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118화
* * *
“그래서... 저 외국인이 누구라고?”
“다니엘...”
“파티잖아! 근데 왠 신부님이...”
나는 일행을 데리고 그대로 우리 집에 도착했다. 연예인들은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러 간데다가 대대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번 촬영은 공식적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으니 마무리 회식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제작진 측에서는 신용섭을 고소하기로 했다. 이번 촬영을 위해 들인 돈이 얼마겠는가. 게다가 예정에도 없이 촬영본 하루치가 날아가버렸으니 열 받을 법도 했다.
그런데 신용섭이 사라진 걸 알고 난 후에는 그의 행방을 찾기 바빴다.
그래서 나는 서아와 연두 그리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신이설을 데리고 고깃집에 왔다. 그런데 다니엘도 따라왔고 허도하도 따라왔다.
“근데 도하 씨는 왜..?”
“내가 데려왔어, 오빠. 하나 더 있어도 상관없잖아? 오빠도 용천궁에서 도하 씨 엄청 마음에 들어했으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바쁘신거 아니냐고.”
“저, 저 퇴근시간인걸요... 제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구요!”
“어이쿠. 알겠어요. 화내지 마시고요. 저기... 신부님? 고기 드셔도 되는 거예요?”
“저 삼겹살 좋아합니다.”
“...”
허도하가 자기가 고기를 잘 굽는다며 집게와 가위를 가져갔고 푸른눈의 흑인 신부는 그 고기가 익을 때만을 기다리며 침을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조합이다. 여기에 신이설까지 있으니 이 어색한 분위기를 대체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기가 익을 때만을 기다릴 수 없었는지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깃집 냉장고로 걸어가서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소주 2병과 맥주 3병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가져왔다.
그러더니 잔을 여섯 개를 늘어놓고는 신랄하게 소맥을 말아 각자 한잔씩 나눠줬다.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짠
우리는 각자 자기 앞에 놓인 소맥을 원샷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들도 신부가 말아주는 소맥은 처음 먹어보기에 신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야아!!
“신난다!”
“엄마, 나 방송 탔어!”
“어어... 고기 타요!”
“프랑스에서 삼겹살은 상상도 못하죠. 특히 김치에 돌돌 말아먹는 삼겹살은 환상입니다.”
소맥 한잔에 분위기가 어느덧 달아올랐다. 고기도 한점씩 돌아가면서 먹고 각자 행복한 미소를 만연하게 띄웠다.
“역시 일하고 난 후에 겹살은 최고야!”
“우리 많이 먹어도 되지, 오빠?”
“당연하지. 오늘 나 따라와서 욕 많이 봤다.”
“히”
그렇게 서아와 연두와 친근하게 얘기했더니 맞은편에서 신이설이 눈길 신호를 보내왔다.
밖으로 나오라는 뜻일까. 나는 헛기침을 두세 번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 좀 피고 올게.”
“쭌~ 담배 언제 끊게~?”
“죽기 전에?”
“에이 몸에 해로운거 그만 피우지.”
내가 고깃집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신이설이 뒤따라 나왔다. 신이설은 대리석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더니 한숨을 쉬었다.
“신용섭이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 나도 정확히는 몰라요.”
“나 완전 멍청해 보이죠? 신용섭한테 이용당해서 직장까지 그만뒀는데. 그것도 친척이라고...”
“원래 가족이 제일 무서운 법이에요. 피를 내세워서 사기를 치는데 누군들 안 속을까요?”
“그래도 조심했어야 했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버지 병상에 계시는걸 알았나 했더니 그놈 짓이었다니.”
어찌보면 이 사건의 피해자는 신이설이었다.
신용섭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신이설을 이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머발에스에 취직하는 일만 없었어도 신이설에게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한테 맡겨요. 금방 낫게 해드릴게요.”
“... 네.”
“오늘은 쉬어요. 어차피 나도 진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신용섭의 어둠의 기운을 사라지게 만드는 ‘기적의 손’을 사용하려면 어느정도의 체력도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섹스. 섹스를 필요 충족조건이었다.
“그래요... 근데 나 용서해주는 거예요?”
“용서?”
나는 입에 담배를 물고 연기를 바깥으로 훅 불어냈다.
“용서하고 말고 할게 있나요? 나였어도 똑같이 그렇게 했을 거예요.”
나는 구소민을 떠올리며 말했다.
“원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보이는게 없는 법이죠.”
“그래도 그렇게 해놓고 떠났는데...”
“그냥 궁금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한테 이러는 걸까... 다음에는 그러지 마요. 날 조금만 더 믿어줘봐요.”
쪼그려앉은 신이설이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눈망울로 날 올려다봤다. 나는 손높이에 있는 그녀의 머리를 작게 헝클여줬다.
“실장님이라고 불러도 되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신이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 그만뒀잖아요.”
“아직 공식적으로는 머발에스 소속인 걸요.”
“...”
“그리고 이번에 새로 2호점 오픈할 건데 제가 거기 사장으로 들어갈 거예요.”
“헉! 진짜요? 어떻게..?”
“돈 대주시는 분이 두 분 정도 계셔서요. 저라는 간판이 있는 업장인데 어때요? 이번 기회에 용천궁 고객들까지 전부 유치하고 싶은데 이설 실장이라면 가능할거 같아서요.”
