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 토벌
1.
“······”
카렌은 네토루와 세레스, 두 사람을 보며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치료라면서 애써 얼버무리고 있지만,
카렌이라고 그걸 정말 단순히 치료라고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그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남녀 간의 키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쉽게 보여줄 수 없는 것.
특히나 같은 부대원들에게는 더더욱.
아무리 카렌이 치료라고 말해도, 부대원들의 눈에는 그게 정말 단순히 치료로 보일까?
그럴 리가 없다.
그걸 카렌도 알기에 매번 조마조마한 느낌으로 이어나가던 비밀스러운 관계다.
덕분에 어떻게든 상상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릿속에서는 네토루와 세레스가 비밀스럽게 입을 맞추는 모습이 선명히 재생되었다.
부대원들이 알게 되면 이런 심정인 걸까?
정작 사정을 모르는 세레스가 뒤늦게 표정을 추스르고는 변명하듯 말했다.
“···카렌. 그게 말이죠. 네토루는 그냥 제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어제처럼 도와주려고···.”
저걸 변명이라고 하는 걸까. 아직도 방금 이곳에서 하던 키스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새빨갛게 붉은 얼굴로 그리 말해봤자 설득력 없다.
안 그래도 세레스는 창백하다고 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의 소유자였다. 덕분에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피부는 너무나도 또렷했다.
게다가 은근슬쩍 네토루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은 또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자기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죄를 진 것처럼 횡설수설하는 걸까.
어차피 카렌은 안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대한 모른 척해야 했다.
안 그래도 낮에 있었던 다툼으로 어색해진 관계다. 아직 세레스랑 제대로 화해도 안 했는데, 이런 걸 파고들어봤자 독만 된다. 그리고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래···. 저건 그냥 치료니까···.
단지 필요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카렌은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 그런 거야?”
“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건 없어요.”
···걱정할 건 없다라.
왠지 차갑게 느껴지는 말이다.
역시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생긴 거리감 때문일까.
이게 착각이면 좋겠지만, 왠지 씁쓸한 감정 속에서.
카렌은 시선을 돌려 네토루를 쳐다보았다.
그는 역시나 여느 때처럼 태연한 얼굴이었다.
저 뻔뻔스러운 얼굴만 보았다면 안에서 도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왠지 카렌은 그게 얄미웠다.
굳이 나한테도 저런 얼굴을 해야 했을까.
어차피 들켰을 거라는 걸 뻔히 알았을 텐데.
그런 네토루의 모습이 괜스레 불만스럽던 카렌이 입술을 달싹이며 할 말을 찾던 그때였다.
성기병 아래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 ···세 사람 모두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누구인가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페르아와 쿄쿄였다. 눈이 마주친 쿄쿄가 큰 소리로 말했다.
“카렌 언니! 사령관님이 모두 아이기스로 모이래! 다급하게 회의할 게 있다면서!”
“···회의.”
여기서 다급하게 회의할 건 한 가지밖에 없다.
데스 웜과 그 녀석이 끌고 온 버그에 대해서겠지.
그때 뒤에서 네토루가 말했다.
“카렌. 먼저 아이기스로 가고 있어. 나는 세레스를 부축하면서 뒤따라 갈 테니까.”
그리 말한 네토루는 어느새인가 세레스의 허리를 자기쪽에 끌어당기고는 부축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사이좋은 커플링 파트너로 보였다.
“자, 잠시만요···. 제가 언제 부축해달라고···.”
“세레스. 그렇게 쓸데없이 틱틱거리지 마. 이럴 때는 그냥 기대. 나름 네 파트너니까.”
“윽···.”
세레스가 난처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고, 카렌은 그런 둘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세레스,
그리고 평소처럼 알게 모르게 친절한 네토루.
뭔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 채, 카렌은 등을 돌렸다.
2.
헉명기라 불리는 시기. 프랑기아 왕국의 내부 세력은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누어져 격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왕당파는 당연히 지난 수백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왕과 귀족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기를 원했고,
공화파는 프랑기아 왕국이 시민 중심의 공화국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원했다.
절대 왕정과 귀족제의 정비를 요구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서로의 이득을 놓고 싸우는 두 세력 사이에서 제대로 된 협상이 진행될 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협상의 끝은 곧 전쟁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수많은 피가 흘렀고, 국토가 피폐해졌다.
이윽고 외부 세력의 개입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왕국의 사정은 좋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양보 없는 두 세력 간의 싸움이 끝내 한쪽으로 기울며, 기약 없던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버그’들의 침략은 모든 판도를 한 번에 뒤집히기에 충분했다.
승리를 앞두며 어떤 왕국을 세울지 고민하던 공화파는 한순간 무너졌고, 단두대 앞에 끌려가기 직전이었던 왕당파는 그렇게 살아났다.
그리고 현재 사령부의 일각이자, 36구역부터 39역을 관리하는 상급 사령관 ─ 지베르트 백작은 그날 운 좋게 살아남은 왕당파 귀족의 일부이기도 했다.
─···쯧. 그 괴물 녀석이 그곳에도 나타난 건가.
“······”
데스 웜에 대한 보고를 받기 무섭게, 상급 부대에서 곧바로 연락이 왔다. 이렇게 사령부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건 리엔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무튼, 대응이 빠른 건 좋기에 리엔은 허공에 떠올라 있는 지베르트 백작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사령관님. 데스 웜에 대한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까? 저는 분명 제47구역에서 있었던 전투 기록을 요청했습니다만.”
