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1화 (11/148)

EP.11 두 번째 커플링

1.

리엔의 명령에 맞추어 사방에 숨어 있던 성기병들이 버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쾌속.

마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용맹한 기사의 그것처럼 성기병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

뒤늦게 공격을 인식한 버그들이 전투태세를 갖추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성기병들은 각자 서로 다른 형태의 냉병기로 버그들의 몸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비록 화기로 무장한 녀석들이라고 하지만 그 몸체마저 강철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몸을 보호하는 것은 오로지 곤충 특유의 외골격뿐.

물론 그마저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단단한 갑옷이지만 성기병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키에에엑!

날카롭게 벼려진 성기병의 칼날이 버그들의 숨통을 끊으며, 버그 특유의 기괴한 비명소리와 함께 버려진 도시 길바닥에 녹색 핏물을 흩뿌려졌다.

이윽고 단단한 갑각이 부서지며 동시에 거미 다리가 주저앉는다. 그 아래로 흩뿌려지던 녹색 핏물이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며 넓게 흘러내렸다.

저 핏물이 버그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증거다.

그래서 버그는 생체기갑병기였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악취미가 아닐 수가 없다. 왜 이런 흉측한 걸 만들었을까.

버그들이 지나가던 경로에 매복해 있던 성기병들이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스파이더였다.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센티페드와 달리 스파이더의 주 무장은 성기병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활강포였기 때문이다.

제일 위협적인 적부터 노린다. 매복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당연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재미없는 법이다.

─우… 우앗! 죄송합니다! 제압 실패했습니다!

─읏! 페르아! 똑바로 안 해!

다급한 목소리에 네토루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버벅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성기병 하나가 보였다.

페르아와 쿄쿄였다. 당장 고등학교 교복을 입혀놔도 이상하지 않을 풋풋한 꼬맹이들.

그런 둘이 스파이더를 기습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뭐, 처음부터 큰 기대는 안 했지만.’

비교적 스파이더가 다른 버그들에 비해 방어력이 낮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죽어주는 녀석은 아니었다. 베이스가 곤충답게 생명력은 끈질겼다.

────키리릭!

반쯤 잘려나간 갑각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거리며 핏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숨통을 끊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던 일격이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스파이더는 페르아가 타고 있던 쿄쿄의 성기병과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더니 포신을 재빠르게 회전시켰다.

포구는 순식간에 적을 찾아 멈추었고,

콰아아앙──!

곧 포성이 울리며 지축이 흔들렸다.

─꺄아아악!

─으으윽!

어린 애들의 비명소리. 하지만 단말마는 아니다.

페르아의 다급한 기동이 운 좋게 포격을 피한 것이다.

그렇게 빗겨나간 포탄은 근처에 있던 건물을 직격.

쿠루루룽─!

포격 당한 건물 하나가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무너지며 사방으로 파편들을 흩뿌렸다.

그리고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는 그곳에서 곧 쿄쿄의 성기병이 힘차게 뛰쳐나왔다.

─사, 살았다!

─정말! 너랑 커플링 하면 매일매일이 심장 떨린다니까!

─쿄쿄,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알아!?

여러 의미로 정신 사나운 커플이다. 게다가 어린 파일럿답게 미숙한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 둘이 아직 안전해진 건 아니었다.

스파이더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격분한 센티페드들이 수십 쌍의 다리를 움직이며 두 사람을 매섭게 추격했다.

위험한 상황이다.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다른 소대원이 돕기에는 이미 전투 중인 센티페드들 때문에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그걸 보고 있던 카렌이 다급하게 이름을 불렀다.

“…네토루!”

“알았어.”

거리가 제법 멀다.

하지만 네토루는 카렌의 부름에 호응해주기로 했다. 그에게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

방금 막 베어 죽인 스파이더를 거칠게 밀어내고서 땅을 박찼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센티페드들이 막아섰지만 네토루는 가볍게 뛰어넘어 그대로 무시하고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목표는 쿄쿄의 성기병을 노리는 스파이더.

───끼이이익!

쿄쿄의 성기병을 향해 포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스파이더의 포구가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적을 포착.

─우아앗! 또 온다!

─꺄아아! 피해!

비명소리와 같은 페르아와 쿄쿄의 다급한 소리.

그리고 동시에 스파이더의 절지 다리가 포격의 충격을 대비하듯 땅에 다리를 깊게 박아 넣고 있던 그 찰나였다.

──서걱!

포구가 불을 뿜기 전에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 네토루는 망설임 없이 스파이더를 베었다.

포신을 기어오르던 포탄이 그대로 내부에서 폭발하며, 핏물과 스파이더의 살육이 폭사되는 걸 확인한 네토루는 통신을 연결했다.

“페르아, 쿄쿄. 두 사람 모두 괜찮아?”

─넷! 괘, 괜찮습니다!

─꺄아아! 오빠, 감사합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포탄이 쏘아졌을 터.

아슬아슬했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멀쩡했다.

오히려 무사하지 않은 건 이쪽인가.

“하악… 하아…. 으읏.”

카렌의 입술 틈새로 열띤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절정에 이른 여인처럼 그녀의 몸은 쉴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페르아와 쿄쿄를 구하기 위해 네토루가 단번에 출력을 높인 탓이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카렌이 제한했던 한계 출력을 아득히 넘어섰던 수치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 수십 미터 거리를 단번에 좁히며 포격을 가하려던 스파이더를 벨 수 있었지만, 카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었겠지.

