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52화
* * *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요?”
치요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내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여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피가 빠르게 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랑 손 한번 못 잡은지가 어언 5년째가 되어가던 해였다. 학창시절에야 누군가 나를 여왕벌 놀이의 발판으로 삼거나 어장관리 대상에 들어가기 위해 손을 잡힌적이 있다지만, 성인이 되고 대학졸업을 한 이후에는 딱히 기회가 없었다. 그때는 철없는 마음에 어장관리라도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 하긴 그건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치요가 내게 어떤 악감정을 갖고 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샤워실에 들어가서 줄곧 살갗이 맞닿을 때마다 좋아 죽겠는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하리오.
나는 치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기억이 안 난다는걸 보니까 진짜 심하긴 심한가봐. 역시 내 도움이 필요해. 옷 벗는거 도와줄게요.”
“네, 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당황스러운, 왜 그런 상황이 있지 않나.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옷을 벗으라고? 그것도 이렇게나 예쁜 미소녀 앞에서? 아,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오늘 처음본 여자 앞에서 옷을 벗는다고? 나에게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치요는 특이하게 내 바지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츄리닝을 입고 잔 탓에 내 바지는 훌렁훌렁 벗겨졌고 위에 입고 있던 티셔츠도 치요에 의해서 벗겨졌다.
치요는 아무렇지 않게 내 팬티까지 쭉 내렸고 나를 욕조에 앉혔다. 욕조 밖으로 호스를 꺼내놓고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치요는 내 벌거벗은 몸에는 시선 따위 주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나는 부끄럽게 몸을 베베 꼬며 어떻게든 사타구니에 있는 흉기가 보이지 않게 가리려 했지만, 이놈의 흥분이라는 게 뭔지... 나는 금세 발기가 됐고 녀석은 다리를 꼬아도 어떻게든 보이게 됐다.
내가 몸을 부자연스럽게 틀자 치요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섰어요?”
“...”
“괜찮아요. 자연스러운 현상! 건강하네. 쿡쿡쿡...”
“그... 뭐야...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응응. 말해봐요.”
“제가 진짜 기억이 안나서 그러는데 치요 씨랑 저... 어떤 관계였나요?”
“어떤 관계?”
“아, 그러니까 제 말은...”
“같이 잤냐고 묻는건가?”
치요는 짓궂게도 몸을 내쪽으로 확 기울였다.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가 몸을 숙이자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예쁘게 도드라진 라인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얼굴을 붉히자 치요는 귀엽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면 나는 시선을 회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이 따뜻해졌는지 욕조 안으로 물을 넣어주는 치요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후후... 우리가 무슨 사이였냐고?”
치요는 자기 손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내 몸에 끼얹어줬다. 무방비 상태의 내 몸은 조금씩 젖어들어가고 있었고 이어서 치요는 손에 바디를 얹히곤 거품을 만들었다.
그 후에 그녀는 따뜻해진 내 몸 위로 상대적으로 차가운 손을 올리면서 만지작만지작 거품을 묻혀나갔다. 조금씩 조금씩 거품을 퍼트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장난이 깊게 서려있었다. 오늘 나를 애간장 타들어가게 만들어가려는 듯 주요한 부위를 남겨놓고 거품을 전부 묻혔다.
나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고 욕조에 물이 차면서 몸의 힘이 풀렸다. 여기에 치요의 손길까지 더해지니 머릿속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몸은 녹녹해져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웠지만, 성기는 여전히 발육이 대단한 채 낮은 수면 위로 귀두를 뽑아내고 있었다.
꿀꺽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면서 그녀의 손이 언제쯤 성기에 닿을지 궁금했다.
샤워기에서 물 흘러나오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고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긴장감은 대단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치요는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게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했다. 치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너무나도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나를 변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를 좋아... 할 수도 있을까? 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 사장님 좋아해요.”
어?
내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걸 알고 훅 들어온 기술은 내 가슴께에 불을 붙여놨다.
“사장님..?”
“응.”
“누구...”
“당신! 내가 찍은 사람. 나... 엄청 좋아해요. 매일매일 꿈에서 나올 정도로.”
“저를 왜...”
“그야 멋있으니까. 내가 처음 한국에 오고서 반한 사람이니까.”
정말인가. 아니면 내가 당했던 여타 다른 어장관리 같은건가. 뭐가 됐건 설레는 말이라는건 확실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와중, 사뭇 진지해진 치요는 조곤조곤 자기 할 얘기를 다 꺼내놓았다.
“일본에 있었을 때,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훗. 사장님이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에 사장님이 절 훈련시켜준 탓에 나았잖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기억 안나시는구나... 저는 발작적으로 심한 말을 하는 병이 있어요.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죠.”
“심한 말?”
“음, 가끔씩 19금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뱉는대요. 저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그래서 일본에서는 많은 오해를 당했거든요. 걸레라느니 꽃뱀이라느니... 나이가 어린 저인데도 그랬거든요.”
