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6화 (6/148)

EP.6 제 39 구역

전쟁[戰爭]

전쟁이란 다툼[爭]의 최종적인 형태.

경쟁, 투쟁, 논쟁, 분쟁, 결국 그것들이 극단적으로 진화했을 때의 결과물.

수천 년 동안 이어지던 마법사와 기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성기병이 전쟁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그 압도적인 힘에 전율 당한 수많은 나라가 성기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족과 천민 가리지 않고 재능이 있다면 파일럿으로 키웠다.

모두가 새롭게 시작될 대전쟁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전 세계를 집어삼킬 대전쟁이 설마 이계의 침략자들로부터 시작될 거라는 걸.

마법이 과학을 대체하던 세상.

이계의 침략자들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병기’로 세상을 유린했다.

* * *

성기병은 생체병기다.

그렇기에 당연하지만 성기병은 일종의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 여성을 통해 만들어진 커다란 ‘껍데기’라고 해야겠지.

인간의 육신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 그 이상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껍데기.

그것이 바로 성기병이었다.

─카렌. 이제 시작할게.

정비반장 아스나의 목소리에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카렌은 성기병 콕피트 안의 조종석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 뒤편에 커플링 파트너인 남성은 없다. 대신 콕피트 안은 끈적끈적하고 밀도 높은 마력을 품은 액체로 가득 차 있을 뿐.

만약 이것이 평범한 액체였다면 숨이 막혀 괴로웠겠지만, 전신이 액체 안에 잠겨 있음에도 카렌의 호흡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온몸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는 액체의 감촉이 상당히 불쾌하다는 점인데….

이걸 조금 그럴듯하게 비유하자면 다 썩어가는 오래된 우유를 온몸에 뒤집어쓴 듯한 감각이었다.

게다가 감촉은 그렇다 쳐도 냄새 또한 미묘하다.

비가 내린 그 날 저녁, 간혹 길을 걷다 보면 맡을 수 있는 밤꽃 냄새 같다고 해야 할까.

멋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나름 좋은 냄새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른'이 된 이후로는 이 냄새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런 냄새인 걸까?

어쨌든, 성기병 조정 작업이라는 건 여러 가지로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성기병 조정은 여성 파일럿의 역할이었으니까.

전투에서 상처 입은 성기병을 회복시키고, 손상 입은 성기병의 마력 신경계를 복구하는 건 오롯이 여성 파일럿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매번 반복되는 조정 작업에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카렌은 종종 생각한다.

왜 이런 귀찮은 작업을 여자들만 해야 하는 걸까?

왜 성기병의 조종간을 잡는 건 남자인 걸까.

현시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다시피 성기병을 조종하는 것은 남성 파일럿의 역할이다.

그러면 여성 파일럿은 무엇을 위한 존재인가.

그 답은 간단했다. 여성 파일럿은 일종의 접속기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성기병을 기동시키고 움직이기 위한 ‘키’라고 해야 할까.

성기병이라는 것은 여성 파일럿을 모태로 만들어진 존재였기에, 성기병을 제대로 움직이려면 여성 파일럿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남성 파일럿들이 매 전투마다 움직이는 성기병들은 모두, 커플링한 여성 파일럿의 신체 데이터를 참고하여 만들어진 ‘생명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성기병들은 어떤 여성 파일럿을 모태로 두냐에 따라 제각각 서로 다른 형태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능 역시 차이가 났다.

─좋아! 끝났어!

아스나의 활기찬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그와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콕피트 안의 액체가 모두 사라지자,

“콜록…. 콜록…!”

카렌은 몇 차례 기침을 토해내고는 능숙하게 콕피트를 열었다. 그리고는 신선한 공기를 찾듯 크게 호흡을 반복하던 카렌은 온몸에 남아있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닦아내며 밖으로 나왔다.

계속 눈을 감고 있던 탓에 빛살이 따가운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카렌에게 아스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다행히 네 성기병의 상태는 아주 좋아. 저번 전투에서 성기병이 입은 부상이 거의 없던 덕분인지 딱히 건들 게 없더라고.”

“…그런가요?”

아스나의 말에 카렌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걸 반가워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카렌의 성기병에게 큰 상처가 없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이걸 다르게 보면 저번 전투에서 네토루가 그만큼 카렌의 성기병을 능숙하게 다루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정작 자신을 막무가내로 대한 주제에 말이다….

그 복잡한 심경 때문일까. 카렌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 자신의 성기병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신체 데이터로 만들어진 커다란 껍데기.

그것은 새하얗고 날렵한 형태를 지녔다.

얼핏 보면 경갑옷을 꾸려 입은 아름다운 기사와 같은 모습으로, 두 다리를 통해 당당히 서 있는 그 모습은 가히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여성 파일럿들이 그러하듯, 카렌 역시 자신의 성기병에게 상당한 애정을 품고 있는 편이었다.

“……”

한참 동안 자신의 성기병을 바라보던 카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성기병을 관리하는 격납고 안은 텅텅 비어 있있는 상태였다. 인근에 다시 나타난 버그를 격퇴하기 위해 모든 부대원이 출격한 탓이었다.

덕분에 현재 격납고에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카렌의 성기병 뿐이었고, 싸늘하고 무거운 적막감이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다.

