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174화
* * *
진은 더 버티기 힘들었는지 창문가에서 사라졌고 나는 그 상태로 루델과 함께 첫날밤을 오래오래 즐겼다.
다음날, 진은 내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
중국말로 욕을 내뱉는 진. 나는 그런 진을 측은하게 바라봐줬다.
“무슨 일이죠?”
“... 감히 루델을 건드려?”
“후, 그 얘기를 루델 씨가 들으면 참 이상하게 생각하겠네요. 루델 씨를 물리적으로 건드린건 사실이지만... 글쎄요. 제가 독단적으로 행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진은 할 말을 잃었는지 주먹에서 힘을 뺐다. 나는 무력으로는 아무리 봐도 이길 수 없는 진의 손을 뿌리쳤다.
“무한 경쟁의 시대라는 것 모르세요? 여자도 쟁취하는 겁니다. 먹이를 잃은 사냥꾼이 다른 사냥꾼에게 원래 내 먹이였다고 달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창피한줄 아셔야죠.”
“... 큭... 너, 너...”
“아니면 역시 진 씨는 주먹밖에 쓰지 못하는 걸까요? 절 때리고 싶거나 아니면... 정말 죽이기라도 하시게요?”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진을 더욱 약올렸고.
“죽이지 않는다면 루델 씨는 영원히 제 여자가 될 겁니다.”
화를 삭히는 진. 그는 결국 돌아서서 내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진을 보낼 내가 아니었다. 여기서 진을 폭발시키는게 내 계획이었으니까.
“루델 씨... 참 맛있더군요.”
진은 나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그 처녀성을 잃는 순간의 루델 씨 표정은 사실 진 씨가 봤을 터였죠. 물론 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말이예요.”
“그만...”
“얼마나 압력이 센지 안에 뭐만 넣었다하면 빼줄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덕분에 어제 하루종일 극락을...”
“그만..!”
쾅!
진은 허리를 응축했다가 용수철처럼 튕겨내듯 몸을 움직였고 그 순간 나는 사경을 볼 수 있었다. 진은 정말 나를 죽일 생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이 정도 기압이라면 맞아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내 방 문이 열렸고 계획했던대로 루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
그러자 진은 주먹을 내지르던 손이 어떻게든 빗맞출 수 있도록 자신의 발목을 꺾었고 그 탓에 그의 몸이 기울어지면서 간신히 주먹은 내 얼굴을 빗겨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진의 상태가 이상했다. 급격하게 발목을 꺾은 탓인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계속해서 땀을 쏟아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발목이... 푸른색 반점으로 물들었다.’
나는 진이 자신의 발목을 잃어 가면서까지 루델에게 자신의 폭력성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는걸 알아차렸다.
‘아닌가. 어쩌면 진이 내게 폭력을 가했을 때, 루델이 그 상황을 말리고 자신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미래를 그렸다면... 그게 죽는 것이나 발목을 잃는 것보다도 싫었다면...’
“진. 무슨 일이야?”
루델이 재차 묻자 진은 몸을 옆으로 틀면서 절뚝거렸다.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닌거 같다, 루델.”
“지, 진..!”
루델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떠나가는 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즉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몸을 살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진이 때린 거야?”
“아뇨, 진 씨는 절 때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루델 씨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쯤 반쯤 죽은 상태가 됐을 테죠. 루델 씨에게 감사하네요.”
“... 진은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야...”
“루델 씨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근데 왜 저러는 걸까요? 저는 루델 씨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마음놓고 루델 씨와 좋은 감정을 나눴을 뿐인데요.”
“그, 그러니까... 근데 준현아. 너는 내가 저, 정말 좋아?”
“네. 어젯밤에 그렇게 말씀해드렸는데 아직도 절 못 믿으시겠어요?”
“그럼 우리는... 이제...”
“내 서로 마음껏 하고 싶을 때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된 거죠.”
“음... 그런건가?”
“지금 저희 엘란코의 상황에서 느긋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맨날 루델 씨네 집에 가서 잘게요. 그게 좋을거 같아요. 루델 씨가 없으면 한시라도 마음이 안 놓여요. 혹시라도 진 씨가 절 패죽일까봐 겁나거든요.”
루델은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듯했다. 내 말을 전부 믿는 눈치였다.
“그,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진이 원래 그런 아이는 아니지만...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할 수도 있어. 자기 딴에는 날 지키려는 걸 거야! 우리는... 우린... 소꿉친구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래. 아주 친했으니까. 나는 그 아이를 의지하고 그 아이는 내게 의지했지. 지금도 그래! 그러니까...”
