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0화 (10/148)

EP.10 두 번째 커플링

1.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함이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것만 같다.

프랑기아 왕국은 현재 버그들의 침공으로 인해 국토 대부분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도착한 폐도시는 황량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인지 무성한 잡초와 넝쿨이 도시 건물들을 갉아 먹고 있었고,

마치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던 것처럼 부서진 건물들도 종종 눈에 띈다.

어디서 포격이라도 당한 것인지 벽돌이 깔린 길바닥에는 검게 탄 자국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마 몇 차례 여기서도 전투가 있던 거겠지.

반복된 전투로 외형이 처참하게 망가진 도시였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이곳 도시의 풍경은 유럽의 전근대 시대 도시들과 비슷했다. 그 덕분에 그가 현실에서 흔히 보았던 수십 층짜리 빌딩은 없지만,

버그나 성기병 정도는 어렵지 않게 숨겨줄 수 있는 크기의 저층 건물들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네토루는 그러한 건물들을 눈여겨보았다.

‘…엄폐물로 써먹기에는 충분해 보이네.’

폐도시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성기병에게 좋은 방패였다. 중기관총 정도면 모를까 아무리 성기병이라도 스파이더의 포탄에 제대로 맞으면 위험했다.

특히 조종석에 직격으로 맞으면 뭘 해볼 방법도 없이 커플링 파트너와 함께 즉사다. 조종석째로 피와 살육이 포탄에 찢겨진다고 할 수 있었다.

몇 번을 경고해도 모자를 정도로 버그들의 무장은 위협적이다.

현대인의 시선에서 말하면 검과 방패 따위만 든 채 총을 든 무장 강도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그게 현실인가.

몇백, 몇천 년 동안 이쪽은 검과 마법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에 갑자기 총과 포를 든 괴물들이 나타나다니.

솔직히 이건 너무 오버밸런스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393부대를 비롯해 모든 성기병 부대에 일반 병사는 없고, 성기병만 조종하는 파일럿만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버그들이 뿜어내는 총탄에 검과 방패를 든 일반 병사들이 달려든다? 그야말로 중세시대의 사람들이 몇십 톤짜리 전차 앞에 덤벼드는 꼴이었다.

가볍게 긁어대는 기관총에 수십 수백 명이 몇 초 만에 고깃덩어리가 될 것이다. 뿜어지는 총탄 앞에서는 기사든, 마법사든, 평민이든 모두 평등했다.

그렇기에 오로지 성기병만이 대항할 수 있다.

‘…그나마 전투기라도 없어서 다행인가.’

다행히 버그들에게 제공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만약 녀석들한테 하늘까지 지배당했다면 이곳은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절망적인 세계라는 건 변함이 없다.

마법의 존재로 인류의 성장이 일그러진 세계

덕분에 성기병의 주무장이라고는 단어 그대로 시대 착오적인 냉병기들 뿐.

만약 이쪽 세계에 성기병이라도 없었으면 진작에 정복당해도 이상하지 않는 게 이곳의 현실이다.

2.

이번 작전의 내용은 간단했다.

각 소대가 버그들의 침투 경로 근처에서 매복한 다음 기습으로 섬멸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리엔이 예상했던 목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제 곧 버그 무리가 예상 지점에 도달할 겁니다. 공격 타이밍은 제가 지휘하겠으나, 현장 지휘는 각 소대의 소대장들에게 맡기겠습니다.

허공에 투영된 스크린 안에서는 버그들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네토루는 전투에 앞서 적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포격형 스파이더는 13마리. 나머지는 전부 침투형 센티페드들 뿐인가.’

마치 전략게임의 미니맵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지도 위에 친절하게 적들의 정보까지 일일이 표시되어 있으니 네토루 입장에서는 편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리엔의 유능함 중 하나겠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세심하면서도 정확한 데이터 링크가 그녀의 장점 중 하나였다.

