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158화
* * *
치요의 첫경험을 가져간 나는 이불보에 묻은 그녀의 처녀액을 한참동안 내려다봤다. 그러다 그녀가 민망해서 이불보를 드러내고서야 눈을 떼고 예의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미안...”
섹스를 하고나니 그녀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서 중간쯤부터는 치요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을 편하게 했었다.
사정은 적절할 때 빼내서 질외에 했다. 첫경험을 곧장 임신의 추억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도 확실치 않았으니까. 기억을 잃기 전의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는걸까? 아니면 혹시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도?
일단 곧장은 두 사람이 떠올랐다. 하나는 서아였고 하나는 그레이스였다. 서아의 경우에는 사진첩에 너무도 많은 나체 사진과 동영상이 있었고 내 짝녀이기도 했으니 아무래도 가능성이 제일 높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서아랑 관계를 맺었다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그레이스는 한 지붕 아래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했으니 당연히 생각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진첩을 보면 서아 이외에도 나체로 사진을 찍은게 한둘이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그것도 이름 모르는 다수의 여성들. 죄다 몸매 좋고 얼굴 예쁜 여자들인데다가 수시로 쓰리썸을 했는지 함께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젖가슴을 드러낸 사진도 있었고 심지어는 덮밥 형태로 밑삽입과 윗삽입을 번갈아하는 동영상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치요의 관계도 애매하다.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전제만 없었으면 당장 치요에게 사귀자고 했을 거다.
그리고 치요는 그딴건 전혀 개의치 않는지 무덤덤하게 함께 샤워를 했다.
처녀성이 묻어나온 사타구니와 아랫배쪽을 살살 닦아 지우는걸 도와줬다. 그 때문에 성기를 만져야 했고 여기서 2차 발정이 나서 우리는 샤워실에서 한바탕 섹스를 더 했다. 이번에도 질외사정을 했고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꿈만 같은 시간이 끝나고 대실 시간이 마감되서 우리는 차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우리는 네비게이션에 찍혀있는 우리 집으로 향했다.
“사장님...”
“응?”
“오늘 너무 좋았어.”
“나도 너무 좋았어, 치요.”
“기억이 되돌아왔으면 좋겠어. 물론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장님을 좋아해. 사장님이 다른 여자들이랑도 친하게 지내도 상관없어. 나는 그냥 날 귀여워해주고 예뻐해줬으면 좋겠어.”
이게 전반적인 치요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관계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서운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내가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섬을 하나 사려고!”
“섬? 웬 섬?”
“섬을 하나 통째로 사서 거기서 지내는 거야.”
“너랑 내가?”
“아니! 전부 다!”
“전부... 라면?”
“우리 식구들! 샵에 있는 인원들 전부!”
아, 그러고보니 내가 마사지샵을 차렸다고 그랬지. 사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마사지랑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그것도 파헤쳐보고 싶었다.
‘근데 치요가 파라다이스를 건설하고 싶다면서 직원들 전부 데려간다는 얘길하는걸 보니까 다들 엄청 친한가보네.’
“섹스 파라다이스!”
“헉..!”
지금 치요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싶었다.
설마 샵에 있는 직원들 전부 몽땅 데려가서 강준현의 하렘을 건설하겠다는 소리인가.
“일명 섹파!”
보통 섹파는 그렇게 사용하는 말이 아닌데... 아무튼 그건 좀... 허황되고 이상적인 일이 아닐까. 섹스 파라다이스라니. 지금까지 모태쏠로로 살아온 나한테 하렘의 왕이 된다는게 가당키나 한 얘기냔 말이다.
“궁금한게 있어서 그러는데...”
“응응!”
치요는 벌써부터 섹스 파라다이스 건설을 시작했는지 신이 나 있었다. 그게 그렇게 좋나. 자기 이외에도 다른 여자들을 데려다가 난교파티를 하는게 말이다.
“내가 샵에 있는 다른 여자들과 어떤 관계인지...”
“아, 그건...”
그때였다.
똑똑
창문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길래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다니엘이었다. 나는 창문을 내렸다.
“도착했는데 안 들어오시길래 걱정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제가 도착한걸 아셨나요?”
“그럼요.”
캐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웬지 다니엘의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세가 꼭 “초월적인 힘으로 알아냈습니다만.” 이라고 말할것만 같았던 거다.
“치요 씨?”
“응!”
“이제 그만 샵으로 출근하시죠. 이설 실장님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치요 씨 담당 회원님이 기다리신다고.”
“앗! 까, 까먹고 있었...”
“괜찮습니다. 치요 씨에 대한 애정이 극도로 심한 회원님이셔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펑크를 내는건 좋지 않겠습니다만. 그 부분은 알아서 하실거라고 생각하고요.”
“으응... 미안해요. 바로 출발할게요. 사장님! 나 사장님 차 좀 빌릴게요!”
“아, 응... 그렇게해.”
내가 운전석에서 내리고 치요가 끙끙거리며 조수석에서부터 운전석으로 옮겨 탔다.
