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22화 (22/148)

EP.22 오버히트

1.

비록 국경 지대로 도망쳤다고 하지만, 카렌과 네토루가 제39구역에서 멀리 나온 건 아니었다.

“아직도 우리를 못 찾아낸 건가?”

네토루는 제39구역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혹시 모를 리엔의 연락을 기다려보았다.

하지만 끝내 연락은 없었다.

네토루는 그게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리엔은 나름대로 유능한 마법사였다.

분명 카렌과 네토루, 두 사람이 리엔의 관측 영역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하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그렇다고 아예 찾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버그들에게 도망칠 때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정도는 마지막까지 관측하고 있었을 터.

방향을 알고 있으면 찾는 건 더욱 수월해진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어떻게든 리엔과 연락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때 생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 뿐이다.

리엔한테 지금 카렌과 네토루, 두 사람을 위해 관측 능력을 사용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겠지.

“역시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인데….”

…예를 들어 이 늦은 시간에도 버그들과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거나.

아마, 높은 확률로 이쪽일 것이다.

애초에 버그들이 제39구역을 하루에 두 번이나 공격했던 것도 어딘가 이상했다.

카렌은 걱정 말라고 말해주기를 원했던 것 같지만,

네토루가 선뜻 말하지 못한 건 제2파가 몰려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버그들은 생장이 빠르지만 그만큼 수명이 짧은 생명체들이었다. 그렇기에 전투 능력이 갖춰지는 순간 ‘소모품’처럼 사용된다.

디펜스 게임처럼 버그들이 일정 패턴으로 몰려오는 건 그래서였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도 인간을 꺾기에는 충분했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2파가 몰려왔다는 건,

버그들을 생산하던 ‘공장’ 하나가 제39구역 쪽으로 시선을 돌릴 정도로 여유로워졌다는 소리였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만난 녀석들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면, 얼추 상황은 퍼즐처럼 맞아떨어진다.

“…엘프들이 뚫렸나 보군.”

거기까지 결론에 도달한 네토루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하염없이 기다리던 리엔의 연락을 포기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밤이 되자 기온이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요 며칠간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던 덕분에 추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적당히 땀을 식히는 찬 바람은 상쾌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내일 아침을 기다리며 잠을 자면 좋겠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네토루는 밖을 돌아다녔다. 수원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비록 처음 와보는 땅인지라 주변의 지형구조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네토루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이윽고 근처에서 물소리를 발견했을 때였다.

───쿠우웅! 쿠웅!

네토루는 별안간 들려오는 무거운 발소리에 급히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포복 전진을 하며 소리의 진원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저건.”

네토루의 눈에 버그들이 기다랗게 줄을 형성하며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비록 어둠 탓에 정확한 숫자나, 구성은 알 수 없지만.

버그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네토루는 눈을 가늘 게 좁혔다.

녀석들의 방향은 누가 봐도 제39구역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정말 엘프란디아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빌어먹을. 도움도 안 되는 깐프들 같으니.

2.

다행히 밤중에 움직이던 정체 모를 버그들의 경로는 카렌의 성기병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네토루는 주변을 한참 더 둘러보고는 냇가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서 카렌의 성기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성기병으로 돌아온 네토루는 콕피트 안에 있던 비상용 응급처치키트를 뒤적였다. 키트 안에는 간단한 수준의 치료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찌이익.

일단 먼저 딱딱하게 굳어가던 피딱지들을 물에 적신 솜으로 닦아내고서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치료용 붕대는 치료포션으로 젖어있기에 상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아마 내일 아침쯤이면 몸을 움직이는데 큰 문제는 없겠지. 이런 식으로 혼자 치료하는 건 익숙했기에 능숙한 동작으로 치료를 끝낸 네토루는 시선을 돌렸다.

사실 현재 진정한 의미로 위험한 건 카렌이었다.

네토루가 이 밤중에 수원지를 찾고 있던 건 전부 카렌 때문이었다.

“카렌. 열은 어때.”

“…최악이야.”

조종석 위에 누운 채 이마에 물을 적신 수건을 올려둔 카렌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까지 괜찮아 보이던 것이 전부 연기였던 것마냥 괴로워 보인다.

땀은 또 얼마나 많이 흘리는지 네토루가 계속해서 수분을 보충해주고 있지만, 입술이 메마르며 카렌은 탈수 초기 증세가 보이고 있었다.

