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두 번째 커플링
네토루가 카렌의 도움으로 제39구역의 393부대에 녹아들기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이 다 되어 가던 날이었다.
────!
여느 때와 변함없는 점심 무렵.
─젠장! 또야!?
─이번 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네!
별안간 남녀 구분하지 않고 10대부터 20대 초중반의 파일럿들이 바쁘게 뛰기 시작했다.
오늘도 사령관의 탐색 영역에서 소규모 무리의 버그들이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출격을 위해 하나둘씩 성기병 위로 몸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그러한 파일럿들 중에는 드물게도 카렌과 네토루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 전투에는 두 사람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좋아. 할 수 있어.’
언제라도 출격할 수 있도록 아스나 정비 반장을 통해 성기병 조율 작업은 완벽하게 끝내놨다.
오랜만에 파일럿 슈트 특유의 꽉 끼는 감촉을 느끼며 카렌은 조종석 위에 몸을 눕힌 채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린 채 커플링에 최적화된 자세를 찾아 움직이자, 조정석에 맞닿은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찌그러지고 뭉지개를 반복했다.
그렇게 카렌이 조종석 위에서 자세를 잡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잠시 뒤 그녀 주변으로 온갖 소형 마법진이 생겨나며 몇 가지 절차를 진행하더니,
마지막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떠오르며 카렌의 온몸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성기병의 ‘키(key)’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윽고 그렇게 카렌의 몸을 스캔하던 마법진이 끝나자, 이어서 그녀가 눕혀져 있던 조종석에서 또 다른 마법진이 떠올랐다.
성기병의 ‘키’를 확인했으니 이제는 여성 파일럿과 성기병의 의식을 연결한 차례였다.
흔히 커넥팅이라는 불리는 작업이었다.
커넥팅 마법진이 새겨진 곳은 조종석의 아래쪽으로, 정확히는 카렌의 하복부 부근이었다.
마법진을 통해 자궁구 위에 새겨진 마력 신경계가 성기병과 연결되는 걸 느끼며 카렌은 입술을 사이로 얕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아읏….”
정말이지 이것 몇 번을 해도 참을 수가 없다.
흔히 남녀 관계의 그것처럼 몸 안에 무언가가 삽입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카렌은 이제 곧 콕피트 안으로 들어올 네토루를 의식하며 간신히 소리를 억누르는 데 집중했다. 역시 그 녀석에게 이런 소리를 들려주는 건 부끄럽다.
하지만 그런 카렌의 노력을 전혀 모를 네토루가 뒤늦게 콕피트 안으로 들어오더니 태평하게 말했다.
“이걸로 두 번째 커플링이네.”
“…그래.”
변함없는 무덤덤한 목소리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네토루 특유의 어투.
하지만 저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첫날에 저 녀석이 어떻게 했는지 카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커플링을 하고 있지만….
카렌은 숨을 삼키며 몸을 긴장시켰다.
‘…이번에는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첫날처럼 엉망진창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
카렌은 네토루에게 쉽사리 주도권을 뺏기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게 몇 번이나 주의시켰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출격 전에 네토루와 몇 가지 약조를 하기는 했지만, 내심 저 녀석이 그걸 제대로 지킬지는 의문이다.
며칠간 경험해보니 카렌이 지켜본 네토루는 생각 이상으로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남자였다.
그때 네토루가 커플링을 하기 위해 카렌의 뒤쪽에 자리를 잡고는 나직이 말했다.
“카렌. 그거 알아?”
“뭐?”
“내 경험상 대체로 미인일수록 좋은 커플링 파트너더라고.”
“뭐, 뭐야? 갑자기 그게….”
“즉, 너는 좋은 커플링 파트너라는 거다.”
“……?”
순간 뭔가 싶다가 뒤늦게 의미를 깨달은 카렌이 깜짝 놀라 꿀 먹은 것처럼 입을 앙다물었다.
미친. 이 새끼가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안 그래도 어떻게든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하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네토루의 낯간지러운 발언에 부끄러움이 확 치솟았다.
카렌은 별안간 고백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뭐지? 갑자기? 저게 무슨 의미야?’
지금 이쁘다고 돌려 말하는 건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곱씹어볼수록 어처구니가 없어진 카렌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헌데 네토루의 눈동자는 카렌과 다르게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했다.
“카렌. 몸에 긴장 풀어. 그러면 괜히 너만 힘들어질 테니까. ”
“…너.”
이건 설마 녀석 나름대로의 농담이었던 건가.
얼굴 하나 보지 않고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긴장하고 있던 게 녀석의 눈에는 훤히 보이고 있었나 보다.
그걸 깨달은 카렌은 다시 고개를 획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최대한 정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가 했던 말 잊지 마.”
지난 며칠간 카렌은 네토루와 나름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든 커플링 파장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와 몇 가지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난폭한’ 조종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카렌. 그런데 이렇게 무리해서 싸우려고 하는 이유는 뭐야?”
“…이러는 이유?”
갑자기 이건 뭔 딴소리람.
카렌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네가 전에 나한테 말했잖아. 누군가가 죽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지 말라고.”
카렌이라고 버그들과 싸우는 게 즐거운 건 아니다. 다만 소중한 부대원들이 죽는 걸 뒤에서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좋든 싫든 이제 한 가족과 다름없는 이들이니까.
게다가 그중에는 카렌보다 어린 동생들도 있었다.
칸자키, 제인, 페르아, 쿄쿄….
그런 어린 애들이 싸우는데 뒤에서 구경만 한다?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몸에 무리가 안 가는 선까지는 일단 싸워볼 생각이야.”
