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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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광래는 예전에 수련했던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만났다.
근육으로 다부져진 김광래는 예전처럼 날카로운 바위 위에 엉덩이를 올리는 미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대로 바위에 꼬챙이로 꿰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연에 스며든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전 짬밥이 어딜 가지는 않는 법이다. 도인이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능력은 여전했다. 예를 들어, 신체에서 뽑을 수 있는 기를 운반한다던가 하는 태극권에 해당하는 무술의 종류와 혈맥을 짚어내는 귀신같은 술법만큼은 없어지지 않은 거다.
하지만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어느정도 필요했다. 가만히 명상을 하는 김광래. 나는 김광래가 가부좌를 튼 자리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그와 똑같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저 멍을 때릴 뿐이었다. 그러자 김광래가 보다못해서 내게 말했다.
“시간을 죽일 생각이라면 돌아가거라.”
“아닙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느껴라.”
“뭘요?”
“자연이 가져다주는 색욕... 아니, 자연 그 자체를 느끼라는 거다.”
“솔직히 말해보십시오. 지금 떡 치고 싶어서 미치겠죠?”
“그걸 다스리고 있는 중이다. 네 놈 때문에 내 몸이 이렇게 된 게 아니더냐.”
김광래의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발정난 근육돼지 같으니. 이혜인이랑 조인을 시켜줬더니 그렇게까지 해댈줄은 몰랐다. 이제 완전 이혜인의 노예가 된줄 알았는데 그래도 내 부탁에 기꺼이 나서줬다.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활용도가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줄지 모를 일이었다.
능력없이 저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올곧고 욕망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이었을까.
알고 있었지만, 김광래는 불교신자도 아니었고 그 어떤 종교의 신자도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믿었고 만약 신앙에 가까운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이 그저 자연일 뿐이라는 점.
자연으로부터 기를 가져오고 나에게서 기를 뽑아 자연으로 흡수시킨다.
이것이 김광래가 나를 만났을 때 해줬던 얘기다. 물론 처음에는 그걸 자해라는 거추장하면서도 추잡스러운 방법으로 드러내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자연의 치유능력을 끌고 오는 기술은 내 ‘기적의 손’ 능력을 개방시키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술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앞에 있는 김광래가 잊혀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나 스스로를 되돌아봤던 거다.
내게 있었던 일.
다니엘과 소민의 말을 종합해봤다. 그리고 내가 의식을 잃기 전, 바로 그 순간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김광래가 내게 시켰던 ‘원인 찾기’의 인생 복기법이었다. 확실히 진심으로 처절한 마음을 갖고 복기를 하니 마치 눈 앞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바람 하나, 새소리 하나까지 완벽하게 내 몸에 밀착됐다.
그러다가 어금니를 질끈 물어야하는 상황도 생겼다.
내 무의식은 신용섭을 만난 순간 이전까지 훌쩍 넘어갔다.
어느 순간인가. 내 몸에 이상한 기류가 흡수된 순간이.
그렇다. 문제는 임태훈이었다. 임태훈이 소리를 버럭지르고 내게 달려들었을 때, 나는 그의 손목을 꺾어서 혼쭐을 내줬었다. 그때부터였다. 나한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내 능력은 이전보다도 더 발전했다. 원래는 아주 느릿느릿하게 발전했다면 아주 짧은 순간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내 인생도 진아영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질주해나갔다.
누군가의 미래를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소민. 소민의 미래를 봤던 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소민이 내게 악마를 거론하면서 다니엘과 함께 뭔가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이 자식아? 명상 중에.”
“해야할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김광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지를 툭툭쳐서 먼지를 털어냈다.
“내가 도와줄 일은 이제 끝이냐?”
어서 가서 이혜인과 치던 떡을 마저 치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함께 가주셔야 합니다.”
“아... 정말 귀찮게 하는 녀석이구나. 내 고추가 이렇게 빨딱 서 있는게 보이지 않느냐.”
“남자 사타구니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어서 오시죠.”
조수석에 김광래를 태우고 임태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임태훈이 수감되어있는 교도소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그가 나를 만나주지 않을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가 나를 보기로 결정했고 우리는 잠시 기다렸다가 유리창 하나를 두고 그를 대면할 수 있게 됐다.
임태훈은 전보다도 더 살이 찐 상태였다. 아무래도 감방 생활이 몸에 잘 맞는 모양이다.
“너 이 새끼. 여기가 어딘줄 알고 찾아왔냐?”
역시나 나를 보자마자 으르렁거리는 임태훈.
“옆에는 웬 쫄병 하나를 데리고 왔고.”
김광래는 그딴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나는 김광래를 쳐다봤고 김광래도 임태훈에게서 뭔갈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왜 이 남자를 만나러 왔는지 알겠구나.”
“역시...”
임태훈에게는 일반인에게서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거다.
나 역시 지금은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으나 보나마나 뻔했다. 신용섭이 악마의 능력을 사용했을 때 볼 수 있는 어둠의 기운. 내 능력으로 봤다면 임태훈의 몸 주변에는 그 그을은 듯한 어둠이 잔뜩 보였을 터였다.
그렇다. 나는 그때 임태훈에게서 어떤 어둠을 전수 받은거다.
“임태훈.”
“왜, 이 새꺄. 너 때문에 이 꼴이 났다. 빨리 나 안 꺼내?”
“... 넌 여전히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 나한테 네가 뭔 짓을 했겠지! 내가 그것도 모를거 같냐? 이 버러지같은 놈! 날 여기서 꺼내줘! 당장!”