“잠시 열 좀 재볼게.”

“…응.”

네토루는 카렌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물에 젖은 수건으로 열을 식히고 있었지만, 카렌의 이마는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이 내려가기는커녕 점점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이제는 아예 한참 전투 중인 것처럼 주변 공기가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성기병과 커넥팅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이런 식으로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건.

과도한 출력으로 인한 반작용…. 오버 히트였다.

보통의 경우 전투가 끝나면 무거운 탈력감이 몸을 짓누르는 게 끝이지만, 성기병과 무리한 커넥팅을 유지할 경우 온몸의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마력 신경계에 무리가 간 것이다.

카렌이 내일 아침쯤 돼야 성기병을 기동할 수 있다고 한 건 이것 때문이겠지. 자기 몸인 만큼 밤에 찾아올 오버히트를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상태면 내일 아침이 돼도 힘들겠는데.’

네토루가 보기엔 하룻밤 잔다고 저 증상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이런 상태로 성기병을 움직였다가는 분명 최악의 결말에 도달하게 될 게 뻔했다.

머릿속으로 좋지 않은 몇 가지 가정들을 떠올리던 네토루는 굳은 얼굴로 혀를 차며 콕피트를 열었다.

그러자 차갑게 식어 있던 밤공기가 매섭게 들어오며 콕피트 안에 차 있던 열기를 밀어내주었다.

누워있던 카렌은 뺨을 스치는 밤공기에 작은 미소를 짓고는 중얼거렸다.

“…고마워. 밤바람 시원하고 좋다…. 엘프들이 사는 땅이라 그런지 왠지 공기의 감촉도 색다른 것 같아.”

“……”

…그럴 리가. 네토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소문에 따르면 엘프들이 살고 있는 거대 삼림의 주변 공기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보다 순수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여기는 국경 지역일 뿐이다.

이곳은 엘프들이 살고 있는 거대 삼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 사실상 프랑기아 왕국의 땅과 다를 게 없는 곳이었다.

“…네토루. 혹시 엘프 만나본 적 있어? 우리 부대에 오기 전에 여러 곳 돌아다녔다며.”

“엘프?”

열 때문인지 카렌의 어투는 어딘가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적지 않게 있었다.

아마 실제로 의식도 온전치 않을 것이다.

“몇 번 정도는 만나봤지.”

“정말? 다들 그렇게 미인이라던데…. 그게 진짜야?”

“글쎼. 그건 잘 모르겠네.”

“어째서? 만나봤다며.”

“내가 본 건 엘프들의 성기병 뿐이었으니까.”

엘프란디아는 프랑기아 왕국과 인접해 있는 나라였다. 그들 역시 버그들과 싸우고 있는 건 다를 게 없었기에 몇 차례 마주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네토루가 본 것은 오로지 성기병 뿐이다.

정말이지…. 기계 같은 녀석들이었다.

적어도 그가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보았던 순하디순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전체주의에 찌들어버린 무언가라고 해야 하나.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곳.

네토루가 알고 있는 엘프들의 나라는 그런 곳이었다.

“…잠든 건가.”

예전의 기억을 되새기던 네토루는 다시 카렌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눈을 감고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불규칙한 숨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인데….”

네토루는 오버히트 상태에 이른 여성 파일럿을 여럿 보았다.

그의 능력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버히트로 리미트가 풀린 채 체온이 계속해서 올라가면 결국 인간의 몸은 망가지게 되길 마련이다.

여성 파일럿이 폐인이 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최악의 경우 머리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흔히 뇌가 익어버린다고 표현하던가.

만약 부대 안의 의무실이었다면 군의관이 어떻게 오버 히트를 억누를 약을 준비해주었겠지만,

응급처치키트 안에 있는 해열제 따위로 오버히트를 억누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계속 놔둘 수도 없는 일.

“역시 어쩔 수 없나.”

나중에 카렌이 정신을 차리면 뺨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그만이다.

버그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렇게 멈춰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네토루는 조종석 위에서 숨을 허덕이며 누워있는 카렌의 몸을 끌어안았다.

“카렌.”

“…응?”

다행히 아직 의식은 살아 있는 건가. 그 사실에 안심하며 네토루는 카렌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 행동에 저항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를 못 했다는 게 옳겠지.

멍하니 풀려 있는 카렌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네토루는 더욱 깊숙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곧 마력 패스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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