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57화 (57/148)

EP.57 토벌

검과 마법의 세상이었다.

용의 목을 자른 명검.

악마의 심장을 꿰뚫은 성검.

신의 피를 머금은 마검.

먼 옛날 정령이 선물해주었다는 전설의 검···.

무언가 절대적인 위업을 이룬 위대한 무구들.

이곳은 그러한 신화속 무기들이 실존했던 세상이었고, 마법사들은 그러한 신화 속 무기들을 재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정확히는 레플리카라고 해야 할까.

비록 완벽하게 그 힘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마법사들은 끝내 그것들이 품고 있던 이능과 능력을 일시적으로 비슷하게나마 구현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성병기는 그러한 마법사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화 속 무구들을 성기병용 무기로 개조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버그들의 무기를 참고하여 새로운 형태의 병기를 개발 중이라고 하던가··.

어쨌든,

성병기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전술 마법탄과는 개념이 다른 강력한 결전 병기였다.

그래서일까.

네토루는 지금까지 여러 부대를 거쳤지만, 각 구역을 통틀어 직접 눈으로 보았던 성병기는 몇 개 없었다.

이러한 희귀성 때문에 성병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구역 안의 핵심 전력들뿐이었다. 중요한 무기인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전력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네토루는 혹시 성병기를 사용해본 적 있습니까?”

“···성병기 말입니까.”

네토루는 성병기를 사용해본 적이 있었다.

“예. 사용해본 적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던 걸까. 리엔의 눈이 잠시 커졌다.

네토루는 그런 리엔의 반응을 이해했다.

성병기의 희귀성도 문제지만,

남성 파일럿의 역량을 떠나 그걸 다룰 수 있는 여성 파일럿들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병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외부 무장과 커넥팅이 가능하도록 마력 신경계를 구축한,

기사단 출신의 여기사 또는──.

그때 조용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세레스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혹시 이번에 사령부쪽에서 성병기를 지원해주는 건가요?”

“예. 비록 데스 웜 토벌에서만 한정적으로 대여 해주는 것뿐이지만요.”

리엔이 아쉬운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그 귀한 무기를 이런 곳에 그냥 던져줄 리가 없겠지.

그래도 나름 상급 부대에서도 현재 39구역의 상황에 제법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지원 병력까지 신속하게 보내주기로 약속했으니···.

“···아. 일단 세레스에게도 혹시나 싶어서 한 번 물어보는 건데, 성병기를 사용해본 적 있나요?”

“예. 세인트 미샤르 기사단에서는 각 성기병마다 성병기가 하나씩 보급되니까요.”

세인트 미샤르 기사단 정도 되면 기사 개인마다 성병기가 지원되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리엔이 네토루에게 먼저 질문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마 세레스라면 당연히 사용해봤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겠지.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성병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리엔이 네토루와 세레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성병기를 안정적으로 다루려면 기본적으로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이 높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괜찮을까요?”

“…그건”

세레스가 쉽게 대답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아마 이러한 문제는 생각지 못해봤을 것이다.

일치율 ─ 29.5407%.

성병기를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낮은 수치였다.

경험해본 적 없으니 이 정도 수치에서 성병기를 다루게되면 어떻게 될지 쉽게 상상도 안 되겠지. 애초에 원래라면 커플링조차 할 수 없는 수치니까.

그렇지만 네토루는 이미 낮은 일치율에서 성병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관적인 의견을 꺼냈다.

“···아마 성병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확률이 절반을 넘을 겁니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세레스의 몸에 곧바로 큰 무리가 올테고요. 어쩌면 그 즉시 기동 불능의 상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예. 예전 파트너가 그랬거든요.”

“…그러면 역시 그냥 다른 부대에 양도하는 게 좋을까요? 정작 성병기가 와도 저희가 제대로 쓸 수 없다면….”

그때 잠시 눈을 감으며 무언가 고민하듯 말이 없던 세레스가 결연히 말했다.

“아니요. 괜히 다른 부대에 넘겨주는 것보다 네토루가 사용하게 하는 게 훨씬 좋을 거예요.”

생각지 못한 세레스의 신뢰 어린 목소리에 네토루는 힐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자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게 눈을 마주한 채 입술을 달싹이던 세레스가 쓰윽 시선을 피하고는 중얼거렸다.

“…당신이라면, 믿어도 되겠죠?”

“······”

이건 갑자기 뭘까.

뭔지 모르겠지만 커플링 파트너가 저렇게 말하면, 네토루가 할 말은 하나 밖에 없었다.

2.

