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39화 (39/148)

EP.39 파트너는 누구인가

1.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계속 뜨거운 물에 있어서 그런 걸까. 예상했던 것보다 오버 히트의 증세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 녀석 지금쯤 어디에 있으려나.”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으면서 카렌은 네토루가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보았다. 이대로 녀석한테 찾아가 바로 치료부터 받을 생각이었다.

이런 상태로 계속 있는 건 싫다.

몸은 뜨겁고, 머리는 어지럽고…. 특히 하복부에 열이 차며 욱신거리는 느낌은 견디기 어렵다.

예전처럼 해결방안이 없었으면 모를까 이제는 좋은 치료 방법이 있어서 그런지 예전보다 참는 게 어려워진 느낌이다.

…정말 방법만 조금 정상적이면 좋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이런 고생 안 하고 미리 가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름 자기 최면에 가까울 정도로 합리화에 성공했지만, 역시 심리적인 거부감이 안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열도 안 나는데 뻔뻔하게 찾아가서 치료 해달라고 하는 건 카렌에게 불가능했다. 그러면 너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

문득 새하얀 나신을 드러낸 채 거울을 바라보던 카렌은 조심스레 자신의 입술을 매만져보았다.

요 며칠간 지겹도록 키스를 한 탓일까.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녀석의 감촉이 떠오른다. 덕분에 나츠오랑 입술을 맞췄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희미해질 지경이다.

아무리 치료가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나츠오가 이걸 알면 상당히 화를 낼 텐데. 평소에는 남동생 같아도 결국 녀석 또한 남자였다. 세상 그 어떤 녀석이 자기 커플링 파트너가 다른 사람이랑 입 맞추는 걸 좋아할까.

…그냥 이대로 치료받지 말고 참아볼까?

순간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카렌은 고개를 획획 저었다. 부대 사정을 생각하면 일단 몸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비록 스와핑으로 파트너가 바뀌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정말로 이대로 파트너가 바뀌게 된다면 이제 오버 히트로 고생할 일이 없어진다.

누가 파트너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토루랑 커플링 했을 때처럼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겠지.

그러면 이런 상스러운 치료도 이제 사실상 마지막인 것이다.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카렌이 속옷을 입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누군가가 문을 열고서 탈의실 안에 들어왔다.

누구인가 싶어 거울에 비친 상을 보니 세레스였다. 문득 눈이 마주친 세레스가 은은한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아. 카렌이군요. 벌써 다 씻은 겁니까? 빠르군요.”

“…세레스는 조금 늦었네? 다른 애들은 전부 씻고 있는데, 뭔가 일이 있던 거야?”

여성 파일럿의 경우 성기병과 커넥팅하다보면 체온이 높아지기에 땀이 많이 난다. 그래서 복귀하고 여유가 있을 때 바로 몸을 씻는 게 보통이었다.

“리엔 사령관님하고 잠시 면담이 있어서요.”

“…면담? 그거 혹시 스와핑 때문에?”

“네. 맞아요.”

카렌의 물음에 세레스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비어 있는 락커룸을 찾고서 슈트를 벗기 시작했다.

세레스가 슈트를 벗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파일럿용 브래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 파일럿이 입는 브래지어는 대부분 스포츠 브라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전투 중에 가슴이 흔들리면 불편하다. 그래서 가슴의 형태를 잡아주는 속옷을 항시적으로 착용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세레스처럼 유독 가슴이 크면 스포츠 브라을 입어도 전투 중에 불편한 건 매한가지겠지만….

이윽고 세레스가 입고 있던 속옷까지 전부 벗자 새하얀 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렌은 그런 세레스의 몸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형태 좋고 굴곡진 몸매는 성인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아낌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 나도 저렇게 성숙해지는 걸까?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생일이라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저기…. 카렌? 너무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아무리 저라도 불편한데요?”

“아, 미안….”

문득 눈이 마주친 세레스가 어색하게 웃자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카렌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열이 오른 탓일까.

별생각을 다하고 있다. 카렌은 멈춰있던 손을 다시 움직이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민하던 카렌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심한 듯 조심스레 물었다.

“…세레스. 그래서, 결국 그 녀석이랑 스와핑 할 거야?”

“……”

세면 바구니를 들기 위해 허리를 굽히던 세레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색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기더니 평소의 그것처럼 온화하게 웃었다.

“그야…. 당연히 해야겠죠?”

“괜찮겠어? 그 녀석 조종하는 게 난폭한데. 세레스, 그런 거 싫어하잖아. 게다가…. 그 뭐냐, 남자를 꺼리는 것도 있고.”

“하하…. 뭐, 그렇기는 하죠.”

세레스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굽히고 있던 허리를 우아하게 피며 그저 웃었다.

“그렇지만 저는 괜찮아요. 조종이 난폭하다고 해도 기사단에서 상대했던 파트너만큼은 아니라서요. 오히려 네토루 정도면 양호한 편이죠. 기사들은 네토루보다 더 심하거든요.”

“…네토루가 양호한 수준이라고?”

카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쉽게 상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녀석보다 난폭한 커플링 파트너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지만 세레스가 굳이 이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도 없을 테고….

그리고 보니 실제로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다.

기사들을 상대하는 여성 파일럿이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 세레스도 그런 경우인 걸까.

“카렌은 제가 어디 출신인지 잊은 건 아니겠죠?”

“…세인트 미샤르.”

흔히 왕가의 검이라 불리는 기사단이다. 그야말로 기사들 중에서도 엘리트들만이 모여 있는 곳.

“비록 제가 그곳에서 퇴출당했다고 하지만 네토루 정도 되는 사내는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 첫 커플링도 별문제 없이 끝났잖아요?”

