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 관측탑
관측탑으로 가는 길 도중에는 드문드문 철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사람의 발길이 끊긴 탓인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네토루는 제39구역에서 393부대가 담당하는 관측 영역의 끝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가.”
만약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어디선가 근처에 산봉우리가 하나쯤은 보였겠지만, 여기선 아무리 둘러봐도 크고 작은 언덕과 드넓은 들판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들을 꿰뚫듯 길게 뻗은 철도가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졌다. 지난 수년간 한 번도 열차가 달린 적 없는 철도는 혼자서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이쪽의 철도는 대체로 멀쩡하다.
구역 전체가 전쟁터인 만큼 버그가 잘못 쏜 포탄에 맞아 어딘가 망가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는데 말이다.
당장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드넓은 들판 위에는 포탄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곳에서도 싸우게 될지 모르기에 눈으로 주변 지형을 익히며 움직이던 네토루는 곧 목표하던 관측탑을 발견했다.
“…이건?”
관측탑을 발견한 네토루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왠지 모르지만 관측탑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 쓰러져 있네요?
─뭐지. 바람에 쓰러진 건가?
─멍청아! 이게 왜 바람에 쓰러져?
─그럼 이게 왜 이러는 건데?
뒤늦게 관측탑의 상태를 확인한 다른 대원들도 여기저기서 의문을 토해냈다.
괜히 도움은 안 되고 시끄럽기만한 대원들의 소리에 네토루는 잠시 미간을 좁혔으나,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왜 이게 쓰러져 있는 걸까? 혹시 알겠어?”
“아니, 모르겠는데.”
카렌의 물음에 네토루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성기병의 무릎을 땅바닥에 꿇었다. 그리고는 조종석에서 일어나 콕피트를 열었다.
“…뭐하게?”
“직접 확인해보려고. 넌 여기서 기다려.”
콕피트가 열리자 제일 먼저 따가운 햇볕이 네토루를 맞이해주었다. 후끈한 열기를 품은 공기가 얼굴을 쓸고 지나가자 괜스레 나가기 귀찮아졌지만,
그래도 임무는 임무였으니 제대로 확인해봐야겠지.
성기병을 탄 상태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니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보는 게 옳다. 네토루는 망설임 없이 성기병 위에서 땅으로 내려 떨어졌다.
순간 마력을 운용하며 지상에 가볍게 착지한 그는 조심스레 쓰러져 있는 관측탑과 접촉했다.
관측탑의 생김새는 심플했다. 커다란 검은색 수정을 긴 막대 형태로 깎은 것처럼 생겼다. 그러면서도 잘 보면 겉면에는 복잡한 마법진들이 새겨져 있다.
관측탑의 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버그들의 침입을 확인하기 위한 결계 - 관측 영역의 축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령관의 마법을 증폭시켜주는 능력이었다.
사령관이 수십KM 떨어진 곳에서 데이터 링크나 관측 영역 안으로 들어온 버그들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는 건 이러한 관측탑의 능력 덕분이었다.
비록 관측탑 한두 개가 부서진다고 해도 당장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사령관의 관측 영역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일단 외견은 멀쩡해 보이는데.”
손으로 겉면을 쓸어보며 관측탑의 상태를 확인하던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경험상 보통 관측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이유가 대부분 버그들 때문이었다.
비록 버그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도록 인식 저하 마법진을 설치하기는 하지만, 가끔 운 없이 발각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이번에도 그런 경우겠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관측탑의 겉면에는 외부의 충격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버그들 때문에 부서진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면 이게 왜 쓰러져 있는 것인가.
그 답을 찾듯 주변을 세세히 둘러보던 네토루는 곧 수상쩍은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건가?”
관측탑 주변의 땅바닥 상태가 이상하다. 누군가 일부러 깨부수고, 흐트러뜨린 것처럼 너저분했는데,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그러면 탑이 쓰러진 건 바닥이 흔들렸기 때문인가?
그러면 뿌리가 뽑혀나간 나무처럼 이렇게 쓰러져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드물지만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관측탑에 이상이 생길 때도 있기 때문에 지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 주변에 지진이 난 거라면.
왜 인근의 풍경이 이렇게 멀쩡한 건가.
당장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철도조차도 흐트러짐 없이 멀쩡하다. 관측탑이 쓰러질 정도의 지진이었다면 철도가 멀쩡할 수가 없었다.
─네토루 형! 뭐가 발견했어요?
한참 동안 네토루가 심각한 얼굴로 땅만 쳐다보고 있자 푸른색을 지닌 성기병 하나가 쿵쾅쿵쾅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페르아의 파트너, 쿄쿄의 성기병이었다.
수 톤의 무게를 지닌 것만큼이나 성기병이 움직이니 땅밑의 흔들림이 크게 느껴진다. 네토루는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늘을 발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쿄쿄의 성기병이 몸을 낮추며 관측탑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게 보였다.
아니, 쿄쿄 뿐의 성기병 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소대원 전원이 관측탑 주변에 둥글게 모여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음…. 겉만 봐서는 멀쩡해 보이는데.
