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 138화 (137/173)

〈 138화 〉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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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은 유럽에서의 생활이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다니엘을 만났던 성당에 꾸준히 출석하면서 한국에 남아있는 아버지 구병훤과 자신의 은인인 준현을 위해 기도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악마에 관한 꿈이었다.

악마의 검고 털 많은 손이 자신의 사타구니 안으로 들어오는 꿈. 그러다 어느순간에는 악마의 몸에서 튀어나온 딱딱한 돌기가 촉수처럼 자신의 성기를 통해 몸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고 현실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소민은 이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무던한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부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정신과 병원에서도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저 좋은 생각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할 뿐이었다.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를 권장하기도 했지만, 소민의 마음에는 오로지 준현뿐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섹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 무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제는 은퇴를 했다고 하는 무당은 나이가 70세가 넘는 노파였다.

왕년에는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돈을 많이 벌었기에 지금은 유럽에서 집 한 채 짓고 놀면서 먹어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다고?”

돈에 아무런 욕심이 없는 노파는 소민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악몽을 꾸고 있어요.”

“악몽 꾸는 사람들이 날 찾아왔으면 여기서부터 고향 땅까지 줄을 서겠다, 이 자식아.”

“...”

노파는 시무룩한 소민을 보자 그래도 얘기나 들어보겠다는 듯 다리를 꼬며 말했다.

“어디 얘기나 해봐라. 얼마나 대단한 꿈을 꿨길래 그러는지.”

소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말했다.

“악마가 나오는 꿈이예요... 매일 밤마다 악마한테 강간을 당하는 그런 꿈을 꾸고 있어요.”

“생생하든?”

“네. 아주 생생했어요.”

노파는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불쑥 가슴께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불을 붙였다.

소민은 그런 노파의 행동 하나하나를 심각하게 쳐다봤다.

“타지 생활이 맞지 않는게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근데 네가 자꾸 그게 신경이 쓰이는 거겠지.”

“아... 그런가요...”

역시나 이번에도 허탕이었나.

어딜 돌아다녀도 이렇다할 대안을 듣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계속해서 똑같은 꿈을 꾼다는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노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악마가 어떻게 생겼든?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

“음... 사실 진짜 악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냥 악마라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요. 왜냐면 피부가 까맣고 털이 달린 데다가 절 괴롭히니까요.”

“응,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데.”

“눈이 세 개가 달려있어요. 흰자위만 있었는데 양눈 사이에 그 눈을 합친만큼 커다란 눈이 있었어요. 다리는 보이지 않았는데 거대한 돌기가 촉수처럼 빠져나와서 절 강간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몸에는 온통 털이 가득하고요.”

“... 음.”

노파는 탄식을 한 번 내뱉은 후에 벌떡 일어나더니 책장에서 뭔갈 찾아서 꺼내왔다. 테이블 위에 그 커다란 고서를 내려놓았는데 하도 먼지가 많아서 내려놓자마자 하얀 먼지가 주변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소민은 콜록거리면서도 노파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자세히 관찰했다.

곧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책장을 거칠게 한 장 한 장씩 넘기는 노파는 어느 지점에서 딱 멈추더니 소민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네가 말한 악마가 이 악마가 맞니?”

“어...”

소민은 노파가 가리키는 방향을 봤다. 그곳에는 흑백사진처럼 보이는 그림이 하나 놓여져 있었는데 그 대상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다른 그림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인 듯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대학의 대학생들 단체사진인 듯했는데 옆 모퉁이 쪽에 아주 조그맣게 그려진 검은 그림자를 가리키고 있었던 거다. 처음에는 정말 그게 그림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소민은 지레 겁을 먹고 탄식을 질렀다.

“아..!”

맞다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뒷걸음질만 쳤다.

꿈에서 나온 그 형체 그대로였다.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그리고 소민은 꿈에서 느꼈던 소름을 지금도 똑같이 느꼈다. 마치 그 악마가 자신의 몸을 훑은 듯한 소름이었다.

노파는 담뱃불을 재떨이에 지져서 끈 후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한국을 떠나서 이곳에 온 이유가 있지. 한국은 조만간 커다란 재앙이 들어닥칠 거거든. 모르고 왔다면 넌 정말 신에게 선택 받은거고.”

“재앙이요?”

다니엘이 말했던 바랑 정확히 일치해서 떨어지니 더욱 소름이 끼쳤다.

“그래, 재앙. 내가 굳이 왜 내 고향 내버려두고 여기까지 피신해 와 있겠니?”

“가, 가족들은..?”

“가족이 어딨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신내림 받았다, 지랄이다 해서 무당짓만 해왔는데 은퇴했다고 나한테 장가 올 미친놈이 어딨겠냐고. 친척들은 내가 가족으로 쳐주지도 않는단다. 그 놈들이 나한테 했던 짓거리들을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려요.”

