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NTL-001
1.
“카렌. 성인도 안된 애들을 여기서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건 역시 아니겠지?”
그걸 말하는 네토루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어딘가 여유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카렌은 그게 신기하면서도 한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네토루. 어떻게 하려고?”
“애들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 거야.”
길을 열겠다. 그것은 단순히 말해서 애들이 나갈 수 있도록 버그들의 시선을 끌겠다는 소리다.
“즉 우리가 미끼가 되자는 거야?”
“그런 거지.”
“……”
어른이라 그런 걸까.
생긴 것이나, 성격이나 전부 다른데.
─카렌. 여기는 어른한테 맡겨라. 성인도 안된 놈들한테 이런 곳에서 죽으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왜 하는 말은 비슷한 걸까.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그러니까 거절할 수가 없잖아.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카렌은 자신의 얼굴이 네토루에게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느꼈다.
왠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조차도 알 수 없는….
카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나도 아직 성인이 아닌데?”
“어차피 며칠 후면 생일 지나잖아. 그러니까 그냥 지금부터 성인 해.
“뭐야, 그게. 너무 뻔뻔해.”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대답은?”
그거야 당연히…….
2.
“…미끼가 되겠다고요?”
<아이기스> 안에서 버그들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있던 리엔 프러스트는 무심코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상황은 좋지 않다. 다른 소대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아 계산하고 있던 리엔에게 네토루의 이야기는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 잠시만요…. 위험해요! 미끼가 되겠다니! 지금 주변에 버그들이 얼마나 많은 건지 알고나…. ”
─사령관님, 시간이 없습니다.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애들을 탈출시켜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아니면 1분 안에 그럴듯한 방법을 찾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읏.”
정말이지 여전히 무례한 남자였다. 마치 사령관의 무능을 꾸짖는 듯한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리엔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들을 저곳에 보낸 건 사령관인 자신이었고,
버그들을 뒤늦게 관측한 것도 사령관인 자신이다.
물론 이 모든 원인이 관측탑이 쓰러진 탓이지만 어쨌든 저들을 사지로 몬 것은 리엔의 잘못이었다.
─아.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 건데 사령관님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 일은 그냥 불행했던 거니까요.
“……”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여유가 나오는 걸까.
리엔은 이마를 부여잡으면서도 <아이기스> 안에서 끊임없이 탐색 마법을 캐스팅하며 버그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곧 결론을 내렸다.
네토루의 말대로 누군가 미끼가 되어주지 않는 이상 저 포위망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실 이건 리엔도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말하지를 못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속으로는 내심 누군가 미끼가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의 비겁함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리엔은 길게 숨을 들이키며 넌지시 물었다. 사령관으로서 이 이상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확신은 못 하겠군요. 하지만 죽을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보통 여기서는 자신감 있게 가능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능글맞은 행동에 이제는 감탄만 나올 뿐이다.
“카렌은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하지만 분명 무리한 커플링이 될 텐데요…?”
─뭐,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죠. 충분히 각오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음성 채널로 들려오는 카렌의 목소리는 의연했다. 리엔은 왠지 그 사실이 마음 아팠다. 앞으로 며칠 후면 생일이 지나고, 카렌은 정식으로 성인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성기병 파일럿들에게 생일이라는 건 단순히 나이를 하나 더 먹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자신이 이만큼 더 살아남았다는 의식에 가까웠다.
“알겠습니다. 5소대의 안전이 확인되는 순간 곧바로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 버텨주시길 바랍니다. 혹시 제가 따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아, 사령관님. 혹시 부대 안에 전술 마법탄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전술 마법탄 말인가요?”
네토루의 말에 리엔은 흠칫했다.
전술 마법탄. 그것은 버그를 대량 살상하기 위한 대마법이 봉인된 탄두였다.
탄두 하나에 수십, 수백 마리의 버그를 단번에 격멸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제작 방법이 어렵기 때문에 사령부에서 쉽사리 보급을 해주지 않는 전술 무기였다.
특히 제39구역의 부대들은 더욱 그러했다.
실제로 393부대에는 전술 마법탄이 한 발밖에 없다. 이것마저도 리엔이 어떻게든 사정해가며 이번 해에 겨우 얻어낸 것이다.
그 값어치 때문에 혹시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해 그동안 아껴두고 있던 귀중한 무기였다.
