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오버히트
1.
────끼이이익?
버그 특유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이 온다. 주변을 탐색하며 다가오는 것은 <로커스트>였다.
녀석을 단순히 표현하자면 소형 자동차만 한 메뚜기에 경기관총을 달아놓은 소형 버그였다.
비록 그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 밖에 안 될 정도로 비교적 크기가 작고, 무장한 무기의 화력 또한 별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문제는 녀석한테 들키면 주변에 있는 다른 버그들이 순식간에 몰려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네토루는 호흡을 되풀이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시선을 끌었나.’
원하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버그들의 추적이 끈질겨서 문제였다. 설마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꽤나 미움을 사버린 듯하다.
하기야. 어쩔 수 없는 건가.
갑자기 기습을 가하며 전열을 붕괴시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 적성체.
현재 버그들에게 네토루는 그러한 존재였다.
즉, 화를 매우 자극한 존재라는 것이다. 버그들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겠지.
─쩌걱 ─쩌걱
로커스트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긴장감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하아… 하아…. 네토루.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저 녀석 우리한테 계속 다가오고 있는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을 정도로 숨을 허덕이던 카렌이 물었다. 슈트로 꽉 밀착된 그녀의 흉부가 괴롭다는 듯이 들썩이고 있었다.
짧은 시간, 적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네토루가 무리하게 출력을 높인 탓이었다. 열띤 숨소리 탓인지 콕피트의 내부 온도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기다려. 아직 안 들켰으니까.”
“하지만….”
“걱정 마. 나만 믿고 있으면 되니까.”
“하…. 정말…. 맨날 걱정 말래. 그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그래도 아직까지 손해 본 적은 없잖아.”
“음…. 믿기 어렵지만, 그건 그래.”
긴장하던 카렌이 돌연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말이 웃겼나?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로커스트한테 시선을 집중했다.
현재 네토루는 버그들의 시선을 피해 지형을 엄폐 삼아 숨어 있는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예정대로 5소대는 무사히 탈출. 이제 남은 것은 이쪽의 생존이었다.
‘……슬슬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되었는데.’
사실 네토루라고 이렇게 숨어 있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카렌은 한계에 이른 상태였다.
괜히 네토루가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숨어있기로 결정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 버텨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해야겠지.
─쩌억 ─쩌억
이윽고 흙과 풀을 밟으며 녀석의 그림자가 주변으로 드리우기 시작했다.
네토루는 조정간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카렌이 네토루의 선택을 기다리듯 숨을 삼키며 몸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네토루는 마지막까지 때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역시 싸워야 하는 건가?
그러면 카렌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아니, 도망칠 경로는 과연 존재하는가?
주변 지형을 비롯해 버그들의 숫자, 구성, 움직임.
어떻게든 현 상황을 돌파할 방법을 찾기 위해, 네토루가 그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서 냉철하게 조합되고 있을 때였다.
“…어?”
놀란 카렌의 목소리가 긴장감으로 가득 찬 콕피트의 침묵을 깼고, 네토루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과연…. 다행히 때가 맞은 걸까.
───끼이익?
돌연 코앞까지 다가오던 로커스트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기다란 더듬이를 좌우로 몇 번 움직이더니,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네트워크로 무언가 연락을 받은 듯하다.
그리고 그 뜻은 393부대의 소대가 전투를 시작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급히 방향을 틀리가 없다.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건 조금 불안하지만,
아무튼, 뭐든 좋다. 이쪽은 할 일을 다 했다. 괜히 저쪽을 신경 써봤자 머리만 아플뿐.
“…살았네.”
“그러게… 살았네.”
네토루가 말했고, 카렌이 호응하듯 중얼거렸다.
멀어지는 로커스트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두 사람은 길게 숨을 내쉬며 몸에 긴장감을 풀었다.
왠지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자버릴 것 같았다.
문득 네토루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털썩─
뭔가 싶어 보니, 카렌이 버티지 못하고 조종석 위에서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역시 한계였다는 건가.
“…어쩔 수 없나.”
고른 숨소리를 내뱉으며 쓰러진 카렌을 구경하던 네토루도 조정석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카렌이 기절한 이상, 네토루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흐릿해지는 시야 속.
지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2.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로봇물의 주인공은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했다.
훈련 받은 성인 남성도 아니고 이제 겨우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애한테 갑자기 거대 로봇을 타고 싸우게 시키는데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 채 병기를 타고 싸우는 거, 생각 이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렇게 뭣도 모른 채 싸웠던 전투에서,
자신의 실수 때문에 누군가가 죽고,
욕설과 함께 멱살이 잡히며,
복귀했더니 동료들에게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지는 경험은 인생의 트라우마로 잡히기에 충분했다.