세레스의 미소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게다가 생각보다 커플링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카렌이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름 궁합이 잘 맞나 보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 카렌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는 콕피트에서 세레스를 부축하며 나오던 네토루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특유의 조종법이 문제지 네토루가 무작정 사람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가끔씩 쓸데없이 껄렁껄렁하거나 행동이 짓궂어서 그렇지, 오히려 알게 모르게 파트너를 배려하는 부분도 있고….

애초에 며칠 전에 갑자기 땅밑이 꺼질 때 몸을 던져 구해주었던 걸 생각해봐도 그렇다. 만약 그때 도와주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겠지. 어쩌면 세레스도 녀석의 그런 좋은점을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

문득 그 일을 생각하니 차마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아. 그리고 보니 그 녀석 몸은 괜찮은 건가?’

부대에 복귀했을 때 오버히트로 정신이 없던 탓에 제대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바닥이 무너졌을 때 녀석도 머리를 다쳐 피를 흘리고 있지 않았는가.

게다가 심지어 치료라고는 그냥 조종석에서 응급 붕대로 칭칭 매고 있던 게 끝이었고.

그 녀석, 부대에 복귀하고서 제대로 치료를 받았던가?

“그리고 보니, 카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응?”

옷을 전부 입었을 때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카렌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인가 세레스가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세레스. 왜?”

“카렌. 정말로 몸 괜찮은 거 맞죠? 자세히 보니 뭔가 몸에 열이 있어 보이는데요. 얼굴이 조금 붉어요.”

“……”

평소에는 헐렁해 보여도 세레스는 눈치가 빠르다.

세레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카렌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렇게 티가 났던 걸까.

무리한 커플링 때문인지 이번 오버 히트는 상당히 지독한 녀석이었다. 본래라면 며칠간 꼼짝없이 열병에 걸린 채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카렌은 ‘치료’를 통해 강제로 억누른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이 치료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부대원들에게는 적당히 괜찮아졌다고 둘러댄 상태였다.

카렌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욕탕에 오래 있어서 그래. 원래 뜨거운 물로 씻으면 이렇잖아?”

“……정말요?”

하지만 세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누가 봐도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윽고 세레스는 단순히 쳐다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카렌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으읏…? 자, 잠시만…. 세레스? 꺄악?”

“…카렌. 여기, 뜨겁네요.”

어느새인가 세레스의 손이 하복부를 깊숙히 누르고 있었다. 마력 신경계가 있는, 정확히 마력 신경계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자궁구 윗부분이었다.

“분명 괜찮아졌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거, 아무리 봐도 오버히트 증세인데요.”

“그, 그게….”

오버히트 증세가 나타나면 하복부가 제일 먼저 뜨거워진다. 세레스는 지금 그걸 확인한 것이었다.

카렌이 시선을 피하자 세레스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왜 이런 걸 굳이 숨기고 있어요? 일단 의무실부터 같이 가죠. 가서 해열제랑 파일럿용 영양제라도 받고….”

“자, 잠시만….”

세레스의 잔소리에 카렌은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곧 네토루의 치료받으면 나아질 증세였다. 그러니 굳이 의무실까지 갈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카렌은 자신의 하복부를 누르고 있는 세레스의 손을 조심스레 밀어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거의 다 나았으니까.”

“아니요. 그래도 안 됩니다. 여성 파일럿은 몸을 소중히 해야…….”

세레스의 말이 점점 빨라진다.

이런 세레스를 보아하니 역시 빨리 치료받으러 가야할 듯했다. 카렌은 걱정하는 세레스를 최대한 달래보며 곧바로 탈의실에서 나왔다.

이대로 바로 녀석의 방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런 몸으로 괜히 녀석을 찾겠다고 부대 안을 돌아다니다가는, 세레스처럼 부대원들만 걱정시킬테니까.

방에서 기다리면 뭐 알아서 오겠지.

2.

리엔과의 면담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애초에 이번 스와핑에 대해서는 네토루 뿐만 아니라 리엔 역시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기에 중요한 것은 세레스의 의지였다.

그렇기에 면담에서 나온 주된 이야기는 스와핑에 대한 의견보다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네토루는 어째서 전에 있던 부대에서 쫓겨난 거죠?”

갑자기 리엔이 왜 이런 질문을 한 걸까.

이곳에 처음 왔던 당일에도 묻지 않은 이야기인데.

솔직히 말해서 껄끄러운 질문이다. 별로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야….”

그래서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귀족한테 미움받은 거겠죠.”

“…미움받았다.”

39구역에 올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었는지 리엔의 눈썹이 들썩였다. 하지만 다행히 리엔은 굳이 깊게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만 뭔가 사정이 있다고 짐작하듯 혼자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그대로 면담을 끝낼 뿐.

그렇게 면담이 끝나고 네토루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대로 방에서 세레스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면담이 끝나면 우리 이야기 좀 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으나 세레스는 말했다. 면담이 끝나면 자기가 방에 직접 찾아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그렇게 네토루가 자신의 방에 돌아왔을 때였다.

“……음?”

손잡이를 비틀고 문을 열었을 때 웬 생각지 못한 손님이 먼저 방에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세레스인가 싶었는데 이건 예상치 못했다.

“…뭐야, 이 녀석.”

네토루는 자신의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카렌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게다가 손에 쥐어져 있는 포션은 또 무엇인가. 딱 봐도 자기가 사용하려고 가져온 건 아닐테고….  설마 나한테 줄 생각인 건가.

“흠.”

뭔지 모르지만 네토루는 침대에 누워있는 카렌의 옆에 앉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만져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이마가 뜨겁다.

오버 히트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남자 방에서 태연하게 들어올 수 있는 건가?

순수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그와중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좋은 샴푸 향기가 났기에 네토루는 무심코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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