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66화 (66/148)

EP.66 조정 작업

세레스와 네토루의 커플링 파장에 대한 기록을 확인했을 때 아스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었다.

일치율─38.5963%

솔직히 말해서 높은 수치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커플링이 성립될 수 없는, 여전히 바닥을 기는 수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본래 이 두 사람의 일치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 있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수치이기도 했다.

일치율 29%에서 갑자기 이렇게 변한다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런 급진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 일치율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잘 오르는 수치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평생을 함께했던 커플링 파트너조차도 첫 커플링에서 나왔던 수치에서부터 10% 이상 오르지 않는 법이었다. 덕분에 이건 첫 커플링의 일치율이 얼마나 높은지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단번에 10% 가까이 올라버린 이 수치는 그야말로 어딘가 비정상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하룻밤 사이에 이런 변화가?

곰곰이 생각해보던 아스나는 유일한 가능성을 하나 떠올렸다. 그건 바로 남녀 간의 성관계였다.

“한 가지 물어봐도 돼?”

한동안 말이 없던 아스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며 네토루를 쳐다보았다. 그는 따분한지 팔자 좋게 하품 중이었다.

“세레스랑 어젯밤에 섹스라도 한 거야?”

“······”

과연. 이건 조금 직설적인 질문이었을까. 입매가 살짝 비틀어지며, 네토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리고 끝내 대답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표정 변화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비정상적인데.”

아스나는 턱을 매만지며 커플링 파장의 그래프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예전에는 서로 삐딱하기만 하던 파장의 형태가 지금은 그래도 제법 보기 좋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럴 수 있는 건가?

분명 섹스는 커플링 파트너와 커플링 파장을 맞추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남녀가 이만큼 긴밀하게 교감을 나눌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하룻밤 같이 잤다고 엄청난 성장을 하는 건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혹시 생각 이상으로 두 사람의 궁합이 잘 맞은 건가?

왜, 흔히 속궁합이라 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설마 세레스가 네토루랑 관계를 맺을 줄이야.’

크게 티는 안 내지만 세레스가 남자를 꺼리는 여인이라는 건 아스나도 알고 있다. 심지어 나름 부대 안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챈들러조차도 은연히 거리를 두는 편이었으니까.

만약 두 사람이 커플링을 할 수 있었다면 꽤나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부대 입장에서는 그나마 경험 많은 두 사람이 커플링 해주면 좋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의 일치율은 낮은 편이었고,

그렇기에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대체로 첫 커플링에 실패하면, 그 후에 어떤 노력을 해도 커플링을 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이건 커플링 파트너를 찾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 잘 됐나.’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스나는 세레스가 네토루와 성관계를 가진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일단 두 사람은 부대 안에서 제일 강력한 조합이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심 둘이 잘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제 곧 위험한 전투가 있을 것인데, 그전에 전투력을 끌어올릴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그렇지만 세레스에게 네토루와 섹스하라고 선뜻 제안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남녀 관계라는 게 어디 쉽나.

아무리 커플링 파트너라고 해도 성관계는 서로의 감정이 맞아야 하는 일이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지라 단순히 커플링 파장을 맞추겠다고 무작정 관계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어느 정도 마음은 있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이건 나름 세레스가 네토루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였다. 특히나 그녀의 성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때 아스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네토루가 나직이 말했다.

“부대원들에게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 당연히 비밀로 해줘야지. 이건 프라이버시 문제니까. 그러니까 그건 걱정 마.”

어차피 알릴 생각도 없었다. 어디 이걸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닐만한 내용도 아니었으니.

“네토루.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임신은 꼭 피해. 섹스 할 때마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서로 커플링 연공법을 하고.”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네토루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스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사실 임신을 피하려면 질외사정을 하는 게 그나마 안전하지만, 그랬다가는 그냥 평범하게 성관계를 즐기는 것뿐이다.

커플링 파트너에게 성관계는 남녀간의 즐거움이자 좋은 성장 수단이었다. 질내 사정이 여성 파일럿의 마력 체질을 바꾸는데 효과적이니까.

그렇지만 가끔씩 서로 좋다고 아무 생각 없이 관계를 즐기다가 실수하는 커플링 파트너들이 있었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주었으면 했다. 임신 때문에 귀한 전력이 손실되는 건 막고 싶으니.

2.

성기병은 여성 파일럿의 제2의 육신과도 같다.

그러니 매일 소중히 관리해줄 필요가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 있으면 복귀하고 곧바로 치료를 해주는 게 좋다.

애초에 다음 전투를 위해 성기병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두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목적을 위한 조정 작업은 한 시간 정도면 끝난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세레스가 나오지를 않자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기다리는 게 2시간째다.

‘···혹시 마력 신경계에 변화가 있었나?’

