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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화 〉 116화 (115/173)

〈 116화 〉 116화

* * *

3일 전,

김광래의 심장이 2분 이상 멈춘 날. 생태학적으로 죽음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그 비루한 몸뚱아리는 나의 기적의 손을 통해 분홍색점이 생긴 후, 갑작스레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었을 때,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고? 사실 어떻게 보면 이미 나는 예전에도 진아영의 목숨을 살린 적이 있었다. 첫 마사지였고,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때도 사람을 살렸는데 지금이라고 안 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김광래는 심장이 다시 뛰긴 했지만, 다시 죽을 것처럼 힘이 없었다. 숨을 쉬는건지 안 쉬는건지도 코 밑에 손을 가져다대기 전까지는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강화된 분홍색점을 제거하자마자 김광래의 몸에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다른 여러 색상 중에서도 분홍색점을 선택한 건 신의 한수였다. 그동안 속세에서 벗어나 금욕생활을 꽤나 오랫동안 해왔을 김광래다. 때문에 성욕의 도화선을 당기는 순간, 욕망의 뚝이 터져버렸고 그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 심장을 미친 듯이 빠르게 돌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딱 하나.

이미 심장 부근을 붉게 물들인 반점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빠르게 제거하자 잔뜩 긴장한 심장이 느슨해지면서 김광래의 몸에 혈기가 싹 돌았다.

“커헉!”

거센 신음을 내뱉으며 김광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승님! 괜찮아요?”

“쿨럭... 하... 너 같으면 저승길을 보고 왔는데 괜찮겠냐?”

그런데 김광래의 몸 어딘가가 이상했다. 바지 사이가 불끈 솟아오른게 분홍색점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모양이다.

“후욱... 후욱...”

주체할 수 없는 성욕. 그렇다고 그 성욕을 내게 풀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 반짝이는 왼손의 황금색 반점을 내려다보면서 김광래에게 말했다.

“도인.”

“어?”

“목숨 살려줬는데 이왕 이렇게 된거 뭐 하나 시험삼아 해도 되겠습니까?”

“이게 개같은 소리야? 내 나이가 몇인줄 알고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도인의 상태는 성욕에 잠식된 상태예요. 이 상태가 유지될 거라는 보장도 없고 이 상태가 끝나면 다시 죽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태고요. 그러니까 노인네 몸이지만, 제가 뭐 하나 해보겠습니다.”

“...”

김광래는 처음에는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성욕에 잠식당한 탓에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이다. 지혜로운 판단을 하기엔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나 역시 내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있는지 쉽사리 분간하기 쉽지 않다. 나는 아직 미완성 상태고 공부해야할 것이 많다.

‘그래서 공부하려고.’

나는 김광래에게 내게 ‘기적의 손’ 능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며 활용법에 대해 설명해줬다.

내 말을 듣고 깊게 생각에 잠긴 김광래가 말했다.

“예부터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 했다. 주로 종교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던지 도처를 떠도는 연금술사나 속세를 벗어난 나와 같은 사람들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이 자리에 서 봐서 알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는 알 수가 없군... 전설은 전설일 뿐이니까 말이야.”

갑자기 묻지도 않은 얘기를 잔뜩 늘어놓은 김광래는 선뜻 자기 몸을 내어줬다.

“자, 그럼 어디 해봐라.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너한테 빚진 목숨이니 너 때문에 죽더라도 할 말은 없겠지.”

그래. 죽을수도 있을 거다. 과연 노인의 몸으로 보라색점을 통해 몸을 강화시키는게 가능한 건지는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새벽시간 내내 김광래의 몸을 강화시켜준 결과, 그는 드래곤볼에 나오는 무천도사의 에네르기파 쏘기 직전 모습만큼이나 몸이 커져있었다.

“헉... 헉...”

그의 몸을 바꿀 수 있는 요인은 간단했다. 끓어넘치는 성욕을 그대로 부족한 근력으로 치환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노화된 세포와 피부 및 골격들이 안정을 찾으면서 안티에이징 효과까지 받았다.

그 순간부터는 재미가 붙어서 마구 마사지를 해나갔다. 조립식 장난감을 조립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내가 만지는대로 확확 바뀌는 김광래는 작업이 끝난 이후에 장난스럽게 내쪽을 향해 큰절을 하기까지 했다.

“진정한 기적의 손이구나.”

“아닙니다. 스승님. 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죠.”

“너도 참 웃기는 놈이구나. 내가 알려준 거라고 해봤자 자해밖에 없는데 그 경지까지 이르른 것은 온전히 네 성과다.”

“그것도 맞죠.”

“...”

*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금 김광래가 신용섭 앞에 이토록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거다.

이에 신용섭은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지지 않기 위해 적반하장 격으로 자신이 배신한 스승에게 되려 화를 냈다.

“김광래. 그래, 네놈은 내 옛스승이었지. 하지만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네 밑으로 들어갔던 건 내 위대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발걸음일 뿐이었어. 넌 나한테 이용 당한거야!”

김광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위대한 계획?”

