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공략전
네토루가 393부대에 처음왔을 때, 부대 안을 구경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상주하는 부대원의 숫자에 비해 기지의 크기가 꽤나 크다는 것이다.
혹시 처음부터 부대원의 숫자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기지를 크게 지은 걸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아마 초기에는 이러한 기지 크기에 어울리는 부대원들의 수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는 부대 식당 안쪽에 있는 사진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초창기에 찍힌 사진속의 사람들은 현재의 393부대원들보다 많았다.
그걸로 판단컨대 리엔이 사령관으로 오기 전,
리엔의 전임 사령관이 있던 시절에 393부대는 제법 많은 파일럿들을 보유하고 있었을 게 확실했다.
게다가 지금의 393부대 처럼 나이 어린 애들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아무튼, 평상시에는 제법 널널했던 격납고 안은.
방금 도착한 지원 병력들 덕분에 순식간에 성기병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격납고가 꽉 찬 모습은 처음 본 탓인지 어째 낯설게만 느껴지는 가운데,
─···쟤네 우리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그러게. 역시 다른 부대도 우리랑 똑같은 건가?
393부대의 부대원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른 부대에서 지원 온 파일럿들을 지켜보았다.
일단 같은 구역에 있다고 하지만 부대원들이 지원 온 파일럿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외부인을 구경하는 것에 가까웠다.
비록 예전에 몇 번 협력해서 같이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다고 해도, 서로 얼굴을 직접 본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만남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렇게 393 부대원들과 지원 온 파일럿 간의 만남은 리엔의 주도하에 간략하게 진행되었다.
서로 친해지는 것까지는 무리여도, 작전 수행을 위해 서로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다행히 리엔이 만남을 주도한 보람이 있는지 몇몇 부대원들이 먼저 나서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걸 근처에서 지켜보던 챈들러가 말했다.
“···나참. 지원 온 녀석들도 전부 애들 뿐이구만. 올 거면 적당히 나이 좀 먹은 놈들 왔으면 했는데.”
옆에서 그 중얼거림을 들은 네토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지원 온 파일럿들 대다수가 393 부대원들처럼 앳된 얼굴들뿐이었다.
평균 연령대를 생각하면 이쪽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뭐 덕분에 정작 부대원들은 말을 걸기 쉬워진 것 같지만, 그래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역시 다른 부대도 우리랑 다를 건 없는 건가···.”
네토루는 혀를 차는 챈들러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굳은 표정도 그렇고, 불쾌히 찌그러진 눈매를 보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물론 그가 지원 온 파일럿들을 욕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이것은 어딘가 부조리한 이 현실에 한탄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다른 부대라고 일부러 저런 애들을 보냈을까. 다른 부대도 그냥 393부대랑 상황이 똑같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소녀, 소년 나이대의 앳된 파일럿들을 지켜보던 챈들러가 한숨 쉬며 네토루에게 물었다.
“네토루. 네가 전에 있던 부대는 어땠냐?”
“뭐가 말이지?”
“거기도 우리 구역처럼 애들이 많았냐고.”
“···.성인이 안 된 애들이 여럿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여기처럼 핵심 전력으로 싸우지는 않았지.”
“역시 보통은 그게 정상이겠지?”
네토루가 393부대에 오고서 괜히 혀를 찼던 게 아니었다. 성인보다도 애들이 많은 부대라니.
그렇다고 다른 부대에 어린 파일럿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처럼 카렌이나 린과 란 같은 애들이 핵심 전력으로 싸우고 있지는 않았다.
어린 파일럿들은 일종의 보조 전력에 가까웠다.
실제로 작전을 수행할 때면 앞에서 싸우기보다는 상황을 봐서 축차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식적으로 볼 때 전력을 차례대로 투입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그래도 미성숙한 파일럿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베테랑 파일럿들이 적당히 먼저 시선을 끌어주지 않으면 너무 많이 죽어버린다. 성기병의 전투는 각자의 기량에 따라 그 전투력이 천차만별로 벌어지니까.
막말로 어느 정도 성숙한 베테랑 파일럿이라면,
쿄쿄와 페르아 같은 어린 커플들보다 성기병 단 한기로 몇 배는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네토루가 카렌이나, 세레스 같은 커플링 파트너를 무리시키면서도 매 전투 때마다 혼자 버그들의 시선을 끄는 이유이기도 했다.
