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32화 (32/148)

EP.32 파트너 스와핑

1.

─훌륭한 재능이군.

어린 시절.

말을 기르던 목장의 딸로 태어났던, 세레스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사의 한마디로 결정되었다.

기사들의 앞에서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왕국 내부에서 진행 중인 혁명기를 통해 귀족의 권세가 뒤흔들리던 시대라고 하지만, 평민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린 세레스는 여기사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기사단의 종자로 끌려갔다.

끌려간 그곳에는 세레스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세레스는 그녀들을 발견하고서 조금 안심했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우습게도 소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들을 보며 순진하게 그리 생각하고는 속으로 안심하고 만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처지의 소녀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그래도 조금 나았다. 나이대도 비슷해서 친해지는 건 빨랐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어서 좋았다. 적어도 외롭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생활을 편안하게 해주진 않았다.

끌려간 그곳에서는 매일 금욕적인 생활이 계속되었다. 새벽 아침부터 일어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마력 신경계를 구축했으며, 여성 파일럿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수업이 계속되었다.

여성 파일럿은 남성 파일럿을 위해 순결해야 한다,

여성 파일럿은 남성 파일럿을 위해 순종적이어야 한다,

여성 파일럿은 남성 파일럿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여성 파일럿은…….

솔직히 말해서 의미 모를 수업의 연속이었다. 그건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라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소녀들에게 그들의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랑비라도 계속 맞다면 온몸이 젖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그들의 말이 점점 머릿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상과 설교가 일상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은 이해라는 개념이 아니었다.

세뇌에 가까웠으며,

그저 자신의 삶에 수긍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로 그때부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초경이 시작될 나이가 찾아왔을 때였다.

그날은 드물게도 아무런 일과가 없었다.

다만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온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고, 평소처럼 새하얀 옷으로 꾸려 입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시설 안으로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찾아왔다.

교관이라는 명칭으로 체격이 크고 무서운 인상을 가진 남성을 제일 앞에 둔 채, 그 뒤로 세레스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또래 아이를 보며 설레고 반가워하던 소녀들이었지만, 머지않아 세레스를 포함한 소녀들은 저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자신들이 헌신해야 할 파트너가 결정되는 날이 말이다.

그걸 깨달은 소녀들은 천진난만하게 기뻐했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은 소녀들은 자신들이 왜 파트너를 위해 순종해야 하는지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소녀들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자신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자신들의 성기병에 올라탔다.

자신의 몸을 모태로 만들어진 자신의 성기병에 처음으로 이성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소녀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드디어 자신의 파트너를 찾고, 헌신하며, 순결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에 여리고 어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수많은 소녀들이 조종석에서 자신의 조정간을 잡아줄 파트너를 애타게 기다렸고,

당연하지만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로 교육받은 세레스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그러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욕심이 없던 건 아니다.

과연 누가 내 파트너가 되는 걸까.

멋지고 착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자신을 상냥하게 대해줄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전, 부모님이 읽어주신 동화 속의 왕자님을 떠올려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

인기척과 함께 세레스는 자신의 조종간을 쥐는 손을 느낄 수 있었다. 꼬리뼈가 쭈뼛 세워지며, 등줄기가 떨렸다. 저도 모르게 등이 휘어지더니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쾌감이 마력 신경계를 흘렀다.

지금껏 커플링을 해 본 적 없는 미성숙한 몸.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낯선 경험에 온몸이 떨렸다. 여린 입술 밖으로 저도 모르게 신음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부끄러움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뒤섞여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한 감각도 곧 익숙해졌다.

애초에 그렇게 교육받은 몸이었고, 훈련받은 몸이었다. 오히려 몇 초지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누구지?’

오랫동안 훈련 받았던 대로 호흡을 정리하며 낯선 감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세레스의 머릿속으로 자연스레 의문이 떠올랐다.

내 조정간을 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생겼고, 성격은 어떻지?

궁금하다.

하지만 세레스는 교육은 받은 대로 자신의 조종간을 쥔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아직은 커플링 파트너로 확정 난 게 아니었다. 이건 단지 파장이 맞는지 확인하는 시험일 뿐.

여성 파일럿은 파트너를 위해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던가.

커플링 파트너가 아닌 상대방의 얼굴을 여럿 익히면 나중에 파장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교육 때문에 세레스는 자신의 조정간을 쥔 소년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세레스는 서로 연결된 마력 패스를 통해 상대방의 마력을 받아들이며, 성기병의 동력으로 이끌어내는데 집중했다.