그걸 묻는다는 것은 역시.
“…전술 마법탄을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아니요. 지금은 아껴두시길 바랍니다.
“예?”
사용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아껴두라니.
그 의문을 풀기도 채 전에.
네토루는 통신을 끊었다.
3.
네토루는 소대원들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당연하지만 반응은 대단했다.
같이 도망치자고 난리였으나 냉혹하게 현실을 알려주니 다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눈치였다.
그래도 나름 친해졌다는 증거였기에, 네토루는 소대원들의 반응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네토루. 그, 전술 마법탄이라는 거 안 써도 되는 거야?”
카렌의 몸에 최대한 부담이 덜하도록, 엔진을 가열하듯 서서히 성기병의 출력을 높이고 있을 때였다.
“…뭐? 그걸 쓰자고?”
이 아가씨가 겁도 없이 뭐라는 걸까,
미끼가 되겠다고 정말 버그들과 같이 죽을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카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전술 마법탄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거냐?”
“…알기는 알지. 엄청 센 거잖아.”
“……”
엄청 세다. 단순하고 좋은 표현이다.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정확히 어떻게 쎈데?”
“그게…. 스파이더들이 쏘는 포탄 위력의 수백 배? 대충 그런 느낌이라고 하던데.”
“……느낌이라.”
카렌은 의외로 멍청한 구석이 있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본 적 없이 남에게 이야기만 들었다면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이곳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인터넷이 있었으면 어디선가 폭발 영상이라도 봤겠지만, 구두로 이어지는 설명의 한계는 뚜렷하다.
막말로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의 사람들에게 핵폭탄 같은 무기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전술 마법탄이 핵폭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안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커다란 기동 병기’한테 검만 쥐여주고서 싸우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 위력을 상상하기 어렵겠지.
“…잠시만, 왜 그렇게 침묵하는 거야? 내가 뭔가 이상하게 알고 있는 거야?”
“글쎄, 그건 아닌데…. 일단 설명하자면 쓰고 싶어도 지금은 못 써. 그랬다가는 우리도 같이 버그들이랑 같이 휘말려서 죽을걸? 전술 마법탄의 화력이 워낙 대단해서 말이지.”
“그게 그렇게 대단해?”
“그래, 엄청나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리엔이 섣불리 전술 마법탄을 쏘았다가는 높은 확률로 이쪽도 같이 버그들과 격멸 당할 게 뻔했다.
버그들이 탄착지점에 그대로 가만히 있어 주면 모를까, 이제부터 버그들과 술래잡기를 할 예정인지라 괜히 그러한 도박은 하기 싫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네토루는 땅이 무너져내리며 드러났던 그 커다란 지하 공간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전술 마법탄을 비장의 무기로 아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느낌이 좋지 않아.’
축적된 오랜 경험들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눈 옆을 흐르는 핏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네토루는 최악의 경우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4.
포탄이 지상을 두들기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온다.
────.
그 소리에 깨어나듯 깊은 땅밑의 어딘가. 어둠 속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흙무더기가 무너지며 기껏 만들어 놓은 지반이 틀어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괴물이 신경 쓰는 건 다른 것이었다.
─키에에엑!
─키이이이이익!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정보가 쏟아졌다.
좋든 싫든 같은 동족인지라 <네트워크>만큼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덕분에 지상에서의 상황이 괴물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구역의 <군단>이 공격당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괴물은 이 구역의 <군단> 소속이 아니었다.
그래서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였다.
게다가 상황은 누가 봐도 동족이 유리했다.
상대는 하나였고, 그 주변을 동족들이 완전히 포위한 상태였다.
……그래, 분명 그럴 터이다.
───?
놀랍게도 적으로 인식된 적성 개체는 혼자서 동족의 전열을 붕괴시키더니, 집중되는 사격과 포격을 피하며 난전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죽음을 불사지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째서 혼자 저렇게 무모하게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에 흥미를 느낀 괴물은 <군단>의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했다.
그리고 곧 흥미로운 데이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등록코드 ───NTL-001.
<군단> 내에서 고위험군 적성체로 식별된,
그리고 동시에 매번 타는 성기병이 달라지는 특성탓에 <군단>의 관심을 받는 특수 개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끼요요오오옷. 저는 이만 알바 뛰러 갑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