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36화 (36/148)

EP.36 파트너 스와핑

몸 길이는 대략 5m.

로커스트들은 다른 버그들에 비해 비교적 크기가 작다. 그리고 그것은 성기병과 비교해도 똑같았다. 더욱이 세레스의 성기병은 다른 성기병들보다도 몸집이 큰 편이었다.

그렇기에 쏟아지는 총탄 세례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앞을 막아선 로커스트들을 돌파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력으로 인해 깨진 유리처럼 일그러진 대기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방패가 되어 총탄을 막아냈다.

보이지 않는 물리력에 탄의 끝자락부터 처참히 뭉개지더니 끝내 그 힘을 잃고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이윽고 단 한발도 몸에 닿는 걸 허용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가속하던 세레스의 성기병은 그대로 로커스트들의 전열에 몸을 박아 넣었다.

질주를 막지 못한 결과는 대단했다.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전열을 이루던 여럿 로커스트들이 탄력 좋은 공처럼 서로 부딪히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네토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풀린 기차처럼 달려나가던 속도가 줄기는커녕 더욱 빨라진다. 그가 노리는 것은 로커스트를 방벽 삼아 후방에 있던 스파이더다.

──푹!

앞을 막아서는 건 없다. 네토루는 그대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며 스파이더의 몸통에 검을 찔러넣었다. 장전을 준비하던 스파이더는 그대로 몸통에 검이 꿰인 채 세레스의 성기병과 함께 10m 정도를 밀려나며 숨이 끊겼다.

수백미터를 내달리며 찔러넣은 일격이다. 검끝에 담긴 힘이 어느정도일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 결과로 스파이더의 살점과 핏물이 요란하게 튀며 성기병의 몸을 더럽혔다.

“……”

그 난폭한 돌진의 결과물에 세레스는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이 남자, 제정신으로 이러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싸울 생각을 하는 거지?

사실 세레스에게 마력 방출을 이용한 돌진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기사단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창이 되어 총탄이 빗발치던 전장을 꿰뚫어 전열을 붕괴시키는 건 유명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렇게 돌격하는 건 기사는 드물었다. 적어도 그녀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잔세르센도 난폭했지만 이런 식으로 무모하게 싸우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뭐야, 이게.”

그래서일까. 무심코 입밖으로 목소리가 샜다.

혹시 이 남자는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걸까? 나는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랑 다르다고. 네가 생각하던 사람보다 더 난폭할 거라고.

“…으윽!”

어처구니없는 돌진에 많은 체력을 소모한 세레스가 숨을 허덕이면서도, 네토루는 멈추지 않고 성기병을 움직였다. 세레스는 이를 악물며 그가 원하는 대로 따랐다.

아직 주위에는 적이 많다. 소대원들이 곧바로 뒤를 뒤따르며 참전하고 있지만, 이미 모든 공격이 세레스의 성기병한테 모인 상태.

─끼이이익!

수백 미터에서 부터 시작된 무모한 돌진에 당황할 것도 없이 주변에 있던 다른 스파이더들의 포신이 바쁘게 움직인다.

보통의 생명체라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설 법도 하지만 녀석들에게는 그런 조그마한 공포심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증명하듯 스파이더들은 신속하게 그 자리에서 포탄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계처럼 흐트러짐 없이 공격을 준비한다.

이윽고 순식간에 포구가 한곳에 모인다.

“……”

철컥. 알 수 없는 기계 소리와 함께 스파이더의 내부에서 포탄이 움직이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온다.

세레스는 무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주었다.

심장이 뛴다. 입안이 바싹 메마르며 등줄기로 차가운 식은땀이 흘렀다.

과연 저걸 피할 수 있을까?

아니, 피하기에는 늦었다.

그 사실에 세레스가 무심코 이를 악물고 있을 때,

───!

네토루는 공포를 상실한 무언가처럼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땅을 박찼다. 그 순간 커플링을 통해 느껴지는 그의 감정은 너무나도 차분했다. 마치 강철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이윽고 세레스의 성기병을 노리던 스파이더들의 포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뿜어졌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고 포탄이 날아오는 그 모습이 하나하나 슬로우모션처럼 동공에 새겨졌다.

피할 수 없다.

사실상 영거리 사격에 가까운 근거리 사격.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두려움이 사라진다.

커플링을 통해 넘어오는 네토루의 감정에 지배당한 듯 세레스는 오롯이 자신의 역할에 집중했다.

여기서는 파트너를 믿어야 한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교육이 그녀의 머릿속에 스며들며, 그의 마력을 순종적으로 받아들게 했다.

여기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세레스는 성기병의 힘을 끌어내야 했다.

그것이 여성 파일럿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레스의 노력을 보상하듯 네토루는 스파이더들의 포격과 동시에 성기병의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검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대기에 날카롭고 가느다란 선 줄기가 생겨나는 착각과 함께.

서걱──콰아앙!

무언가 베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1초도 안 되어 등뒤로 폭음이 빗발쳤다. 그 여파로 어디선가 튀어 오르는 흙무더기가 성기병을 쉴 새 없이 툭툭 때렸고, 뜨거운 열기를 품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세레스의 성기병은 무사했다.

오차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쏘아진 포탄들이 전부 네토루의 검격에 정확히 이등분 되며 엉뚱한 곳에 처박힌 것이다.

“……”

믿기 어려운 기교였다.

세레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이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

아무리 초인의 영역에 발을 담근 기사라고 할지라도 쏘아지는 포탄을 눈으로 보고 벤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여러 개라면….

그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으나.

놀랍기보다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겁이 없어도 그렇지.

