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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 112화 (111/173)

〈 112화 〉 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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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다 똑같은 스승을 둔 거 같은데...”

눈빛 한차례 흔들린 신용섭은 기대고 있던 등을 갑자기 튕겨내며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하! 이 미친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그 기술을 너만 배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아무렇지 않은척하지만 녀석의 눈은 이미 심각하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하얗게 질린 혈색부터 떨리는 손과 몸에 묻어나오는 식은땀까지. 정신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여유로울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보고싶지 않냐? 오래 전에 관뒀다해도 긴 세월을 함께 했으니 말이야.”

도인에게 신용섭에 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신용섭이 도인의 밑으로 들어가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배신하고 악마의 능력을 손에 넣은 것까지. 배은망덕함의 끝판왕이 바로 신용섭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내게 들키기 싫어할 게 분명했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신용섭의 몸에서 울긋불긋한 점이 솟아올라오나 싶었는데 보라색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격지심을 뜻하는 보라색점. 남들과 비교당하는 삶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도인의 말대로라면 처음 시작할 때는 도인의 제자가 꽤나 있었다고 들었다. 신용섭은 배신을 했기 때문에 그들보다 훨씬 더 일찍 사회로 나갔으나 처음에는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설설 기었을 터. 그 동안에는 도인의 다른 제자들이 활약을 펼쳤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네 놈 보라색점은 지워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 양반은 죽었어.”

“...”

신용섭은 자기 스승이 죽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이 치졸한 놈. 쓰레기같은 놈. 사람의 탈을 쓰고서 어쩜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네놈이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양반을 만났다는 개소리를 할거라면 그만둬. 그 양반, 절대 다시는 제자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렇겠지. 네놈이 배신을 하고 나갔으니까.”

“... 그만하지. 촬영이나 마저 하자고.”

“그래. 유석우 씨에게 한 짓도 내가 돌려놓을 거다.”

“... 쓸데없는 소리.”

신용섭은 그렇게만 말하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헐레벌떡 도망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한창 재밌는 꽁트를 마친 유석우와 워킹맨 멤버들은 깔깔 웃으며 우리의 복귀를 눈치채지 못했다.

“자아... 그럼 마지막 미션을 시작할까요?”

“좋습니다!”

“아니, 그 전에 두 번째 미션의 승리팀에게 세 번째 미션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주어집니다. 강준현 씨?”

“네.”

“오셔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나는 PD에게 가서 따로 보상을 받았다.

손바닥 레이스 두 번째 미션의 보상은... 장갑이었다. 그것도 벙어리 장갑. 이걸 착용하면 절대 마사지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장갑을 누구에게 착용시킬지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우리 팀이 끼는게 아니라 상대에게 끼우는 것이었다.

당연히 신용섭을 선택하는 게 우리 팀에게 유리할 것이다.

팀원들도 어서 신용섭에게 벙어리 장갑을 끼우라고 말했다.

“당연한거 아니에요?”

“벙어리장가아압! 푸핰! 이거 끼고 어떻게 마사지해.”

“진짜 제작진 미쳤나봐!”

“우리 PD양반이 미쳤어요!”

“아뇨.”

“... 엥?”

“우리는 이걸 고시훈 씨에게 씌울 겁니다.”

“아니, 왜요?”

“마사지 못하게 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분명 손바닥 레이스라고 해서 마사지하는 미션일텐데?”

“신용섭 씨한테 이걸 써버리면 정정당당하게 이겼다는 소리를 못 들을거 같아서요.”

사실 정정당당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진지 오래다.

나와 신용섭 모두 각자가 가진 초능력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과할 정도로 남용하면서 말이다.

내가 말하자 유석우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캬, 진짜 강준현 씨는 인성도 기적이네요. 어떻게 얻은 비장의 무기인데 신용섭 씨한테 벙어리장갑을 안 끼우고! 고시훈에게!”

바로 벙어리장갑을 받아들어서 고시훈에게 내밀었다. 고시훈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벙어리를 받아들고 그걸 양손에 착용했다.

“자, 그럼 세 번째 미션은 대체 뭐죠? 벙어리장갑이 얼마나 쥐약처럼 느껴질지.”

“아니... 그 전에! 신용섭 팀에서도 첫 번째 미션에서 받은 보상을 쓰셔야죠.”

“아, 그렇죠! 뭐죠?”

“바로 수갑입니다. 이걸 누구한테 착용할지는 신용섭 씨가 정해주세요.”

아뿔싸. 우리쪽에서 먼저 선택하고 그 다음에 신용섭이 선택하게 될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호의를 베풀었지만 신용섭은...

