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5 토벌
이게 오버히트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당혹스러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턱이 당겨지며, 네토루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윽고,
──쪽
서로의 입술이 따스하게 포개지고, 어느새인가 네토루는 자연스럽게 턱뿐만이 아니라 허리도 자기의 품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것은 상냥하면서도, 어딘가 거칠었다. 거부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세레스의 입술이 강제로 열리며 네토루의 혀가 밀려 들어왔다.
이게, 뭘까. 갑자기 왜?
연인처럼 그의 품 안에 안기듯 키스를 하면서도 그 순간 세레스의 머릿속으로 온갖 의문들이 스쳤다.
대체로 남자들이 성욕 덩어리이기는 하지만,
설마 네토루가 갑자기 이럴 줄은 몰랐다.
이제 내가 자신의 커플링 파트너라고 키스 정도는 괜찮다고 보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가 뭔 생각을 하는지.
보통 여기서는 몸을 밀쳐내는 등 무언가 저항이라도 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왠지 그럴 의지가 안 났다.
단지 머릿속이 멍해지고, 사고가 느릿해지며, 오로지 눈앞의 남자에 집중한다.
어느새인가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그러한 의문도 남지 않았다. 어느 순간 세레스 역시 그의 혀를 받아들이며 키스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입맞춤 속에서.
세레스는 무의식적으로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목덜미를 간질이듯 올라가던 손가락 끝이 이윽고 그의 머리카락에 닿자,
“······”
순간 자신이 뭐 하는 건가 싶어 움찔했지만,
그러한 망설임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세레스는 눈을 감고서 그를 더욱 끌어안았다.
지금껏 자신이 이렇게 누군가를 갈구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자의 품속에 안겨든다.
더욱 강하게, 더욱 긴밀하게.
──쭙, 쪼옥.
모든 의식을 서로에게 집중하며,
그 순간 콕피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로지 달짝지근한 남녀의 숨소리뿐.
그러다가 누가 한 쪽이 숨이 부족해지면 아무 말 없이 잠시 서로의 입술을 떨어뜨리며,
자연스레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숨을 정리한 후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것에 불쾌함은 없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거부감 없는 키스는.
그렇게 여러 차례 짧고 긴 키스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때였다. 돌연 네토루가 어깨를 잡더니, 포개던 입술을 서서히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
입가에 은빛 실 줄기를 길게 늘어뜨리던 세레스는 멍하니 네토루를 올려다보았다.
거리는 여전히 너무나도 가깝다. 서로의 숨결이 뺨 끝으로 그 열기를 품은 채 선명히 닿고 있었다.
벌써 몇 차례나 그와 입을 맞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왜 키스를 멈췄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몸이 욱신거린다. 계속 몸이 본능적으로 좀 더 그의 것을 탐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레스가 먼저 그의 목을 끌어안아 다시 입을 맞추려던 찰나였다.
──두 사람 안 나오고 뭐 하는 거야?
그때 콕피트를 두들기더니 카렌의 목소리가 침묵을 찢었다. 세레스는 그 목소리에 놀라 번뜩 정신을 차렸다.
“······.”
멍한 자색 눈동자에 서서히 색채가 돌아온다.
그제야 세레스는 네토루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던 것을 멈추고 지금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조용히 뜨겁게 달아오른 콕피트의 공기.
그리고 네토루에게 애정을 갈구하듯 또다시 자연스레 입을 맞추려는 자신.
“······”
이건 누가봐도 나답지 않다. 지금까지 살면서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마치 마법에 홀려 있던 기분이다. 아니, 애초에 키스라는 게 이런 거였나?
─탁
짧은 시간 동안 수만가지의 생각이 스친 가운데, 얼굴이 화끈해진 세레스는 다급하게 네토루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러자 네토루가 표정을 찡그리며 헛웃음을 흘리고는 쳐다보았다. 세레스는 뒤늦게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깨닫고는 몸을 움찔거렸다.
“아. 그, 그게···. 그냥 놀라서···.”
혹시 불쾌했던 걸까. 아니, 불쾌했겠지.
그가 화나면 곤란하다.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고.
“죄송해요···.”
괜스레 미안해진 세레스는 죄인처럼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몸 상태는 어때.”