─리엔 사령관. 현재 우리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라네. 나머지는 자네의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자료가 아니야.
“···겨우 전투 기록이지 않습니까. 지금 저희는 당장 데스 웜이랑 싸워야 할 상황인데 굳이 이렇게 공개하기를 꺼리는 이유가 뭡니까?”
─사령부의 방침일세.
“······”
이건 또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인가. 사령부의 방침이라면서 얼버무리는 게 제대로된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리엔은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스스로 이유를 생각해본다.
겨우 전투 기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령부에서 공개하기를 꺼리는 걸까.
지금까지 리엔이 보고 겪었던 걸 토대로 그 답을 유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이렇게 숨기려고 한다면 이유는 하나다.
그건 바로 왕당파 세력 귀족들···. 자신들에게 무언가 좋지 않은 정보가 있을 때였다. 예를 들면 외부에 알리면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인 패배를 했다던가.
비록 혁명기에서 이긴 것은 왕당파였지만 현재 왕국 안에서의 위치가 완벽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였다.
혁명기에서 시민들이 괜히 들고 일어선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불평등한 사회 체제로 인해 누적된 불만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그런 게 귀족들이 내부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사라질 리가 없다.
그렇기에 비록 공화파가 쓸려나갔다고 해도, 그 불씨는 여전히 왕국 곳곳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시민들은 여전히 왕당파 귀족들을 믿지 않고 있다.
단지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을 뿐이지.
매일 같이 나라 밖에서 괴물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내부 싸움에 힘을 쓸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당장 눈앞에 죽음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들은 그걸 절묘하게 이용하였고,
비록 한 번 꺾였다고 하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받던 공화파가 마지막에 힘없이 무너진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공화파가 무너졌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시민들이 절박함 끝에 무슨 일을 벌이는지 귀족들은 너무나도 잘 보았으니까. 언제 어디서 다시 제2의 공화파가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예전과 달리 여론을 통제하려고 애썼다. 어느 정도 시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대한 자신들의 유능함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사령부가 정보 통제에 엄격한 건 그래서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지금 일어나는 전쟁을 통해 흔들렸던 자신들의 위치를 최대한 확고히 하려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훗날 이 위기가 끝났을 때, 자랑스럽게 말할지도 모르지. 자신들 덕분에 승리했다고.
이건 귀족들이 우매한 시민들을 이끈 결과라고.
그건 분명 비겁하고 음흉한 일이지만 리엔에게는 그걸 꾸짖을만한 힘이 없었다. 눈앞에 닥쳐온 일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그래서 감정을 꾹꾹 억누른 채 리엔이 말했다.
“···그러면 제 지원 요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너무 걱정 말게. 이미 39구역의 다른 사령관들에게 협조 요청을 해둔 상태니까. 아,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게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말해보게. 최대한 자네의 요구를 수용해주도록 하지.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준다라. 이제라도 저런 말을 해주니 이걸 참 고맙다고 해줘야 하는 걸까.
아무튼, 좋다.
리엔은 저번에 무시당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냈다. 어쨌든 이쪽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들어준다고 하니, 일단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어 내야 했다.
3.
부대에 복귀하고서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리엔이 부대원들을 소집했다. 이번에 관측된 데스 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부대원들이 모이자 리엔은 아이기스를 통해 관측되었던 데스 웜에 대한 이미지를 마법을 이용해 3D 홀로그램으로 구현하는 등,
데스 웜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던 부대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성실하게 설명하였다.
게다가 그새 사령부 쪽에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은 것인지, 데스 웜에 대한 자잘자잘한 정보들을 하나둘씩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중 대부분이 유의미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나름 건질 건 있었다.
리엔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현재까지 ‘데스 웜’은 무언가 화기를 사용한 기록이 없는 듯했다. 물론 굳이 무장한 무기가 없어도 녀석의 몸 자체가 강력한 무기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포탄이나 총탄을 마구잡이로 쏘아내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그 괴물이 언제 움직일지가 문제인가.’
다행히 데스 웜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녀석이 만들어낸 지하 통로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온 다른 버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추가 병력을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특수한 목적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리엔의 말에 따르면 지금부터 393부대는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며 지원 병력을 기다릴 예정이라고 하였다. 즉, 최대한 싸움을 피하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데스 웜이 가만히 있어주는 게 이쪽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녀석이 얼마나 가만히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만약에 녀석이 후방에 있는 도시로 무작정 진격하면 사실 싸움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그때는 수만 명의 시민을 위해서라도 393부대는 죽든 살든 일단 싸워야 했다.
부디 그럴 일은 없으면 좋겠다만···.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따로 두 사람에게만 이야기할 게 있다면서 자리를 만든 리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몸 상태는 어떤가요? 오늘 전투 때문에 제법 무리했을 텐데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 대답한 네토루는 세레스를 쳐다보았다. 세레스는 어딘가 우물쭈물하다가도 네토루와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사실 세레스에게 오버 히트가 한 번 있었지만,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리엔이 진심으로 안도하듯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두 사람을 왜 따로 불러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희에게 데스 웜과 관련해서 따로 맡기고 싶은 역할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일단 네토루와 세레스, 두 사람이 현재 부대에서 제일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리엔은 세레스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네토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토루는 혹시 성병기를 사용해본 적 있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린과 란 일러스트 후원자 명단
(에어프라이님, NeoGGM)
히로인 일러 그려주신 분은 hash 님이고,
데스 웜 그려주시고 있는 분은 hwadoe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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