그 과정은 첫 커플링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누가 봐도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성기병의 출력과 감도 또한 훌륭했다.

소년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기동하는데 성공한 세레스의 성기병은 신난 아이처럼 대지를 질주했다.

이윽고 몇 분 동안이나 성기병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세레스의 조정간을 쥐었던 얼굴 모를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연비가 조금 나쁜 년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합격이야. 좋아, 너는 이제부터 내 커플링 파트너다.”

어딘가 난폭한 말투였지만 세레스는 순수하게 기뻤다. 아무래도 자신의 커플링 파트너가 되어줄 소년은 자신이 마음에 든 듯했다.

어쨌든 이걸로 파트너는 정해졌다.

그러니 얼굴 정도는 봐도 되겠지. 그 사실에 세레스는 참고 있던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조종석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소년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세레스는 무의식적으로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오싹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소년의 눈은 어딘가 무서웠다. 기대했던 왕자님과 달리 상냥함하고는 거리가 먼, 정체 모를 무언가로 가득 찬 열기 띤 눈이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혐오감이 들었다.

노골적으로 몸을 훑어보는 끈적끈적한 시선에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걸 느꼈다.

처음 받아보는 불쾌할 정도의 욕정 어린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커플링 파트너라면 상대방의 성욕을 해결해줄 의무도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욕정 어린 시선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한 무언가였다. 그 덕분에 세레스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며, 상품을 평가하는 눈.

그건 자신을 찾아왔던 기사의 눈이었다.

그리고 현재 소년의 눈은 그러한 눈과 닮아 있었다.

세레스의 다리, 허벅지, 엉덩이, 가슴, 얼굴….

그녀의 전신을 천천히 훑어보며, 소년은 상대방을 평가하고 음미하고 있다.

덕분에 세레스는 깨달았다.

사실 순결이니, 순종적이니 뭐니 하던 것은.

전부 ‘여성 파일럿’이라는 암말들을 길들이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을.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한 깨달음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받아온 설교와 사상을 허물어뜨리지는 못했으니까.

여성 파일럿은 남성 파일럿에게 순종해야 한다.

머릿속에 박혀든 이야기는 절대적이었다. 두려움과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저는 이 녀석으로 하겠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세레스의 커플링 파트너는 세레스보다 한 살 많은 소년으로 확정되었고, 두 사람은 곧바로 전장에 내보내졌다.

서로 호흡을 맞춰볼 여유는 없었다. 한창 혁명기가 진행되던 시절이었고, 귀족들은 싸울 수 있는 인재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그것이 설령 성인조차 되지 못한 어린 소년 소녀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레스는 명예와 전공에 눈이 먼 소년을 따라 온갖 전장에 끌려다녀야 했다.

소년이 원하는 대로 커플링을 했으며,

소년의 마력을 받으며, 성기병을 동력을 만들었고,

소년의 손이 움켜쥔 조정간은 소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기병을 움직이며 적을 베었다.

수년 동안 끔찍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성기병의 검에 핏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게다가 마침 그때는 한참 혁명기 진행 중일 때였다. 소년의 적은 혁명군의 병사들이었으며, 그의 검이 베는 건 인간의 육신이었다.

잔혹하고, 망설임이 없다. 폭력적이다.

그건 소년이 성인이 된 이후로도 똑같았다.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인간을 베는 것에 무슨 명예가 있는 것인지, 그는 살인을 즐겼다.

내 몸이, 내 성기병이 사람들을 죽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계속, 계속….

지긋지긋했다. 그가 조종간을 쥘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자신을 모태로 만들어진 성기병이 인간의 피를 뒤집어쓸 때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피를 뒤집어쓰는 건 성기병일텐데, 온몸이 핏물로 물드는 것처럼 불쾌했다.

그렇지만 세레스는 아무런 저항하지는 못했다.

파트너에게 헌신하고, 순종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으니.

그래서일까.

결국, 그때도 저항하지 못했다.

─…세레스.

그가 세레스의 아버지를 벨 때조차도 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버지가 성기병의 검에 말 그대로 찢겨져 있었다. 벤다는 개념을 넘어, 육신이 조각조각 부서진 것이다. 그것은 무덤을 만들 수조차 없을 만큼 처참한 형태로 되어 있었다.

세레스는 아연해졌다.

