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62화
* * *
“서아야, 너 지난번에 입었던 피카츄 팬티는 이제 안 입는 거야?”
“응?”
서아는 내 옆에 누운 채로 동공이 커졌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쭈니, 너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네. 나 그거 딱 한번 밖에 안 입었는데...”
“응. 우리 첫경험 했었잖아.”
“그렇지.”
내가 유도해내려는 대답은 하나였다. 서아가 나랑 사귀는 사이인지 궁금했던 거다.
“특이해...”
서아는 내 얼굴을 뜯어보며 가만히 읊조렸다.
“뭐가?”
“한번도 언급 안 하다가 갑자기 그걸 기억해내고 말이야. 오늘 뭔가 이상해. 센치한걸까.”
“내가 이상해? 내가 원래 어땠는데?”
나는 옆에 누운 서아의 몸통을 내쪽으로 더 끌어당기며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한줌밖에 되지 않는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 있으니 재차 발기가 이뤄지는 느낌이었다. 벌써 떡을 네 번이나 쳤는데 말이다. 몇 시간이나 섹스를 했더니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그레이스랑 다니엘... 자리를 비켜준다고 하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네.’
“너? 너... 너는 그냥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 그냥 좋은 사람이라... 애매한 대답이었다.
“나한테 너는 좋으면서도 소중하지. 근데 그렇다고 다른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질투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아! 난 나름대로 대처하는 법도 잘 알고 있다고?”
치요도 비슷한 소리를 하더니 서아도 같은 얘기였다.
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서 그녀가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결국 서아도 나랑 사귀는 사이는 아닌거였다. 나한테 연인이라는게 있긴 했던 걸까. 복잡한 여자 관계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했던 거다. 아니, 그러면 아다는 뗐어도 모태솔로는 여전하다는 건가? 뭔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하다.
“근데 넌 어떻게 된 애가 고백을 한 번을 안 하냐?”
“..?”
“체, 됐어.”
“무슨 말이야?”
“아니야... 분위기 어색해지는거 싫어. 다른 얘기하자.”
“???”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서아는 내 뺨을 톡톡 두드리고 그 손을 그대로 내려서 다시 발기된 내 성기를 살살 어루만졌다.
“몇 번째지?”
“다섯번째.”
“근래에 일하느라 힘 많이 아껴뒀구나?”
“일?”
“어, 일! 너 맨날 사람들 줄 세워놓고 치료해준다고 바빴잖아. 우리 샵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지?”
“미, 미안...”
“아니야! 좋은 일하는건데 뭐. 신용섭 그 새끼가 했다는 그 짓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 너 아니었으면 방송국 몇 개는 폭탄 터졌을 거야. 유명한 연예인들 다 신용섭 손에 죽을 뻔 했잖아.”
뭔 소리지...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튼 그 일은 다 끝난거지?”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가 너무 오래 그녀가 날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서아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도 되는 듯 방긋 웃으며 내 입술에 자기 작은 입술을 가져와서 쪽쪽거리며 뽀뽀했다.
“너무 좋아!”
‘나도 좋아...’
한 마디로 살살 녹았다. 서아와의 과거를 회상한 후로는 더 그녀가 좋아졌다. 예전에 서아를 좋아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랑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내 마음 속에는 두 여자가 있는건가. 치요랑 서아. 아, 아니... 세명인가. 그레이스까지... 그레이스도 내 여자친구 후보로 두기에 충분한 여자였다. 아니, 잠깐만... 그레이스가 만약 내 여자친구라고 치자. 그러면 서아와 내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집을 비워두는 가정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개방된 사상을 갖고 있어도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그레이스는 아닌 거다. 그래도 난 그레이스가 좋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여자가 바로 그 여자니까. 기억이 남아있는 근래 중에 나를 가장 따뜻하게 바라봐줬던 여자. 그리고 정신없는 날 위해서 젖가슴을 만지게 내버려뒀던 여자.
그러면 내 마음 속에는 일단 세 여자가 있는 걸로 하자.
“연두도 좋아하겠다.”
“연두?”
“연두. 이연두. 설마 연두 까먹은 거야?”
“아, 연두! 연두! 연두를 잊을 리가 없지. 하하...”
“그래... 까먹는게 말이 안 되지. 사진첩에도 엄청 많을거 아니야? 우리 같이 섹스도 했는데.”
“푸학! 뭐라고?”
“뭘 또 모르는척 해? 너 그날 취했었어? 잘 봐. 내 사진첩에도 있다고.”
서아는 휴대폰으로 사진첩을 열어서 내게 사진을 보여줬다. 서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아와 얼굴 모르는 여자가 양쪽에서 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나체로. 얼굴 모르는 그 여자의 이름은 아마 연두일 것이다. 그리고 연두는 가슴은 빈약하지만, 얼굴만큼은 서아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꼭 드라마 주인공같이 생겼네.’
연두는 로맨스 드라마에 나오는 청순한 여자주인공과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연두가 맨날맨날 나한테 그러잖아. 다시 그때처럼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뭐가 됐든 연두도 내 여자친구는 아니겠네. 그랬다간 이 세상의 모든 교리가 다 파괴된 것이나 다름 없을 테니까.
