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60화
* * *
콰앙
나는 그 순간, 다른 것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내가 이상하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어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건 태생적인 본능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 내가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예전부터 그랬다. 내 주변에 사건사고가 자잘하게 많이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나는 그럴때마다 딱히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차 안에는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할 것. 그렇기에 누군가라도 내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 옆에 있는 여자가 내 순애보였든, 내 사타구니를 발기시켜주는 여자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냅다 내버려두고 뛰기 시작했고 뒤쪽에서 서아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조심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차까지 오기는 했다. 나는 다른 곳은 모르겠고 우선 운전석을 열어젖히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았는데 이 놈의 구식 아반떼는 안쪽에서 에어가 터진 후에 문이 열리지 않게 됐는지 손잡이가 헛돌았다.
나는 차문을 두드리며 안을 향해 소리쳤다.
“괜찮으세요?”
서아에게는 빨리 응급전화를 하라고 시켰다. 그랬다해도 나는 안에 있는 운전자가 위급하다면 재빨리 응급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구급차나 소방차가 오기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는게 당연하다. 골목이었고 아무리 빨리 달려오더라도 한계가 있을 터. 만약 골든타임이 지나버리면 운전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내가 넋놓고 있다가 시간을 보내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에어가 터지지 않은 뒷좌석을 전부 열어봤다. 왼쪽은 열리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오른쪽은 잠기지 않았는지 문일 열렸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운전자의 동향을 살필 수 있었다.
운전자는 여성이었고 기절했는지 정신을 잃었는지 머리를 쳐박았고 출혈이 있는지 운전대 위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위험하다. 확실히 위험해. 본능적인 신호가 마구 울려댔고 나는 빠르게 운전자를 뒷좌석 쪽으로 빼냈다.
내가 의사도 아니었기에 응급조치를 할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우선 뒷좌석에 끌어내 눕히는데는 성공했다. 차 밖에서 서아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눕힌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해야할지 확인하기 위해 여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뭐, 적어도 메디컬 드라마에서나 추리소설같은 것에서 본적이 있었다. 우선 맥박을 확인하고 코에 손을 가져다대 숨은 쉬는지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쉰다. 그런데 가슴이 부풀어오르지 않을 정도로 옅은 숨이었고 열이 몹시 심했다. 땀을 뻘뻘흘리고 있었는데 그녀를 뒷좌석으로 옮기느라 땀이 뻘뻘나는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눈두덩이를 확장시켜서 동공을 확인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정신을 안 차린걸 보면 뇌진탕 증상도 어느정도 예상해야 했다.
“환자 분. 제 말 들리시나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조급해졌다. 그냥 내버려둬야 하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법은 알아도 이런 충격에 의한 부상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뭔가가 보였다.
붉은색의 반점이.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 반점은... 분명 야동에서 가끔 봤던 현상이었다. 나는 헐벗은 여자들에게서 줅도 이 붉은색 반점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냥 영상적인 문제이거나 아니면 여자의 살이 예민해서 붉게 달아오르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확연하게 이 환자의 흉부쪽에 붉은색 반점은 일반적인 거라고 할 수 없는 비이상적인 현상이었다.
‘이게 뭐지...’
나는 치요에게서 봤던 오색찬란한 반점을 떠올리며 그곳에 손을 얹었다.
뒤에서 서아가 쳐다보고 있던 뭐였건 상관 안했다. 그저 이 사람을 치료하는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붉은 반점에 손을 올리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스며들어왔다.
‘흉부의 근육이 놀라면서 여자의 몸은 전방으로 수축했다. 가슴의 근육들과 그 안쪽에 있는 근육들의 수축이 심해져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수도 있다. 단순한 것이지만, 이 놀란 근육들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크게 호전될 수 있을 거다.’
내 머릿속으로 특수한 정보들이 주입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내가 운전대를 잡자마자 운전하는 법을 기억해낸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그리고 다음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하는지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우선 나는 여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딱히 아무런 감정은 없었다. 여자의 몸매가 좋은지 안 좋은지는 관심도 없었다. 근데 이제 보니까 몸매가 상당히 좋다..? 크흠, 아무튼. 나는 여자의 상의를 벗기고 난후에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넣어서 흉부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붉은 반점을 누르면 된다는걸 알 수 있었고 이후에 점차 그 부위를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놀림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만족감! 나는 이 행위에 특화되어 있었다. 아니, 특화되어 있는걸 떠나서 즐기고 있었다. 사명감은 나를 정의감에 젖기 만들기에 충분했고 행동 하나하나에 재미를 느꼈다. 이러면 이 여자가 살아날거라는 본능적인 확신까지 있으니 더욱 고양됐다.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는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이런 놈이었던 거야!’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이는 서아와 섹스를 할 수 있는걸 알았을 때보다도 더한 설렘이었다.