신이설은 흐드러진 눈망울을 바로잡고 강렬하게 안광을 빛냈다.
‘저거야. 내가 보고싶었던 신이설의 눈.’
“당연하죠!”
신이설은 벌떡 일어났고 살짝 뛰면서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말았다.
“그럼 앞으로 머발에스 2호점 실장님 맡는 겁니다.”
“네!”
“도망가면 안 되요.”
“아이, 참...”
“그럼 안으로 들어가죠.”
“... 네.”
그렇게 신이설과 나의 오해는 풀었다. 하긴 이미 이 자리에 따라온 순간부터 오해는 풀렸다고 할 수 있다. 신이설은 자리에 앉자마자 예전의 활력을 되찾았는지 연두에게 살갑게 말했다.
“연두쌤. 2호점 오픈하는거 알고 있었어요?”
“어, 예! 저도 가는걸요?”
“와! 진짜? 그럼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하겠네?”
연두는 내 얼굴과 신이설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밖을 한번 가리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서 그 얘기하고 오신거구나! 아, 진짜 너무 좋아요! 어떡해... 실장님이랑 다시 같이 일할 수 있게 되다니. 이제 영영 용천궁으로 도망간줄 알았다고요.”
“히히... 용천궁에 있으면 제가 사람이 아니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오... 저도 2호점 직원으로 들어가요. 김서아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신이설이라고 합니다.”
“동갑이니까 둘이 친하게 지내세요.”
내가 알려주자 두 사람은 동시에 눈동자를 크게 떴다.
“아, 정말요? 그럼 우리 말 놓을까요?”
“좋아요!”
“좋아.”
“이설이라고 했지? 너 진짜 예쁘게 생겼다.”
“에이, 뭔 소리야. 너가 더 예쁘지.”
그렇게 삼인방이 결성된 이후부터 세 사람은 서로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셀카도 찍고 라이브방송을 틀어놓고 시청자들이랑 소통까지 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어쩐지 멎쩍어 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허도하와 다니엘이었다.
아니, 다니엘은 사실 전혀 멎쩍어 하지 않았다... 제일 외람된 사람인 주제에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잘 놀았다. 삼인방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혼자있는 허도하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허도하는 불쌍하게 앉아서 열심히 여섯 사람의 고기를 굽기 바빴다.
정말이지 착해빠진 사람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붙어서 앉았다.
서로의 엉덩이가 착 달라붙자 허도하는 당황해서 집게를 바닥에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으악!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어요. 도하 씨.”
“... 아잇... 아닙니다... 주의를...”
“괜찮다니까요? 집게 이리 줘봐요. 가위도 주고요.”
나는 그녀의 옆에서 고기를 구웠다.
사실 나는 고기를 존나 잘 굽는다. 군대 있을 때도 그랬고 취업준비 중에 삼겹살집 알바도 했었던 거다.
생각보다 내가 고기를 잘 굽자 허도하는 달라는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다가 이제는 현란한 손동작을 쳐다보기만 했다.
여섯명의 고기를 쉬지 않고 굽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잘 활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정확한 타이밍에 뒤집는 내 실력이 꽤나 신기하게 보였나보다.
‘근데 여즉 엉덩이를 안 떼고 있네?’
내가 붙여놓은 엉덩이가 아직 그대로였다. 가끔씩 허리를 씰룩 움직였는데 그럴수록 부드러운 마찰이 발생할 뿐이었다.
“다니엘, 이거 먹어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다니엘은 우리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다니엘은 우리가 곧 섹스를 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눈빛은 정말이지 거짓이 하나도 없었다.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랄까.
신부 주제에 음흉한 눈을 뜨기는...
그러나 나는 지금 상태의 허도하와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마사지를 하면 또 모르겠다. 그녀의 몸은 ‘기적의 손’과 어느정도의 성욕만 있으면 김광래 때와 마찬가지로 핫바디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골격이라던지 기본적인 바스트의 크기가 탈아시아인급이라 구소민같은 모델처럼 만드는건 우스울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적의 손’을 발동할 수 없다. 따라서 허도하와의 잠자리는 나중으로 미룰 것이다.
휘익
그런데 이번에는 다니엘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아까 신이설이 내게 신호를 보냈을 때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려 잠깐 밖으로 나오라고 신호를 주고 있었다.
나는 집게와 가위를 이번에는 서아에게 건네줬다.
“이제 너가 구워.”
“아, 응!”
말 잘 듣는 서아에게 맡기고 절대 허도하에게 뺏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니엘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술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지 혈색이 용천궁 앞에서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로였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실천하실 계획이시군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섹스요. 섹스.”
“아니, 신부님이 섹스라는 단어를 그렇게 말해도 되요?”
“오! 저희가 신부라고 해도 섹스를 안 하는건 아니랍니다. 섹스는 주님의 자식인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결혼도 안 한 상대와 섹스를 하니까 그게 문제잖아요.”
“오, 괜찮습니다. 어쨌든 그 행위 자체가 인류를 보존하기 위함이니까요.”
“...”
말을 말자 싶었다.
다니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더니 주머니에서 뭔갈 꺼내서 내게 건네줬다.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이었다.
“이건..?”
“써보세요. 써보시면 압니다.”
그리곤 다니엘 신부는 내게 윙크를 날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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