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117화
* * *
“후우...”
신용섭이 차에 탔고 나와 김광래는 응급차가 와서 다친 곳을 손봐줬다. 다른 사람들도 혹시나 다친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그만큼 촬영현장은 난장판이 나 있었던 거다.
나는 밖에서 담배를 피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김광래는 입안에 피가 고였는지 병원에 잠시 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신용섭에게 마사지를 받았던 사람들은 전부 병원으로 이송되기로 확정됐다. 신용섭의 파격적인 소리듣고 제작진이 내린 결단이었다. 연예인들의 죽음은 치명적이다. 그들의 떼죽음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모르는 일인 거다. 제작진의 과감한 판단은 칭찬할 만했다. 그러나 내게 보이면 되는걸 굳이 병원에 입원시키는건 좀 아쉬웠다.
“죄송합니다. 그분이 그런 분인지 전혀 몰랐어요.”
허도하가 굳이 내게 찾아와서 제작진의 뜻을 전했다.
“아닙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다시 담배피기에 집중하자 그녀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신용섭 씨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계셨어요?”
“네..? 아뇨. 저도 몰랐습니다. 어느정도 예상만 하고 있었을 뿐이죠.”
솔직하게 얘기해서 좋을게 없었다.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고 허도하는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거다.
그런데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있던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신용섭 씨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담배를 바닥에 던져 끄고 남자를 따라갔다.
나를 차에 태운 남자는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신용섭 씨는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건가요? 사람을 해칠만한 능력이라는 건 그가 증언한 바가 있어서 알겠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인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그 부분에서는 저도 협조해드릴 수 없습니다... 저도 모르니까요. 아마 그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시는게 나을 겁니다.”
이건 사실이었다. 내가 치료를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독극물을 투하시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우리 몸에도 독소가 존재합니다. 그런 독소들을 활성화시켜서 움직이게 만드는게 신용섭의 주요 방법이 아닐지 예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냥 제 추측일 뿐이라서요.”
“음.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예?”
“강준현 씨가 그가 풀어놓은 독소를 어떻게 진정시켰는지 궁금하거든요. 사실 이 때문에 강준현 씨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사실 신용섭의 능력이야 어떻게든 나불거려도 상관은 없었을 터.
그러나 내 능력 얘기로 넘어가면 달라진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섣불리 말해준단 말인가.
“제 능력은 마사지입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그런데 뭐하시는 분인지 여쭤보지도 않았군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는 국제재난 특별관리부라고 써있는 명함을 내게 내밀었다.
한문으로 적혀 있었는데 남자가 자신의 이름이 양위한이라는 걸 설명하면서 나머지도 전부 설명해줬다.
“국제재난 특별관리부?”
“네. 국가 단위의 재앙이 벌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일하는 조직입니다. 그것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있죠.”
“아...”
“그래서 말입니다.”
양위한은 자세를 조금 숙이고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신용섭 씨를 저희 중국에서 데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예?! 검찰에 넘기는게 아니고요?”
“그렇죠. 사실 검찰에서는 신용섭의 죄를 묻기 힘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심증이 있다해도 물증이 없기 때문에 막판에 가서 증거자료 제출할 때 잡아떼면 승산이 없거든요. 막말로 그가 주사를 통해 독극물을 주입했다는 증거도 없고 말씀하신대로라면 아주 오랜 시간 후에야 그 증상이 나타나는건데 애초에 당한 사람들 중에서 그를 신고했던 사람도 없고 심지어 유가족조차 의심을 안 하거든요.”
“아...”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회적으로 매장은 할 수 있을지언정 구속시키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다.
“중국에 데려가서는?”
“중국 당국에서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특별관리부에서 재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신용섭을 잡아둘 수는 있을 겁니다. 능력에 대해 문책할 수도 있고요.”
차라리 그게 나으려나...
김광래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게다가 이 상태로 신용섭이 검찰로 넘어가면 다시 빼내기도 힘들다.
“근데 그걸 저보고 선택하라는 건가요?”
“아무래도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신 분이니까요. 고소를 하더라도 강준현 씨가 하시지 않겠습니까? 아까 얘기 들어보니까 고소를 위해 증거자료도 준비해두셨다고 들었는데요.”
“네, 맞습니다...”
“그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저희에게 맡겨달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국가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조직은 그걸 사람들이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드릴수 있고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실 많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논제였다.
나로서는 신용섭을 감옥에 쳐넣을 수도, 관리할 수도 없었다.