“네? 몸 상태요···?”
몸 상태라니?
지금 뭘 묻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다시 네토루가 손을 뻗었다.
세레스는 긴장한 얼굴로 이마에 올라오는 그의 차가운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이윽고 그가 만족스레 말했다.
“이제 좀 열이 내렸네.”
“···아.”
깨닫는 게 늦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다.
세레스는 어느새인가 하복부의 마력 신경계에서 올라오던 열이 차츰 가라앉아 있는 걸 느꼈다.
···어느새 오버 히트가 사라진 것이다.
그 사실에 세레스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거. 설마···. 당신이 한 거예요?”
“그러면 누가 했겠어?”
“······.”
그가 여느 때처럼 뻔뻔한 얼굴로 피식 웃는다.
믿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정말인 듯하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지금 잘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와 입술을 맞추는 동안 몸이 편안해지는 감각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오버히트를 치료하고 있던 과정이었다니···. 그래서 몸이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한 걸까?
솔직히 말해서 갑자기 느닷없이 키스를 강요했을 때는 많이 당혹스럽고 놀랐다.
하지만 이런 거라면···.
굳이 불편해할 필요는 없겠지.
세레스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다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거면 어쩔 수 없겠네요.”
“어쩔 수 없다니. 뭘?”
“그, 그러니까···. 키스요.”
“흠.”
뭔가 이상했던 걸까. 대답을 들은 네토루가 입매를 비틀더니 다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턱을 잡고 끌어당긴다.
그 자연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놀란 세레스는 다가오는 그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다급히 말했다.
“자, 잠시만요. 이제는 안 돼요.”
“왜?”
“이, 이제···. 오버 히트도 괜찮아졌고···.”
“즉, 그냥 키스는 안 된다는 건가?”
“그, 그건 아닌데···.”
“그러면?”
그의 눈이 맹금처럼 가늘어졌다. 그런데 무섭진 않고 어딘가 아이처럼 짓궂은 눈빛이었다. 세레스는 그제야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내가 뭐라고 말한 거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세레스는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 잠시만요···. 방금 제가 잘못 말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저랑 당신이 연인도 아닌데 무작정 입술을 맞추기에는···.”
“그러면 어제 내 방에서 있던 건 뭔데?”
“그, 그건···. 그때 당신이 강제로···.”
부끄러운 탓일까.
더듬더듬 말을 떨며 세레스는 두서없이 말했다. 그러자 그가 입꼬리를 살짝 당기고는 웃었다.
“세레스. 그러면 지금도 굳이 안 될 것 없지 않아?”
“예···?”
지금 이건 무슨 의미일까. 그걸 깨닫기도 채 전에 그에게 다시 손목이 붙잡히고, 몸이 이끌려간다.
그 난폭함에 세레스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어제 있었던 일 탓일까.
그와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이제는 버릇처럼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온몸이 무력감으로 길들여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반쯤 자포자기하듯 눈을 감고 있을 때였다.
이건 타이밍이 나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 할까.
──끼이익
외부에서 누군가가 콕피트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네토루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둘이 안에서 뭘 하고 있던 거야?”
“······”
그 목소리에 세레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콕피트 안을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는 카렌이 보였다.
흐림 없는 깨끗한 검은 눈동자.
그것이 세레스와 네토루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무언가 발견한 것처럼 눈빛이 서서히 가늘어졌다.
그런데 네토루는 그런 카렌의 눈빛을 보고도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뻔뻔히 말했다.
“아무것도.”
세레스는 그런 네토루가 참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다급히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냈다. 그의 것과 뒤섞인 침이 손등으로 축축하게 묻어나왔다.
괜스레 더욱 부끄러워졌다.
2.
다급하게 출격하는 부대원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막연하게 지켜보는 자신.
그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면서 카렌은 격납고에서 부대원들이 복귀하는 걸 기다렸다.
···아무래도 오늘도 상황은 좋지 않은 듯하다.
기지 안에서 잔류하고 있던 카렌이지만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도는 아스나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전투 도중에 엄청나게 커다란 버그가 관측되었고, 그 괴물 때문에 출격했던 2소대가 위험해진 듯했다.