“카렌. 몸 상태는?”

“솔직히…. 괜찮지는 않아….”

그래, 딱 봐도 힘들어 보인다.

목덜미로 땀 줄기가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운동장을 전력으로 달린 것처럼 피부 또한 붉었다.

“미안. 약속을 어겨버렸네.”

“방금 건 괜찮아. 쿄쿄랑 페르아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읏….”

뭐, 그렇겠지.

애초에 구해달라고 한 건 카렌이었으니.

네토루는 카렌의 숨소리를 의식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안하지만 좀 더 무리해야겠네.”

“…으읏!?”

“걱정 마. 이번에는 적당히 출력을 높일 테니까.”

카렌이 숨을 가다듬는 걸 기다릴 시간이 없다. 어느새 주변에 센티페드들이 슬금슬금 접근하며 싸늘한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지네를 닮은 괴물들이 전갈처럼 꼬리를 말아 올리자 그 끝에서 중기관총 형태의 화기가 싸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지만 총구 방향은 네토루 - 카렌의 성기병을 향해 있었다.

타타타탕──!

이윽고 녀석들의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지자 네토루는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주변 건물들을 엄폐 삼아 빠르게 내달렸다.

* * *

방금 네토루가 보여준 심상치 않은 기동이 남아 있던 버그들의 시선을 끈 것일까. 센티페드들이 네토루를 향해 집요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 네토루는 흔들림이 없었다. 사방에서 흩날리는 기관총탄 속에서도 그는 소대원들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그들의 시선은 내가 끌테니까, 너희들은 숨어 있다가 타이밍을 맞춰서 뒤를 노려.”

───예!

5소대 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소대 특성상 당연하다시피 그 목소리는 전부 앳된 편이었다.

네토루가 조정간을 잡는 손아귀에 힘을 더하더니 서서히 출력을 높였다.

그렇게 카렌의 성기병이 점점 속도를 높이며 버그들의 사각을 노리듯 버려진 건물들을 엄폐물 삼아 내달리자,

뒤늦게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센티페드들이 쉴 새 없이 기관총 사격을 가하였다.

사람이 맞는다면 그 육신 정도는 가볍게 찢어발길 기관총 사격이 벽에 촘촘히 박혀 든다. 총탄 몇 개는 아예 벽을 꿰뚫고 나오기도 했다.

큼지막한 총탄들이 공기가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카렌의 성기병을 스쳤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성기병 몸체 위로 얄팍한 상처 몇 개만을 허용한 채, 위험천만한 회피 기동으로 네토루는 센티페드들의 진형을 흔들었다.

카렌은 그런 네토루의 움직임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성기병과 커넥팅 되어 있는 그녀에게 빗발치는 총탄 속을 내달리는 경험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이 자식, 지금 무리하는 거 아니야?

차마 그런 말까지는 하지 못하고 끝내 카렌의 입 밖으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읏! 너…! 이거 괜찮은 거야!?”

커플링 파트너끼리는 신뢰가 중요하다. 여성 파일럿은 남성 파일럿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타다다다당───!

비록 한두 발 맞는다고 성기병에게 큰 데미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카렌이 보기에 네토루는 무모할 정도로 대범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런 식으로 혼자 집중 사격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소대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적들의 화기는 강력했고, 그렇기에 공격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카렌, 조금만 더 참아봐. 이렇게라도 시선을 끌지 않으면 애들이 다칠 것 같으니까. 아직 애들 실력이 미숙하네.”

“…정말! 이러다가 내 성기병에 구멍이라도 나면 가만히 안 둘 거야!”

“걱정 마. 그럴 일은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를 엄청난 자신감이다. 하지만 카렌은 네토루에게 크게 불만을 낼 수가 없었다. 그의 의도가 뭔지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카렌이 지켜본 네토루는 전략적인 판단이 좋은 소대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소대장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혼자서 적의 중심부를 파고들며 혼란을 이끈다.

그것은 자기 실력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혼자서 모든 위험을 껴안고서 소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거기서 카렌은 묘한 친숙함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이 녀석.’

의외로 생각 방식은 나츠오랑 비슷한 듯하다.

그 녀석도 종종 이런 식으로 싸웠으니까.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 일을 자처한다.

그런 점에서 쓸데없이 무리해서 파트너를 고생시키는 것도 똑같다.

…라고 카렌이 생각하던 찰나였다.

티이잉─!

"꺄앗!?"

날아오던 기관총탄 하나가 카렌의 성기병에 맞고서 튕겨 나갔다. 다행히 착용하고 있던 성기병용 경갑을 맞은 탓에 별 피해는 없지만….

지금껏 잘 피하던 놈이 갑자기 공격을 허용하자 카렌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런 카렌에게 네토루가 태평하게 말했다.

“이런, 방금 건 실수.”

"으읏….”

성기병의 아픔은 곧 여성 파일럿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카렌은 입가를 씰룩였다.

아까는 걱정 말라면서?

아니, 그것보다 방금 건 일부러 맞은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키에에에엑!

계속 네토루를 쫒아다니던 센티페드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카렌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눈치 보고 있던 소대원들이 기회를 노리고 뒤를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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