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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화 〉 148화 (147/173)

〈 148화 〉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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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옥은 예전에 잘 나가던 무당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신념에 의해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왕년에 유명했던 그녀였기에 타지에 있는 와중에도 여러 업체들과 각기 이유가 다른 개인들에게 문의가 들어왔으나 대부분은 거절했다.

돈이라면 충분했다. 앞으로의 여생을 평탄하게 보낼 수 있을 정도는 갖고 있었던 거다. 일전에 구소민이라는 여자의 의뢰는 흥미로웠다. 거기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제발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고향땅이 생각나서 허락했던 것뿐, 그 의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의뢰는 받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의뢰인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었다. 천문학적인 수치의 거액을 제안하면서 상담을 요청해왔던거다.

늙은 나이에 제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만진다한들 달라질건 없었지만, 그래도 여생을 보다 더 호화롭게 즐길 수 있는 액수였기에 김춘옥은 그래, 의뢰 한번 듣는 것뿐인데라며 의뢰인을 집으로 들였다.

의뢰인은 정장을 차려입은 삼십대 쯤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건장한 키에 깔끔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남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의뢰인은 김춘옥의 집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프랑스에 한국인 정서에 맞는 퓨전한옥이 있을줄이야. 난생 처음 보는 무늬와 빛깔에 감탄하며 마침내 김춘옥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인테리어가 아주 멋지네요. 본인이 직접 설계하신건가요?”

“네.”

“이것이 한국의 디자인이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수 있죠.”

“근데 저건 뭔가요?”

의뢰인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김춘옥이 무당 일을 할 때 빌었던 신상이 있었다.

외국인의 눈에는 저것이 부처상도 아니고 예수상도 아니니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김춘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한때 제가 섬기던 신입니다.”

“한때?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그렇죠. 지금은 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한때는 내가 믿는 신을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신상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계셨군요.”

“무당이라는게 그렇습니다. 대를 끊을 수는 없으니 제 다음을 이을 사람을 항상 염두해 두고 있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이미 늦기도 했고 타지에 있다보니 제 대를 이을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요. 운명이 이끄는대로 놔두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문이 닫히지는 않았다는 얘기군요. 당신의 대를 잇는 그 길 말입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섬기지 않는 존재를 나 다음 대에 넘겨야한다는 사명은 참 독특하네요. 저로써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하하,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김춘옥은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긴 걸까. 아니, 그 전에 이 남자는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했다.

김춘옥이 대답하지 않고 의뢰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하자 그 역시 눈치를 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급하신 모양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렇지 않아보이는데요.”

“의뢰를 받은 입장으로써는 일을 하길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요. 본론을 얘기하겠습니다. 잠시 이 사진을 봐주시겠습니까?”

“이게 뭐죠?”

김춘옥은 의뢰인이 건네는 사진을 받아들곤 대충 훑어보듯 봤다.

“잘 보셔야 할겁니다.”

김춘옥은 의뢰인의 말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를 배경 사진이었다. 중간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진을 찍는지 전혀 모르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딘가 하나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쓱 훑어지나가다가 시선이 멈춘 그곳에는 일전에 자신에게 찾아와 의뢰를 요구했던 구소민이 있었다.

김춘옥의 동공이 커지고 고개를 치켜들더니 마주앉은 의뢰인에 대해 적대심을 드러내기 위해 눈을 날카롭게 떴다.

“이 사람을 찍은 사진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럼 제가 뭣하러 당신을 찾아왔겠습니까?”

그 말에 김춘옥은 더욱 화가났다.

“다른 의뢰인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는 거라면 나가주세요. 의뢰는 없었던 일로...”

김춘옥이 의뢰를 무마시키려고 하자 의뢰인은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테이블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곤 커다란 손으로 김춘옥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벽으로 밀쳐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뒷머리를 부딪쳤지만, 김춘옥은 아픔보다는 놀라움 때문에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걸 느꼈다.

“쉬­ 쉬­ 쉬­”

김춘옥이 소리라도 지를까 조용히 시키는 의뢰인은 품에서 칼을 뽑아들더니 그녀의 목에 갖다댔다.

“조용히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되. 그럼 목숨은 살려줄게.”

김춘옥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고 의뢰인은 김춘옥의 얼굴을 붙잡고 있던 손을 거뒀다. 칼은 여전히 김춘옥의 목에 가까웠다.

“그 년 지금 어디갔어?”

“몰라요.”

대답하기가 무섭게 목에 칼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주 조금 파고들었지만, 날이 얼마나 서 있었는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늘한 느낌이 든 김춘옥은 질겁을 했다. 이 사람은 날 죽이러 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찔했다. 만족하고 살 수 있었는데 자기 명에도 없던 돈을 탐하려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에 후회의 탄식을 내뱉었다.

