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26화 (26/148)

EP.26 복귀

1.

───크르르릉.

적성 개체를 발견한 침투형 센티패드들이 바닥을 기며 빠르게 다가왔다. 10m 넘는 기다란 곤충 몸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혐오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눈이 어지럽힐 정도로 많은 수십 쌍의 다리가 흙을 헤집고,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믿기 어려운 불그스름한 눈동자가 성기병을 쫓아 달그락거린다.

그것을 보며 네토루는 카렌의 조종간을 쥐었다.

호흡을 다듬으며 의식을 집중하자 손에 쥔 조종간을 통해 성기병이 느끼는 오감이 자연스럽게 밀려 들어왔다.

근처에서 쏘아지는 포성과 센티패드들이 만들어내는 진동, 성기병이 땅을 밟으며 느껴지는 흙의 감촉. 심지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과 머리 위로 내려오는 햇볕의 온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덕분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이 전보다 한 단계 더 높아졌다는 것을.

그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며 네토루는 의식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렸다. 호흡은 고르고, 쓸데없는 잡념은 전부 버린다. 이 순간 집중해야 할 건 어떻게 적을 죽여야 할지에 대한 살의뿐.

성기병은 기사가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제2의 육신이자, 아바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성기병이라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이 세계에서 기사들이 쌓아 올린 것들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커다란 생체병기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성기병 파일럿들은 총과 포로 무장한 버그들과 싸울 수 있다.

‘현실’ 이었다면 그저 신화와 동화에 불과했을 이야기가 이곳에는 정말로 실존했고, 그렇기에 쌓아 올린 오랜 신화 같은 힘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네토루는 성기병의 다리에 힘을 주었다. 검을 쥐고 제일 먼저 죽일 녀석을 시선에 담는다. 그 일련의 과정은 전투를 앞둔 기사의 몸가짐처럼 자연스러웠다.

그것은 네토루의 조종 실력이 특별하게 특출나서가 아니었다.

성기병의 조정간이라는 건 여성 파일럿을 매개로 한 성기병의 접속기였고, 남성 파일럿은 단순히 조정간을 손에 쥔 채 ‘의식’을 흘려 넣으면 끝이다.

그렇기에 성기병은 기사들의 제2의 육신이 될 수 있었다. 복잡한 조종법 따윈 없이, 그저 실제 육신이 하던 대로 싸우면 됐으니까.

───!

이윽고 짓밟고 있던 바닥에 커다란 균열을 새기며 네토루가 앞으로 쏘아졌다. 그리고는 쥐고 있던 검을 그대로 횡으로 휘둘렀다.

그어지는 경로에 센티패드 특유의 단단한 갑각과 철갑이 검날을 막아섰지만, 그것이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네토루는 있는 그대로 성기병의 검을 움직여 적을 베었다.

“…일단 한 마리.”

두 동강 난 센티패드가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핏물을 토해내며 무거운 육신이 바닥에 쓰러지기 무섭게 네토루는 다음 적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몇몇 녀석들이 전갈처럼 꼬리를 말아 올리며 안에 숨겨져 있던 기관총을 드러내는 게 보였다. 흙무더기가 끼어 있던 갑각들이 벌어지며 싸늘한 총구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목표를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표적을 찾는 움직임은 느리다.

총탄은 초인의 영역에 이른 기사들도 쉽사리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나, 정작 제대로 겨누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인간은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지만,

버그는 그저 눈으로 쫓는 그대로 쏘아 보낼 뿐.

총구가 자신에게 향하기 전에 먼저 네토루는 죽은 센티패드의 시체를 손에 쥔 채 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을 찾아 움직이던 센티패드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탕! 탕! 탕!

공기에 섬뜩한 궤적을 새기며 총탄이 날아든다. 하지만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갈 뿐, 심지어 그마저도 네토루가 쥐고 있던 센티패드의 시체에 막혀 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총구를 겨누던 센티패드 무리에 접근한 네토루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제일 먼저 총구를 겨누기 위해 빳빳하게 세워져 있던 꼬리를 베고, 그다음 센티패드의 머리를 발로 짓밟아 박살냈다.

그렇게 또다시 한 마리의 숨통이 끊기고, 네토루는 쉴 새 없이 다음 적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다가 방패로 삼던 센티패드의 시체가 너덜너덜해질 때쯤이면 다른 녀석으로 교체.

──키이이익!

전투는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총구를 겨누어도 네토루의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에 센티패드들은 제대로 공격도 못 해본 채 학살당했다.

버그들에게 공포란 없었기에, 물러섬은 없었지만 그것이 싸움의 승패를 바꾸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겁이 없어서 그들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이 없기에, 자신들의 전투 방식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녀석들은 생명체였지만, 전투 방식은 수동적인 기계 그자체였다. 총구는 그저 네토루의 잔상만을 쫓을뿐.

그렇게 몇 놈이나 베었을까. 이윽고 마지막 한 놈을 눈앞에 둔 네토루는 버그의 핏물로 더러워진 성기병의 검을 높이 든 채 조용히 말했다.

“이걸로 마지막.”

2.

호위 병력으로 있던 센티패드 무리가 전멸하자 더 이상 앞을 막아서는 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 뿐이었다. 녀석들을 잡기 위해 언덕을 오르니 어느새인가 포성이 멈췄다.