“...”

근데 그 얘기를 지금 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다. 소민의 꿈과 고향 땅에 들어닥칠 재앙이 대체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네게 악마의 손길이 남아있구나.”

“예?”

“악마의 잔재물이 몸에 남아있는 게야. 심지어 너는 그 손길을 원하고 있기까지 하지. 그러니 네 무의식이 그 손길을 애타게 찾으면서 꿈에서까지 나오는 게다. 한국에서 어떤 놈이랑 잤는지 기억나니?”

잤다면... 준현밖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태훈과도 몇 번 자긴 했지만, 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지는 않았다. 아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었기에 후보로 넣을 가치도 없었다.

그럼 정말 준현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다니엘은 준현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다가 준현이 악마라고 치기에는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줬다. 살신성인으로 제 아버지의 다리를 고쳐놨는데 어찌 그를 악마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짐작가는 놈이 있긴 있나보구나.”

“그런데 그 사람은 아니에요.”

“하! 어디 악마가 지가 악마라고 떠들고 다닌다더냐. 그래, 이건 아주 오래된 졸업앨범이다. 내 사진은 아니란다. 그런데 웃기는건 이 당시에 나한테 이 앨범을 가져다 준 사람도 너랑 비슷한 의뢰를 했던 게 기억이 났다는 거지.”

“아...”

그래서 이 앨범을 보여준 거구나. 그런데 재앙이랑은 대체 무슨 상관이..?

“아마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겠지.”

“무슨 사실이요?”

“이 졸업앨범이 이 학교가 찍어낸 마지막 졸업앨범이라는 걸 말이야.”

“..!”

소민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스산한 기운이 쫙 올라와서 도저히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저 노파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 꿈 속에서 나왔던 악마가 여기에 있다면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데 같이 온 친구들은 믿어주질 않았지. 이제 막 졸업을 한 고등학생인데 친구들이 믿어주질 않으니 원... 억울해서 분개하는 모습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더구나. 그래서 내가 친구들이랑 오지말고 혼자만 오라고 마지막에 언질을 줬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돌아오는 일은 있을 수 없었지. 왜냐하면 다 죽었으니까.”

“그럴수가...”

“미안하다. 너한테 귀신이 씌인 모양이구나.”

“그, 그럼 어떻게 해야하죠?”

“어떻게 하긴... 그 악마를 죽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을거다.”

“... 다른 방법은 없는건가요?”

은인인 준현을 죽일 수도 없었고 은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죽인다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내가 고향 땅을 벗어났겠니? 그 악마가 대한민국을 멸망시킬 근원이라니까!”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하긴 말이 안 되는걸로 따지면 내가 할 일이 사라지지. 이제 어서 가보렴.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거라.”

소민은 노파의 집을 나섰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준현이 악마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순간 갑자기 자기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왜 현시점에서 그런 꿈을 꾸기 시작했는지 말이다.

아무래도 이 일의 진상을 확실히 알아야겠다.

소민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러고 있다간 자기도 죽고 한국도 멸망한다.

악마를 퇴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 알고 있었다.

바로 한국에 있는 다니엘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렇게 소민은 바로 소속사에 어질을 주고 한국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

나는 그레이스의 오색찬란한 점을 없애지 못한 이후로 며칠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내 머릿속으로는 하룻밤 잠을 잤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눈을 뜨니 내가 누워서 7일이나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눈을 뜨니 침대 옆에는 익숙했던 얼굴들이 다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진아영, 서아, 연두, 이설, 유영, 도하, 치요, 그레이스. 그리고 뒤쪽에는 최원재도 있었고 구석진 곳에는 한서연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다니엘은 없었다.

내가 눈을 뜨자 여자들은 난리가 났다.

드디어 오빠가 일어났다는 둥, 사장님 죽는줄 알았다는 둥, 2호점 내기 전에 못 죽는다는 둥, 월급 한번만 받아보는게 소원이라는 둥 장난 반 진심 반 섞인 소리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나는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왜 7일이나 의식을 잃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레이스의 반점 때문이었다. 마치 튕겨져 나온 것 같은 충격. 그리고 그 이후에 힘이 빠지고 의식을 잃었었다.

‘이건... 좀 더 알아봐야겠다.’

“아야!”

하도 난리를 치는 통에 누군가 하나는 다치겠거니 했는데 제일 허당인 도하가 손목을 움켜잡으며 아파했다.

“도하 씨, 다쳤어?”

“어디 봐봐.”

“살짝 근육이 놀란거 같아요. 아, 아포...”

어? 다쳤다고?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근육이 놀랐다면 수축했을 터. 그런데 왜 붉은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거지?’

능력을... 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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