임태훈은 유리창을 향해 그 육중한 몸을 날려 부딪쳤다. 쾅하는 굉음이 들렸고 옆에 있던 경찰이 임태훈의 옆구리를 향해 전기충격기를 사용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이 사람한테 해야할 말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
씩씩거리는 임태훈. 그 역시 전기충격기를 당하기 싫다면 조용히하고 있어야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임태훈.”
“왜, 이 새꺄.”
“진정하고 앉아.”
처음에 임태훈은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안 하다가 눈치를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 신용섭이라는 사람 알고 있냐?”
내가 신용섭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임태훈은 눈알을 부라리며 얼굴을 유리창에 가까이 가져왔다.
“이 개새끼. 이번에는 또 뭔 짓거리를 해서 날 골탕 먹이려고. 네가 소민이 아버지 낫게 해줬다는 소리를 다 들었다. 이 개새꺄! 소민이가 따먹고 싶었으면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시발... 나를 이 꼴로 만들고...”
“신용섭에 대해서 아는구나?”
“... 그래. 알고 있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 말해.”
“푸하하! 내가 왜? 내가 왜 네가 하라는대로 곧이 곧대로 해야되지? 나는 지금 여기 안에 있다. 그것도 성폭행을 하려했다는 좆같은 누명을 쓰고 말이야. 내 인생은 좆됐어, 시발! 나가면 누가 날 사람취급이나 해주겠냐? 너 때문에 평생 전자발찌 차고 다녀야할 신세인데?”
“... 제대로만 얘기해주면 널 여기서 꺼내주겠다.”
임태훈은 내 제안을 듣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곤 반쯤 선 상체를 다시 뒤로 끌어당겨다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신용섭. 그 양반이 나한테 비트코인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지. 대신 나에게 미래를 내놓으라고 말했다.”
“미래를?”
“그래. 모든 일에는 등가교환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했지. 근데 뭐, 시발. 어차피 좆같은 인생이었는데 미래같은거 개나 줘버리고 악마랑 거래하는 거지. 안 그래?”
“그래서? 그렇게 교환을 했더니 뭐라고 하든?”
“그 다음에는... 구소민이라는 여자한테 접근하라고 말했다. 나는 접근했는데 당연히 차였지. 처음에는 말이야. 그런데 그 여자한테 약점이 있다는걸 전해 듣고나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이 모든건 구소민이 네게 말했던 내용이랑 똑같아!”
“그럼... 그 다음에 신용섭이 접촉했던 사람들은?”
“응? 무슨 뜻이냐?”
“신이설의 아버지... 그러니까 신용섭의 친형에 관련된 일이다. 구소민의 아버지와 신이설의 아버지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상태에 빠졌었지.”
“아, 그것도 알고 있어. 아! 그래! 신용섭이 내가 수감된 후에 날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년에 대한 얘기를 또 나에게 해주더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말해줘.”
“하... 그러니까 신이설이라는 여자한테 약점이 생겼다는 얘기를 나한테 해줬다고!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잠시 무슨 질문을 해야할지 갈팡질팡하자 옆에서 김광래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신용섭에 관한 일이라면 김광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터였다.
“신용섭이 널 꺼내주겠다는 말은 안 했었나?”
“했지. 그렇게 약점이 있는 여자가 있으니 내가 해야할 일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면서 여자의 사진도 나한테 보내줬다. 조만간 나올 수 있을테니까 기다리라고 했지. 그러면서 강준현, 너를 이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돌아오겠다는 말도 추가했다. 나는 그래서 내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웬걸? 시발놈의 신용섭은 온데간데 없고 용천궁은 완전 와해됐다더만. 신문에도 대문짝만하게 그 새끼가 사이비 새끼라고 떠들어대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날 이후로 끝났다고 볼 수 있었지.”
나는 임태훈을 앞에두고 잠시 김광래와 얘기를 했다.
“알 것 같습니다. 스승님. 신용섭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어둠의 거래로 몰아넣었는지요.”
“그래, 나도 알겠다. 그리고 너 역시 그 저주에 걸린 듯하구나.”
“방법이 있겠습니까?”
“음... 오래된 방법이긴 하다만. 떠오르는게 몇 가지가 있긴 하다.”
임태훈은 참을성이 사라졌는지 다시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우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봐... 날 꺼내준다는 약속 반드시 지키라고.”
“가자.”
“어... 임태훈. 내가 꼭 꺼내줄테니까 좆 잡고 반성하고 있어라.”
나는 분개하는 임태훈에게 대놓고 중지를 들어올려 보여줬다.
“야, 이 개새꺄!”
난동을 부리려는 임태훈은 곧바로 전기충격기에 지져져서 잘 익은 돼지고기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스승님. 방법이라는게 뭡니까?”
“속죄다. 너는 의도치 않게 악마와 거래를 하고 말았다. 혹시 신용섭이 네게 거래를 제안한 적이 있느냐?”
“거래는 아니고 내기를 한적은 있습니다.”
“그게 거래인 듯하구나.”
그렇다면 저주는 그때 내기를 했을 때부터 시작된 거다. 악마의 능력은 조금씩 나를 잠식하기 시작하다가 천사의 가호를 받는 그레이스의 보지에 손이 닿자마자 어둠의 기운이 튕겨져 나가면서 나 역시 함께 튕겨져 나간 것이다. 덕분에 의식까지 잃었던 거고 며칠이 지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던 거다.
“속죄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신용섭에게 고통 받은 사람들을 죄다 찾아서 치료해줘야 한다.”
“저한테 능력이 없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멍청한 놈... 언제까지 그 능력에만 기댈 생각이냐?”
“기댈 생각은 아니지만...”
“기댈 생각이 아니라면 수련하는 수밖에.”
김광래는 나를 다시 강원도 산골짜기로 데려갔다.
“이곳에서 내 모든 것이 시작됐듯이 너 역시 수련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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