“그래! 내 위대한 계획! 두고보면 알아. 내가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내가 어떻게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쓸어담는지!”

“무슨 소리냐... 용섭아. 이 녀석아. 그게 무슨 소리냔 말이다.”

김광래가 애걸하듯 말하자 신용섭은 우위를 차지했다고 생각했는지 씩씩거리며 계속 말을 이어붙였다.

“사람이 태어나면 자연스레 누군가는 죽어야하는 법. 그것이 생과 사의 자연스러운 굴레가 아니겠어? 그런데 세상은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무던하게 애를 쓰지. 특히 네놈의 제자들이 활개를 치는 모습은 아주 눈 꼴시려서 봐주기 힘들었다.”

“... 그래서 그들을 죽인거냐?”

“큭! 크하하. 나는 운명을 따랐을 뿐이야. 그들이 살려준 사람들이 하도 많았기에 이미 인간의 생태계는 부자연스럽게 어지러진 것이지. 나는 그걸 바로 잡았을 뿐이고.”

내가 옆에서 김광래를 대신해 말했다.

“그래서 여기있는 사람들도 다 죽이려고 했던 거고?”

“흐흐... 무슨 수를 썼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알 수 있다면?”

“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알 수 있다면. 그걸 증명할 수 있다면 네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에 대한 죄의 대가를 전부 치러야겠지.”

“네가 무슨 수로?”

“아직도 모르겠냐? 유석우, 김정현, 한소희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 전부. 내가 치료했다. 네 손길에서 벗어났다는 얘기다. 그들이 죽는 일은 없어.”

“...”

당황한 표정의 신용섭.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서 카메라 앵글을 살폈다. 정확히 신용섭의 얼굴을 찍고 있다.

장내도 조용했다.

신용섭의 폭탄발언은 아까 김정현에 관련된 작은 사고 때보다도 훨씬 파격적인 것이어서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떤 리액션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제 이 순간만큼은 예능과 거리가 멀었던 거다.

“네가 어떻게 그걸...”

“그 말은 즉, 네가 했던 일들을 자수한다는 소리네.”

“개소리 하지 말아. 내가 한 건 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마사지일 뿐이었어. 아픈 곳이 사라지고 힘이 생기는 게 좋은 마사지지.”

“신이설이랑 그녀의 아버지에게 해준 것처럼? 구소민의 아버지인 구병훤을 앉은뱅이로 만들어서 병원에 입원시킨 것처럼?”

“이 자식이! 그건 불운한 사고였어!”

“아니! 사고 당시에는 치료를 통해 충분히 완치가 가능했을 거야. 하지만 네놈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지. 두 사람을 금전적이든 어떤 부분에서든 이용하려고 말이야. 네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임태훈에게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를거 같아?”

나는 그간 3일 동안 여러 가지 조사를 해놨다.

신용섭이 아무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해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게 공부를 해뒀던 거다.

“증인은 많아. 지금부터는 여기있는 사람들 전부 다 증인이다.”

마사지룸의 커텐을 걷어내자 화면으로만 지켜보고 있던 워킹맨의 멤버들이 전부 신용섭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체 상태의 신용섭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는 이제야 자신이 이성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아니... 나는...”

“구속을 피할 수 없을 거다. 신용섭.”

“이런 씨발! 내가 이렇게 쉽게 당할거 같아!”

신용섭은 재빨리 자신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둔 비기인 듯. 그의 몸은 어느순간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몸 주변이 얼마나 뜨거운지 열기가 모락모락 올라올 정도였다.

“크하아...”

본인조차 견디기 힘든 듯 고통에 울부짖는 신용섭. 그는 결국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주먹을 불끈 쥐고 내 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지도 않았다. 내 앞을 막아주는 도사님 한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퍼억­!

근육으로 무장한 신용섭의 주먹을 막은 것은 다름아닌 김광래였다. 옛 사제의 대결이다. 육중한 몸이 타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다리가 후달릴 정도의 타격음이 이리저리 들려왔다.

퍼억­ 퍼억­ 퍼억­

서로의 복부를 강타하고 얼굴을 때리고 무섭게 목을 잡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등. 기술적인 부분은 떨어질지 몰라도 타격 하나만큼은 하나하나가 매섭게 꽂혀 들어갔다.

아무래도 어둠의 기운을 받고있는 신용섭이 더 유리할 듯했으나 20년 전으로 회귀한 듯한 김광래도 만만치 않았다.

우득­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푸른점이 피어오르자마자 그것을 제거하고 곧바로 보라색점을 없앴다.

아까 전에 만들어놨던 몸은 보다 더 육중하고 단단하게 자리잡혔다. 두 사람이 싸우는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중재했다.

간단했다. 신용섭의 어두운 기운을 흡수하고 제거하면서 조금씩 그의 힘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제압했을 때는 경찰이 용천궁에 진입한 상태였다.

“다 끝났다, 용섭아... 죽을 때까지 속죄하며 살아라...”

“크윽...”

김광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고 신용섭은 수갑을 찼다.

그때까지도 그를 제압하기 위해 내가 온몸으로 눌러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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