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28화 (28/148)

EP.28 죽은 이의 밤

1.

다행히 밤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속에서 보름달이 아낌없이 빛을 흘려댔다.

그렇게 옅은 달빛과 고요로 가득 찬 그곳에서.

이윽고 이별식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되자 모인 부대원들은 전사자들의 물품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곧 검은 하늘에 연기가 치솟으며, 죽은 영혼를 떠나보내듯 모두 주변에 모여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인원 안에는 리엔 프러스트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시체를 화장할만한 강한 불길을 내기 위해서는 마법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장례식을 주관하는 것 역시 리엔 프러스트의 역할이었다.

차분한 색의 푸른 눈동자는 제 손으로 만들어낸 불길이 부대원의 시체를 태우는 모습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어딘가 감정을 잃은 것처럼 무미건조해 보이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아련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 리엔의 가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건 후회와 죽은 부대원에 대한 미안함 뿐이었다.

만약 자신이 좀 더 옳은 선택을 했다면, 좀 더 주변의 변화에 신경을 썼다면,

어떻게든 좀 더 방법을……. 끝없는 고뇌의 연속.

사령관이라면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역시나 자신의 말을 따라 움직이던 부대원의 죽음에 익숙해지는 건 쉽지가 않다.

그러한 푸념 속에서 리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오르는 불길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 있는 부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과연 저들은 여기서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까.

앞으로 수년 동안 싸워도 지금의 싸움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저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당장 챈들러나 세레스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수년간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사령관 앞에서 말은 안 하지만 파일럿들 사이에서 죽음이 곧 종착지라는 이야기가 부대 안을 나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리엔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여기서 묵묵히 싸워주고 있다. 그 사실이 리엔은 고마우면서도, 자괴감을 느꼈다.

‘……일단 기다려인가.’

빈약한 장비와 시설 따위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여기서는 희생만을 강요받을 뿐이다.

저들이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프랑기아 왕국의 현실이었다. 왕국의 자원과 인력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중 제39구역에게 돌아올 여력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제39구역이 혁명지의 시작점이자, 마지막 불꽃이었으니.

귀족들에게 있어 눈엣가시 같은 곳.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 손 더럽히지 않고 계속 놔두고는 있지만 내심 빨리 사라지기를 원하는 이들이 왕국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솔직히 이제는 팔다리가 전부 잘린거나 다름 없는데 도대체 뭘 무서워하는 건지, 리엔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당장 리엔의 아버지만 해도 모든 걸 다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술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자기들을 버렸다면서 매일 한탄과 저주를 하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의와 이념은 역사에 전례 없는 침략자들로 인해 처참하게 꺾였다. 이제 남은 것은 구차하게 살아남은 반란군이자, 패배자들뿐.

우습게도 숭고한 이념에 몸 받친 자들보다는, 제 몸 사리기 바빴던 비열한 자들에게 세상은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리엔은 그러한 현실이 비탄스러웠다.

그렇게 온갖 생각이 드는 어두컴컴한 밤.

주변을 밝히는 것은 죽은 부대원의 시체와 물품을 태우는 불길뿐. 그렇기에 그 주변의 그늘 속에서 살아남은 부대원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부대원들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고개를 떨궜으며, 누군가는 그저 멍하니 불길만을 바라보았다. 부대원의 죽음에 익숙한 이들에게 지금의 시간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2.

죽은 부대원들의 이별식이 시작되려던 찰나였다.

─…찾았다.

아무 생각 없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생각지 못한 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많이 놀랐다.

안 그래도 끝나면 찾아갈 생각은 했었다. 비록 부대에 복귀하고서 한 번 억눌러주었다고 하지만, 슬슬 몸에 오버히트가 발현될 때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건 무엇일까.

설마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

─이런, 벌써 시작해버렸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

자기 할 말만 빠르게 하더니, 카렌은 네토루의 옷자락을 강하게 잡아당기고는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평소와는 다른 그 난폭하기 짝이 없는 카렌의 행동에 네토루 별 저항도 못 해본 채 질질 끌려갔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않은 거지만. 네토루는 그저 카렌이 이끄는 데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인기척 없는 곳이었다.

“하아…. 하악….”

그곳에서 카렌은 왼손으로 벽을 짚은 채 뜨거운 숨결을 흘리며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하복부를 누르고 있는 오른손은 그녀의 마력 신경계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호소하는 듯했다.

이래서 그건 안 해주려고 했던 건데. 강제로 마력 신경계를 활성화시키는게 몸에 좋을 리가 없다.

