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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53화 (53/148)

EP.53 NTL-001

아무리 네토루라고 해서 수십마리의 버그를 틀어막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정확히는 파트너가 버텨줄 수 없다고 하는 게 옳겠지.

그렇기에 추격형 센티페드 무리와의 싸움은 당연히 치고 빠지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떼로 몰려드는 버그를 성기병 단 하나로 막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니.

전투가 시작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고 있는 가운데,

계속해서 달리고 있던 네토루는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의식을 집중했다.

─키리리릭!

그러자 중력을 거부하듯 반쯤 몸이 뒤집힌 상태로 가파른 절벽과 산길을 타고 있는 추격형 센티페드들이 보였다.

지저분하게 생긴 수십쌍의 절지 다리를 바쁘게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다른 버그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첩함이었다.

흉측한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면서 계속 끈질길 게 달라붙는 그 모습은 정말로 고약하기 짝이 없다.

끝내 네토루는 도망가던 세레스의 성기병을 멈춰 세운 채 그대로 몸을 방향을 꺾어 검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의 여파로 성기병의 발끝을 따라 지상에 깊은 홈이 파이고 있는 가운데,

긴 호선을 따라 휘둘러진 성기병의 검은 절벽을 타고 바로 뒤까지 쫓아오던 추격형 센티페드의 몸통을 베며, 벽면에 버그의 피와 살점을 색칠했다.

네토루는 그 상태에서 검을 바로잡은 채 주변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뒤늦게 따라잡은 추격형 센티페드들이 시야를 어지럽히듯 주변을 나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절벽과 사방의 나무 사이사이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

그것은 누가 봐도 적을 포위하는 모양새였다.

당연하지만 그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네토루는 녀석들을 향해 땅을 박찼다.

포위하기 전에 구멍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버그들은 응전하기 보다는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덕분에 네토루는 나아가던 성기병을 멈춘 채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녀석들과 몇 차례 전투를 반복하던 네토루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인가 녀석들의 호전성이 줄어있었다.

그 증거로 버그 특유의 죽자 살기로 덤벼들던 공격이 제법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적을 제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착각이면 좋겠지만,

‘나를 제압한다고?’

이쯤 되니 버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미 일반적인 범주에서 상상해볼 수 있는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적을 도망치게 놔두는 것도 그렇고, 무언가 특별한 목표가 있는 듯한 움직임이 너무 신경 쓰인다.

도대체 이 녀석들이 뭘 노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다.

덕분에 편해진 것은 이쪽이니까.

멈춰 섰던 네토루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그렇게 거리가 순식간에 좁힌 채 센티페드의 머리에 검날을 쑤셔 넣는다. 세레스의 성기병이 지닌 강력한 힘에 머리가 박살 나며 피가 질질 흘렀다.

공격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주변에 버그는 많았고, 네토루는 한 마리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

한 걸음 나갈 때마다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한 바닥에 커다란 균열이 새겨지며, 자색 성기병이 맹렬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눈치만 보듯 어지럽게 돌아다니기만 하던 추격형 센티페드들이 뒤늦게 사방팔방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네토루의 눈도 덩달아 바삐 움직였다.

기본적으로 센티페드들의 몸은 납작했다. 보이는 그대로 지네와 같은 녀석들인지라 생각 이상으로 공격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싸움은 난폭하고,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바닥을 기며 몸에 올라오려는 녀석을 성기병의 무게를 이용해 발로 짓밟고, 절벽을 타고 오르며 위에서 몸을 날리는 녀석을 검으로 쳐내듯 베어낸다.

녀석들의 공격은 솔직히 보잘것없었다.

총탄도, 포탄도 없다. 단지 녀석들이 가진 무기라고는 적을 마비시키는 흉악한 독니뿐. 그렇기에 물리지만 않으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그 숫자다.

아무리 발로 짓뭉개 몸통 으깨고, 검으로 두 동강을 내어도 혼자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놈들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이윽고 한 놈이 운 좋게 접근에 성공하여 뱀처럼 세레스의 성기병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렇게 센티페드의 갑각과 관절이 끼익 거리며 마지막으로 시야를 가리기 직전, 네토루는 녀석의 독니에 진득한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것에 한 번 물리면 귀찮아진다.

