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파트너 스와핑
1.
스와핑
이것은 서로의 커플링 파트너를 교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별로 추천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이유는 여럿 있지만 애써 맞춘 커플링 파장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기병 파일럿에게 커플링 파장은 매우 중요하다. 파장의 일치율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성기병의 감도, 연비, 출력이 달라지니까.
커플링 파트너의 능력치를 얼마나 끌어다 쓸 수 있는가, 그것이 커플링 파장 일치율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성기병 파일럿 사이에서 스와핑은 잘 진행되지 않는다.
애초에 자기 파트너가 잘 있는데 굳이 스와핑을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와핑을 시도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예로 전투 부상으로 인해 부대 내부에 커플링이 깨진 파일럿들이 많아지는 경우였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커플링 파트너를 잃은 파일럿을 어떻게든 다른 파일럿과 붙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393부대의 성기병 숫자는 총 20여대 정도 되었고, 그중 6대가 현재 커플링이 깨진 탓에 완전히 기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부대 전력의 약 30%가 거의 마비된 것이다.
물론 빠른 시일 안에 복귀할 수 있을 걸로 예상되는 카렌과 네토루의 경우를 포함하면 무려 총 7대가 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전력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꾸기 위해서라도 스와핑은 불가피했다.
2.
그러하여 장소는 격납고 안.
현재 그곳에서는 393부대원들이 리엔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와핑을 진행 중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성기병에 남녀가 짝을 이루어 탄 다음, 커플링이 원활하게 되는지 파장 검사만 하면 끝이었다.
그러다가 얼추 맞다 싶으면 예비 파트너로 지정해두었다가, 그렇게 하나둘씩 조각모음 하듯 짝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짝이 없는 커플링 파트너는 총 여섯이었다.
‘남자 넷. 여자 둘인가….’
현재 상황을 곱씹어보던 네토루는 작게 혀를 찼다. 보면 볼수록 부대 상황이 참 묘하다 싶어서였다.
사이 좋게 커플링 파트너끼리 입원했으면 이런 식으로 상황이 꼬이지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덕분에 남녀비율이 어긋났다.
만약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면 성기병 3기까지 다시 채울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남자 넷, 여자 둘만 남았다면, 아무리 짝을 맞춰봤자 보충할 수 있는 전력은 성기병 2기가 최대였다.
스와핑으로 새로운 커플링 파트너를 찾는다고 해도 여자 수가 부족한 탓에 남자 둘이 어쩔 수 없이 남아버리는 것이다.
────쿵!
“으앗! 이런…. 그냥 다 부서지겠네.”
커플링 테스트를 위해 격납고를 돌아다니던 성기병 하나가 힘없이 무너졌다. 근처에서 그걸 지켜보던 정비반장 아스나가 눈을 질끈 감으며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쿠당탕 주변에 있던 도구와 자재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역시 예상대로인가?”
천천히 눈을 뜨면서, 참상을 확인한 아스나는 아쉬운듯 입맛을 다셨다.
커플링까지는 어떻게 성공했지만, 일치율이 너무 낮은 탓이었다. 감도가 좋지 않은 것인지 조종이 영 어색하다.
그래도 조금만 연습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긴 한데….
아스나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는 사이, 바닥에 넘어졌던 성기병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더니 콕피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나오는 파일럿은 긴 자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묶고 있는 세레스와 5소대원인 페르아였다.
다만 둘의 상태는 서로 비교될 정도로 확연했다.
“으어어…. 누나, 나 죽을 것 같아요….”
“으음…. 미안해요. 페르아. 제가 너무 힘을 냈네요. 몸은 괜찮아요?”
흔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기어 나온 페르아의 모습은 빈혈이라도 있는 것처럼 혈색이 없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저건 마력 탈진의 초기 증세였다.
짧은 기동이었지만 16살 소년에게 세레스라는 연상의 여인은 커플링 파트너로서 꽤나 버거운 존재였나보다. 커플링 파트너를 조종하기는커녕 억지로 끌려다닌 듯한 모양새였다.
“페, 페르아!? 괜찮아?”
근처에서 시험 기동을 지켜보던 쿄쿄가 달려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페르아의 몸을 부축했다. 그 모습을 보니 평소에는 서로 그렇게 싸우면서도 짝은 잘 맞는다 싶어졌다.
“아스나 씨. 어떤가요?”
“역시, 조금 힘들지도?”
“그런가요…?”
아스나에게서 테스트 결과를 확인하던 세레스는 익숙한 일인 것처럼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페르아와 다르게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평소처럼 나긋한 표정은 여전하다. 페르아와 기량 차이가 뚜렷한 것이 큰 이유겠지.
“…혹시 다음 사람 있을까요?”
몇 차례 테스트가 계속된 탓일까. 땀으로 인해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주위를 둘러보던 세레스가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오는 남성 파일럿은 없었다.
페르아 뿐만 아니라 커플링을 했던 다른 남성 파일럿이 어떤 꼴이 되어 나왔는지 보았기 때문이겠지.
모두 받아줄 것처럼 나긋나긋하면서도 온화한 표정과 달리, 세레스는 현재의 부대원에게 여러 의미로 감당하기 힘든 여인이었다.
“……음.”
끝내 모두 시선을 피하자 세레스가 난처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애꿎은 머리카락만 손가락으로 빙빙 꼬았다.
부대원을 응시하는 세레스의 시선은 마치 마치 기가 죽은 유치원생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러 세레스와 부대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네토루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세레스의 커플링 파트너는 페르아와 거의 나이 차이가 없었을 텐데.