‘좋아. 이제 푸른색 반점을... 응?’
푸른색 반점? 갑자기 나한테 왜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
나는 그 순간, 붉은색 반점이 아니라 푸른색 반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푸른색 반점을 찾을 수 있었다. 목 뒤쪽에 푸른색 반점이 있었던 거다. 나는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넣어서 아래쪽에서부터 시작되는 푸른색 반점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천천히 마사지해가면서 풀어냈다. 치요에게 먼저 선행학습을 했던 게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마사지가 그닥 부자연스럽지 않았던 거다. 물론 몸에 익숙하기도 했지만, 치요에게 마사지를 하지 않았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여성의 신체와 남성의 신체는 사뭇 다르니까. 여성의 신체가 사뭇 더 아담하고 폭이 좁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놓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골고루 마사지를 한 결과, 아까까지는 옅게 숨을 쉬고 있던 여성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오르면서 감고 있던 눈마저 번쩍 떴다.
“허억..!”
갑작스레 깊은 숨을 쉬는 바람에 숨이 턱 막힌 모양이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아주며 달랬다.
“괜찮습니다. 방금 사고로 인해서 의식을 잃으셨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 의식을 다시 찾았으니까요.”
여자는 힘없이 눈을 굴려 내 쪽을 봤다. 그녀는 나를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네요. 마침 강준현 씨가 여기 계셨다니...”
“저를 아시나요?”
“tv에서 봤어요. 잡지랑... 저 그 샵에 찾아간 적도 있는 걸요. 유명하시잖아요.”
“아...”
나를 아는 사람이었나. 그나저나 내가 유명한 사람인가.
나는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제 곧 구급차가 올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이후에는 병원에서 조치를 취해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참고인으로 여기 잠시 있겠습니다. 환자 분이 원한다면 자리를 피하겠지만요.”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같이 있어주세요. 잠깐만... 잠깐만 옆에 계셔주실래요?”
나는 뒤에 서아를 한번 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어도 나는 이곳에 있는 선택지를 골랐을 테지만.
“그럼.”
나는 그녀의 흉부 마사지를 위해 벗겼던 옷가지를 그녀의 비어있는 살갗 위로 덮어줬다.
그리고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았고 그녀는 배드에 눕혀져서 구급차 안으로 들어갔다.
소방원 하나가 내게 참고인 조사를 해달라고 말했고 나는 내가 봤던 모든 내용을 말해줬다. 아무래도 여자는 졸음운전을 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서아도 다칠 뻔했지만, 다행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치를 잘 취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사고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얕은 타박상 정도만 남은 상태고요. 의학을 전공하셨나요?”
“아뇨. 전혀요. 그냥 본능적으로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흠, 그렇군요. 대처가 워낙 프로패셔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럴 경우에 그냥 무턱대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간혹 고소를 당하기도 하거든요. 갈비뼈가 다 망가져서는 오히려 돕느니만 못한 꼴이 종종 있는데. 환자 분을 대신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야겠군요. 더불어서 시민의식으로도 최고의 활약이 아닐까 합니다.”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고 서아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술은 전부 다 했고 여자도 그렇게까지 많이 다치지 않은데다가 의식이 완전히 회복돼서 우리를 더 붙잡아두고 싶지 않았다고 전해들었다.
나는 서아와 함께 다시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방금 나에게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게 무색할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의 침묵이란 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이 침묵을 깬건 다름 아닌 서아였다.
그녀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더 실었다.
“역시... 넌 내가 아는 쭈니가 맞구나.”
“...”
갑자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서아가 알고있는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넌 항상 정의로웠어. 우리 중에서 제일 특이하다고 생각했지.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한테 빠지게 된 것도 그 이유였던거 같아.”
‘나한테... 빠졌다고?’
“아까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물어봤지? 그에 대한 대답은 이거야. 나는 너가 너무 좋아. 요즘은 네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을 정도라고...”
“... 서아야...”
우리는 걷다가 멈춰서 서로를 마주봤다. 두근두근. 아까와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근데 왜 내 눈에는 그녀의 입술보다도 그녀의 이마에 있는 오색찬란한 반점이 들어오는 걸까.
지나가는 개도 지금이 키스 타이밍이라는 것쯤은 알 거다. 그런데도 나는 아까 낮에 치요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했다.
이마에 살포시 입술을 가져다댔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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