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34화 (34/148)

EP.34 파트너 스와핑

부상자도 많고, 버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손을 보태야 할 때였다.

그래서일까. 카렌은 차마 말리지를 못했다.

그 녀석이 세레스와 스와핑을 하려는 걸 말이다.

“…카렌. 정말로 괜찮은 거냐?”

옆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아스나가 말을 걸었다.

“스와핑으로 기껏 맞춘 커플링 파장이 흐트러지면 곤란할 텐데? 어차피 네 몸이 회복하는 게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

아스나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카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스나의 말대로다. 물론 여전히 다른 파일럿들에 비해 커플링 상성이 최악인 건 변함 없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커플링 파장이 훨씬 나아진 게 사실이다

매전투마다 조금씩이지만 점점 서로의 커플링 파장은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상황이 불편하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일치율이 낮은데, 여기서 갑자기 스와핑을 했다가는….

‘…저 녀석은 도대체 뭔 생각이야.’

역시 안 되겠다. 참을 수가 없다. 카렌은 짜증을 느꼈다. 그 고생을 해서 커플링 파장을 맞추면 뭐하는가. 저 무신경한 녀석이 정작 협조를 안 하는데.

게다가 그 상대가 무려 세레스다. 네토루에게 눈치가 있다면 세레스가 경계하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선뜻 스와핑을 제안할 수 있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 솔직히 스와핑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나하고 이야기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속으로 그런 불만이 있었지만, 카렌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저는 세레스가 제일 걱정되네요. 네토루, 그 녀석의 조종이 워낙 난폭해서요. 매번 저만해도 골골거리면서 나올 정도인데.”

“…끄응. 그래, 난폭하기는 하지.”

동의한다는 듯이 아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엔과 아스나가 네토루에게 일부러 스와핑 제안을 하지 않던 건 전부가 이유가 있었다.

커플링 파장도 문제지만 솔직히 말해서 부대원들 중에서도 카렌이 아니면 네토루를 상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서로 기량 차이가 심하면, 되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아직 다른 부대원들은 네토루를 상대하기에 너무나도 미숙했다.

문득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세레스.’

카렌은 멋스러운 기사를 연상케 하는 세레스의 성기병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지금까지 네토루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부대 안에서 자신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데 과연 그게 옳은 판단인 걸까?

카렌도 내심 알고는 있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네토루의 기량이 카렌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그리고 저 녀석이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걸. 미숙한 건 카렌 역시 변함이 없었다.

실제로 녀석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매 전투마다 피로에 허덕이는 건 카렌 뿐이었다. 네토루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힘든 티를 낸 적이 없었다.

커플링 파트너로서 일방적인 관계는 좋지 않다.

수직적인 것보다는 평행해야 한다. 서로 의지할 수 없으면, 그 관계는 결국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순수하게 능력만 볼 때 사실 세레스가 제일 네토루와 적합한 파트너일지도 모른다.

세레스가 비록 기사단에서 퇴출당했다고 하지만 그 기량만큼은 여전하니까. 여성 파일럿의 능력면에서는 적어도 기관에서 교육 받은 카렌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레스라고 뭔가 다를까?

그건 또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부대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카렌과 아스나를 비롯해 일부 인원은 안다. 세레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는 것을.

‘…남성 혐오.’

평소에는 온화하고 나긋나긋한 성격이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분명 남성에 대한 강한 혐오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챈들러하고도 커플링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세레스의 성격을 떠올리자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게다가 네토루 그 녀석도 워낙 성격이 그러하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사람은 그 성질이 너무 안 맞는다.

“자, 잠시만! 린! 기다려! 나만 버려두고 먼저 가는 게 어딨어!”

그때 떠들썩한 목소리가 카렌의 상념을 깨웠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곧 바쁘게 움직이는 린과 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스와핑에서 제외된 인원들이었다. 특수한 커플링 관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급하게 달려왔다는 건…?

카렌은 성기병에 올라타는 린에게 물었다.

“린, 설마 출격이야?”

“응? 뭐, 그렇지!”

경쾌한 몸놀림으로 성기병에 탑승한 린은 그리 대답하더니 란이 들어오자 곧바로 콕피트를 닫았다. 그리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란의 성기병이 안광을 번쩍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란의 성기병을 지켜보던 카렌은 다시 세레스의 성기병을 바라보았다.

“……”

예상은 했지만 역시 커플링을 성공한 걸까. 아까부터 계속 가만히 있던 세레스의 성기병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렌은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2.

때마침 커플링 중이었던 덕분에 네토루는 세레스의 성기병을 끌고서 곧바로 출격하였다.