레이더나 인공위성이 없는 이 세계에서 이런 식으로 실시간으로 적의 움직임을 탐지할 수 있는 건 순수하게 전부 사령관의 마법 덕분이었다.

성기병 내부에 탑재된 인터페이스의 정보들은 모두 사령관이 마법으로 수집하고 가공한 것들인데,

그 예로 지금 당장 실시간으로 버그와 소대의 위치를 기록하는 스크린이나,

주변의 지형의 상세하게 기록한 지도.

심지어 장거리 포격이 관측되었을 때 적들의 위치를 역추적하는 능력까지.

이것 모두가 마법사인 ‘사령관’이 제공할 수 있는 순수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령관의 관측 영역이 넓어질수록 파일럿들은 안전하고 수월하게 싸울 수 있다.

성기병 부대를 운영하는 사령관의 핵심은 작전 지휘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법 활용 능력이기도 했다.

“…음. 훌륭한데.”

“뭐가?”

무심코 흘러나온 중얼거림을 카렌이 받았다. 네토루는 솔직하게 리엔을 칭찬했다.

“우리 사령관님은 유능하다고. 적어도 마법사의 자질은 쓸만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네.”

“…사령관님한테 건방지게 말투가 그게 뭐야?”

카렌의 말에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네토루를 보며 카렌을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듯 자조 어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쨌든, 확실히 네 말대로 리엔 사령관님은 유능한 분이야. 적어도 전에 있던 사령관보다는 훨씬 믿을 만하지.”

“전에 있던 사령관?”

전에 있던 사령관이라….

리엔의 나이를 생각하면 사령관으로서 부임한 지 그렇게 오래는 안 되었을 터.

“카렌. 전에 있던 사령관은 어떤 사람이었어.”

“무능한 사람이었지.”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다.

어딘가 차갑게 축 내려앉은 카렌의 목소리를 보아하니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은 듯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어? 다른 부대로 간 거야?”

“…아니, 그 사람은 죽었어.”

죽었다?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사령관이 죽는 일은 드물다.

결국 전선에서 버그들과 싸우는 건 성기병 파일럿들의 역할이었으니까.

사령관이라는 건 결국 살아있는 지휘 전술 시스템에 가까웠기에 후방에서 대기한다.

그런 위치에서 먼저 죽는 건 드문 일이다.

“왜?”

“혼자 도망치다가 버그들에게 잡아 먹혔어. 아마 우리가 전멸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뭐, 실제로 그때는 정말 전멸할 뻔했지만.”

“과연….”

우스운 결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꽤나 흔한 일이기도 했다. 마법사라는 것은 귀한 존재였고, 동시에 귀족들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즉, 마법사 중에는 이기적이고 자존심은 강하면서도 쓸데없이 생존에 대한 욕구가 강한 부류가 많다는 소리다.

아무튼, 쓸데없는 잡담은 여기까지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터.

그때 카렌이 경고하듯 말했다.

“너도 이제는 지겹겠지만, 마지막으로 말하는 건데 내가 허용하는 한계 출력은 1000까지야. 알겠어?”

“그래, 알겠으니까 걱정 마. 날 너무 못 믿는 거 아니야?”

한계 출력. 그것은 즉 성기병과 커넥팅한 여성 파일럿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였다.

카렌이 첫날 전투에서 뻗은 것은 네토루가 그녀의 한계 출격을 넘어선 조종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계 출력도 높고, 연비도 좋은 여자는 드물지.’

그날 있었던 사건은 실수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네토루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 커플링할 사람의 수준을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카렌은 합격이었다.

한계 출력도 높고, 연비도 좋다.

이건 그녀의 몸에 구축된, 성기병 조종을 위한 마력 신경계가 남들보다 잘 짜였다는 증거였다.

마침 카렌도 첫날을 생각했는지 투덜거렸다.

