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51화 (51/148)

EP.51 NTL-001

─으아아! 쿄쿄! 이러다가 따라잡히겠어!

─하아… 하악…. 자, 잠시만…. 이 이상은 출력 못 높여!

어린 두 소년 소녀의 목소리가 음성 채널로 시끄럽게 울렸다.

현재 후퇴하는 2소대 안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건 페르아와 쿄쿄였다. 둘은 소대원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고, 경력도 짧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종이 미숙하고 느릴 수밖에 없었다.

제일 선두에 있던 네토루는 뒤에서 간신히 쫓아오는 페르아와 쿄쿄를 확인했다. 점점 쿄쿄의 성기병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듯했다.

‘…좋지 않은데.’

안 그래도 현재 2소대 전원이 저 두 사람을 위해 속도를 낮추고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더이상 속도를 낮추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이미 늦었으려나.

지금도 이 속도를 유지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뒤쫓아오는 버그들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어떻게든 버그들을 따돌리려면 여기서 좀 더 속도를 높여야 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속도를 더 높이면 페르아와 쿄쿄만이 문제가 아니다. 다른 소대원들도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뒤처질 게 뻔했다.

현재 2소대를 쫓아오고 있는 건 그 정도로 빠른 놈이었다.

지네 형태의 버그─ 추격형 센티페드

침투형 센티페드들과 달리 땅밑에 숨는 능력은 없지만, 다른 센티페드들보다 기동성이 특화된 개체들이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속도는 어지간한 성기병들을 보다 빨랐다.

페르아와 쿄쿄가 전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건 그래서였다.

─누렁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이러다가 정말 벌레 놈들한테 붙잡히겠어!

안 그래도 따라오던 린 역시 두 사람을 신경 쓰고 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지만 네토루라고 여기서 뚜렷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일단 추격형 센티페드들이 빠른 것도 문제인데 그 숫자도 너무 많았다.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침투형 센티페드들과 달리 추격형의 주 무기는 ‘산성액’이었다. 독조라 불리는 생체기관으로 상대방을 물어서 독을 주입하는 것이다.

비록 기동성을 위해 기본적인 화기조차 없앤 녀석들인지라 솔직히 말해서 한두 마리 정도는 큰 위협이 안 된다.

다만 그런 놈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 수백 마리가 덤벼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성기병은 기본적으로 인간형 생체병기였다.

그렇기에 기계와 철로 이루어진 로봇과 다르게 ‘독’이라는 것에 중독될 수 있는 병기였다. 그러니 녀석들에게 한두 번씩 물리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과연 수십, 수백 마리를 상대하는데 한 번도 물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물린다고 당장 독으로 성기병이 어떻게 되지는 않지만, 기동 능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면 끝난 거나 다름없다.

─…네토루 씨. 저도 이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그때 과묵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소대원들 중에서 제일 말수가 없는 슈이치로였다. 계속 묵묵하게 움직이던 저 소년이 힘들다고 할 정도면 정말로 한계라는 소리였다.

…역시 이대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한 건가.

네토루는 실시간으로 리엔이 관측한 버그들의 정보를 링크해주고 있는 스크린을 확인했다. 그러자 지도 안에 무수한 붉은 점들이 소대원들을 따라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붉은 점들은 지금도 하나둘씩 더 생겨나고 있었다. 그 커다란 괴물이 만들어낸 지하 통로를 통해서 말이다.

“…사령관님. 계속 상황 브리핑 부탁드립니다. 현재까지 관측된 버그들의 정확한 숫자는 어떻게 됩니까?”

─현재 관측된 추격형 센티페드들의 숫자는 총 79마리입니다. 그리고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고요.

상황이 아주 개판이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은 그렇다 쳐도….

따라오는 추격형 센티페드가 79마리나 되는 건가.

역시 예상대로 많다. 적어도 4명 정원을 이루고 있는 소대 하나가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커다란 버그가 제일 심각한 문제다. 아마 저번에 관측탑에서 보았던 구덩이는 그 괴물이 만든 거겠지.

설마 저런 버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이래서 숨기고 있던 건가.’

확실히 눈앞에서 직접 보고 나니 리엔이 왜 일부러 숨기려고 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저런 게 있다고 알려주었다가는 부대원들의 사기에 큰 악영향을 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고 있던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네토루에게는 그러했다. 저런 놈이 있었다면 무언가 방도가 없을까 미리 생각이라도 해봤을 것이다.

생각지 못한 적의 정체에 네토루는 작게 혀를 차며 다른 소대원들과 음성 채널을 닫았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다른 소대원들에게 들려줘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령관님. 방금 그 커다란 버그의 이름이 데스 웜이라고 했습니까?”

─…네. 맞습니다.

“왜 제가 물어봤을 때 알려주지 않은 겁니까. 분명 보고서를 받았을 때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던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아무리 상대가 사령관이라고 해도 말이 곱게 나오지가 않는다.

보아하니 땅밑을 돌아다니는 버그인것 같은데, 관측이 불가능한 특수 개체인 것이겠지. 사실상 언제 공격해올지 모를 자연재해 같은 녀석이었다.

