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163화
* * *
다니엘은 밤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레이스만 원래 다니엘의 방에 누워서 곤히 잠에 빠져있었다.
“오늘은 일찍 자네.”
서아는 푸석푸석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흰티만 한 장 달랑 걸치고 여전히 노팬티 차림이다. 아까 전에는 나한테 “다음번에는 피카츄 입고 오께!”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나랑 서아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걸 알면서도 바로 옆방에서 태연하게 잠든 건가. 그럼 그레이스는 나한테 별 감정이 없다는 뜻이려나.
꿀꺽
나는 잠자고 있는 그레이스의 이마에서 오색찬란한 빛을 발견했다. 손을 뻗어서 만져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치요도 그렇고 서아도 그렇고 어떤 교감이 있었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지금 그레이스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던 거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 해야겠다.
서아는 나를 데리고 샵으로 갔다.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는 사업장 형태를 띄고 있었기 때문에 3교대 당직근무를 했다. 서아는 오늘 비번이었고 다니엘의 호출이 있기도 했기에 잠깐 빠져나왔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서아를 찾는 고객이 없는건 아니었기에 출근을 해야만 했다.
나도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해봤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3교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 마사지샵이라는 곳이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와 서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침 퇴근 중이었는지 두 여자가 웃으면서 나를 반겼다.
“어? 두 사람 같이 오네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한 여자는 꽤 권위적으로 대응했고 한 여자는 쑥쓰러워 죽겠다는 듯 몸을 베베 꼬았다. 두 여자의 색깔이 너무 달랐는데 하나는 아담하면서도 풍만한 느낌에 지적인 이미지였다면 하나는 성깔있는데 귀티가 나면서도 예쁘장한 인싸 느낌이었다. 두 여자는 완전히 달랐지만, 퇴근길을 함께 하는걸 보면 퍽 친해보였다.
‘오타쿠랑 오타쿠를 혐오하는 인싸의 조합인가...’
아, 물론 오타쿠라고 하기에는 육덕녀도 꽤 미인이었다. 하얀 속살에 넘사벽급으로 풍만한 젖가슴이 크롭티를 뜨겁게 달궈놨다. 크롭티 밑으로 드러난 배꼽도 군살이 하나 없었다. 분명 육덕처럼 보이는데 저렇게 말랐다니... 딱 남미의 모델같은 느낌이랄까.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확실하게 나온... 다이어트를 조금 더 하면 완벽할 것 같다.
“설 실장, 퇴근?”
“응. 나 이미 퇴근시간 많이 지났지. 너는 사장님 호출 있대서 나가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출근을 안 하더라?”
“응. 어제 뭐 많은 일이 있었거든. 도하 씨는 오늘도 고생 많았네요.”
“아... 예...”
성깔 있어 보이는 여자는 설 그리고 육덕녀의 이름은 도하인 듯했다. 내 입장에서는 둘 다 초면이지만, 두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내 옆을 지나갔다.
“내일 봐요~”
“응. 내일 봐~”
나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해야했다.
“근데 사장님은 굳이 여기 안 와도 되는데. 나야 이 시간에도 예약이 있으니까 온 거지만.”
“아, 아니야. 나도 할 일이 좀 있어.”
업장이라고 날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서아.
안으로 들어가니 방금 퇴근한 여자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카운터 쪽에 두 여자가 더 앉아 있었다.
‘여기는 여자직원만 채용하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장이라면 당연히 할 법한 짓임에도 굳이 이렇게까지 여자들만 고집해서 뽑았나 싶을 정도로 죄다 여자들이었던 거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 오랜만이네요.”
두 여자 역시 초면이어서 나는 고개를 까딱하는 식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서아는 두 여자 중에 한 여자와 특히나 친했는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연두, 연두, 연두! 오늘 당직이지? 많이 힘들었겠다. 별일 없었어? 나 없었는데.”
“응. 너무 별일 없어서 아쉬울 정도? 너 없을 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저 여자가 연두인 모양이다. 자칫 못 알아볼 뻔한 이유는 단순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 나는 여자 연예인을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물로 본적이 있는데 컴퓨터 그래픽인줄 알고 놀랐던 적이 있다. 그만큼 이목구비가 입체적이었고 윤곽이 칼로 깎아놓은 듯해서 놀랐는데 연두의 외모가 딱 그랬다. 사진으로는 충분히 담을 수 없는 완벽한 외모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른 여자들에 비해 사뭇 빈유라는 점. 물론 한국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지극히 평범한 가슴크기였다.
“유영 씨도... 고생 많아요.”
“아, 예...”
유영? 저 여자가 박유영인가. 와... 나는 대체 어떤 복을 받고 태어났길래 이렇게나 예쁜 여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지... 저 여자도 나랑 살을 섞은적이 있다고 그랬다. 이곳에서 나와 살을 섞지 않은 여자가 있기는 한 걸까.