“당연히 강준현 씨한테 착용시키겠습니다.”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결과였을까.

장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신용섭 팀의 팀원들도 이번 선택에는 불만을 표출했다.

“아니...”

“이건 좀...”

벙어리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고시훈조차도 나무라는 눈빛을 보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죠. 자신한테 있는 무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도 실력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야비한 놈이라는 낙인이 찍히는건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의 유석우가 내 손에 수갑을 채워주는 걸 보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아!”

“앗! 왜요..! 강준현 씨. 수갑이 불편하신가요?”

“아, 아닙니다.”

‘신용섭... 설마 처음부터 워킹맨의 멤버들을 죽일 생각이었던 건가?’

그러면 모든 퍼즐조각이 들어맞는다.

야비한 짓을 하면서까지 이기려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여기 있는 모든 멤버들의 몸을 한 차례씩 마사지한 것까지. 그래서 내게 모든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는 작전일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은 조금씩 사실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날 제거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전에 먼저 선수를 치면 그만이다. 애초에 워킹맨 멤버들이 죽게 내버려둘 생각도 없고 말이다.

“자, 그럼 세 번째 미션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손바닥 미션 세 번째 미션은 위험한 손길입니다.”

“위험한 손길?”

“네. 이번에는 시민들을 상대로 마사지하는게 아니라 서로를 마사지하는 겁니다. 팔씨름 때와 마찬가지로 승자가 계속 남아서 상대를 차례대로 맞이하는 식인데요. 마사지를 받는 동안, 소리를 내면 즉각 패배입니다.”

“아, 이거 그거네. 버티기.”

“버티기는 뭐야? 그게 아니라 이거 간지럼 피우면 이기는거 아니야? 시훈이 형 간지럼 완전 못 참잖아.”

“아, 간지럼같은거 피우시면 실격패입니다. 무조건 마사지만으로 하셔야 해요.”

“아니이 우리가 무슨 기술이 있다고 마사지를 하냐고.”

“지금부터 1시간 동안 휴식시간 드릴거고요 각 팀마다 팀장분들이 마사지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쉬는 시간을 허가 받았다.

나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수갑을 찬 상태이지만, 담배는 한 대 빨아야겠다.

솔직히 말해서 긴장된다. 신용섭이라는 거물을 상대하는 것도 그렇고 여기있는 연예인들을 상대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마사지를 한다는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다.

알다시피 신용섭은 화려한 카이로프라틱 기술을 선보일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기술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나만 보이는 색깔반점들을 찾아서 지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원재도 말했듯이 내가 마사지를 잘하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발기부전을 치료해줬듯이 나에게는 나만의 능력이 있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후... 시발...’

그러나 이번 미션에서 내가 할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미션의 승리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신용섭의 행패를 밝히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었다.

후­

다시금 담배를 빨아들이고 내뱉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준현... 쌤...”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건 다름아닌 신이설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내쪽으로 걸어왔고 나는 멀뚱히 손에 담배를 쥔 채 그녀를 쳐다봤다.

마치 슬로우모션이라도 입혀진 것처럼 천천히 걸어온 신이설은 내 앞에 당돌하게 서더니 발을 살짝 들어서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는 놀라서 손에 들고있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설 실장님... 이건...”

“내가 아까 말했던 조건 기억하시죠?”

“그건... 아니, 그 전에 왜 그러는지부터 물을게요.”

“부탁이에요. 그냥 내 부탁이라고요. 이유 불문하고 그냥 도와주면 안 되는 거예요?”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신이설이라도 그런 부탁은 부당하다.

“말도 안 됩니다. 내 손에 수갑 차있는거 안 보이세요? 그런 치사한 자식을 감싸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요.”

“신용섭이랑 나는 사촌관계에요.”

‘뭐라고?’

“우리 아빠... 얼마 전부터 심장이 아프시다고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를 도와준건 다름아닌 신용섭이었고요.”

‘잠깐만... 이 전개... 어째 구소민 때랑 똑같은데? 설마... 신용섭 그 새끼, 구병훤한테도 똑같은 짓을 한 거야? 아니! 시발! 그 새끼... 사촌이라며! 그럼 지네 아버지랑 신이설네 아버지랑 형제라는건데 지금 자기 작은아버지한테 심장병이라도 심어줬다는 소리야?’

이거 생각보다 더 미친 새끼를 만난거 같다.

나는 수갑찬 손으로 신이설의 어깨위에 손을 올렸다.

“그런 문제라면 내가 해결해줄게요. 그리고... 오늘 신용섭은 죄의 대가를 치를 겁니다!”

더 이상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신이설을 뒤로 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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