─…역시 버그가 건드린 거 아니야?
─그런가? 그렇지만 너무 멀쩡하지 않아?
─뭐, 살살 건드렸나 보지.
─사령관님한테는 뭐라고 보고하지?
─와…. 나 관측탑 이렇게 자세히는 처음 봐!
‘………”
매번 느끼는 건데 재잘재잘 잘도 떠든다. 호기심이 왕성한 것이 역시 애들답다.
“……그러네. 애들 말대로 너무 멀쩡한데.”
지금 목소리는 카렌의 것이었다. 어느새인가 성기병에서 내려온 카렌이 양손을 무릎에 댄 채 살짝 몸을 낮추고는 관측탑을 살펴보고 있었다.
“카렌. 왜 내려왔어?”
“그야 네가 한참 동안 말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뭐라도 알아낸 거야? 아까부터 심각한 얼굴을 하던데.”
“아니, 알아낸 건 없어.”
“그래? 그러면 일단 사진이라도 찍어둘까.”
아무래도 그냥 온 것은 아닌가 보다.
카렌은 혹시나 싶어서 가지고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손에 들더니 관측탑의 상태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관측탑 주변을 한 바퀴 돌던 카렌은 찍은 사진을 확인하더니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사진은 이거면 되겠네. 네토루, 이제 돌아가자. 어차피 우리끼리 이대로 있어봤자 알아낼 건 없잖아?”
지반이 흐트러져 있는 땅바닥의 상태가 여전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건 그렇다.
차라리 나중에 따로 전문 인력을 데리고 오는 게 낫다. 예를 들어 정비반장 아스나라던가.
그녀도 마법사였다. 그러니 현장을 보면 관측탑이 쓰러진 이유를 알아낼지도 모른다.
‘…일단 돌아가 볼까.’
나름 알아보려고 노력은 했으니, 양심상 찔릴 것도 없다. 그러니 일단 부대에 복귀해서 적당히 씻고 쉬는 게 좋겠지.
안 그래도 햇살이 강한 탓인지 땀이 나고 있었다. 등줄기에 달라붙는 끈적끈적한 감촉이 상당히 불쾌하다. 그래도 한국처럼 습도가 미친듯이 높지는 않아서 다행인데….
속으로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네토루! 지금 당장 소대원들과 함께 빨리 그곳에 벗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
파일럿 슈트의 목덜미에 새겨져 있던 문양에서 마력광을 흘러나오더니 리엔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엔의 다급하면서도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네토루는 풀어져 있던 긴장감을 바로잡았다.
뭔가 불안한데…? 갑자기 뭐지.
“사령관님. 무슨 일 있습니까?”
─…방금 네토루가 있는 주변으로 버그들의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아직 거리는 있지만, 계속 그곳에 있다가는 예상 접촉 시간은 5분입니다.
“…5분 말입니까?”
네토루의 미간이 좁혀지더니, 곧 험악한 인상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예상 접촉 시간 5분이면…. 코앞이다.
사실상 스파이더의 사정거리 안쪽이었다. 언제라도 포탄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
─죄송합니다. 제가 발견하는 게 늦었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뭔가 발견하는 게 늦었다 싶을 수 있지만,
현재 있는 곳이 관측 영역의 끝자락이니 사령관이 버그를 늦게 발견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마침 관측탑도 무너져 있는 상태였고…
덕분에 사령관의 관측 영역에 공백이 생긴 거겠지.
그리고 버그들이 하루에 두 번이나 공격할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네토루도 내심 긴장감을 풀고 있지 않았는가.
‘쯧.’
귀찮게 되었다. 네토루는 혀를 찼다.
아무래도 이번 임무를 여유로운 소풍이라고 표현한 건 취소해야겠다.
─어어? 네토루형? 그러면….
“일단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하니까, 너희 먼저 움직이고 있어 봐. 바로 뒤따라갈게.”
─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관측탑 주변에 있던 소대원의 성기병들이 성큼성큼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5소대 인원 만으로 버그들과 싸우면 전멸이다.
“카렌. 들었지?”
“…응.”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카렌도 자신의 성기병에 탑승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한시라도 빨리 성기병과 커넥팅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네토루도 성기병을 타기 위해 그런 카렌의 뒤를 따라 뛰려고 하던 찰나였다.
“……?”
한 걸음 나아가던 네토루의 걸음이 돌연 멈추었다.
그럴 수밖에.
순간 잘못 보았나 싶었다.
뛰어나간 카렌의 주변으로 바닥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땅이 갈라지며, 풀이 자라있던 흙더미들이 빠르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게 무엇이지?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도 채 전에.
“…미친.”
네토루는 전신의 마력 신경계를 깨우며, 땅을 박차고는 카렌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쿠우우우웅─! 지반이 붕괴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무거운 흙더미들이 등을 때리는 걸 느끼며 네토루는 카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품 속에 강하게 껴 안고는 지하로 추락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이제 자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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