아무튼 유영의 외모는 연두에 비견해도 하나 아쉬울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해 보였다. 연두가 유독 커서 그런지 키가 작은 유영의 몸집은 연두의 절반 정도로 온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너무 귀여웠다. 딱 잘 어울리는 얼굴과 몸이라고 할까. 아담한 게 품에 쏙 들어올 것처럼 보였다.
근데 아무래도 인원 수가 꽤 있어서 그런지 파벌이 있는 느낌. 누구는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은 살짝 어색한 그런 기류가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서로 쉬쉬하거나 미워하는 듯 하지는 않았다.
서아는 카운터쪽으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유영의 어깨를 터치했고 유영도 싫지 않은지 서아의 팔을 잡고 피부를 쓸어올렸다.
오히려 함께 앉아있었던 연두와 유영 사이에서 약간의 신경전이 있는 느낌이랄까.
“나 그럼 갔다 올테니까.”
“응. 잘 다녀와.”
카운터에 앉은 사람들은 예약이 있는 동료에게 인사를 해주는 훈훈한 모습이다.
나는 갈 곳이 없어서 연두와 유영의 옆에 섰다.
“크흠...”
“사장님?”
“응?”
“응이라니... 이 시간에 웬일로 카운터에 계세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줄 세워서 마사지 해주던 분이.”
아, 또 그 얘긴가. 내가 기억을 잃은 동안, 나는 꽤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진행 중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마사지를 하는 법도 몰랐다. 아무렴 그냥 주무를줄은 알지만, 돈을 낸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마사지는 당연히 다르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그냥 나온거야.”
“그냥? 사장님이 ‘그냥’ 나올 리가 없잖아요.”
“맞아. 큭큭큭...”
음, 그렇다면 이렇게 해볼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고개를 다시 저었다.
“요즘 실력이 무뎌진 것 같아서 말야. 마사지하는 법을 까먹은거 같아.”
“뭐... 라고요?”
“엥? 그럴 리가.”
“진짜야. 슬럼프. 누구한테나 슬럼프는 있잖아.”
나는 순간 두 여자의 표정이 굳어지는걸 보면서 내가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강준현이라는 사람한테 마사지 슬럼프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그치... 사장님, 혹시 사장님은 마사지할 때 얼마나 집중하는지 모르시는건가요? 엄청 멋있는데.”
“엄청 멋있다고..?”
“응! 사장님 마사지할 때 엄청 집중하잖아요.”
나는 그 집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위험에 빠졌던 사고차량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녀의 응급처치를 할 때 내가 느꼈던 몰입감은 정말이지 탁월했다. 물아일체라던지 혼연일체라던지 환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을 살면서 그토록 재밌다거나 집중했다고 느꼈던 기억이 없었던 거다.
“그런 사장님이 슬럼프라니..! 믿을 수 없는 거지.”
“응응. 나도 진짜 믿을 수가 없다. 그럼 우리 그런 의미에서 슬럼프 극복 한번 해볼까요?”
“슬럼프 극복?”
연두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과거를 회상한다던가.”
“과거를 회상..?”
기억을 잃은 나에게 과거를 회상하라니 이만큼 곤란한 일이 있을까.
“혹시 실장님이랑 나랑 해줬던 마사지 기억나요?”
“으, 응... 기억나지.”
나는 그냥 기억난다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장님 마사지 그렇게까지 잘 하지 못한다고 그랬어. 근데 우리한테 마사지 받은 다음에 좀 달라진 느낌이었잖아요. 뭔가...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
“오오! 그럼 제가 이설 실장님 역할을 하는 건가요? 너무 좋아.”
연두는 헬쭉 웃었는데 그 웃음 뒤에는 약간의 경계심도 섞여 있는 듯했다.
“물론 유영쌤은 지금 배우는 단계긴 하지만.”
“아, 맞아요. 저도 진짜 너무 배우고 싶어요. 연두쌤이 어떻게 마사지를 하는지도 진짜 궁금해요. 사장님, 부탁해요. 저 요즘 쌤들 너무 바빠서 참관 수업도 못 들어가고 있어서 배움이 너무 더뎌요.”
“아, 그,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사실 연두가 뭘 원하는지도 몰랐지만, 일단 해보자고 했다.
“카운터는 어떻게 하죠?”
“뭐, 어차피 지금 시간에는 예약 이외에는 당일 고객도 없을테니까 잠깐 자리 비워두지 뭐. 서아가 만약 먼저 끝나면 알아서 문 열고 손님 배웅할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해요.”
유영은 얼마나 신났는지 손뼉을 짝짝거리며 부딪치면서 좋아했다.
‘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물론 오늘 초면이지만, 나는 또 한 번의 사랑을 느꼈다.
누가 금사빠 아니랄까봐... 어제 서아랑 그렇게 해놓고도 새로운 여자에게 설렘을 느낀다. 나라는 동물이 어쩔 수 없긴 한가보다.
그나저나 두 여자의 이마에 빛나는 오색찬란한 저 빛을 어느 타이밍에 만져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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