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NTL-001
─전투 종료.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윽고 전투가 끝났다. 네토루는 자신의 허리 밑에서 숨을 허덕이는 세레스를 내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으응….”
열띤 숨소리와 붉어진 얼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가 네토루에게도 닿고 있었다.
“흐아…. 으응….”
출력을 낮췄지만, 여전히 하복부 안에 잔류하는 마력 때문인지 세레스의 등줄기가 가련하게 떨리는 게 보인다. 숨을 허덕일 때마다 세레스의 가는 턱선을 따라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역시 여기사라도 이건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런 세레스의 모습에 네토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름 완급조절을 했었는데 결과는 이렇다.
이건 세레스의 문제가 아니라 파장 일치율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문제는 네토루 본인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아무리 파트너가 좋은 몸을 지니고 있어도 호환성이 좋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법이었다. 사실 이쯤되면 여기까지 따라와 주는 세레스의 의지에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성장’할수록 네토루는 다른 여성 파일럿들과 파장 일치율이 점점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이렇게 능력을 사용해서 ‘강제로’ 커플링을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만 해도 그렇다. 그때는 네토루 역시 다른 기관 출신의 파일럿들처럼 평범하게 여성 파일럿과 커플링을 하였다.
‘…이건 역시 내가 문제인가.’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세레스의 육신은 훌륭했다. 이렇게 주는 대로 마력을 받아들이는 여인은 드문 편이었으니까. 이건 세레스의 마력 연소력이 상당하다는 증거였다.
카렌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단순히 능력만 따지면 세레스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기관과 기사단 출신의 차이가 이렇게 뚜렷할 줄이야….
소문으로만 듣던 여기사의 몸은 직접 다루면 다룰 수록 감탄만 나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카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재능을 떠나 이건 몸 안에 구축한 마력 신경계의 구조가 지닌 태생적인 한계였다.
전장에 빠르게 병력을 밀어 넣기 위해 기관에서 육성한 범용성 좋은 파일럿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하나하나 세심히 관리하며 특별하게 길러낸 파일럿.
그러니 이건 두 사람이 지닌 재능의 차이 때문이 아닌, 기관과 기사단이 지향하는 목표의 차이에 불과했다.
어쩌면 카렌이 기사단에서 길러졌다면 세레스 이상으로 뛰어났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정신력으로도 뛰어난 커플링 파트너가 되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세레스의 머리카락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지고 있을 때였다.
숨을 정리하던 세레스가 문득 말을 꺼냈다.
“…네토루.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뭘?”
“혹시라도 부대에서 카렌이 스와핑을 요구해도 절대로 받아주지 마세요.”
“……”
갑작스러운 요구였다. 더욱이 기가 꺾인 세레스치고는 드물게도 당돌하기까지 하다. 덕분에 네토루의 표정은 미묘해졌다.
만약 다른 사소한 부탁이었다면 세레스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와핑을 하지 말라는 건….
네토루의 입장에서는 섣불리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어쨌든 카렌을 놓아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쉽지 않군.’
안 그래도 커플링 파트너를 두 명이나 두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 이러고 있으니, 네토루로서는 곤란할 수밖에.
카렌은 세레스랑 커플링 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세레스 또한 카렌과 커플링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카렌이든, 세레스든 두 사람 전부 놔줄 생각이 없는 네토루에게 참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내가 이 두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강압적인 방법은 안 된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어떻게든 최대한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애초에 커플링이라는 건 ‘정신적’인 요소도 중요했으니.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뭔가 상황이 우습다.
지금까지 이렇게 여자들 사이에서 고뇌해본 적이 있던가. 사실 네토루도 알고 있다. 이렇게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잡으려는 생각부터가 욕심이라는 것을.
커플링 파트너라는 건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주변에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여기사도 그렇고,
준비된 것처럼 새하얀 도화지 같은 소녀도 그렇고,
어느 하나 놓치기 싫은 것들뿐이다. 그러니 잡을 수 있을 때 한 번에 다 움켜쥐는 게 좋겠지.
전투가 끝난 탓일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긴장감이 느슨하게 풀려 있을 때였다.
───!
마치 얼음기둥 따위가 척추를 꿰뚫은 것처럼, 순간 온몸이 오싹해지는 감각이 등줄기를 가로질렀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이쪽을 관찰하는 듯한 불쾌함.