당연하지만 처음에는 억울하고, 화가났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나는 그저 뭣도 모른 채 살기 위해 싸웠을 뿐이고,
내 나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걸 호소할 수조차 없다.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죄인이 되기에 충분했으니.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맞물려야 하는 중요한 전투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은 존재 자체부터가 큰 죄악이었다. 그것이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십 명의 목숨이 달렸다면 더더욱….
비록 어느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힘들어할 때마다,
주변 동료들이 사랑, 꿈, 열정, 희망, 우정 따위로 상냥하게 달랠지 몰라도,
내가 눈을 뜬 곳은 미숙한 주인공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런 상냥한 세계가 아닌,
포탄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진짜 전쟁터였고, 하루에도 여러 명이 죽는 지옥이었다.
심지어 어제 멱살을 잡았던 사람이 다음날이 되어보니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는… 그런 곳.
비록 모니터 너머에선 이름 모를 엑스트라의 죽음이 시청자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단순한 장치일지 몰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 절망과 자괴감만이 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열심히 싸웠다.
배울 수 있는 건 배우고, 하면 안 될 것은 버렸다.
미숙함을 저주하듯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흐르며 그럴듯한 성기병 파일럿이 되었을 때였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3.
부스럭부스럭…. 누군가가 전투 식량을 뜯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토루는 그 소리에 이끌리듯 수면 아래에 깊숙하게 잠겨 있던 의식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응? 일어났어?”
그러자 제일 먼저 카렌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그녀는 조종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전투 식량에서 꺼낸 에너지바를 입에 물고 있던 참이었다.
오물오물…. 많이 배고 팠던 걸까.
도토리 먹는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입을 움직이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자니,
“…너도 하나 줘?”
카렌이 눈을 끔벅이며 에너지바를 꺼내 내밀었다.
네토루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됐어. 그것보다 지금 시간은?”
“음. 방금 딱 20시가 됐네.”
“…생각보다 오래 잤네.”
그래서 주변이 이리 어두웠던 건가.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은하수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여기서는 흔하기 흔한 밤하늘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건 아니었기에 잠시 상념에 잠긴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네토루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카렌. 몸 상태는 어때.”
“…지금 상태로 성기병 기동은 조금 힘들 수도. 아마 내일 아침쯤 돼야 겨우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그런가.”
성기병 파일럿은 성기병의 부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었기에, 쉴 때는 쉬어줘야 한다.
게다가 서로의 커플링 파장을 생각하면 기동 시간은 남들보다도 짧고, 휴식 시간은 길어진다.
어찌 보면 카렌과 네토루는 서로 호환성 나쁜 부품끼리 묶여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혹시 사령관님한테 연락 온 건 없었어?”
“아니. 아직 연락은 없었어.”
“…역시 어쩔 수 없나.”
예상했던 일이다. 단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뿐.
애초에 현재 두 사람이 있는 제39구역에서 벗어난,
엘프들의 나라, 엘프란디아의 국경 지역이었다.
즉, 사령관의 관측 영역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오늘 있었던 전투의 결과도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리엔하고 연락이 안 되니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주변에 버그들이 있는지 조차 말이다.
어쨌든 내일 아침까지는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에너지바 하나를 야무지게 삼킨 카렌이 살짝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네토루. 우리 부대원들은 과연 무사할까? 오늘 버그들이 제법 많던데.”
“확실히 많기는 많았지.”
덕분에 도망칠 때 정말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들판을 가득 채운 버그들의 군세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네토루와 카렌을 비롯해 393부대의 부대원들은 이미 한 번 전투를 치뤘던 상태다. 그 상태로 더 많은 적들과 싸우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네토루.”
“이번에는 또 왜?”
“이번에는 걱정 말라고 안 하는 거야?”
갑자기 이건 또 뭔 소리인 걸까.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네토루는 대충 카렌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글쎄. 다들 괜찮지 않을까.”
“뭐야, 그게….”
그런데 대답이 마음에 안들었던 걸까. 카렌은 잠시 불만스럽다는 듯이 흘겨보더니 쓰윽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평소처럼 뻔뻔한 얼굴로 걱정 말라고 말해주기를 원했나보다.
하지만 여기서 걱정말라고 말해봤자….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입이 적어서 그런가. 여기, 순위 등반하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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