네토루는 어딘가 안쓰럽기까지 한 카렌의 괴로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그냥 방에서 얌전하게 쉬고 있는 게 좋을 텐데.”

“…. 내가 어떻게 그래. 그래도 부대원들의 장례식인데.”

“어차피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냥 내가 꼭 참가하고 싶어서 그래. 나한테는 귀여운 동생들이었으니까. 적어도 마지막 모습은 봐줘야지.”

귀여운 동생들이라…. 그리 말한 카렌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네토루의 옷깃을 손에 틀어쥐고서 고개를 들었다.

“네토루….”

거리가 가깝다.

조금만 몸을 낮추면 입술이 닿는 거리.

카렌의 숨결이 낯간지럽게 턱밑을 간질였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건 그저 내 몸을 치료하기 위한 행위야. 그렇지?”

카렌은 괴로운 얼굴을 하면서도, 그 검은 눈동자만큼은 차갑게 빛낸 채 당돌하게 말했다. 네토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카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래, 이건 치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정작 아무런 말도 안 했건만,

카렌은 네토루의 옷깃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주며 난폭하게 잡아당기더니,

눈을 감고서 천천히 발끝을 세우기 시작했다.

네토루는 그런 카렌의 허리 뒤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고는 끌어안았다.

이제는 그녀의 입술에서 익숙한 맛이 나고 있었다.

3.

소대원이 줄어드니 벌써부터 허전한 기분이다.

“언니.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아까부터 조용히 불길을 응시하던 린이 입을 열었다. 옆에서 양팔로 무릎을 껴안으며 앉아 있던 란이 희멀건 웃음을 지었다.

“…글쎄. 죽더라도 어차피 우린 같이 죽을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커플링의 특성상 누구 한쪽만 죽는 경우는 드물다. 애초에 같은 성기병에 타고 있으니, 죽더라도 커플링 파트너끼리 같이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흐음…. 그래도, 나는 최악의 경우에는 언니라도 살았으면 하는데.”

“에잇, 무섭게 그런 말 하지 말고.”

어딘가 진심 어린 린의 말에 란은 어색하게 웃으며 린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그대로 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순간 두 자매의 눈동자에 얽히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뿐이었다.

린은 어깨에서 란의 무게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정말…. 그냥 정말로, 혹시나 해서 해보는 말인데.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는 그냥 마음 편하게 다른 파트너 찾아.”

“…응? 전에는 자기 먼저 죽으면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말했으면서, 갑자기?”

“음…. 뭐, 전에는 그랬지.”

린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그런 생각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란이 다른 사람하고 커플링 하는 건 보기 싫다. 설령 린, 본인이 죽은 이후라도 말이다.

그것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소유욕에서 비롯된 생각인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 어차피 이렇게 계속 싸우다가 죽을 거면, 그럴듯한 남자라도 찾아서 오래 살아남는 게 낫지. ”

“헤에…. 그러다가 내가 그 사람이랑 정말 사랑에 빠지면?”

“…그럼 까짓거 결혼도 하는 거지.”

커플링 파트너끼리 연애를 하다가 결혼까지 이어지는 건 흔했다. 다만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흠이었지만.

서로 사이가 틀어져서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없이 무너지는 파일럿도 종종 있다.

차라리 같이 죽으면 낫지만, 누구 한쪽이 먼저 죽으면 그것은 평생의 한이 되니까. 그래서일까. 우습게도 서로 커플링 파트너를 살리겠다고 희생하는 일 역시 적지 않게 있었다.

어떻게 보면 커플링이라는 건 일종의 족쇄였다.

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도록, 서로가 서로를 뒤얽고 있는 지독한 족쇄. 자기의 무능 때문에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얼마나 지독한 감정이 들까.

“…린. 그런데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뀐 거야? 뭔가 이유라도 있는 거야?”

“글쎄. 어째서일까. 그냥 카렌 때문에?”

“…카렌?”

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카렌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오버 히트 때문에 참여 못 하는 걸까.

그러던 찰나였다. 뒤늦게 카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왠지 모르지만 카렌의 얼굴이 붉었다. 아마 오버히트 때문에 그런 거겠지.

아무튼, 저런 몸으로 오다니… 역시 카렌답다.

린 역시 란을 따라 카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평생 나츠오하고만 커플링할 것 같던 카렌도, 결국 요즘 들어서는 누렁이랑 커플링해서 잘 싸우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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