“너…. 첫날에 그런 짓을 해놓고 믿으라는 소리가 나와? 만약 네가 혹시라도 그 이상 출력을 높이면 나도 엉망진창으로 네 마력을 사용할 거야.”

“무섭네.”

여성 파일럿이 엔진이라면, 남성 파일럿은 엔진에 힘을 공급하는 연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지금 카렌의 말은 너도 자신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듣는 입장에선 귀여운 경고다.

미안하지만 카렌이 엉망진창으로 마력을 사용해 봤자였다. 네토루는 피식 웃으며 조종석에 누워있는 카렌의 뒷모습을 구경했다.

────.

슬슬 전투가 시작된다는 사실 때문인지 커플링으로 연결된 마력 패스에서 카렌한테 넘어가는 마력의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자동차 RPM이 올라가듯 카렌도 준비 중인 것이다.

그 결과 조종석에 누워있던 카렌의 몸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더니, 아직 완연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 소녀 특유의 풋풋한 색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 지금 일부러 하는 건가?’

네토루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남자를 유혹하는 재능 말이다.

진한 흑발이 흘러내리며 차마 가라지 못한 새하얀 목덜미부터 시작해 올곧게 쭉 뻗어 있는 등줄기,

그리고 약간 치켜세워져 있는 엉덩이는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장이라도 덮치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역시 요즘 너무 여자에 굶주렸다. 부대에 오고서 거의 한 달간은 심심하게 지냈으니 어쩔 수 없나.

─앞으로 1분. 버그들이 곧 나타날 겁니다.

그때 리엔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네토루는 카렌의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그 반동으로 카렌이 얕은 신음소리를 흘리는 게 들렸지만 지금은 무시한다.

지금부터는 전투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예정대로 5소대의 현장 지휘는 네토루한테 맡기겠습니다. 괜찮죠?

“알겠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5소대의 역할은 크게 대단치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5소대는 어린 나이대의 파일럿들이 배치된 곳이었다.

대체로 어느 부대를 가던 간에 어린 파일럿들은 작전에 위험이 적은 포지션을 맡게 되길 마련이었고, 네토루는 불안정한 커플링을 이유로 5소대에 배치되었다.

다만 네토루의 풍부한 전투 경험은 변함이 없기에 이번 작전에서는 임시로 5소대의 대장을 맡게 되었다.

이번 전투로 네토루의 능력을 평가해보고 잘 맞다 싶으면 소대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소대장 경력이 많다는 걸 리엔이 프로필에서 본 듯했다.

─…. 네토루 형. 잘 부탁합니다.

서서히 버그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날아왔다.

5소대의 칸자키라는 소년이었다.

나름 지난 며칠간 친해지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 말을 잘 듣는 녀석이었다.

“그래, 잘 부탁해.”

짧게 대답하고서 네토루는 시선을 멀리 뻗었다.

때마침 끔찍한 외견을 지닌 버그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일 앞에는 몸을 낮게 깐 채 수십 쌍의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지네 - 센티페드가 있었고,

그 뒤를  거미형 몸체 위에 포신을 올린 스파이더가 뒤따르며 도시의 도로를 가로질렀다.

그런데 그런 버그들의 움직임에는 최소한의 경계나 은폐도 없다.

단지 정직하게 앞만 보고 움직이고 있을 뿐.

버그들의 지능은 다소 낮은 편이었다.

그 덕에 전략과 전술에 대한 개념이 희미했다.

물량과 무기로 적을 밀어버린다. 현재까지 녀석들의 전략은 이런 식으로 단순 무식했다.

그리고 이 단순 무식한 전략 따위에 밀리고 있는 게 왕국의 현실이기도 했다.

이윽고 버그들이 각 소대가 숨어 있는 매복지점을 가로지르던 그때였다.

─전투 개시.

사령관의 목소리와 함께 네토루는 카렌의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성기병을 움직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입이 적네요. 제목이라도 바꿔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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