“죽고 싶은 거야? 네 재능을 이용해서 그 여자가 어딨는지 알아내란 말이야. 너 신한테 선택받은 여자라며. 아주 용하다며?”

“아까도 말했지만, 이제 더 이상 신을 섬기지 않습니다. 나한테 응답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럼 죽으면 되겠네. 그 신이 네 수명까지 얘기해주지는 않았나보지? 어?”

그렇지 않다. 김춘옥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봤다. 어떻게 죽는지 알고 있었던 거다. 물론 그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해서 지금 프랑스에 와 있는거지만, 어쨌든 바뀌기 전의 운명보다는 훨씬 편안한 죽음이었던 거다.

“한국.”

이 의뢰인이 정말 자신을 죽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김춘옥은 헛되이 죽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있는대로 말하기로 했다.

구소민이 어딜 간다고 정확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한국일 거라고 생각했고 또한 한국에 이 사람을 보내서 빌어먹을 역병이나 걸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다.

“한국? 남한? 너네 고향?”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러니까 거기서 어디? 시발, 거기가 뭐 쥐똥만한 곳이냐? 내가 거길 가면 이 여자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알려줘야지.”

“그건 정말 몰라요. 하지만 한국에 간다고 나한테 얘기했어요.”

“한국이라...”

“근데 왜 그 사람을 찾는 거죠?”

“내가 그 이유를 왜 너한테 말해야되지?”

김춘옥은 생각했다.

여기서 구소민을 쫓는 이유라도 알게 된다면 대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 사람의 동기를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알게 되면 그 여자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되니까요.”

“단서? 아니,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데?”

“신에게 물어볼 겁니다.”

“신? 이제 더 이상 네가 섬기지 않는 그 신?”

“예. 더 이상 섬기지 않는다고해서 제 능력이 없어지는건 아닙니다. 언제든지 다시 꺼내 쓸 수 있죠.”

“만약 그게 거짓말이라면 여기서 네 혀를 뽑아버려 죽일거다. 알겠지?”

“...”

의뢰인은 씩씩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며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김춘옥의 앞으로 와서 칼을 들이밀었다.

“그 여자에게 악마가 씌워져 있다는건 알고 있지?”

“...”

“대답하지 않는걸 보니 알고 있는 모양이군. 우리는 그 악마를 이용할 생각이다.”

“우... 리?”

“구소민이라는 여자한테서 그 악마의 흔적을 꺼내 본모습을 부활시키는 의식을 치를 거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 그럼 어서 네 신에게 물어봐라. 그 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말이야.”

김춘옥은 침을 삼켰다. 이제보니 이 사람들이야말로 역병의 근원이었다. 한국에 역병이 퍼지게 되는 이유도 이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구소민이 어디있는지 말하게 되면 결국 원인제공자는 자신이 되는 거다.

“크윽...”

“왜, 정말 혀가 잘리고 싶은 거야? 빨리 너네 신한테 빌어! 빨리! 이 개같은 년아!”

“싫어...”

“허어... 미친년이 날 갖고 장난을 친 거야? 그럼 죽어!”

“기다려.”

두 사람의 시선이 곧바로 목소리가 나온 쪽으로 쏠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몇 명의 남자가 더 안으로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의리인과 같은 부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의뢰인을 보고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그저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김춘옥은 독 안에 든 쥐가 된 느낌이었다.

사실을 말해도 죽을 것이고 거짓을 말해도 죽을 것이라면 차라리 거짓을 택하겠다.

그런데 또 다시 질문이 날아올줄 알았는데 이제 막 방에 도착한 남자 중에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입을 안 열면 열게 해야지. 죽이면 쓰나.”

남자는 김춘옥의 팔뚝을 야릇하게 어루만졌다. 그리곤 순차적으로 어깨와 목덜미쪽으로 올라오더니 살포시 뭉친 곳을 주물러 풀어주기라도 하듯 안마를 해줬다.

김춘옥은 이 이상한 손짓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제 노인이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나이다. 그런 그녀를 범하는건 아닐 테고 이게 대체 무슨 짓일까?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몸이 하늘하늘하게 풀리는 듯한 느낌.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쾌감이 김춘옥의 몸을 감쌌다.

‘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당으로 살아오면서 쾌감이라는 단어와 별개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다짜고짜 찾아온 쾌감이라는 글자에 원없이 반응을 해버렸다.

“크흐흐... 어때, 이제 말하고 싶어지지 않아?”

김춘옥의 몸에서 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도 했으며 힘이 풀려나가 의자에 앉은 액체괴물이 된 양 흐물흐물하게 누워버렸다.

“아으...”

“자, 이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 세세하게 알아내라. 너의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해서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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