데스 웜 토벌이 어떻게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제대로 알 수 없으나, 성병기는 분명 중요한 비장의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대군병기로 따지면 전술 마법탄이 제일이지만,

그래도 필살의 일격으로는 성병기만한 게 없다.

세레스는 성병기를 여러 차례 사용해본 적이 있기에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분명 부대원들의 피해가 최소화 될 것이다.

그러니 사용할 수 있다면 무조건 쓰는 게 좋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말이다.

“괜찮겠어?”

문득 옆에서 보폭에 맞추어 따라 걷고 있던 네토루가 말했다. 세레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흘겨보았다.

“···지금 걱정해주는 건가요?”

“그야, 커플링 파트너니까.”

“······”

그의 대답에 세레스는 무심코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끼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걱정해주는 건 분명 고마운 일인데,

뭘까 이건.

네토루의 얼굴은 진지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눈은 다른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그가 진정으로 보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세레스가 그걸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사람.’

그리고 보니 예전에 성병기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때 무슨 일이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저 얼굴은 뭐라고 해야 할까······.

왠지 씁쓸해 보였다.

“······”

세레스는 그런 네토루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 남자가 이런 표정도 할 수 있던 건가.

덕분에 세레스는 그에게 흥미를 느꼈다. 왠지 좀 더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고 해야 할까.

“···네토루, 역시 당신은 예전에 여기사랑 커플링을 해본 적이 있었나 보네요?”

“여기사랑?”

“네. 적어도 제가 처음은 아니겠죠.”

그는 분명 첫 커플링 때 여기사랑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마 거짓말이었겠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첫 커플링치고는 너무 능숙했으니까.

아무리 성기병의 방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눈앞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며 싸우는 건 보통 용기로는 불가능했다.

특히나 총탄 하나에도 자칫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관’ 출신의 여성 파일럿을 운용하던 남성 파일럿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네토루는 달랐다.

당장 타쿠야랑 비교해봐도 너무 차이가 난다.

반년 넘게 몇 번을 충고해도 사소한 공격 하나하나를 전부 의식하며 전투를 하던 그 아이와 다르게,

이 남자는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무감각했다.

애초에 마력 방출로 혼자서 그렇게 돌진을 할 수 있던 것부터가 분명 경험이 풍부하다는 증거겠지···.

···라고 세레스가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런 세레스의 생각을 부정하듯 네토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여기사랑 커플링 하는 건 네가 처음인데.”

“···네? 제가 처음이라고요?”

반쯤 확신했던 세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기 어려워서였다.

“자, 잠시만요···. 정말 제가 처음이에요?”

“그런데?”

“······거짓말.”

“이런 걸로 굳이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

어느새인가 다시 평소의 네토루로 돌아왔다.

그 여유로운 뻔뻔한 얼굴에 세레스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이 남자는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전에 성병기 다뤄봤다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여기사랑은 커플링 안 해봤다?”

“그렇지.”

“······거짓말 마요.”

“아니···.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까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믿는다고 하더니.”

“···읏. 그, 그건···.”

능글맞게 웃는 네토루의 모습에 세레스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이건 비겁했다.

그때는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세레스는 애써 표정을 추스르고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튼, 그러면 당신이 말한 이야기는 뭐죠? 설마 기관 출신의 여성 파일럿이랑 커플링해서 성병기를 썼다고 말하지는 않을 테고···.”

성병기는 성기병이 단순히 손에 쥐고 있다고 해서 무작정 사용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성병기는 외부 무장이다.

즉.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기병과 커넥팅을 하듯,

여성 파일럿이 성병기와 커넥팅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마력 신경계의 구조상 기관 출신의 여성 파일럿은 성병기와 커넥팅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그들이 지닌 마력 신경계의 구조적 한계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네토루는 그저 헛웃음만 흘렸다.

“세레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성병기를 사용 가능한 게 왜 여기사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또 누가 있는데요.”

“누가 있냐니. 정말 모르는 거야?”

“네. 모르겠네요.”

놀리는 듯한 말투에 괜스레 불만스러운 눈으로 흘겨보니,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여기사 말고도, 귀족 출신의 여성 파일럿이 있잖아.”

“···네?”

생각지 못한 대답에 세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난폭한 남자가 오만한 귀족 여자랑 커플링을 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 그거···. 정말이에요?”

“왜? 이제는 나를 못 믿겠어?”

또다시 네토루가 능글맞게 웃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세레스는 진심으로 방금 전의 말을 후회했다.

리엔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 됐어요.”

괜히 얼굴 보기 싫어진 세레스는 획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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