네토루는 옆에 있던 카렌에게 질문했다.
“카렌. 세레스의 원래 파트너가 17살이었나?”
“타쿠야, 말하는 거야? 응, 맞아.”
“그 녀석, 그동안 제법 고생했겠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무심코 쓴웃음이 나온다.
과연 17살 꼬맹이가, 세레스처럼 커플링 파트너로서 완숙해진 여인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 실제로도 몸이 버티지 못한 거겠지.
타쿠야는 이번 전투로 병원에 수송된 파일럿 중 하나였다. 당연하지만 원인은 마력 신경계에 손상이 간 탓이었다.
덕분에 이번 전투로 현재 세레스는 커플링이 깨진 6명의 파일럿 중 하나가 된 상태였다. 부대 안에서 손에 꼽히는 전력이 커플링 파트너를 잃은 것이다.
페르아 뿐만이 아니다. 세레스와 커플링 테스트를 한 파일럿들은 하나같이 전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조종석에서 나오자마자 비틀거리며 어지럼증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 명확했다.
서로 커플링 파장이 맞지 않는 것도 큰 원인이겠지만, 남성 파일럿과 여성 파일럿 사이의 기량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393부대의 어린 파일럿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카렌과 네토루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커플링 파장이 맞지 않아서 온전하게 최대 출력을 낼 수 없는 것도 카렌의 큰 문제지만, 설령 한다고 해도 카렌의 기량으로는 아직 네토루를 만족시킬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시험해본 카렌의 잠재력은 대단했지만, 아직 어루만져줘야 할 부분이 많은 소녀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그게 카렌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기도 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는 건, 다르게 보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끝내 세레스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자, 상황을 지켜보던 카렌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세레스의 커플링 파트너를 찾는 건 쉽지 않네.”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지금 부대원들로는 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 게다가 세레스는 기사단 출신이기도 했고.”
“음? 네토루,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거, 세레스가 평소에 잘 말하고 다니는 이야기가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
심지어 본인한테 들은 이야기다.
네토루가 393부대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그때 카렌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네토루가 부대에 왔을 때 제일 먼저 눈독 들인 건 세레스였다.
어린 부대원들 사이에서 너글너글한 눈웃음과 함께 세련되고 청순한 자태를 뽐내던 그녀에게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더욱이 그녀의 출신 역시 네토루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기사단 출신의 여성 파일럿은 특별했다. 남성 기사들처럼 초인의 영역에 이르기 위해 육신을 단련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초인들에게 적합한 존재가 되기 위해 여기사들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수련을 쌓는다고 들었다.
커플링 파트너라는 건 서로의 역량이 얼마나 잘 맞는지도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미완성된 10대 애들 대신 기사로서 충분히 완성된 세레스를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된통 깨졌지만 말이다.
괜스레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보던 네토루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이쪽이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카렌도 당분간 출격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자, 잠시만? 네, 네토루? 뭘 하려고?”
당혹스러워하는 카렌을 둔 채 네토루는 세레스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가오는 네토루를 보며 세레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온화하기보다는 어딘가 경계하는 눈초리다.
“……당신.”
“세레스. 사령관님의 제안인데 나랑도 한 번 해봐야지?”
네토루는 태연스럽게 세레스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방금까지 페르아가 타고 있던 세레스의 성기병 위에 올라탔다.
세레스의 성기병은 그녀의 머리카락 색처럼 진한 보라색이었다. 중갑옷을 입은 기사의 그것처럼 몸체가 다른 성기병들에 비해 두텁고 단단해 보인다. 아마 무게도 더 무겁겠지.
카렌의 성기병을 날렵하다고 표현할 때, 세레스의 성기병은 그 반대로 육중하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할 거야, 안 할 거야?”
네토루는 조종석에 앉고서 세레스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가만히 선 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갑게 식어 있는 자색 눈동자에 끝내 떠오른 것은 체념이었다.
거기서 세레스는 고개를 돌려 카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괜찮겠어요, 카렌? 괜히 저랑 커플링 했다가는 네토루랑 당신이 맞춘 커플링 파장이 헛된 노력이 될 수 있는데요.”
“…그, 그건.”
커플링 파장 일치율이 낮으면, 그만큼 떨어지기도 쉽다. 잠시 고민하던 카렌이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나는 당분간 출격할 수 없으니까. 뭐….”
“……그런가요.”
카렌과 시선을 교환하던 세레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네토루를 응시했다. 곧 그녀의 입가에 평소의 그것처럼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요. 우리 한번 해보죠. 부대 상황이 이런데 사적인 감정을 들이미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 한 마디와 함께 세레스는 땅을 박차 성기병 위로 가볍게 올라왔다. 기사단 출신이라고 해도 여성 파일럿의 취급은 특수했기에, 육체 단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의외로 잘 훈련된 좋은 몸놀림이었다.
“…안 그래도 마침 저도 당신에 대해 궁금하던 참이었으니까요.”
세레스는 마치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이, 도발적인 미소로 조종석에 앉아 있는 네토루를 내려다보았다.
제법 오싹해지는 시선이었다.
입은 웃고 있어도, 차갑게 식은 자색 눈동자에선 누가봐도 위험한 느낌의 빛이 깃들어 있었으니.
어째서 이런 곳에 처박혔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기사 출신이라는 건가. 미숙한 다른 부대원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세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마력을 짜낼 생각인 듯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서버가 맛이 갔네요. 버벅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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