솔직히 어린 애들을 하나하나 신경 써주는 것보다 앞에서 혼자 싸우는 게 편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걸 보면 최근에 너라도 와서 다행이다.”
“다 큰 남자 놈한테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낯간지러운 말을 듣는 건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야야···. 조금은 나 좀 이해 해줘라. 안 그래도 부대에 다 큰 성인 남성이 나 혼자뿐이라서, 그동안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알아?”
엄살이 아닌 진심 어린 그의 말에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챈들러, 이 덩치 큰 사내는 실력을 떠나 인성적으로 딱히 싫어할 수가 없는 사내였다.
아무래도 부대 안에서 세레스와 함께 유일한 성인 파일럿이다 보니 네토루도 그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법 신뢰해도 좋은 남자였다.
챈들러가 괜히 세레스만큼이나 부대원들에게서 사랑받는 게 아니다.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겨도 순박한 남자였다.
“393부대에서는 나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야. 오히려 어깨만 무거워지는 일이지.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너도 이제는 이해하지?”
“어느 정도는.”
“뭐, 딱히 리엔 사령관님이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연장자랍시고 위험한 역할을 어쩔 수 없이 다 떠맡게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
챈들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다.
확실히 애들이 많은 부대에서 혼자 나이가 많으면 껴안고 있는 부담감이 엄청날 수밖에. 그것은 단순히 책임감이라고 표현할 간단한 것이 아니다.
“덕분에 아카네도 괜히 고생만 하고···. 정작 그 녀석도 아직 어린데 말이야.”
아카네는 챈들러의 커플링 파트너였다. 그리고 카렌과 동갑내기 소녀. 그렇지만 저번에 생일이 지나서 정식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하던가.
마침 근처에서 아카네가 부대원들과 함께 다른 부대에서 온 파일럿들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는 테 안경에, 살짝 퍼지는 롱 헤어도 그렇고 단정한 느낌의 소녀였다.
챈들러는 그런 자신의 파트너를 미안한 듯하면서도 따스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 눈을 보니 꽤나 긴밀한 관계인 듯했다.
평범하게 ‘커플링 파트너’를 쳐다보는 눈은 아니었다. 소중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남녀 간의 애정 어린 눈동자였다.
그렇게 한동안 아카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챈들러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 에휴. 아무튼, 어쩌다가 나 같은 놈이 이렇게 부대에서 제일 연장자가 된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내가 처음 왔을 때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말이야.”
“처음 왔을 때라면 언제를 말하는 거지?”
“글쎄? 대충 6년 됐나?”
“···6년? 그러면 성인식도 여기서 치른 건가?”
“뭐, 그렇지? 이래봬도 나도 다른 부대원들처럼 나름 귀여움받던 막내 시절이 있었다고.”
챈들러가 막내였던 시절이라···.
네토루는 그를 한차례 훑어보았다.
신장은 대략 185센티 전후. 옷 안쪽으로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게 융기된 두꺼운 흉판과 넓은 어깨 폭.
본래 나이보다 한참 늙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도저히 막내 시절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남자에게도 막내 시절이 있던 건가.
조용히 웃던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6년이라. 한 곳에서 정말 오래도 있었네.”
“그러게···. 정말 오래 있었네···.”
챈들러의 입가에 새겨지던 미소가 씁쓸해졌다.
“다들 죽거나, 폐인이 돼서 하나둘씩 사라져버렸어.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나 혼자 남아버렸고.”
친하게 지내던 부대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게 어떤 느낌일까.
아쉽게도 네토루는 챈들러가 지금 어떤 감상을 품고 있는지 동감해줄 수가 없었다.
그는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입장이 아니라, 반대로 사라지는 입장이었으니까.
실제로 네토루의 경우 챈들러와 다르게 한 부대에서 1년 이상 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끝내 제39구역에 흘러들어왔다.
아무튼,
‘···393부대만 특별한 게 아니었나 보군.’
같은 구역 안에서도 별다를 게 없는 다른 부대의 사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정말 시궁창 같은 곳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끼고 말았다.
과연 내가 이곳에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문득 네토루가 그러한 생각을 할 때였다.
“아무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곳에 네가 와서 다행이야. 내가 사라지면 남자들 중에서는 나츠오가 제일 연장자가 되는 거였으니까.”