─포인트 395는 1소대가, 포인트 406은 2소대. 마지막으로 포인트 452는 3소대에게 맡기겠습니다.

부대 전력이 줄면서 소대가 재편성되었다. 당연하지만 5소대 역시 해체되고 다른 부대에 흡수된 상태였다.

‘…뭐, 애들 돌보는 일은 이제 끝인가.’

비록 여전히 페르아와 쿄쿄랑 같은 소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시끌버끌한 애들을 혼자서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귀찮았는가.

……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뭐야! 왜 세레스 언니의 성기병에 누렁이, 네가 타고 있어?

5소대 애들보다도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음성 채널로 연결되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역시 린인가?

여전히 시끄러운 꼬맹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녀석이 과연 카렌과 동갑이 맞는지 의문이었다.

─누렁이, 설마 스와핑 한 거야? 세레스 언니랑?

“그래, 보면 모르겠어?”

─…말도 안 돼? 어떻게? 언니가 그럴 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랑 왜?

그렇게 놀라운 일인 걸까. 린의 목소리는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이상한 소리를 해대던 린이었으나 란이 그것을 말렸다.

─린. 스와핑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작전에 집중하자.

─하, 하지만! 으으…. 그래, 그래야겠지.

린이 사그라지자 란이 이어서 말했다.

─세레스 언니. 포지션은 어떻게 할까. 페르아랑 쿄쿄가 새로운 부대원으로 들어왔잖아. 혹시 생각해둔 거 있어?

2소대의 소대장은 세레스였다. 리엔이 스와핑 중이던 두 사람에게 바쁘게 커플링의 결과를 물은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결과가 안 좋다면 소대장을 새로 정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언니? 내 말 들려?

세레스가 대답이 없자 란이 다시 묻는다. 하지만 세레스는 여전히 못 들은 것처럼 말이 없었다.

단지 조용히 입을 꾹 다문 채 조종석에 있을 뿐.

도대체 이 여자가 계속 왜 이러는 걸까?

아까부터 세레스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저 네토루의 마력만 받아들인 채 성기병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니까 마치 영혼 없는 사람의 형태를 지닌 인형 같았다.

그러한 세레스의 행태에 네토루는 연결되어 있던 음성 채널들을 전부 닫고서 미간을 좁혔다.

“세레스, 정신 차려. 소대장이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

대답은 없다.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못 듣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전투 중에 딴생각을 하는 건 봐줄 생각이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세레스의 조정간을 쥔 채 번쩍 들어 올렸다.

“꺄아앗!?”

그러자 그 반동으로 커다란 흉부가 들썩일 정도로 등줄기가 휘어진 세레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 세레스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가, 갑자기… 왜?”

놀란 자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누가 봐도 눈치를 살피는 듯한 겁먹은 여자의 눈이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세레스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던 네토루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고개가 삐딱하게 꺾였다.

“왜요? 세레스. 지금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야?”

“그, 그게….”

세레스는 시선을 피하더니 눈을 바닥에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또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

덕분에 네토루는 황당해졌다.

이 여자가 갑자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차라리 전처럼 삐딱하게 성질부리는 거면 그나마 낫다.

“쯧.”

“…읏”

가볍게 혀를 찼을 뿐인데 그 소리에 세레스가 놀란듯 몸을 떨더니 고개를 돌려 또 다시 눈치를 살핀다. 그러한 그녀의 행동에 네토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으읏…. 윽!”

대신 조정간을 꽈득 쥐며 출력을 높였다. 그러자 세레스는 얕은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불만스레 쳐다보았지만, 정작 다시 눈이 마주치면 또 자연스레 시선을 피한다.

카렌이라면 분명 한 소리 했을 텐데.

세레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기가 죽은 거지?

내가 그렇게 험한 짓을 했던 건가?

네토루는 방금 있었던 일을 되새겨보았다. 커플링 중에 먼저 기 싸움을 걸었던 건 분명 세레스였다.

물론 조금 과하게 대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망가질 이유가 되진 않는다.

‘…이래 가지고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잖아.’

할 말은 많았지만, 이제 곧 전투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레스. 소대 지휘는 내가 한다. 괜찮겠지?”

세레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전히 눈가가 붉다.

이쯤되면 슬슬 두려울 정도다.

저대로 계속 울먹이다가 부대에 복귀하면…. 결코 작은 일로 끝나지 않겠지.

아무리 네토루라도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부대원들과 사이 좋은 여자 아닌가. 심지어 리엔도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군대였다. 사령관의 권한은 강력하다.

네토루는 한숨 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세레스. 언제까지 울 거야.”

“안 울었어요. 이건 그냥….”

숨길 걸 숨기라지.

네토루는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카렌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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