그 감각에 세레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던 네토루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와 동시에 느슨하게 풀려 있던 몸의 감각이 강하게 조여졌다.
‘…이건.’
그것은 육감에 가까운, 확실치 않은 정보 따위가 조합된 본능적인 판단이었지만, 섣불리 무시할 감각은 아니다.
마법과 검의 세계에서 육감이라는 건 단지 감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릴 미신적인 능력이 아닌, 어딘가 현실적이고 형태가 분명한 초상적인 힘이었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심각해진 얼굴로 미간을 좁힌 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가 끝난 전장 위.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버그들의 시체들뿐. 아무리 봐도 위험한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리엔 역시 말하였다. 전투는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사령관의 관측을 너무 신뢰해서는 안 된다.
네토루는 그동안 쌓은 무수한 전투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무리 성실하고 재능 좋은 사령관이라도, 그 역시 인간인지라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일까. 정체 모를 긴장감이 계속해서 긴장감을 부채 긴다. 네토루는 목덜미 뒤로 차가운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건…. 좋지 않은데.
무언가 위험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작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였다.
────쿠우웅.
그것은 미세한 흔들림에 불과했다. 그저 착각했다고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을 미약한 진동.
하지만 망설임은 없다.
찰나의 순간 그걸 정확히 감지해낸 네토루는 세레스의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몸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흐윽!?
그러자 반쯤 닫혀 있던 마력 패스가 갑자기 확장되며, 세레스가 야릇한 신음 소리를 내뱉더니 등이 유려하게 휘어졌다.
너무 예고도 없는 자극 때문이었을까.
“……하악. 으윽!”
끝내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온 갑작스러운 마력을 전부 소화하지 못한 채, 조종석 위에서 간신히 몸을 바로잡던 세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녀의 눈시울이 붉다.
“……”
확실히 그녀에게 조금 난폭한 짓을 했지만,
이 여자, 설마 또 울고 있는 건가. 네토루는 그 모습을 보고서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다른 부대원들 앞에서는 여전히 가면을 잘 쓰고 있으면서, 내 앞에서는 왜 이렇게 약해지는 걸까.
그런데 지금은 이 아가씨를 달래줄 여유는 없다.
“……세레스.”
“…왜요.”
“지금 건 미안한데,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 아직 전투가 안 끝났으니까.”
“……”
대답을 들은 세레스의 눈이 순간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듯한 눈빛이 되었을 때였다.
─모두 거기서 빨리 벗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다급하고 경악 어린 리엔의 목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땅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꺄아앗? 뭐, 뭐야! 지진?
─뭐야, 갑자기 왜 지진이!?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당황하는 소대원들의 목소리가 음성 채널로 들려온다.
하지만 이건 지진 따위가 아니다.
믿기 어렵지만 무언가가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그 사실에 네토루는 세레스의 조정간을 당기며 주변에 있는 소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멍청이들아! 이건 지진이 아니야! 모두 여기서 물러나!”
─뭐, 그게 무슨….
─린! 일단 네토루 씨 말대로 여기서 물러나자!
리엔의 경고를 듣고도 어리둥절하던 소대원들이 그제야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레스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곧바로 출력을 높이는데 호응해주었다.
그렇게 수초도 지나지 않아, 지진의 강도가 계속 심해지더니,
이윽고 그렇게 소대원들과 함께 100m 정도를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쿠루루룽─!
지축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소대원들이 있던 지점에서 바닥을 뚫고 커다란 무언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
거대한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운다. 그것은 지하에서 매섭게 올라와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과도 비슷했다.
그렇기에 웅장하다면 웅장하다고 할 수 있고,
흉측하다면, 흉측하다 할 수 있는 그 풍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침묵했을 때였다.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던 네토루가 나직이 말했다.
“……모두 후퇴해. 다들 죽기 싫으면.”
이건 리엔의 판단을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저 커다란 버그의 정체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바닥에 생겨난 커다란 구멍, 그 안에서 무수한 숫자의 지네형 괴물 - 추격형 센티페드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7/23 러프 추가. 미완성 단계인데, 그래도 등장 장면이니 넣어봤습니다. 완성되면 완성본으로 교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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