“연두가 그랬구나.”
“피, 연두만 그런 것도 아니야. 아영 언니도 그랬고 이설 실장님도 그랬다고. 은근히 너 기다리는 사람 많아.”
“또... 누가 있어?”
“지금 테스트하는 거야? 와, 쭈니 진짜 고단수다. 뭐, 외우면 진짜 많지. 일단 유영이! 너 유영이도 엄청 좋아했잖아. 그것 때문에 한동안 나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알아?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한서연 씨도 있고... 도하도 있지. 치요는 오늘 낮에 만났다고 들었어. 아, 그래! 치요도 엄청 기다리고 기다렸지. 우리 멤버에 가입하고 싶다면서.”
“멤버? 무슨 멤버?”
내가 계속 질문하자 질렸는지 서아는 내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앙!”
“앗!”
“자꾸 질문세례할 거야?”
나는 상체를 들어올리며 서아를 내가 누웠던 자리에 그대로 눕혔다.
“많이 컸다, 김서아?”
“꺄앙... 돌아왔구나, 강주녀니...”
서아는 강아지처럼 배를 까고 누운 채로 두 손을 냥냥펀치마냥 들어올린 후에 아주 나한테 몸을 맡겼다.
“죄송해요... 서아, 아무렇게나 혼내주세요.”
“주인님 해야지.”
“주인님...”
“말 끝 흐린다?”
“주인님!”
“흐...”
나는 서아가 주인님이라고 짖어대자마자 곧바로 그녀의 입술을 먹음직스러운 과일 쳐먹듯이 한입에 집어삼켰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그녀의 뜨거운 숨결과 함께 야릇한 소리가 지리게 섞여댔다.
맛있는 서아의 입술을 맛보다가 그녀가 보여줬던 사진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기억을 되돌리려면 아무래도 그 많은 여자들과 한 번씩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더불어서 그 여자들에게서 오색찬란한 빛깔들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 정보가 암울한 미래이면 미래일수록 더욱 그렇다.
*
섹스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땀을 흘리고 식히고 먹고 마시길 반복했더니 어느덧 다음날 아침이었고 거의 졸도하듯 정신을 잃고나서 다시 눈을 떴더니 벌써 또 밤이 됐다.
새근거리며 내 옆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서아도 꽤나 피곤했나보다. 하긴... 그렇게 빨아대고 박히길 반복했으니 턱이며 허벅지 근육이 전부 부르텄을 거다.
나는 예쁘게 곯아떨어진 서아의 얼굴을 쓰다듬고 반대쪽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부재중 전화며 문자들이 잔뜩 있었다.
그레이스나 다니엘도 전부 어딘가 가서 잤나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있다간 오늘 하루도 그대로 날려버릴 것 같았으니까. 나한테는 지금 하루하루가 참 소중했다. 기억도 되살려야 했고 정말 그 미래가 곧 다가올 미래라면 빠르게 막아낼 방법도 찾아야 했으니까. 언제까지고 성욕의 늪에 빠져서 살수는 없다.
그런데 뒤척이는 서아의 속살을 보니까 또 참을 수 없게 됐다.
나는 서아의 벌거벗은 몸을 쓰다듬었고 내 손길이 닿자 서아는 베시시 웃으며 실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했다. 어쩜 이렇게 예쁘지. 보통이라면 눈에 눈곱도 끼고 아침이라 아갈똥내도 심해서 콩깍지가 떨어질 법도 했겠지만, 서아는 달랐다. 입에서 달달한 단내가 났고 얼굴은 푸석푸석하지 않고 오히려 윤기가 났다. 관리를 잘한 탓일까.
아, 그러고보니... 어제 섹스할 때 서아의 질내에 엄청나게 사정했는데 그건 괜찮을까. 덜컥 임신을 해서 결혼하자고 하는건 아니겠지.
아니다. 그러면 차라리 좋겠다. 덜컥 임신해버리면 덜컥 결혼해버리지 뭐. 이렇게 예쁜데 뭔 상관이겠어.
나는 재차 발기된 성기에 서아의 손을 가져갔고 서아는 내 고추를 잡자마자 본능적으로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으응... 여전하네... 대단해...”
서아의 손은 부드러웠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입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아의 손을 떼어내고 그녀의 얼굴에 내 성기를 가져갔다.
서아는 특유의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찡그리며 눈을 떴고 자기 눈앞에 내 집채만한 크기의 성기가 있다는걸 발견하곤 놀라지도 않았다.
“히힝... 나 피곤한데...”
“아, 미안.”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성기를 다른쪽으로 치울 생각은 없었다.
“입만 열어줄래?”
“우붑...”
질문은 일단 넣은 다음에.
나는 반쯤 잠에 빠진 서아의 입에 내걸 넣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날 아프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크게 벌렸고 입술을 이용해서 구멍을 만들었고 나는 그걸 최대한 이용하면서 앞뒤로 엉덩이를 움직였다.
‘하... 진심 극락이다.’
일단 모든 일은 사정한 후에 생각하도록 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