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두 번째 커플링
1.
전투는 무사히 끝났다.
격납고에 안착한 후 콕피트에서 내려온 네토루는 카렌의 성기병을 잠시 흘겨보았다.
꽤나 위험천만하게 싸웠지만, 카렌의 성기병은 대체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몇 가지 잔 상처를 제외하면 크게 부상입은 것도 없다. 그러니 카렌의 조정 작업에도 크게 어려움은 없겠지.
“일단 이런 식으로 한 번 해볼까.”
오늘 있었던 전투를 머릿속에서 되새겨보던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식으로 싸워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본래 네토루의 전투 스타일은 그런 식으로 적들의 시선을 끈 채 무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협동보다는 개인의 힘에 의존하는 쪽에 가깝다.
남을 믿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믿는 이기적인 성격이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네토루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일부러 전투 스타일을 바꾸어보았다.
그래야 카렌에게 친숙하게 느껴질 테니까.
이것 또한 커플링 파장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녀가 전에 있던 커플링 파트너를 떠올렸다면 그건 네토루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2.
부대에 복귀한 카렌은 정비반장 아스나를 찾았다. 오늘 있었던 전투에서 커플링 파장이 어떤 수치를 그리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얼마나 올랐을까.
적어도 첫 커플링 때보다는 훨씬 나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을 터.
카렌은 분명 수치가 올랐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처음 커플링을 했을 때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이 좋다.
물론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것이지 네토루와의 커플링이 불안전한 건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로도 커플링이 가능하다는 것이 네토루의 특별함이었다. 애초에 파장이 맞지 않는데 커플링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카렌. 네가 기다리던 커플링 파장 기록 나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스나가 결과가 적힌 종이 하나를 팔랑거리며 다가왔다. 출격 전에 미리 부탁했던 일인지라 일 처리가 빨랐다.
아스나의 말에 카렌은 눈을 빛냈다.
“어때요? 파장 일치율이 많이 올랐나요?”
“그게…. 일단 전에 비하면 확실히 오르기는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커플링 하기에는 수치가 많이 낮아.”
“에이, 그래도 오른 게 어디에요?”
어쨌든 올랐다. 그거면 충분했기에 카렌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아스나에게서 종이를 받았다.
‘……음.'’
확인해보니 확실히 아스나의 말대로 커플링 수치는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다. 다른 파일럿들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치였다. 하지만 괜찮다.
19.6936%
전보다 확실히 수치가 많이 올랐으니까.
게다가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 변화를 기록한 그래프도 꽤나 유의미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은 일정하지 않다.
특히 전투 중에 제일 많은 변화를 보이는데 커플링 파트너끼리 서로 생각과 감정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예로 남성 파일럿이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싶어도, 여성 파일럿이 수비적인 움직임을 원할 때 이러한 틀어짐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렇기에 커플링 파장의 일치율은 매 시간마다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데,
종이에 그려져 있는 그래프에 따르면 카렌과 네토루의 일치율은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
특히 출격할 때는 제일 밑바닥을 그리다가 전투 중에 제일 정점을 찍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건 아마 네토루가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끌었을 때의 수치겠지.
네토루의 행동은 무모했지만, 내심 카렌이 그의 판단에 동의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신기하네. 보름 전쯤에 뺨까지 때렸으면서 정작 전투 중에는 서로 호흡이 맞나봐?
“하하…. 그러게요?”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아스나의 말에 카렌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카렌도 이건 조금 신기했다.
어떻게든 전투에 참여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첫 커플링 때 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 덕분에 출격 전에 걱정했던 것들이 왠지 쓸데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잘하면 나츠오가 복귀할 때까지 큰 문제 없이 싸울 수 있겠어.’
점점 이렇게 수치가 좋아지면 카렌의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덜해진다. 그러면 무리만 하지 않으면 계속 전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중에 나츠오가 복귀했을 때 네토루의 커플링 파트너를 누가 해주는지가 문제인데.
‘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어차피 누구나 커플링이 가능한 녀석이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새로운 파일럿이 전입해 오면 그때 스와핑을 시도해보면 그만이다.
…라고 카렌이 생각하던 찰나였다.
────!
별안간 온몸이 저릿해지는 느낌과 함께 카렌은 다리에 힘이 풀린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읏?”
카렌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를 흘렸다.
눈앞이 흐릿하고 머리가 띵하다.
온몸의 감각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지독한 구토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카렌!?”
“괘, 괜찮아요….”
“아니,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식은땀이 이렇게 나오는데!”
“하하….”
아스나의 호통에 카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깨무는 것이 누가봐도 필사적으로 고통을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런 카렌의 모습을 복잡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아스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너. 설마 괜찮은 척하고 있던 거야?”
“……”
카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카렌 본인도 판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괜찮은 척을 하고 있던 건가?
입술을 곱씹으며 생각하던 카렌이 말했다.
“…그래도 첫 커플링 때보다는 나은 편이에요”
다행히 현기증은 곧 나아지기 시작했다. 카렌은 바닥에 손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카렌의 뇌리로 스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역시 그게 문제였나?’
페르아와 쿄쿄를 구하기 위해 성기병의 출력을 순간 최대치까지 높였다. 그 반동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네토루의 잘못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카렌의 부름에 응답했을 뿐이었고, 필요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 무리로 두 사람을 구했으니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카렌. 바로 의무실로 가.”
“네.”
험악하게 노려보는 아스나의 말에 카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오늘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페르아와 쿄코가 네토루 주변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게 보였다.