상념을 깨우는 챈들러의 평온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그 순간만큼은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지금 안심하고 있는 건가.
이제 자신이 사라져도 문제없을 거라면서 말이다.
네토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노려보았다.
“···챈들러. 지금 뭔가 갑자기 사라질 것처럼 말하는데,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간혹 있다.
전장에서 버그들에게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위적으로 마력 신경계를 망가뜨려서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걸 선택하는 파일럿들이 말이다.
물론 마력 신경계가 망가지면 사람은 폐인이 된다. 적어도 멀쩡한 몸을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경력 좀 쌓이면 ‘요령’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최대한 몸에 무리가 안 가는 식으로 마력 신경계를 망가뜨리는 요령을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것인지 챈들러는 호쾌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 마.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곳에 아카네를 놔두고 이제 와서 나까지 그럴 수는 없지.”
“······”
···나까지 그럴 수 없다라.
그러면 다른 부대원들은 그런 적이 있다는 걸까.
어쩌면 이곳에 성인 남성들 중에서 챈들러만 유일하게 남은 건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죽을 게 뻔한 곳이니 도망친 것이다.
자기 몸을 스스로 망가뜨려서라도 말이다.
죽음의 공포가 정신을 압도하는 순간 사람은 쉽게 나약해지길 마련이다. 그러니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아, 맞다.”
그때 챈들러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듯 별안간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팔꿈치로 네토루의 옆구리를 꾹꾹 찔러댔다.
“네토루. 한 가지 물어봐도 되냐?”
“뭘?”
“도대체 세레스는 어떻게 공략한 거냐?”
“······”
공략이라니.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어처구니 없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자니 챈들러가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 말이야. 예전에 다른 파일럿들이 몇 번 건드렸다가 크게 깨졌거든. 그런데 지켜보니까 너는 뭔가 다른 것 같고···.”
“정확히 어떤 식으로?”
다른 파일럿들이라···.
조금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관심을 보이자 챈들러도 신난 듯 말을 이었다.
“크흠.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쓸데없는 이야기는 거기까지 해요.”
하지만 그 순간 낮게 깔린 세레스의 목소리가 챈들러의 말을 끊었다. 그 목소리에 놀란 듯 챈들러가 흠칫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성기병 조정 작업 때문에 입고 있던 슈트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세레스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의 과거를 대화 주제로 삼으려던 자신의 죄를 알아서일까. 챈들러는 덩치에 안 맞게 세레스의 눈치를 보듯 어색하게 웃었다.
“아···. 세레스. 그게···. 하하.”
“챈들러,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괜히 그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가는···. 알죠?”
“···물론. 잘 알지.”
“그러면 믿고 있을게요. 저는 챈들러, 당신을 꽤나 신뢰하고 있으니까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부대원하고 서먹하게 지내고 싶진 않아요.”
쩔쩔매는 얼굴로 챈들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레스는 은은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부대원들에게 항상 보여주던 온화한 웃음이었지만, 정작 세레스의 자색 눈동자 안에는 오싹한 무언가가 소리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윽고 얼어붙은 챈들러를 가볍게 지나치며 세레스가 네토루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배고픈데, 어서 점심이나 먹으러 가요. 안 그래도 오래 기다렸잖아요?”
그녀의 말에 네토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호기심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도대체 뭔데 저러는 걸까.
네토루는 궁금해졌다.
“방금 챈들러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비밀이에요.”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채 전에 세레스가 쌀쌀맞은 목소리 그리 말하더니 등을 획 돌렸다.
2.
한 편 그시각, 지원 온 파일럿들 사이에서 393부대를 신기한 눈초리로 구경하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부스스한 턱수염을 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의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여기가 그 녀석이 있던 부대인가?”
설마 퇴원하자마자 이렇게 그 꼬맹이의 부대에 지원 병력으로 차출될 줄이야.
우연치고는 정말 우습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나 위험한 작전이 될 것 같던데…. 조금 꾀 좀 부렸더니 아무래도 사령관이 단단히 화난 듯하다.
역시 적당히 엄살 부릴 걸 그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393부대원들을 구경하던 칼라일은 피식 웃었다.
마침 그의 눈에 자신보다도 먼저 퇴원했던, 검은 단발머리 소녀가 한 명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배윱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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