아무래도 위험을 인지하고서 도망치기 시작한 듯하다.

다른 버그들과 달리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은 자신들의 안위가 위험해지다 싶으면 도망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녀석들에겐 방어 능력이 없었다.

특화된 능력만큼이나 근접전에 취약했다. 심지어 거리가 가까워지면 공격도 하지 못한다. 막말로 접근만 할 수 있다면 굳이 성기병이 아니더라도 숨통을 끊을 수 있다.

물론, 그 커다란 몸체에 제대로 일격을 가할 수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아마, 인간 병기이자 초인이라 불리는 기사들이면 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전히 느린 녀석들이군.’

네토루는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그 속도는 느리다. 굳이 뛰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쫓을 수 있다.

그래서 네토루는 급하게 움직일 것 없이 천천히 성기병을 움직였다. 어차피 카렌도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격렬한 전투는 여성 파일럿에게 무리가 되니까 말이다.

게다가 전략적으로 볼 때 지금 바로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를 잡는 것보다는 잠시 숨통을 트게 해주며 여유를 주는 게 좋기도 했다.

─성공한 건가요?

이쪽의 움직임을 확인한 걸까. 마침 리엔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 이제 잡기만 하면 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가요?

“그래야 녀석들이 버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테니까요.”

─후후. 잘하셨습니다. 덕분에 버그들의 공세가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물게도 리엔이 웃었다. 그리고 보니 그동안 웃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기쁘다는 건가?

아무래도 상황이 많이 안 좋기는 했나 보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는 위험을 느낄 때 주변에 있는 버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건 마치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고정된 패턴이었는데, 덕분에 공격 중이던 버그들의 움직임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물론 다르게 보면 버그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소리와 똑같았지만, 거리가 있으니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아무리 버그라고 해도 30km 정도 되는 거리를 순식간에 달려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 녀석들이 오기 전에 신호를 보낸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를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본래는 새하얗던 카렌의 성기병이 센티패드의 핏물로 전신을 붉게 색칠한 채 언덕 위에 도달했을 때였다.

네토루는 발견할 수 있었다. 부지런히 도망치고 있는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을.

자기 몸만큼이나 커다란 포신을 얹고 기어 다니는 거미들의 모습이란, 위에서 지켜보자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게다가 언덕 지형이라 경사진 곳을 오르는 데 뒤뚱뒤뚱 고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네토루는 땅을 박차 뒤를 쫓았다.

이후 이어진 것은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 사냥은 수월했다. 그저 도망치는 거미들의 뒤통수에 검을 박아 넣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혼자서 무리 하나를 전멸시킨 뒤,

네토루는 적당한 곳에서 성기병을 멈춰 세운 채 콕피트를 열고는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직 전투가 끝난 건 아니다. 하지만 네토루는 커플링을 풀고서 태평하게 전투를 관망하였다. 이대로 계속 싸워서 좋을 건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승패는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지원 요청을 받고 싸움 도중에 뒤를 돌아선 버그들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섬멸당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포탄과 총성이 울린다.

마침 위치도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인지라 전투 상황이 훤히 보였다.

그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니, 네토루를 따라 조종석에서 기어 나온 카렌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갑자기 왜 여기서 멈춘 거야? 아직 전투 안 끝났어. 저기 싸우는 거 안 보여?”

“왜? 그래서 가서 또 싸우려고?”

“당연히 그래야지.”

카렌이 미간을 좁히며 노려보았다.

부대원들이 전투 중인데 이렇게 농땡이 부리고 있는 네토루가 마음에 들리가 없다.

“흠.”

그렇지만 카렌의 대답에 네토루는 그저 웃었다. 사람 좋은 건 좋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몸을 사릴 줄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카렌. 정말로 싸울 수 있겠어? 정작 네 몸은 아닐 텐데.”

“무슨 소리야. 나는 아직 이렇게 팔팔…….”

“정말?”

거기서 네토루는 카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행동에 카렌이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였다.

“…어라?”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카렌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네토루는 그런 그녀의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지 품속에서 카렌의 몸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그럴 수밖에. 네토루가 강제로 활성화시킨 마력 신경계에 한계가 온 것이다.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네토루는 귓가에 속삭였다.

“설마 이런 상태로 계속 싸우겠다고? 카렌, 너는 충분히 고생했으니까, 이제는 푹 쉬어.”

“뭐, 뭐야…. 나, 몸이… 왜 이렇게…?”

“내가 말했잖아. 치료가 아니라, 도핑이라고.”

처음 겪어보는 몸 상태에 카렌이 당황하는 사이,

네토루는 고생한 그녀를 칭찬하듯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이윽고 그렇게 머지 않아 전투가 무사히 끝나자,

더 이상 성기병을 조종할 수 없게된 카렌과 네토루는 부대원들의 도움으로 부대로 복귀하였다.

본래는 가벼운 소풍이었을 임무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그 시각,

버그들의 네트워크에는 데이터가 전송되고 있었다.

───데이터 전송 완료

───위치 프랑기아 왕국 A439

───등록 코드 NTL-001

───관측 결과 프로젝트의 적합체로 확인

───우선 순위 193위에서 29위로 변경

───특이 사항으로는 ’협력자’들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걸로 판단 됨.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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