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관측탑
1.
───콰아아아앙!
거리는 대략 500. 포탄이 터지는 굉음이 시끄럽게 울리며 공기 중에 힘을 싣고 날아왔다.
챈들러가 있는 1소대가 전투 중인 곳이었다.
혹시 누군가 맞은 걸까. 언제라도 기민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던 그때였다.
─포인트 195, 클리어!
시원시원한 챈들러의 목소리가 전투의 끝을 알렸다. 그 소리에 네토루는 쥐고 있던 조종간에서 잠시 손을 떼고는 조종석에 등을 기댔다.
긴장을 풀고 잠시 눈을 감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아마 피곤하다는 증거겠지.
위험한 전투는 아니었지만 요 며칠간 매일 버그들이 들락거리니 네토루도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카렌과 커플링을 한 횟수가 벌써 두 자릿수를 앞두고 있었다.
차라리 한꺼번에 몰려오면 좋겠는데. 무심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매일 귀찮게 출격을 반복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네토루에겐 편했다.
‘혹시 작전 같은 건가?’
이쯤 되면 이것도 나름 합리적인 결론이다.
물론 버그들에게 지휘관급의 지성체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네토루가 알기로 전략 전술을 숙지한 객체는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는 건 모르는 일.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전투가 지속되었음에도 인간들은 버그들이 어떤 생태를 지녔고, 생각을 하는지 알아낸 게 많이 없다.
버그들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였다.
게다가 아무리 네토루가 미래를 얼핏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알고 있는 정보는 지극히 한정적.
그러니 미래 지식 따위가 아닌 스스로의 실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미지의 적이 나타나면 자기 실력 하나만 믿고 돌파해야 했다.
“후아…. 이걸로 오늘은 끝인가?”
전투가 끝나자 카렌 역시 긴장감이 풀린 건지 조종석에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등줄기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깍지 낀 두 손이 콕피트의 천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번 몸을 뒤척이던 카렌은 5소대의 대원들과 음성 채널을 연결하더니 말했다.
“모두들 고생했어.”
─네! 고생하셨습니다!
네토루는 소대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병아리 같은 녀석들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데 여전히 앳된 목소리들이 어째 불편하다.
그건 아마 내심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네토루에게 5소대는 동료라고 하기보다는 사실상 짐 덩어리에 가까웠다.
그 예로 애들은 알고 있을련지 모르겠지만 네토루는 전투 내내 소대원들을 챙기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전투만 해도 그렇다.
칸자키라는 녀석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게 싸우던지 기관에서 뭘 배웠나 싶을 정도다.
요새는 기초적인 것만 가르치고 전장에 내보낸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실상을 확인하고 나니 한숨만 나오고 만다.
‘슬슬 파일럿의 수급에 한계가 온 건가.’
이미 나라의 근간은 무너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뿌리 째 썩어버렸을지도. 적어도 네토루가 이 세상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세상에. 성인보다 애들이 많은 부대라니.
사실 그런 점에서 네토루에게 제39구역의 393부대는 여러 의미로 신선한 곳이었다.
이렇게 미성년자가 많은 부대는 처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10대 애들이 태연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며 어떻게 이런 부대가 있는 건가 싶었다.
지금까지 네토루가 거쳐왔던 부대는 모두 성인 남녀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그만큼 그가 있던 곳이 중요 거점이라 평가받는 핵심 구역이었던 것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엘리트 파일럿들이 부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지만 그 엘리트들은 전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성인들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나이가 어리면 경험이 부족한 법이었다.
그리고 이걸 다르게 보면.
평균 연령이 낮은 부대원들로 구성된 제39구역은 사실상 버려진 곳이라 해야겠지.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이제 곧 19번째 생일인가.’
새삼 신기한 걸 발견한 듯 네토루는 조종석 위에 올라가 있는 카렌을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19살이라고 해서 당연히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생일 지나지 않은 미성년자였다니.
생일이 지나지 않은 19살 미만의 파일럿들은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다. 청소년 시기에 정상적인 ‘커플링 파장’ 을 형성하기 위해서라고 하던가.
“카렌.”
“왜?”
이름을 부르자 조종석에 있던 카렌이 뒤를 돌아보았다. 진한 흑발이 어깨 옆을 흐르며, 검은 눈동자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역시 너무나도 앳된 얼굴이다.
그렇지만 나름 이런 엉망진창인 부대에서 제법 오래 살아남은 녀석이기도 했다.
“이제 곧 성인이 된다면서.”
“…뭐야, 갑자기.”
뜬금없는 말 때문이었을까.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본 카렌은 눈썹을 찡그렸다. 네토루는 그런 카렌을 보며 그저 웃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축하한다고.”
“나 아직 생일 안 지났거든?”
그리 말한 카렌은 고개를 획 돌리더니 다시 조종석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네토루는 피식 웃으며 그런 카렌의 앳된 뒷모습을 구경하였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리엔 사령관에게서 통신이 날아왔다.
─두 사람 모두 예정대로 임무를 속행할 수 있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리엔의 물음에 대답은 카렌이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듯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데이터를 링크하겠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예.”
성기병 내부에는 파일럿을 위해 마법으로 구축된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있었지만,
지형 구조나 적들의 위치 같은 데이터들은 사령관이 직접 데이터를 링크해줘야만 했다.