하지만 세레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투덜거릴 그럴 여력조차 그녀에게는 없었다. 네토루는 세레스에게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아… 하악…. 으읏!”

등줄기가 떨린다. 그 짧은 순간 성기병의 출력을 얼마나 높인 건지 하복부가 저릿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마력은 쉴 새 없이 세레스의 마력 신경계를 팡팡 두들기고 있었다.

설마 이걸로도 모자라다는 건가?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마력은 세레스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복부를 꿰뚫고 있었다. 네토루한테 마력 패스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탓에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순응할 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마력 양에 경악하면서도 세레스는 어떻게든 난폭한 네토루의 마력을 달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리 달래도 탁류처럼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탓에 별 방법이 없다.

이래서 마력 패스의 주도권을 주기가 싫었는데….

마력 패스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다는 것은 곧, 그가 시키는 대로 질질 끌려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난 수년간 항상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던 세레스에게 지옥 같은 일이었다.

──키이익!?

게다가 보통이라면 숨을 허덕이는 파트너를 위해 성기병의 출력을 낮출 법도 한데, 그는 올라간 출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스파이더들을 하나둘씩 베어 넘기고 있었다.

수백 미터를 질주할 때면 모를까, 전열을 돌파하는데 성공했기에 스파이더들은 더 이상 재장전할 여유도 없이 네토루에게 학살당할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더를 지키기 위해 로커스트들이 아무리 달라붙어도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성기병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전사에 가까웠다.

앞을 막아설 때마다 검이 번쩍이며, 핏물과 함께 로커스트의 몸통이 화려하게 춤을 추며 잘려나간다.

어느새인가 마력 방출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건지, 네토루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총탄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확실히 그의 판단대로 로커스트들의 빈약한 화력으로는 세레스의 성기병에 유의미한 데미지를 주기가 힘들었다.

로커스트들의 몸체에 무장된 경기관총이 아무리 불을 뿜어도 총탄은 세레스 성기병이 지닌 갑각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나갈 뿐이었다.

연비가 나쁜 만큼이나, 방어력이 뛰어난 것이다.

이윽고 네토루가 로커스트들을 하나둘씩 짓밟으며 관측되었던 모든 스파이더를 정리하자,

“후읏. 흐아….”

그제야 세레스는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던 네토루의 강한 압박감이 풀리는 걸 느꼈다.

이걸로 사실상 전투는 끝났다. 나머지는 소대원들에게 맡겨도 충분하겠지. 실제로 스파이더가 모두 섬멸되자 소대원들이 알아서 자기들끼리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읏….”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풀린 세레스는 그대로 조종석에 엎어졌다. 뜨거운 숨결이 쉴 새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땀은 또 얼마나 흘렀는지 콕피트 안이 후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조종석에 엎어진 그대로 세레스는 고개만 살짝 틀었다. 그러자 조종석에 앉아 오연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네토루가 보였다.

방금까지는 무서웠는데, 어째서일까.

이젠 그저 얄밉게 느껴지는 구릿빛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던 세레스가 말했다.

“당신. 너무 겁이 없는 거 아니에요? 스파이더 다섯 마리가 동시에 포격하는데, 거기서 그걸 벨 생각을 하다니…. 정말 미쳤어요?”

“그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오만하다고 하기에는 네토루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세레스는 그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너무 겁이 없지 않은가. 조금만 실수했어도 포탄이 근거리에 꽂혔을 순간이었다.

아무리 세레스의 성기병이 다른 성기병들보다 방어력이 좋다고 하지만, 한두 발도 아니고 그런 근거리에서 포탄 세례를 두들겨 맞으면 바로 아웃이었다.

“……하아.”

한숨만 나온다. 지금은 항의할 힘도 없다.

…카렌은 지금까지 이런 남자랑 싸웠던 건가?

죄책감이 심장을 짓누른다. 그 어린 소녀보다도 전투 경험 많은 자신조차도 이럴 정도인데….

차라리 이렇게 스와핑될 거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네토루를 상대했던 게 옳았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리엔이 지금의 결과물을 보고 어떻게 판단할지는 뻔하다. 아마 커플링 파트너는 이대로 네토루가 되겠지. 부대 사정을 생각하면 어떻게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된 걸까.

원래라면 스와핑을 핑계로 적당히 짓누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 기관에서 만들어진 남자 따위에게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제압당하게 될 줄이야.

믿기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능력을 얕보았다고 하기에 네토루의 능력은 현실적으로 어딘가 비정상적이었다.

딱히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세인트 미샤르 출신의 여기사를 힘으로 억누를 수 있는 파일럿이었다고?

아니, 그런 존재가 왜 393부대 따위에 온단 말인가. 어쩌면 리엔 사령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후회와 의문이 머릿속을 혼잡하게 하는 가운데,

“……?”

조종석에 엎어져 있던 세레스는 문득 뒤늦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희롱하고 있는 네토루를 발견하였다. 어느새인가 조정간에서 손을 뗀 그가 세레스의 머리카락을 쓸어만 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지그시 노려보던 세레스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남자들이야 대부분 좋아하겠지만, 이렇게 머리카락이 길면 관리하기 귀찮지 않아?”

“……”

그냥 호기심 때문에 가지고 놀고 있던 건가.

됐다. 뭔지 모르겠지만 세레스는 이 남자에 대해서 이해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무시하려는데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고생했어. 세레스.”

단순히 고생했다고 한 마디로 퉁치기에 그의 조종은 너무 난폭했지만, 세레스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알면 됐어요.”

좋든 싫든, 지금으로서는 순응해줘야 한다.

이번 전투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다음화 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