‘…혼자 이렇게 남아있어도 되는 걸까.’

카렌은 부대에 혼자 남아 다른 부대원들이 복귀하는 걸 기다리는 경험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지금까지 카렌은 나츠오가 커플링 파트너였기에 항상 모든 전투에 참여해야만 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많이 출격하면 출격했지 적어도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나름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지금까지 보답받지 못한 휴식을 뒤늦게 몰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이젠 솔직히 말해서 썩 달갑진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요 며칠 동안 부대원들의 출격이 여러 차례 반복된 탓이다.

그나마 다행히 매번 관측된 버그는 소규모 무리였지만, 매일 같이 반복되는 출격은 파일럿들에게 큰 부담을 준다. 그러니 이럴 때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텐데….

만약 나츠오라면 여기서 어떤 선택했을까.

우유부단 한 것 같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믿음직스러운 그 녀석을 떠올리며 카렌이 한숨을 쉴 때였다.

“에휴. 이 녀석아.”

툭툭 카렌의 머리를 두들기며 아스나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정도로는 끄떡 없을 테니까. 나츠오랑 네가 없다고 팍 꺾일 애들이 아니야.”

“그래도….”

“왜? 그러면 설마 네토루, 그녀석이랑 커플링이라도 하려고? 에이, 너도 봤잖아. 너하고 네토루의 커플링 파장이 얼마나 최악인지 말이야.”

“……”

그래, 확실히 보기는 했다. 아스나의 말대로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수치가 나올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서로의 커플링 파장은 최악이었다.

파장 일치율 14.3499%

이것이 카렌과 네토루의 커플링 파장 일치율이었다. 보통 커플링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못해도 70%가 넘는 일치율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할 때, 이 수치는 어딘가 비정상적이다.

도대체 그 녀석은 이런 수치로 어떻게 커플링을 성공했던 걸까. 아무튼, 이런 일치율로 커플링을 반복했다가는 분명 몸에 큰 무리가 올 터.

괜히 첫날에 몸이 아팠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하염없이 나츠오를 기다리는 것이 옳은 걸까.

그 물음에 대답하듯.

─그런데 그러다가, 누군가가 죽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지는 마라

그 순간 카렌의 뇌리로 네토루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카렌은 끙끙거리며 이마를 부여잡고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인정하기는 싫지만, 녀석의 말은 옳다.

괜히 이러고 있다가 혹시라도 정말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다면 평생 후회하겠지. 자신을 걱정해주는 세레스의 상냥함은 고맙지만, 이렇게 마냥 그 상냥함에 기댄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일단 시도는 해볼까.’

14.3499%. 극악에 가까운 일치율.

하지만 다르게 보면 끌어올릴 수 있는 일치율이 많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부적합한 파장 일치율이 문제라면 어떻게든 올리면 된다. 적어도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녀석하고 일치율을 어떻게 올리느냐인데.

그 순간 여러 방법이 카렌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단 시간 내에 파장 일치율을 올리는 방법은 당연히….

“…내가 미쳤지.”

역시 그건 무리다. 잠시 얼굴을 붉히던 카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일단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해보는 게 좋다.

다른 건 몰라도 녀석과 나의 관계는 제로에 가까웠으니…. 아니, 마이너스라고 해야 하나.

그 마이너스를 어떻게든 플러스로 만들면 분명 파장 일치율도 조금은 오를 터.

* * *

제39구역에 배치되고 있었던 첫 전투로부터 벌써 1주일이 지났다. 평소에는 활기를 띠며 시끄럽던 체단실이 지금은 상당히 조용하다.

“…나쁘지 않군.”

느지막한 저녁 시간.

텅 빈 체단실 안에서 자기 원하는 대로 시설을 이용하던 네토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동안 부대원들의 출격이 반복된 탓일까. 최근 들어 체단실을 찾는 부대원이 적어졌다. 네토루는 그러한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껄끄럽게 지낸 탓인지 가끔 다른 부대원과 운동 루틴이 겹치게 될 때마다 상당히 번거로운 상황이 연출되고는 했다. 운동 기구 하나로 서로 알게 모르게 기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싸움을 걸어오면 굳이 피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을 할 때는 운동에 집중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안 그래도 낡은 부대였고, 당연하지만 체단실 역시 초라했다. 그나마 운동 기구 몇 개 가지고 와서 모양새만 낸 것이 이 부대의 체단실이었다.

이런 곳에서 낡은 운동 기구 때문에 기 싸움하고 있자니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묘한 만족감과 함께 네토루 혼자 구슬땀을 흘리며 체단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음?”

네토루는 쥐고 있던 운동 기구를 내려놓고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가 체단실로 오고 있는 건가? 괜히 그게 궁금해서 체단실 입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그때였다.

곧 걸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치 못하게도 걸음의 주인은 카렌이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체단실 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뒤늦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네토루를 발견하고서 어색하게 웃었다.

“…부대원들이랑 같이 저녁 먹을래?”

네토루는 순간 자신이 헛소리를 들었나 싶어 미간을 좁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커플링 파장을 높이기 위한 제일 쉬운 방법은 SEX입니다.

그림은 애니에서 가져온 건데, 성기병은 대충 이런 모양입니다 = > 7 - 19 그림 삭제했습니다.

성기병 그림은 8월 초 쯤? 제작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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