게다가 후퇴하는 2소대를 수십 마리의 추격형 센티페드들이 맹렬하게 쫓고 있다고 하던가.
녀석들이 얼마나 빠른지 알고 있는 카렌으로서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소식이었다. 특히 제일 나이가 어린 페르아와 쿄쿄가 걱정이었다. 그 아이들의 기동 능력으로는 따돌리기 쉽지 않을 텐데···.
그걸 네토루도 알고 있어서일까. 그 와중에 네토루가 이번에도 또다시 미끼를 자처했다고 한다.
저번에 관측탑에서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카렌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말이지.”
그러다가 나츠오처럼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자연스레 그런 걱정이 들면서도 마음 한쪽으로는 왠지 녀석다운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렌은 지난 한 달 동안 녀석의 커플링 파트너로 지냈다. 덕분에 녀석이 어떤 판단을 하고, 성향을 지녔는지 어렴풋이 파악이 가능해졌다.
굳이 티는 안 내도 알게 모르게 어린 부대원들을 알뜰살뜰 잘 챙기던 녀석이었다. 평소에 꼬맹이들이라면서 얕잡아 부르고는 하지만, 정작 행동은 말하는 것과 다르다.
괜히 페르아랑 쿄쿄가 그 녀석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섭다고 그러다가도 어느새인가 그 녀석 옆에서 재잘재잘 잘 떠들지 않는가.
녀석이 조금만 더 평소에 친절했으면 다른 부대원들하고도 빨리 친해졌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쯤 되면 일부러 선을 두는 게 아닐까 싶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딘가 혼자 겉돌기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마치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갈 것처럼 말이다.
옆에서 지켜볼수록 느끼는 건데 녀석은 뭔가 미련을 안 두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어째서일까.
혹시 예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걸까?
아무튼,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는데.
다행히 그러한 간절함이 통한 걸까.
네토루는 물론이고 2소대를 포함해 모든 부대원들이 무사히 기지에 복귀했다.
그렇게 격납고에 안착한 성기병의 콕피트가 열리고 모두 별문제 없이 내려오는 걸 구경하고 있자니,
한참이 지나도 마지막까지 콕피트가 열리지 않는 기체가 하나 있었다.
그건 세레스의 성기병이었다.
뭘까. 왜 안 나오는 거지?
계속 지켜보던 카렌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세레스의 성기병으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일이라도 생겼나.’
안 그래도 관계가 불안한 두 사람이었다. 네토루 그 녀석이야 별문제는 없겠지만, 세레스가 제일 걱정이다.
커플링은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하다.
그러니 오늘 무리한 전투로 인해 세레스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네토루 그 녀석의 조종이 워낙 난폭하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 녀석의 조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말고 더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 걱정에 바삐 걸음을 옮긴 카렌은 성기병의 콕피트를 두들겨보았다.
“두 사람 안 나오고 뭐하는 거야?”
─······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
외부에서는 콕피트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카렌은 답답함을 느꼈다.
정말 무언가 문제라도 생겼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안쪽에서 뭔가 대답이라도 했으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괜스레 초조함을 느낀 카렌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외부 조작으로 콕피트를 천천히 열어보았다.
끼이이── 열리며 내부가 드러나고,
“······”
그리고 카렌은 보았다.
콕피트가 열리자 화들짝 놀라며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세레스와,
태연하게 이쪽을 쳐다보는 네토루의 모습을.
그런 두 사람을 의아하게 쳐다보던 카렌이 물었다.
“···둘이 안에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아무것도.”
네토루는 여느 때처럼 뻔뻔스레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에 속을 카렌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레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손등으로 자기 입술을 다급히 닦고 있는 세레스를 보며 카렌은 곧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설마···.’
네토루가 방금, 세레스를 치료하고 있었다는 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어프라이님, NeoGGM님 후원 감사합니다!
린과 란 일러스트 후원자 명단
(에어프라이님, NeoGGM)
세레스 일러스트 완성되었습니다!
마지막은 현재 진행 중인 데스 웜 러프입니다. 대충 모양새만 잡은 거고, 이제 저기다가 기계 장치 같은게 추가될 예정입니다.
--->8/29 현재 진행 중인 삽화랑 그림체 맞추기 위해서 세레스 일러스트 리메이크 예정입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