왠지 모르지만, 세레스의 아버지는 혁명군의 간부가 되어 있었다. 고향에 있던 목장을 팔아 혁명군에 투신한 것이다.

믿기 어렵게도 그 겁이 많던 아버지가 말이다.

어째서? 왜?

그 이유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간 귀족들을 증오한 나머지 혁명군에게 지원했다고 하던가.

정말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 후회하고, 증오할 거면, 어째서 그날 용기를 내지 못하신 걸까.

그날, 급습으로 혁명군의 간부가 죽었고,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성년이 된 소년은 명예와 전공을 얻었으며,

아직 성인조차 되지 못한 18살 소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처음으로 자신을 가두던 세상을 깼다.

2.

세레스는 자신의 파트너를 떠올려보았다.

지금껏 여럿 파트너가 있었지만,

현재 그녀의 커플링 파트너는 타쿠야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다. 이제 겨우 2년 차 정도의 경력을 쌓은 미성숙한 파트너….

확실히 이제 겨우 사춘기를 벗어나는 듯한 17살 소년은 다루기 편한 아이였다. 적어도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힘들 게 없었다.

언제나 누나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던 아이.

조금만 장난쳐도 얼굴을 붉히던 풋풋함.

그래서일까.

─솔직히 인정하는 게 어때. 너는 이기적인 여자야. 겉으로는 애들을 챙기는 척해도 안은 추악하기 짝이 없지.

네토루의 말에 세레스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기적이고 추악한 여자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확실히 카렌에게 미안한 짓을 하기도 했고.

세레스는 남자가 싫었다. 그 난폭함이 두려웠다.

자신의 조정간을 쥘 수 있는 건,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파일럿 뿐이다. 그래서 네토루가 왔을 때 그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카렌에게 무심코 떠넘기고 말았다.

그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면 받아줄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만 카렌과 네토루의 첫 커플링의 결과를 보았을 때,

세레스는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콕피트에서 내려오며 괴로운 얼굴을 숨기지 못한 소녀의 모습은 세레스, 자신의 추악함과 이기심을 직면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세레스는 뒤늦게라도 카렌을 설득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카렌에게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았다.

하지만 끝내…. 설득하지를 못했다.

그건 어째서인가?

그리고 왜 카렌은 네토루와 점점 친해지고 있는 거지?

세레스는 그 이유가 이제는 궁금해졌다.

네토루를 처음 만났을 때, 세레스가 인식한 네토루라는 사내는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남자였다.

헤픈 여자인 척 가볍게 틈을 보이자마자, 소문대로 여자를 탐하듯 손을 뻗는 것이 얼마나 우습던지.

“그런데도, 당신.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세레스의 물음에 네토루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네토루는 세레스의 조정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등줄기를 가로지르며 짜릿한 전율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하복부에서는 불쾌한 이물질이 스며드는 감각과 함께 마력 패스를 통해 네토루의 마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게 네토루의 대답인 건가.

그의 마력으로 몸 안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확실히 타쿠야에 비하면, 그 양이 엄청났다. 마력의 질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마력의 속성은 그 사람의 성향을 보여준다고 하던가.

네토루의 마력은 사나웠다. 난폭했다. 컨트롤 할 수 없는 야생마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혐오스러운 마력이었다.

역시 이 남자는 컨트롤 할 수 없는 남자다.

다시 한번 그걸 깨달으며, 세레스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오랜만이었다. 여성 파일럿으로서 남성 파일럿의 마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쩌면 몸이 녹슬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세레스는 자신의 첫 커플링 파트너를 떠올려보았다.

잔세르센. 한때 귀족들의 희망이자 영웅이라 불린 젊은 기사.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재능은 엄청났다.

393부대에서 여러 소년들을 상대해보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잔세르센과 비교할 때 그의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하기야. 당연한 건가. 성인이 되고서 절정에 이르렀던 그의 재능과 실력은 왕국 안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성인이 되자마자 세인트 미샤르 기사단의 부단장 후보까지 올랐으니….

그 정도 역량의 남성 파일럿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그와 비슷한 역량을 지닌 여성 파일럿 뿐이었고,

그리고 그 뜻은 잔세르센만큼의 재능과 능력이 세레스에게도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희미하게 남아 있던 망설임을 마저 죽인다. 세레스는 서서히 마력 신경계를 활성화 시켰다.

어찌 되었든 현재에 이르러서 네토루가 부대의 중요한 전력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러니 적당히 위협만 할 생각이다.