그러니 리엔의 판단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저런 놈의 존재를 알려봤자 부대원들에게는 공포와 스트레스밖에 안 될 테니까. 그러니 언제 땅밑에서 올라올지 모를 녀석을 계속 두려워하고 있을 바에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어수선한 분위기,

리엔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토루는 그녀의 판단을 인정해줄 생각은 없었다.

“현재 데스 웜에 대한 기록은 얼마나 있는 겁니까?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습니까?”

─…안타깝게도 도움이 될만한 건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47 구역에서 첫 관측 이후로 보고된 전투 기록이 없으니까요.

“그러면 그 괴물 녀석이 무장한 화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겁니까?”

─네….

대체로 버그들은 각자 자기 몸에 어울리는 화기를 장비하길 마련이었다.

경기관총을 무장하고 있는 로커스트, 강력한 화력의 포를 지닌 스파이더, 중기관총을 꼬리에 달고 있는 침투형 센티페드.

그러면 얼핏 봐도 몸길이가 100m쯤은 되어 보이는 그 괴물은 도대체 어떤 걸로 무장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진다.

‘…저런 괴물 놈이 지금까지 잘도 안 알려졌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데스 웜이라는 놈 때문에 제47구역에 부대가 철수 했다는 것 같은데,

그건 분명 작은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습지만 네토루는 방금까지 제47 구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던 상태였다.

애초에 정보 전달이 원활한 세상이 아니다.

TV 같은 미디어도 없고, 그나마 있는 정보 전달 매체라고는 라디오 비슷한 것과 신문 같은 것들이 전부다.

특히 버그들과 전쟁 중인 현시점에서 정보 통제는 평소보다도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겠지.

“…데스 웜은 지금 어쩌고 있습니까?”

─…현재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습니다.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녀석이 따라오기라도 했으면 상당히 곤란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이 나아진 건 없다.

“다른 부대원들이 이쪽에 합류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다른 소대가 합류하려면 최소 20분 정도 필요할 겁니다. 그때까지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20분이라. 아마 그 전에 분명 따라잡히겠지.

20분은커녕 1분 안에 바로 따라잡힐 판이다. 그래서 불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하려던 그때였다.

“……”

링크된 맵을 통해 버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네토루는 미간을 좁혔다.

왠지 모르지만 따라오는 센티페트들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 바로 턱밑까지 쫓아오던 추격형 센티페트들이 어느새인가 멀어져 있었다.

…뭐지? 녀석들도 지친 건가.

버그들도 역시 생물체인 건 변함이 없는지라 체력이라는 개념은 존재했다. 실제로 먼 거리를 진격해올 경우 눈에 띌 정도로 전투력이 하락하는 게 보이고는 하니까.

그런데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느낌이 좋지 않다.

착각이면 좋겠지만 녀석들은 일부러 소대원들을 놓쳐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정말 녀석들이 지쳤다고 해도, 그것은 이쪽도 매한가지다.

어느새인가 페르아가 타고 있는 쿄쿄의 성기병도 그렇고, 슈이치로가 타고 있는 이즈미의 성기병 역시 점점 뒤처지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네토루는 물론이고 린 역시 그런 둘에게 맞춰 속도를 늦추고 있는 중인데….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멀어지고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

상황을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뭔가 다른 게 없나 싶어서 생각하고 있자니,

“…설마.”

그 순간 뇌리에 모래알 같은 번뜩임이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가정.

“…저 녀석들 설마 일부러 우리를 놓쳐주고 있는 건가?”

추격형 센티페드.

어쩌면 녀석들은 단어 그대로 정말 추격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적성체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하듯.

그건 어째서인가.

아마 이번 기회를 통해 393부대의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는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놓쳐주고 있을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버그들의 관측 능력은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었다. 리엔처럼 사령관들은 마법으로 버그들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는 반면, 버그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나 기술 따위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대부분의 성기병 부대가 요격을 선호했다. 버그들의 움직임을 보고서 지형지물의 장점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지의 위치가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데 혹시라도 버그들에게 기지가 노출되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된다.

최악의 경우 자주포 같은 화기로 무장한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 같은 버그들에게서 어느날 갑자기 포격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대로 도망친다고 해서 기지가 바로 노출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대충 기지가 어디에 있을지 범위가 좁혀질 건 분명했다.

그건 막아야한다.

그러니 고민은 길지 않았고, 판단은 빨랐다.

네토루는 리엔에게 요청했다.

“…사령관님. 합류 지점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갑자기 왜…?

“설명은 가면서 하겠습니다. 합류 지점은 포인트 97 쯤이 좋겠군요.”

─자, 잠시만요! 거기는 아예 방향이 다른데요? 그러면 합류하기 전에 따라잡힐 거에요!

리엔의 당황 어린 목소리에 네토루는 세레스의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나직이 대답했다.

“그건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자는곰군님, Mara Pen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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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곰군, Mara Pen )

50화를 좀 늘려 쓴 느낌이 적지 않게 있어서 그냥 좀 더 써서 연참해봤습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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