다니엘은 내게 더 할 얘기가 있는지 치요가 출발하자마자 추궁했다.
“치요 씨랑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하셨나봅니다?”
“아, 예... 근데 그게 왜...”
“아뇨! 저는 그저 기억이 되살아났는지를 묻고 싶었던 겁니다.”
나는 고개를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돌아올 조짐은 있었다. 운전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난다거나 어떤 이상한 환상을 본다거나. 내 생각에는 이것들이 내 기억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떠오른건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치요를 만나면서 기억을 되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저 아쉽군요. 어떤 충격을 받았다면 비슷한 충격을 통해 되돌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원인을 찾아봐야겠군요.”
다니엘은 내가 자발적으로 기억을 회상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우선 내 주변 사람들을 전부 만나봐야했다.
“샵이 어딨다고 했죠?”
그러자 다니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딘지 말하면 어떡하려고요?”
“아무래도 직원들을 좀 만나봐야겠습니다.”
“치요가 무슨 소릴 한 거죠?”
“저와 저의 직원들이 친하다고 얘기했습니다.”
“흠... 그것도 그렇네요. 우선 하나하나 다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런데 샵에는 가지 않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지금은?”
“예... 누가 찾아왔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딱히 반가운 손님들은 아니라. 제 주변에 있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손님이 왔다고? 근데 그게 또 불청객이야? 하...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문득 내가 범죄에 연루된게 아닌걸까 싶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다니엘. 나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있는 거라면 분명히 알고 있고 싶어요. 솔직히 생각해봐요. 갑자기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처음 보는 지붕 밑에서 눈을 뜬데다가 처음 보는 외국인 여자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었고, 어떤 일본인 여자가 나타나서는 대뜸 저한테 고백을 해요. 그러더니 주변 사람들은 전부 저에게 기억을 잃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상한 환상이 보이질 않나...”
“잠깐만요. 이상한 환상?”
다니엘은 유의깊게 듣다가 입을 열었다.
“환상이라면... 어떤걸 봤다는 거죠?”
“치요에 대한 안 좋은 환상이었어요.”
“정확하게 얘기해주세요.”
“...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우선 시내가 초토화됐어요. 사람들은 방독면을 쓰고 다녔고... 치요는 이걸 슬픔에 잠겨서 내려다봤죠. 그러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벌거벗은 남자들이 실실거리며 웃었어요. 치요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건 그저 제 머릿속에 그려진 환상에 불과해요. 사실이 아닐 거예요.”
“...”
다니엘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무슨 생각을 골똘히하는지 참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결국 말했다.
“이상한 환상이라는 것. 그것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죠. 정보라는 건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진짜 빛을 발휘하는 법. 어쩌면 내가 알고있는 미래와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환상이 보이는지 확인해보죠.”
“미... 래?”
설마 이 사람은 내가 미래를 봤다고 믿는 건가? 그 허황된 소리를 듣고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것 부터가 놀라운 일이지만.
아니, 잠깐...
나는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치요에게서 봤던 환상이 미래라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큰일이다.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을 하나 불러야겠습니다.”
다니엘은 고심 끝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와 그는 그레이스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서 잠시 기다렸고 아주 조금 후에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그레이스 수녀님. 우리는 자리를 비워줍시다.”
*
다니엘은 그레이스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갔고 그레이스를 차량에 탑승시킨 후에 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차장을 지나 골목어귀까지 걸었을 때, 그림자에 파묻혀있는 한 여성을 발견한 그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인사했다.
“소민 씨, 오랜만이네요.”
다니엘의 표정은 말과는 다르게 굳어있었다.
그는 정말이지 구소민이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구소민의 앞으로 이동한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자, 그럼 이제 얘기해주실래요? 왜 준현 씨의 기억을 지웠는지?”
“... 저는 그의 몸에서 악마를 제거했을 뿐이예요.”
“악마를 제거했다... 그럼 지금 그의 몸에는 악마가 없다는 얘기겠죠?”
“... 네.”
확신이 없는 목소리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동작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간 엑소시즘을 알려준 시간들이 머릿속에 작게 스쳐지나가면서 분노가 일었다.
“왜 독단적으로 행동했는지. 말해주세요.”
“나는 해야할 일을 했습니다.”
“준현 씨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만이 유일하게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럼 나한테 엑소시즘을 알려주면 안되는 거였죠.”
“그때는...”
다니엘은 턱을 약간 밑으로 떨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정말 그가 ‘근원’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엑소시즘을 하랬지, 누가 기억을 없애라고 했습니까? 이제 말해보십시오. 대체 누구한테 그런 방법을 배운 겁니까?”
이때, 구소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입술을 떼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라는 식이었다. 골목의 모퉁이를 지나는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행인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늦은 시간도 아니고 서울의 골목에 사람 하나 지나가는게 그닥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니까.
다니엘은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다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구소민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굳었고 처절하리만치 불안에 떨고 있었으니까.
“신부님... 이제 저 도저히...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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