이 이상 너저분하게 찝쩍거리지 말라는 경고.

그래, 이건 경고다.

속으로 그리 되새기며 세레스는 마력 패스로 연결된 네토루의 마력을 탐욕적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서로의 역량 차이가 심하다면,

마력 패스의 주도권은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네토루는 별 저항도 못 해 본 채 세레스가 원하는 대로 꾸역꾸역 마력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세레스가 원하는 대로 마력을 공급하는 공급원에 불과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남자가 원한다고 조종간을 놓는 건 불가능하다. 마력 패스의 주도권이 세레스에게 있는 이상, 네토루가 강제로 끊으면 그 여파로 그의 마력 신경계에 큰 무리가 갈 터.

“……”

눈을 감던 세레스는 서서히 강도를 높였다.

좀 더, 강하게 마력을 요구하며, 토해내게 한다.

여성 파일럿이 한순간에 얼마나 많은 마력을 소화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성기병의 출력이 달라진다면,

반대로 남성은 목표로 하는 출력까지 한순간에 얼마나 많은 마력을 공급할 수 있지가 중요했다.

그러다가 서로의 요구와 공급이 어긋나면,

어느 한쪽이 붕괴하고 만다.

흔히 오버히트라 불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누군가 한쪽이 파트너가 원하는 출력까지 도달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힘의 반작용.

현재 세레스가 노리는 건 이것이었다. 네토루가 한순간 공급할 수 있는 양을 세레스가 원하는 만큼 따라오지 못하면,

그의 마력 신경계에 데미지가 들어갈 터.

그렇게 세레스가 마력 패스를 통해 요구하는 마력량을 끝도 없이 계속 올리고 있을 때였다.

성기병의 한계 출력의 수치는 끝도 없이 올라가다가,

500…. 1000… 1500…. 2000….

탁─.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나며, 세레스의 요구에 따라 온몸에 흘러들어오던 네토루의 마력이 평행선을 그리듯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요구량만큼 공급하지 못하는 한계치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이 남자의 한계 출력은 여기까지인가?

뭐…. 솔직히 이 정도면 나름 대단하기는 하다. 적어도 소문이 과장된 건 아니라는 건가. 객관적으로 봐도 어지간한 기사들 보다는 수준이 높다.

하지만 결국 그뿐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꽤나 당황하고 있겠지.

마력 패스에 대한 주도권을 잃은 채, 자신의 의식과 상관 없이 마력이 잡아먹히고 있으니까. 한계 출력 이상으로 계속 공급이 지속될 경우 남자의 몸에 치명적인 데미지가 된다.

그러한 상황을 직면한 지금,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혹시 당황하고 있을까?

아니면 겁을 먹고 있을까?

뭐든 좋다.

‘후후.’

자신의 첫 파트너가 누군지 얼굴을 보고 싶던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입가에 옅은 미소를 새기며 웃던 세레스는 천천히 뒤를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예?”

세레스는 의식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그럴 수밖에.

눈이 마주친 네토루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은 없다.

오히려 지금껏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할 만큼,

“…역시 예상했던 대로 연비가 별로이기는 한데, 이 정도면 나름 합격인가.”

네토루의 얼굴에는 첫 커플링 파트너의 얼굴을 보았던 그때처럼 만족스러움이 떠올라 있었다.

─역시 예생했던 대로 연비가 조금 나쁜 년이지만, 이 정도면 나름 합격이야.

그 순간 마치 기억을 엿본 것처럼, 네토루의 목소리가 오랜 기억을 들추며 뇌리에 재생되는 잔세르센의 목소리와 완전히 겹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네토루가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세레스. 언제까지 그렇게 애들 장난처럼 출력을 높일 거지? 일부러 마력 패스를 넘겨줬는데, 그러니까 너무 답답하잖아.”

“그게, 무슨…. 꺄앗!?”

말이 끝나기도 채 전이었다.

몸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과 함께 세레스는 주도권을 잡고 있던 마력패스가 비틀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멈춰있던 한계 출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친구가 소개해준 곳에 일하러 갔는데 양호하네요. 하는 일이 뭔가 싶었는데 포장하고, 뭐 옮기는 게 끝이더군요.

안별님! 눈나 좋아님! 후원 감사합니다.

받은 후원은 참고로 벌써 일러 제작에 쓰이는 중입니다.

8/18 삽화 추가!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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