만약 그런 거면 조정 작업이 오래 걸릴 법도 했다.

조정 작업은 단순히 성기병의 부상을 치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력 신경계의 변화에 맞추어 성기병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했으니까.

여성 파일럿이 하복부에 구축한 마력 신경계는 조금씩 변화한다. 마력 신경이라는 게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의사 신경인지라 파일럿의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성숙함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같은 기관 출신이라도 여성 파일럿마다 기량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이래서였다. 처음에는 같은 설계도를 가지고 마력 신경계를 구축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태가 서서히 자기만의 개성을 지닌 채 바뀌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바뀔지, 나쁜 쪽으로 바뀔지는 순전히 여성 파일럿의 의지와 성장에 달렸다.

아무튼, 어젯밤의 첫 경험이 세레스에게 무언가 영향을 준 걸까.

이건 네토루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안 그래도 어젯밤에는 세레스의 몸을 최대한 신경 써주느라, 그녀가 몸 안에 구축된 마력 신경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잠시 방에 좀 갔다 올까.”

한참 동안 세레스의 성기병을 구경하던 네토루는 등을 돌렸다.

먼저 방에 돌아갈 생각은 아니다. 조정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녀가 나올 때를 위해 방에서 수건이라도 가져올 생각이었다.

조정 작업을 위해 콕피트 안에서 성기병 활성액 속에 들어가 있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남성은 비록 조정 작업이라는 걸 해볼 일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성 파일럿들이 상당히 힘들어한다는 것 정도는 네토루도 알고 있다.

게다가 조정 작업을 위해 콕피트 안쪽에 가득 채워지는 성기병 활성액은 꽤나 불쾌한 감촉을 지닌 액체였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면 정액 같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썩 유쾌한 물질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성 파일럿은 그런 것을 콕피트 안에서 매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담그고 있어야 하니···.

어쨌든 파트너의 조정 작업이 끝나고서, 성기병 활성액으로 범벅이 된 몸을 닦아줄 수건 하나 정도는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다.

원래라면 아스나가 미리 준비해두고는 하지만 현재 그녀는 이제 곧 찾아올 지원 병력 때문에 바쁜 상태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할 수밖에.

방에 도착한 네토루는 서랍에서 아직 사용한 적 없는 새 수건을 꺼내고는,

조정 작업이 끝날때까지 시간을 죽이기 위한 책을 한 권 들고서 다시 격납고로 향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는 도중이었다.

격납고로 향하는 복도 중간 지점쯤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렌이었다.

당당한 발걸음도 그렇고, 흑단처럼 고운 머리카락은 복도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네토루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카렌.”

“···읏!?”

그런데 뭘 그리 놀랄 게 있는 건지 복도를 걷던 카렌이 흠칫하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저 뒷통수만 보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어딘가 어색한 그녀의 뒷모습에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이 아가씨가 왜 이러는 걸까.

괜히 궁금해진 네토루는 자연스레 카렌의 옆을 지나쳐 그녀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뒤를 잡으려고 하니 카렌이 걸음 속도를 높이며 거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그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네토루는 미간을 좁히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뭐야, 그 반응은.”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급한 일 있어서.”

“급한 일? 그게 뭔데?”

“그건···.”

따지듯 묻자 카렌이 시선을 피한다.

아니, 아예 몸을 돌려버렸다. 마치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는 것처럼. 게다가 묘하게 귓가도 붉은 것이, 카렌답지가 않았다.

···뭘까 이건.

지난 한달 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카렌의 반응에 네토루는 넌지시 물었다.

“나한테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거야?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너답지 않게.”

“자, 잘못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흠···.”

네토루는 카렌을 빤히 쳐다보았다. 딱 봐도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무엇일지 예상이 안 된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잘못한 게 있다고 해도, 카렌이 그걸 굳이 숨기려고 할까?

이 당돌하고 씩씩한 소녀는 그럴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면에서 솔직하게 사과할 녀석이었다.

적어도 네토루가 아는 카렌은 그러했다. 쓸데없이 성실하면서도, 비겁함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 이 어색함은 뭐지.

그때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던 건지, 카렌은 네토루의 손에 쥐어져 있는 새 수건을 발견하고는 먼저 말을 꺼냈다.

“···그거, 웬 수건이야? 게다가 딱 보니 새거인데···?”

“그냥 세레스가 조정 작업이 끝나면 건네주려고.”

“조정 작업···?”

반쯤 시선을 피하고 있던 카렌이 그 의미를 깨닫고서 살짝 눈매를 치켜뜨더니 고개를 당겼다.

그리고는 곧 게슴츠레한 눈으로 흘겨보더니,

“···정작 내가 성기병 조정 작업 할때는 수건 한 번 가져다 준 적 없으면서.”

투덜거리듯 그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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