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38화 (38/148)

EP.38 파트너는 누구인가

스와핑과 관련해서 세레스가 리엔과 면담을 시작한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세레스가 끝나면 곧바로 자신의 차례였기에 근처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던 네토루는 정비반장 아스나에게 받은 종이를 읽어보았다.

종이에 기록되어 있는 건 세레스와 네토루의 커플링 파장에 대한 정보였다.

일치율 ─ 29.5407%.

“…생각 이상으로 높은데.”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을 확인한 네토루는 무심코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카렌과 첫 커플링에서 기록된 파장 일치율이 14.3499% 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상당한 수치였다.

무려 2배를 넘는 수치다. 심지어 요 며칠간 상승한 카렌과의 일치율도 이만큼을 넘지 못한다.

어째서인지 세레스의 감도가 유독 높더라니….

이 수치를 보니 세레스의 감도가 왜 그리 높았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왠지 모르게 세레스가 조금 투정 부리는 느낌이 적지 않게 있지만 의외로 서로 궁합은 잘 맞는 듯했다.

…아니면 역시 여기사는 뭔가 특별한 걸까?

여기사와 커플링을 한 건 네토루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무언가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단순히 여기사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레스가 유독 특별한 것인지….

어쩌면 여기사 특유의 순종적인 성향들이 아직 세레스에게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의외로 전투 내내 원하는 대로 잘 따라주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 일로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았다.

세레스가 몸 안에 구축한 마력 신경계는 지금까지 네토루가 커플링했던 그 어떤 여성들보다도 정교하다는 것이다. 비교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이쯤되면 아예 다른 영역이었다.

귀족들은 이런 것을 숨겨두고 있던 것인가?

기관 출신의 파일럿에게는 찾아볼 수 없던 복잡하고 정밀한 마력 신경계의 구조….

역시 억지로 스와핑을 시도해볼 만큼, 확실히 세레스의 마력 신경계는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정도로 세레스의 몸은 네토루가 오랫동안 구상하고 있던 것의 한계를 단번에 깨부술 만큼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충격을 잊지 않기 위해 네토루는 잠시 눈을 감고서 세레스와 했던 커플링을 되새겨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뇌리에 세레스의 몸 안을 이루던 무수한 마력 신경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수십 수백 개의 선이 휘어지고, 나뉘기를 반복하며 아름다운 형상을 그린다.

그것은 설계도에 가까웠다.

무수한 선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며 이루어진─ 성기병의 설계도.

여성이 어떤 마력 신경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성기병의 능력 역시 달라진다.

그러니 여성 파일럿의 몸 안에 구축되어 있는 마력 신경계가 곧 성기병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네토루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설계도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구현된…. 이상적인 여성 파일럿.

그걸 위해 네토루는 마력 신경계를 연구 중이며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 파일럿들과 커플링 했었다.

덕분에 여러좋지 않은 소문이 겹쳐졌지만 어쨌든 성과는 만족스럽다.

“…역시 한 번으로는 부족한데.”

세레스의 마력 신경계를 상기하던 네토루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직 그녀의 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네토루라도 첫 커플링만으로 복잡한 구조의 마력 신경계를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금까지 접촉해보지 못한 형태다. 그러니 그녀의 몸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커플링을 해봐야 했다.

게다가 오늘 있었던 전투의 수준이 낮았던 탓일까.

네토루는 세레스의 마력 신경계를 파악하기는 커녕, 전부 활성화 시키지도 못 해봤다.

즉, 성기병의 출력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아직 제대로 확인 못 했다는 소리다. 마력 신경계를 파악하려면 그 한계점까지 명확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카렌과 첫 커플링을 했을 때처럼, 일부러 세레스를 한계까지 몰아붙여 보려고 했던 네토루의 입장에서는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뚜벅뚜벅

그때 아이기스 안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네토루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세레스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리엔과의 면담이 끝난 건가.

그러면 이제 네토루의 차례였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레스를 스쳐지나가려던 찰나였다.

“면담이 끝나면 우리 이야기 좀 해요.”

세레스가 당돌하게 팔을 붙잡고는 그리 말했다.

2.

부대 안에는 샤워실 말고도 몸을 담글 수 있는 커다란 목욕탕이 존재했다. 다만 부대 사정 탓에 자주 사용되는 편은 아니었는데, 특정 요일마다 사령관의 허락하에 사용을 권장하고는 했다.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전투로 인해 피로가 누적된 마력 신경계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날이 될 때면 여성 파일럿들은 꼭 욕탕을 찾아 몸을 담그고는 했다. 애초에 굳이 여러 이유를 들지 않아도 씻는 걸 싫어하는 여자가 얼마나 있게냐만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뿌연 수중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욕탕 안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던 카렌이 미간을 좁혔다. 린과 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래!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린이 투덜거리며 욕탕에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곧 풍덩 소리가 한차례 울리고, 기분 좋은 짤막한 신음소리가 흘렀다. 이러나저러나 성기병을 조종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으니.

“음…. 그래도 누렁이 씨랑 세레스 언니 덕분에 전투는 수월하게 끝났어. 우리는 사실상 뒤처리만 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뒤이어 손부터 물속에 집어넣으며 욕탕의 온도를 재보던 란이 천천히 몸을 담그고는 그리 말했다.

“……음.”

그렇게 두 쌍둥이 자매에게 이야기를 듣던 카렌은 턱밑까지 물속에 잠긴 상태로 생각에 잠겼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나 네토루가 평소처럼 험악하게 싸운 건 분명한데, 그런 것치고는 두 사람이 의외로 별 다툼 없이 복귀한 게 카렌은 여전히 믿기가 어려웠다.