“좋습니다. 고소는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특별관리부에서 그 사람을 잘 관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요즘은 sns가 하도 판을 쳐대서 자칫 잘못하면 비밀스럽게 움직이기 힘들어서요. 그럼...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나는 차에서 내렸고 국가재난 특별관리부 사람들이 신용섭을 다시 옮겨 태운 후에 떠나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선택이었겠지? 뭐, 뭐가 됐든 일 크게 벌려서 좋을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몸을 휙 돌리는데 이번에는 또 흑인 한 명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니엘입니다. 천주교 신부고요.”
‘이번에는 종교인이냐...’
자신을 다니엘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푸른색 안광을 밝히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그와 악수를 했다.
“저는 프랑스에서 왔고, 구소민 씨에게 소개를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소민이가..? 무슨 일이죠?”
유럽계 흑인인 모양인데 한국말을 그런대로 잘 구사했다.
그나저나 구소민이 소개를 해줬다니 전혀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구소민이라면 미리 연락을 해줬을텐데 말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꼼지락댔다. 어쩌면 내가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요즘 방송 때문에 통 연락을 못 한 것도 있고 고객관리같은 일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바빴던 거다.
“아쉽게도 제가 좀 늦게 온것 같습니다.”
“...”
나는 말 없이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방금 악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중국으로 이동했으니까요.”
“앗! 그걸 어떻게...”
“강준현 씨가 주님의 은사를 받았듯이 저에게도 은사가 있습니다.”
나에게 은사라는 표현을 쓸 정도라면 ‘기적의 손’을 얘기하는 걸까. 그럼 이 사람의 능력은 예지능력같은 종류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준비를 하기에는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날을 위해 준비한다면 충분히 전염병의 창궐을 막을 수 있습니다.”
*
오빠, 죄송해요... 놀라셨죠?
“아니야, 소민아. 프랑스에서는 잘 지내고 있어?”
아, 예... 매일매일 행복한 하루 보내고 있죠.
“내가 전화도 못 받고 문자도 못 받아서 미안해. 아버님은 잘 계신대?”
네! 진짜 편안하게 잘 지내시는거 같아요. 용돈도 드렸거든요. 근데 원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있는데 다시 시작하신거 같더라구요.
“일? 무슨 일?”
사업을 하시는데... 예전에 친구분이랑 동업하셨거든요. 지금은 잘 되시는거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그럼.”
이번에 2호점 오픈하신다면서요?
“어... 맞지... 누구한테 들었어?”
서아 언니한테요. 2호점 오픈하면 남자들도 받는다고 하던데 저희 아버지가 엄청 기대중이셔요. 어떻게 보답할 길이 없나 고민 중이시거든요. 맨날 저한테는 시집 가라고... 나참...
“아버님 오시면 내가 맡아서 해드리지.”
오! 정말요? 고마워요... 저, 그럼... 이만... 일이 있어서요.
“응, 그래. 열심히 일해야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되.”
나처럼 말이지.
나는 구소민과 전화를 끊었다. 다니엘과는 이야기를 마쳤다. 그는 사뭇 진지한 얘기를 늘어놨는데 처음부터 신용섭의 존재를 눈치챈 것과 그가 중국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신빙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그를 믿어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들어봤을 때는 더욱 그랬다.
요는 이거였다. 신용섭을 중국으로 보낸 양위한은 특별관리부가 아니라 사실 전염병을 연구하는 사람이었고 테러리스트 중 하나라고 한다. 신용섭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아챈 그들은 그를 데려오기 위해 한국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으로 데려가는데 성공시킨 것이다.
그를 막기 위한 대항마는 당연히 나였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마사지를 통해 항체를 심어줘야 했다.
“근데 항체를 심어준다고 해도 그게 오래 가지는 않을텐데요. 보통 제 능력의 지속시간은 24시간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 그건 방법이 있습니다. 체내에 아주 깊숙하게 남기는 방법입니다.”
“..?”
“아마 그 방법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 대상은 여성들에 한해서지만요.”
“여성들한테만요? 아...”
“최근들어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여자들의 피부가 좋아졌다던지 주름살이 개선된다든지 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거...
바로 질내사정이다.
깊숙하게 내 잔향을 남기는 방법이 그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내 정액맛을 본 여자들은 피부가 좋아졌고 주름살이 개선됐었다.
따라서 다니엘이 하는 말에 신빙성은 더 높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최대한 많은 여자들하고 섹스를 하면서 몸에 항체를 심어주면 된다는 것 아닌가.
“그럼 남자들은요?”
“그 부분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나는 다니엘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다니엘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상한 방법을 사용하겠다는게 아닙니다. 신부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사용할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저대로 열심히 하면 되고...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네, 뭐. 그렇습니다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네? 뭔데요?”
“한국에 계속 머물러야 할 것 같은데 돈도 없고 집도 없어서요. 혹시 괜찮으시면...”
“절대 안 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