이걸 위해 사령관은 흔히 <아이기스>라 불리는 곳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데… 아무튼,
‘이건가.’
몇 가지 조작을 하자 곧 허공에 지형 정보가 기록된 스크린이 떠올랐다. 스크린 안에는 목표 지점으로 예상되는 노란색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령관님. 노란 불빛이 관측탑입니까?”
─예. 맞습니다.
관측탑은 버그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데 도움을 주는 아티팩트이자, 시설이었다.
관측탑은 393부대가 담당하는 관측 영역의 전역에 걸쳐 일정거리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신호가 사라진 것이 현 상태였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속행할 임무는 관측탑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는 일이었다.
일단 관측 영역에서 버그들은 모두 사라졌으니….
결국 이번 임무는 가벼운 소풍에 가까웠다.
2.
모든 관측탑들은 제39구역의 끝자락에 있다. 버그를 관측하기 위한 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탑의 위치가 그렇다 보니 움직여야 할 거리가 많다는 것인데. 덕분에 이번 임무는 사소하면서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군대를 가도 보통 이런 식으로 귀찮고 사소한 일은 짬이 낮은 이들이 떠맡게 되길 마련이었다.
그런 점에서 네토루가 속해 있는 5소대가 그러했다.
부대 안에서 제일 연령이 낮았고,
경험이 적은 부대원들.
덕분에 대충 커플링 훈련이나 하자는 분위기로 5소대가 출격했다.
그리고 네토루는 책임자 겸 끌려 나온 상태였고.
‘…귀찮군.’
햇볕이 강하다. 비록 성기병 안에 타고 있는 탓에 열기에 쪄죽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열을 많이 받은 탓에 이글거리고 있는 대지를 보고 있자니 숨이 답답해지는 느낌이다.
네토루는 성기병을 움직이며 생각했다.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을 짬이던가?
만약 다른 부대였다면 전혀 생각도 못 했을 일이다. 다른 녀석을 내보내겠지.
하지만 커플링 파트너인 카렌이 가자고 말했기에 네토루는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상태였다.
게다가 오늘 있었던 전투에서도 5소대가 한 일이라고는 적당히 보조하는 일뿐이었으니….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체력 손실이 제일 적은 소대가 움직이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네토루, 그거 알아?
“뭐가?”
목표 지점을 향해 하염없이 이동하던 중.
미지근한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드물게도 카렌이었다.
“나,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
“그래, 그런 것 같더라.”
그러니 남들은 부대에 복귀할 때 이 귀찮은 임무를 받아들였겠지.
출격할 때마다 허덕이던 아가씨가 말이다.
평소였으면 어쩔 수 없이 부대에 복귀했을 것이다.
“…의외로 커플링 연공법이 효과가 있던 건가?
“글쎄.”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물론 카렌이 노력한 것도 나름 지분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카렌의 컨디션이 좋은 건 순수하게 네토루의 노력 때문이었다.
카렌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 네토루는 평소보다도 출력을 낮춘 채 버그들과 싸웠다.
사실상 양 손목에 모래주머니를 장착한 듯한 페널티를 껴안고서 버그들과 싸운 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카렌은 그걸 모르니 이렇게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거겠지.
그리고 이걸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네토루가 평소보다 낮은 출력으로도 버그들에게 밀리지 않고 능숙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만큼이나 네토루가 카렌의 몸을 다루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궁극적으로 그가 굳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건 카렌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며칠간 자잘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네토루도 카렌의 몸 상태를 신경 써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전투 중에 첫 커플링을 했을 때처럼 카렌이 툭 쓰러지며 성기병이 기동불능이 되면 곤란하다.
“…그러면 이제 슬슬 출력을 높여도 괜찮으려나?”
하지만 그런 네토루의 노력을 모르는 카렌은 혼자 결연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네토루는 나중에 현실을 알려주자고 생각하며 우선 현재 위치부터 확인했다.
지도를 보자 열심히 이동한 보람이 있는지 목표 지점이 코앞이다.
‘이제 곧 도착이군.’
그렇게 네토루를 포함해 총 다섯 기의 성기병들이 목표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제일 선두에는 새하얀 몸체를 지닌 카렌의 성기병이 있었고, 그 뒤로 형태 다른 가지각색의 성기병들이 천천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긴장감은 없다.
단어 그대로 소풍 나온 듯한 분위기였다.
그 탓인지 연결된 음성 채널에서도 가벼운 잡담이 오가고 있었다.
너무 긴장이 풀리지 않았나 싶지만 네토루는 굳이 말리진 않았다. 듣는 재미가 있었으니.
─칸자키. 카렌 누나 생일날 뭐 준비할 거야?
─글쎄. 카렌 누나는 곰 인형 좋아하잖아. 요즘도 껴안고 잔다고 하던데…. 기회 되면 사령관님한테 허락 구해서 한 번 시내로 가볼까?
─오오…. 그거 나쁘지 않은데?
5소대원인 페르아와 칸자키의 대화소리였다.
중간중간에 두 사람의 커플링 파트너인 쿄쿄와 제인도 대화에 끼어들었는데,
“……”
당연하지만 그 이야기는 카렌도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네토루는 솔직한 생각을 툭 내뱉었다.
“카렌, 부대원들한테 사랑받고 있네.”
“…시끄러워.”
카렌은 붉게 달궈진 얼굴을 떨궜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드는 모양새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연재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야간 알바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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