비록 한 번 물린다고 당장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성기병의 기동성을 악화시키는 센티페드의 독은  나중에 계속될 전투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네토루는 시야를 멀리 두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추격형 센티페드들도 문제지만, 현재 제일 신경 써야할 건 진정한 의미로 데스 웜이었다.

얼핏 봐도 몸 길이가 10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괴물. 그런 녀석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성기병의 상태는 최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판단은 빨랐다.

네토루는 녀석의 독니에 물리기 전에 한발 앞서 움직였다. 몸을 휘감고 있는 녀석과 함께 그대로 근처에 있던 절벽을 향해 몸을 박은 것이다.

──쿵!

절벽에 커다란 균열이 새겨지며,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일부가 낙석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머리가 부서진 센티페드가 휘감고 있던 몸을 풀며 힘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네토루는 성기병의 몸체에 반쯤 박혀 있던 독니를 손으로 빼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지네 괴물 다 여섯 마리가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다른 센티페트들이 징그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숫자는 여전히 터무니 없이 많다.

역시 혼자서 해치우는 건 무리다.

아니, 정확히는 세레스가 무리인가.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원 없이 싸워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네토루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애초에 커플링이라는 것은 2인 1조 달리기 같은 것이니까.

“하악··· . 하악···. 으읏···.”

계속해서 한계 출력을 최대치까지 유지한 탓일까. 세레스의 격한 숨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으읏···. 윽···.”

붉게 달아오른 뺨과 목덜미. 조종석 위에서 숨을 허덕이는 그 모습은 상당히 괴로워 보였다.

네토루가 센티페드를 상대하고 있는 사이, 세레스는 그러한 전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인 듯했다.

이 이상 무리하게 싸우는 건 좋지 않다. 여기서 진정으로 신경 써야할 건 세레스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여기까지 아무 말 없이 잘 따라와 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 한계인가.’

세레스의 성기병은 출력이 좋다. 그렇지만 그게 세레스의 체력이 좋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장기전에는 취약한 타입이었다.

만약 단순하게 오랫동안 싸우는 것만을 고려하면 카렌의 성기병이 훨씬 더 적합할 정도였다. 그녀의 것은 기동성이 특화된 성기병이었으니.

애초에 전장을 돌파하는 역할이면 모를까, 세레스의 성기병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기 위해 치고 빠지는 전투는 적합하지 않다.

거기까지 판단이 이르자,

네토루는 아슬아슬한 상태로 추격형 센티페드들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녀석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세레스가 힘겨운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읏···. 아는데···. 저는 괜찮으니까···. 좀 더···.”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아니···. 저는 정말로 괜찮···. 아앙!”

달리던 네토루는 뒤를 따라오던 센티페드 하나를 검으로 베어냈다. 그 반동으로 세레스가 가냘픈 비명을 질렀다. 누가 봐도 한계에 이른 모습이었다.

“거봐. 안 괜찮잖아?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

“······으읏! 바, 방금···. 일부러?”

“아니, 그냥 우연이야.”

“···흐윽.”

세레스가 열심히 따라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이건 단기 결전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세레스가 이번 전투에서 너무 무리해서 나중에 뻗어버리면 곤란했다.

애초에 혼자서 30여 마리 정도를 죽였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시간 벌기라고 표현하기에도 우스운 일이었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질질 끄는 건 힘들겠어.’

네토루는 맵을 확인했다. 그러자 어느 정도 합류 지점에 가까워진 소대원들이 보였다. 3개의 푸른점들이 다른 푸른점들 쪽에 거의 다 도달한 상태였다.

시간을 끄는 건 이걸로 충분하다.

그때 마침 타이밍 좋게 리엔이 말을 걸어왔다.

─네토루. 이쪽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앞으로 5분 후에 2소대와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저도 지금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으니 네토루의 행동에도 망설임이 사라졌다. 그는 추격형 센티페드들을 따돌리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금까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시선을 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추격형 센티페드를 따돌리는 건 쉽지 않았다.

녀석들은 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매섭게 달라 붙었다. 덕분에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사소한 전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차근차근 거리를 벌리며,

정해두었던 포인트 97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버그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던 맵을 확인하던 네토루의 얼굴이 굳었다.

“···이 녀석들. 설마.”

붉은 점으로 표시된 버그들의 방향이 돌연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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