나는 루델이 말을 끝내기 전에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춰줬다. 루델은 마치 소녀처럼 내 입술을 받아들였고 이내 고개를 돌려서 내 입술을 찾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없이 서로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지금은 분명 일하는 시간이긴 했는데 진이 왔다갔으니 한동안은 다른 멤버들이 왔다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경험상 그걸 알 수 있었고 말로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아랫도리를 벗긴 후에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결합시켰다. 안으로 불쑥 들어가자 루델은 머리가 하얗게 질렸는지 흰자위를 부릅 떴다.
“카... 크으응...”
나는 루델의 리액션이 귀여워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좋아요?”
“흐응... 어제 이후로는 이걸 안에서 빼내고 있을 때랑 넣고 있을 때가 너무 다르니까... 너무 좋아.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그리고 난 왜 이 기분 좋은걸 여태 안 해왔던 거고?”
횡설수설하듯 말을 꺼내는 루델. 나는 그런 루델의 아랫도리를 20분 동안 따먹었다. 어딘가에서 분해하고 있을 진을 떠올리면서.
중국으로 출발하는 날짜는 앞으로 1개월 후였다. 그때동안 준비를 해야했고 자금을 모아야 했으며 미리 중국으로 간 멤버들이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케이머의 계획은 치밀했다. 언제까지 얼마의 금액이 쌓이고 어느정도의 인맥이 생기며 그 인맥들 중에 핵심인물들이 들어오는 순간을 위해 한 달이라는 기간은 적지도 많지도 않게 딱 적당한 날짜였다.
그런데 케이머의 계획에서 딱 한 가지 어긋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나와 루델의 관계였다. 나는 그날 이후로 루델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섹스를 했다. 밤에만 했던 게 아니다. 정말이지 틈만 나면 섹스를 했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어느때건 섹스를 했다.
루델은 명기 중의 명기였다. 내 축 쳐진 자지는 루델과의 키스로 인해 금방이라도 설 수 있었다. 진이 또 한 번 멍청하다고 생각하는건 그거였다. 어떻게 이런 명기를 두고 망설일 수가 있었을까? 정말이지 병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생에서 중대한 걸 놓친 거다. 이렇게 맨날 맨날 섹스를 하고 또 그걸 원하고 이게 없으면 인생의 낙이 없다고 말하는 루델을 갖은 것만으로도 나는 이 세상의 끝을 봐도 상관이 없게 됐다.
“맛있어... 맛있다고... 루델 씨, 너무 맛있어.”
맛있다고 몇 번을 말해줘도 질리지 않는다. 루델은 그 말을 듣는걸 좋아했다. 자신이 따먹히는 존재라는걸 알아도 좋아했고 이제는 진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물론 섹스 중에 진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심적으로 뒤틀리는 무언가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나에 대한 복종 수준이라던지 의지 정도가 진에 대한 마음보다 밑으로 내려가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시험에 빠트린 적도 많았으나 이미 그녀는 내 몸의 노예가 된지 오래였다.
하루에 적게는 세 번씩 섹스를 했고 많게 할 때는 10번도 했을 정도로 루델의 몸을 많이 탐했다. 아니, 내 몸이 탐해졌다고 하는게 맞을까. 그녀의 몸은 원체 오랫동안 섹스를 갈구해왔던 터라 내 기가 빨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루델은 섹스를 위해 살아온 것처럼 온정신을 다 쏟았다. 그리고 조금씩 루델은 나와 대화가 통할 수 있을 정도로 인성이 바람직하게 자리를 잡기도 했다.
“생각을 해봤는데... 이번 계획 말이야.”
“네, 루델 씨.”
“나는 조금 회의감이 들어. 준현은 그렇지 않아?”
“회의감이라면 어떤..?”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는 일이잖아. 분명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잠자리를 갖고 싶어할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아. 무작위의 사람들과 최대다수로 성교를 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누군가는 엄청 슬퍼하겠지.”
“마치 진 처럼요?”
“진은... 말했잖아. 진은 날 좋아하는게 아니야. 친구로서 좋아한다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진은 이제 소꿉친구마저 잃은 것 같기도 해요. 왜냐면 이제 더 이상 루델은 진한테 의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음...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중국에서 뭔가 하게 된다면... 그때는 결국 또 친구만큼 의지할만한 존재도 없잖아? 그때는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 우리의 관계가.”
“하지만 섹스를 하는건 오직 저랑만이잖아요.”
“맞아. 내 몸은 네 거야. 진이랑은 그냥 친구일 뿐이니까.”
이제 슬슬 루델도 이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걸 인지했다. 그리고 케이머가 독재체재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물론 이 이야기를 진을 포함한 어떤 조직원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절대 함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그때 돌파구가 있을거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나는 루델이라는 조직원 하나를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중국으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뭔가 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일찍.
“진이 사라졌어.”
케이머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졌다.
“그 자식, 중국으로 먼저 돌아간거 같아. 독단적인 행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