파일럿마다 성향이라는 게 있었고, 그 성격만큼이나 세레스의 전투 스타일은 결코 무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정적인 걸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성향은 너무나도 다르다.

나츠오 때문에 호전적으로 싸우는 게 익숙해진 카렌조차도 네토루의 전투 스타일을 생각하면 학을 뗄 정도였으니…. 첫 커플링 때 카렌이 괜히 화를 낸 게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은 너무 안 맞는데.’

애초에 스와핑할 때조차도 네토루와 세레스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정작 나올 때는 왜 그렇게 사이좋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이러니까 두 사람을 걱정한 자신이 괜히 바보같아졌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한테 네토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다. 심지어 네토루와 세레스의 전투 내용도 심상치 않으니 더욱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할까.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린. 네토루, 그 녀석이 정말 수백 미터를 마력 방출로 혼자 돌파한 거야?”

“응. 그러던데?”

“그게 가능해? 더욱이 첫 커플링이었는데?”

“몰라. 되니까 했겠지. 나도 그렇게 마력 방출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건, 카미죠 오빠랑 사나에 언니 이후로 처음 봤어.”

“……”

카미죠…. 사나에….

한때 393부대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이들.

오래 전, 그들의 희생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카렌에게는 무척이나 그리운 이름이다. 게다가 그들이 살아있을 때 나츠오와 함께 두 사람을 진심으로 동경하기까지 했으니.

에이스 파일럿 답게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카렌은 카미죠와 사나에, 두 사람이 마력 방출을 사용하며 싸우는 걸 여러 번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알 수밖에 없었다. 네토루의 전투 방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무모해도,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사람, 대단하네.”

세레스의 성기병을 탄 네토루가 단번에 적의 전열을 붕괴시키는 모습을 떠올리던 카렌은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특히 네토루와 여러 번 커플링 했던 카렌이기에 더욱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그 녀석이 그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마력방출을 유지하며 성기병이 혼자 수백 미터를 돌파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네토루의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 파일럿이 그만큼의 마력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 파일럿 역시 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커플링 파트너 중 어느 한쪽도 부족함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마력 방출을 유지한 채 혼자 전열을 돌파한다는 건 지금의 카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커플링 파장 문제를 떠나 마력 방출 자체가 아직 카렌에게는 무리였다. 매일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하복부에 구축한 마력 신경계가 그 정도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마력 방출이라.’

사용할 수 있으면 분명 큰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버그들의 공격을 무력화 할 수 있는 몇 없는 힘이니까.

카렌은 자신의 몸안에 구축된 마력 신경계를 떠올리며 자신의 하복부를 쓸어만지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지닌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부대 안에서 인정받는 파일럿이라고 해도, 카렌은 그래봤자 아직 정식으로 성인조차 되지 못한 소녀에 불과했다.

평균 연령이 낮은 탓에 여기서는 나름 어른 행세를 하고 있어도 정작 다른 부대에 가면 페르아나 쿄쿄처럼 애들 취급받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어쩌면 제대로 된 전력으로 평가받기도 어려울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3년 차 파일럿의 한계는 명확했다.

더욱이 그 비교 대상이 기사단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존재라면.

‘역시 기사단 출신인가.’

카렌은 새삼스레 세레스의 기량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지 못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여기사….

그런 세레스가 드디어 자신의 기량에 맞는 파트너를 찾았다. 부대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두 사람이 이상적인 조합이라면 스와핑은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이대로 스와핑이 마무리 되면?

─퐁당

그러한 생각에 고민하던 카렌은 욕탕물에 머리까지 완전히 푹 담갔다.

이러니 괜히 그동안 고생한 자신이 어딘가 우습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녀석과 커플링 하기 위해 요 며칠간 온갖 흑역사를 써 내리지 않았는가.

내심 두 사람의 커플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던 카렌에게 이런 건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뭔가 자신의 노력이 완전히 부정당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윽고 속으로 한숨을 쉬며 물에 완전히 잠겨 있던 몸을 천천히 꺼냈을 때였다.

“…카렌.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첨벙첨벙. 욕탕 안에 있던 란이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자연스럽게 물기를 띤 란의 피부가 맞닿는 걸 느끼며 카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니. 딱 봐도 표정이 심각했는데.”

“내가?”

카렌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져보았다.

당연하지만 얼굴을 만진다고 자신이 무슨 표정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남이 보기에는 심각했나 보다.

그 사실에 카렌은 놀란듯 눈을 깜박였다.

‘…내가 미쳤나?’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오늘 일은 전혀 나쁠 게 없는 이야기였다. 비록 자신의 노력이 퇴색된다고 하지만, 이번 스와핑은 부대 전력에도 좋고, 앞으로 자신의 몸에 무리를 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나츠오가 복귀하는 걸 기다리면 된다.

다만 문제는 그 동안 커플링할 파트너가 있을지 의문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질 때였다.

“…읏?”

카렌은 하복부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갑작스럽게 통증이 바늘처럼 자궁을 쿡쿡 찔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몸 안으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세의 원인은 뻔하다.

타이밍이 정말 나쁘다. 왜 하필 씻고 있을때?

“…. 또 인가.”

아무래도 억누르고 있던 오버히트가 다시 발현되기 시작했나보다. 한 차례 한숨을 쉬던 카렌은 담그고 있던 욕탕에서 몸을 꺼냈다.

치료가 필요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라말 아이솔님 후원 감사합니다~

어떤 분인이 세레스 일러까지 요청하셨는데, 당연히 진행 중입니다. 린과 란도 진행 중인데, 차례 밀려서 조금 걸릴 겁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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