나는 치요가 나왔던 동영상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치요는 딱히 야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폭력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이런 동영상을 찾나 싶을 정도로 선정적인 장면 하나 없는. 하지만 치요의 뒤를 따르는건 야동배우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왜 그런 일을 했는지가 참 궁금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집이 좀 가난했어요. 그래서 일을 빨리 시작했어야 했는데 저는 중학생 때부터 남자애들이랑 스킨십하는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어느날은 그렇게 남자친구들이랑 길을 걷고 있는데 시부야쪽에서 저를 캐스팅했어요. 처음에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냐고 했죠. 그래서 저는 당연히 하겠다고 말했어요. 배우라니... 너무 꿈만 같았어요. 면접을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갔죠. 근데 몇 번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제 걸쭉한 음담패설이 마음에 든다고요.”
아, 그랬지. 그 영상에서 치요가 독보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선정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이유에 대해서 떠올랐다.
한참 야동을 찾던 나는 야동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에서 언뜻 그 얘기를 봤다. 음담패설 하나만큼은 끝장나는 여자가 있다고. 치요가 음담패설이라는 말을 꺼내니까 기억이 났다.
나는 이상성욕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무시하듯 지나갔지만, 결국 야동을 공수하는 과정에서 게시판에 치요의 동영상이 뜨자마자 호기심에 다운로드를 했고 그걸 봐버렸다.
음담패설뿐만이 아니라 심한 욕설을 하면서 벌거벗은 남자의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치요의 모습이 기억났다.
“사람들은 왜 그런걸 좋아하는지 몰라. 근데 그거 알아요? 나 아직 한번도 안 해봤어요.”
“뭐, 뭘...”
아니, 그 전에... 그걸 왜 지금 시점에서 말하는지 묻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기다렸더니 치요의 손이 내 발기된 성기를 향해 꼼지락거리며 달라붙었다.
“읏!”
여자의 손길이 닿자 내 몸은 멋대로 반응해버렸다. 몸은 긴장됐고 근육들이 경직돼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긴장감 속에서도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찰방찰방
물소리를 내면서 치요는 조금씩 내 성기를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되게 어설펐다. 내 성기가 무슨 오락기라도 되는 마냥 동서남북으로 휘저으면서 위아래로 움직여댔던 거다.
“크윽...”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후훗...”
치요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었고 나는 그녀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 창피해졌다.
“이제 물 받을 필요는 없겠다. 많이 적셨으니까 나와요.”
응? 여기서? 이 타이밍에서? 나는 많이 아쉬웠지만, 그녀의 말에 따라 욕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내어주는 키가 낮은 욕실 의자에 앉았다.
“등 닦아줄게요.”
치요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내 뒤쪽에서 꼼지락거렸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어쩐지... 옷을 벗고 있는 것 같았던 거다. 그래서 힐끔 뒤를 봤다가 재빨리 다시 앞을 봤다. 치요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나와 동등한 상태가 됐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쪽을 손으로 움켜잡아야만 했다. 아, 나대지마 심장아. 괜히 이런 문장이 있는게 아니었다.
“나는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이상한 동영상을 찍고 말았어요. 처음에는 그게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몰입했죠. 사람들은 때로는 그런 상태에 빠지잖아요? 무아지경이라고 했나? 다니엘 신부님이 그렇게 알려줬어요. 인간이 가장 신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라고. 그 순간만큼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나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하필이면 첫 촬영 때요.”
머릿속으로 그 동영상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와락. 뒤쪽에서 거품과 함께 몽글몽글한 촉감이 느껴졌다. 치요의 젖가슴이었다.
“저는 감독이 시키지도 않은 욕설을 상대 배역에게 퍼부었고 벌거벗긴 후에 마구 때리기까지 했어요. 그런 역할이었으니까요.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감독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제가 유명해질 거라고 말했어요. 의아했어요. 별 내용도 없이 그저 사람을 때리고 욕을 했다는 이유로 내가 유명해진다니?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그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감독의 말대로 이뤄졌어요. 저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됐고요.”
“아...”
무슨 상황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학교에 더 이상 출석할 수 없을만 하지... 그런걸 하고 다니는 아이라고 소문이 퍼지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치요는 젖가슴을 이용해서 내 등을 거품으로 문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허그한 손으로는 내 사타구니쪽에 손을 넣어 여전히 발기찬 나의 성기를 조물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서는 계속 그 동영상 촬영을 부추겼어요. 돈이 필요하다면서. 나는 싫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학교를 그만뒀고 그 업계에서 꽤 유명해졌고 돈도 많이 벌었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런 슬픈 얘기를 듣는 동안에도 딱딱해진 내 성기가 참 무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치요를 딱하게 여기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뭐 하나 재능없는 나 역시 같은 처지가 됐으면 치요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내 체면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그녀는 처녀를 팔지는 않았고 어찌됐건 밝게 자라와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고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치요는 하고 싶은 말을 다했는지 한숨을 쉬고서 대딸을 그만두고 뒤쪽에서 나를 꽉 껴안았다.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리는게 다 느껴졌다. 나로써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두근거리고 설렌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런건가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본능은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도 괜찮아요?”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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