어쨌든 무리한 기동만 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그렇게 되면 전투 중에 제 실력을 내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부대 안에서 하염없이 시간만 죽이는 것보다는 낫다.
이건 부대원들과 모두 협의가 된 이야기였다.
몇몇은 굳이 무리한 커플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리기는 했지만 카렌의 의지는 확고했다.
“뭐…. 그렇다면야.”
“……”
네토루는 납득한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뭘까.
잘 모르겠지만 네토루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그게 궁금해진 카렌이 잠시 뒤를 돌아 네토루의 얼굴을 확인해보려던 찰나였다.
“으야얏…!?”
카렌의 몸이 돌연 들썩였다. 순간 온몸의 신경이 짜릿하게 달아올랐다. 별안간 네토루가 예고 없이 성기병의 조종간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
“꺄아아?”
그가 그대로 뭔가 시험을 하듯 뒤로 잡아당기며, 이리저리 흔들자 카렌도 덩달아 몸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현재 카렌은 하복부 쪽에 있는 마력 신경계를 통해 성기병과 동화된 상태였다.
덕분에 그가 조종간을 움직이면 카렌도 그에 따라 성기병의 움직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 막 다루지 말라니까!’
첫 커플링 때와 똑같이 예고조차 없는 자기 맘대로의 조종이다.
하지만 카렌은 일단 참기로 했다.
네토루도 오랜만에 조종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출격 전에 잠시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터.
격납고 안에서 몇 차례 성기병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가벼운 동작을 해보던 네토루가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흠. 역시 감도가 조금 부족한데.”
“으읏…. 너….”
출격 전부터 온몸에 힘이 빠진다. 카렌은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네토루를 째릿 노려보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러면….”
하지만 정작 그는 가볍게 무시 중이었다. 오히려 무언가 고민하듯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 쓸데없이 진지한 모습에 카렌은 꾸짖는 걸 포기했다.
‘…아. 정말.’
괜히 출격 전부터 투닥거릴 수는 없다. 그래서 카렌은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사령관의 연락이 있었다.
─카렌. 괜찮겠어요?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성기병 콕피트 내부로 사령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빛이 굴절되며 생겨난 리엔의 얼굴을 보며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습니다.”
─…일단 카렌이 다시 시도해본다고 하니 저는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전력이 하나라도 더 늘면 좋은 일이니까요.
리엔 사령관의 말에 카렌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카렌을 쳐다보는 리엔의 벽안에는 온갖 고뇌로 가득 차 보였다.
정말 두 사람의 커플링을 허락해도 되는 걸까?
그러한 생각이 눈동자에 그대로 드러난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덕분에 카렌은 그런 걱정 많은 사령관에게 애써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전투를 위해 누군가와 커플링을 해야 한다는 것.
솔직히 말해서 네토루가 보기에 커플링이라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왜 괴물들과 싸우는데 두 사람이 필요한 건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중요한 타이밍에 서로 생각이 맞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전투도 이상하게 꼬이는 법이다.
아무리 이것이 애니메이션 설정이라고 하지만 그런 점에서 성기병이라는 건 초기 개발 단계에서부터 어딘가 잘못된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커플링을 너무 부정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남자의 입장에서는 볼 때 꽤나 보기 좋은 눈요기가 되니까 말이다.
“…흠.”
성기병의 콕피트 안에 들어온 네토루는 카렌 몰래 조용히 기척을 죽였다.
아직 네토루의 기척을 눈치 못 챈 카렌은 조종석 위에서 커플링을 위해 자세를 고쳐잡고 있었다.
네토루는 그런 카렌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풋풋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성적 매력이 충만한 몸동작과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빼어난 몸매. 그러면서도 카렌은 조종석 위에서 퇴폐적이지 않은 오히려 세련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디 모터쇼에 나온 레이싱 걸이 이러할까.
비록 카렌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조종석 위에서 자세를 잡고 있는 그녀의 행동은 꽤나 남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야릇함을 품고 있었다.
특히 조종석과 맞닿으며 짓뭉개진 가슴살이 옆으로 삐죽 나온 모습은 나름대로 절경이었다. 게다가 파일럿 슈트 특유의 타이트함 때문에 카렌의 둔부 사이로는 가는 균열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평범한 남성이라면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즐거운 풍경이다.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카렌의 하체 쪽에 손이 뻗어 나가던 걸 간신히 억누른 네토루는 괜히 입맛만 다셨다.
출격 전에 성기병의 콕피트 안에서 스킨십을 즐기는 커플링 파트너는 많다. 애초에 커플링 자세부터가 남녀간의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불순함이 담겨 있으니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하지만 카렌하고는 아직 그럴 관계가 아니다.
괜히 여기서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는 저번처럼 또 뺨을 맞게 될 터.
‘…나츠오라고 했나?’
게다가 좀 알아보니 나츠오라는 녀석이랑 꽤나 사이도 좋은 것 같고….
커플링 3년 차면 제법 오래된 관계였다.
더욱이 카렌과 나츠오의 나이가 겨우 19살이라고 했으니, 그런 어린 나이를 생각해볼 때 두 사람은 훈련을 받던 기관에서부터 계속 커플링을 해온 관계라는 소리였다.
이쯤 되면 보통 사이가 아니다.
그렇지만 상관 없다.
네토루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성기병과 커넥팅 작업을 끝낸 카렌의 가느다란 양 허리쪽에서 마법진과 함께 조정간이 떠오르고 있었다.
현재 이건 네토루의 것이었다.
얼굴도 모를 나츠오라는 꼬맹이가 아닌.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금까지 스윗남만 쓰다가 나쁜 성격 쓰려니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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