준비를 끝낸 상태라는 점이었다. 특히 산과 언덕에 자리 잡은 스파이더들이 문제다. 녀석들은 적이 인식되는 순간 망설임 없이 포탄을 쏘아낼 터.
성기병이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일방적으로 뚜드려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접근에 성공한다고 해도 스파이더 주변에는 방어 병력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을 터. 예를 들어 침투형 센티페트 같은 버그들이 스파이더를 지키기 위해 땅밑에 숨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한 상황을 해결할 리엔의 방법은 간단했다.
전술 마법탄으로 스파이더들이 자리 잡은 일대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듣자 하니 상급 부대에서 성병기와 함께 전술 마법탄도 한 발 지원해줄 예정인 듯했다.
그리고 기존에 393부대가 보유하고 있던 전술 마법탄은 데스 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과 그 주변에 있는 버그들을 노릴 예정이었다.
이번 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실 데스웜을 섬멸하는 일이다. 녀석이 있는 이상 언제 지금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리엔은 전술 마법탄으로 데스 웜을 죽이는 건 무리일 거라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데스 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땅밑에 계속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하 통로가 있는 지역 근처에서 간헐적으로 관측되고 있을 뿐, 현재도 제대로 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녀석의 숨통을 끊는 건 네토루다.
전술 마법탄으로 인해 자극 받은 녀석이 땅밑에서 나타나면, 성병기를 사용하여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건 무척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가 되겠지. 카렌은 네토루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
네토루는 평소처럼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저 녀석은 긴장되지도 않은 건가. 정작 옆에 있는 세레스는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는 데 말이다.
‘···녀석 답네.’
하기야. 녀석이 긴장하는 얼굴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러운 거겠지만. 카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변함없는 네토루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카렌. 뭔데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야?”
“으, 응? 뭐가?”
작전도와 함께 리엔의 브리핑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린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카렌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린이 눈매를 찡그리며 말했다.
“뭐긴. 아까부터 누렁이만 쳐다보고 있잖아.”
“···그, 그게.”
“저 녀석이랑 뭔 일 있던 거야? 상황실에 들어올 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더니만.”
날카로운 린의 질문에 카렌은 입술을 달싹였다.
···확실히 뭔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남한테는 이야기할 수 없다. 어젯밤에 네토루가 세레스랑 섹스를 하는 소리를 엿들었다는 걸 어떻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어제 일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성경험은 물론이고 성 지식이 없는 카렌에게 어젯밤의 일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덕분에 네토루랑 마주칠 때마다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녀석을 보는 순간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다. 그건 어떻게 억누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세레스의 몸을 껴안고, 그 귓가에 사랑을 속삭일 그 모습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올랐으니까. 물론 두 사람이 그런 달콤한 말을 속삭일 정도의 연인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관계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머릿속에서는 제멋대로 카렌의 망상이 미쳐 날뛰었다.
게다가 그러한 두사람 관계를 엿보며 방앞에서 자위까지 했던 걸 생각하면···. 네토루랑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 있을리가 없다.
어째서 어제 내가 그랬던 걸까.
세레스한테 수건을 가져다 준다고 복도에서 애처럼 투덜댔던 것도 있고, 게다가 작전 브리핑이 시작되기 전에 멍청이처럼 허둥지둥했던 탓일까. 애써 억누르던 자괴감이 가슴 안쪽을 파고든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 걸 고민하면서도,
리엔의 작전 브리핑이 끝나갈 때였다.
“리엔 사령관님. 한 가지 요청할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카렌을 제 세컨드로 두고 싶습니다.”
카렌은 예상치 못한 네토루의 요청에 정신이 번뜩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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