실력이 대단하다, 구해줘서 고맙다, 다음에도 소대장 해주면 좋겠다… 등등.
애들 답게 맑고 귀여운 웃음이 흐른다.
그런 페르아와 쿄쿄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렌은 살포시 웃으며 의무실로 향했다.
저걸 위해서라면 역시 이 정도는 괜찮다.
3.
“오늘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네토루 오빠 덕분에 살았어요!”
성기병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웬 소년, 소녀 두 명이 사이좋게 다가왔다.
페르아와 쿄쿄였다.
네토루는 두 사람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혈색 좋은 것이 딱히 큰 부상은 없어 보인다.
전투 중에 그렇게 서로 투닥거렸으면서 의외로 호흡은 맞는가 보다.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네토루가 물었다.
“두 사람은 커플링 몇 년 차야?”
“…음. 아직 1년도 안 됐어요. 이제 곧 10개월 정도 될걸요?”
“10개월…. 둘 다 15살 동갑 맞지?”
““네. 맞아요!””
“……”
네토루는 무의식적으로 표정을 찡그렸다.
이미 이야기로 듣고 있던 거지만, 이렇게 본인들에게 직접 확인하고 나니 가슴 안쪽에서 짜증감이 확 밀려왔다.
이제 겨우 사춘기가 시작될 꼬맹이들을 전장에 던져놓다니.
역시 윗대가리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사실상 두 사람 모두 기관에서 마력 신경계를 구축하자마자 전장에 내던져졌다는 소리 아닌가.
본래 마력 신경계라는 것은 기사들이 초인의 영역에 이르기 위한 비술이었지만, 현시기에 이르러서는 성기병을 운용하기 위한 비술로 바뀌었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목적이 바뀌었다고 해도 마력 신경계는 쉽게 구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사들이 초인의 영역에 이르기 위해 아무리 못해도 10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일이다.
전장에서 전투 병기라 불리는 기사들이 그럴지언데, 일반 평민 꼬마들이 몸 안에 마력 신경계를 만들어봤자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들었겠는가.
‘…다만 문제는 이 부대에는 이런 꼬맹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건데.’
네토루는 한숨이 나오려던 걸 겨우 참았다.
부대 안에서 20살을 넘어선 파일럿은 네토루가 알기로 단 두 명뿐이었다.
챈들러와 세레스.
이 두 사람은 393부대에서 제일 오래 살아남은 동시에 제일 나이가 많은 연장자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부대원은 전부 10대 애들이었다.
사실상 평균 연령이 20살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
생각해보면 나츠오라는 녀석과 카렌이 부대에서 에이스 노릇 하던 것부터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제 겨우 19살 된 소년, 소녀가 부대 안에서 최고 전력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니….
물론 나츠오라는 녀석도 그렇고, 카렌의 재능이 그만큼 뛰어난 편이기도 했다. 그 미모만큼이나 네토루가 탐을 내는 데는 전부가 이유가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게 제 정상인가.
이런 걸 보면 카렌이 무리해서 출격하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현실이었다면 이제 겨우 교복을 내려놓을 19살 아가씨조차도, 자기 보다 어린 부대원들이 썩 믿음직스럽지가 않았겠지.
그리고 우습지만.
이런 부대원들의 평균 연령 때문일까.
덕분에 네토루는 393부대에 오고 나서 여자 한 번 건드려볼 수가 없었다. 괜히 그가 한 달간 여자에 굶주려 있던 게 아니었다.
아직 솜털이 남아 있을 어린애들은 취향이 아닐뿐더러, 게다가 부대 안에 제대로 된 어른 여성이라고는 리엔 사령관, 정비반장 아스나, 세레스뿐이었는데,
리엔은 섣불리 건들기 힘든 사령관이었고,
아스나 역시 그 위치 때문에 네토루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레스에게는 첫날부터 제대로 찍혔다.
‘…쯧.’
세레스를 떠올리던 네토루는 미간을 좁혔다.
여러 가지로 지금은 악연이된 여자다. 네토루가 부대에 오자마자 평판이 땅에 처박힐 수 있던 건 세레스의 역할이 컸다.
부대원들의 평균 연령이 낮았던 탓에 세레스는 네토루가 부대에 전입 온 첫날부터 유독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부대의 최연장자답게 세레스는 원숙한 몸매의 소유자였고, 무르익은 여성의 매력은 다른 부대의 여성들과 비교해도 가히 압도적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자색 머리카락, 부드러운 눈매와 오른쪽 눈 밑의 작은 눈물점…. 눈꼬리가 약간 쳐진 너글너글한 분위기의 미인으로,
세레스 특유의 순해 보이는 청순한 외모 탓일까.
섣불리 접근했다가 되려 당하고 말았다. 정확히는 그녀에게 시험당했다고 하는 게 옳겠지.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을 되새기던 네토루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세레스가 차분하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커플링 파트너와 함께 걸어가는 게 보였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네! 세레스 누나도 고생하셨습니다!
─언니! 바로 같이 씻으러 가실래요?
파일럿 슈트 때문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S자 형태의 아름다운 몸매를 더불어, 엉덩이 밑까지 내려오는 긴 자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찰랑거린다.
지나가면서 부대원들에게 고생했다고 인사하는 모양새가 꼭 애들 좋아하는 유치원 선생처럼 인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생긴 것과 다르게 음흉한 여우 같은 년이었으니.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 있는 커플링 파트너는 17살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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