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09화
* * *
“와아아아!”
“말도 안 돼!”
신용섭 팀은 신용섭 팀대로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서 섰다. 그러다가 쓰러진 고시훈이 걱정스러웠는지 후다닥 단상 위로 올라왔다.
“아니, 선생님 진짜 너무하시네.”
“야! 시훈아! 너 괜찮냐?”
나 역시 놀라서 쓰러져있는 고시훈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그는 괜찮다면서 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현기증이 났는지 한 차례 비틀거렸다.
PD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고시훈이 괜찮은걸 확인하고선 말했다.
“자, 그럼 고시훈 씨, 뒷목 쪽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지 확인할게요.”
PD는 확인하더니 손사래를 쳤다.
“손바닥 자국이 번져서 두분 다 실격입니다.”
여기까지도 예상했다. 나는 고시훈만 쓰러트리면 내 할 일을 끝낸 거다. 김정현의 패배도 의미가 없지 않았다. 그가 고시훈의 상태를 알아차려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방심해서 그대로 바닥에 쳐박힐 수도 있었을 거다.
실격을 당했지만, 우리 팀 여자들은 내게 달려와서 박수를 치고 몸을 만졌다. 근육질이 된 몸이 여자들에게 만져지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딱딱한 몸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다는건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
“어머, 어머! 그 동안 운동 열심히 했구나?”
참 이상하다. 여자들은 내 몸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 몸이 확 바뀌었다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냥 멋있어지면 장땡인 거다.
덕분에 스텝들이나 다른 멤버들은 내가 원래 몸이 어느정도 좋았는데 최근 운동을 더 많이 해서 몸을 불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꺄! 오빠, 너무 멋있었어...”
“주녀나, 나 또 반할거 같자너! 힘이 왜 그렇게 쎄?”
그리고 김정현도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제 복수를 해주셔서.”
그렇게 실격처리가 됐음에도 승전보를 울린 우리 팀의 사기는 급증했다. 승부에 미친 고시훈을 쓰러트렸으니 다음 경기를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의지가 결연해보였다.
나는 그런 팀원들을 등뒤로 하고 고시훈 쪽으로 걸어갔다.
“고시훈 씨, 아까 경기 때는 미안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제 좀 눈가에 힘이 생긴 고시훈은 여전히 어두운 기운을 몸에 담은채 힘들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 후...”
“많이 안 좋으세요? 식은땀이 막 나시는데.”
나는 일부러 모르는척 그에게 접근했고 넘어트려서 미안하다는 제스쳐로 그의 목과 어깨 부근을 주물러줬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검은색 손바닥 자국을 내게로 흡수시켜서 사라지게 만들기 시작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운동 많이 하셨나봐요. 절 그렇게 넘어트린 사람은 그쪽이 처음입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어렸을 때, 유도를 좀 했거든요.”
“아, 어쩐지! 유도 유단자는 당해낼 수가 없죠.”
“아뇨, 그냥 어깨 너머로 배운거라 단증은 없습니다.”
“와, 그래요? 다음에 한 번 저희 복싱 클럽에 오시죠. 어깨 너머로 배워서 그 정도면 복싱도 금방 익히실 겁니다.”
“하하하, 기회가 된다면 가겠습니다. 하하하...”
전혀 의심하지 않는 고시훈을 주무르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얼핏 어두운 기운을 다 빨아들였을 때는 손사래를 치며 그만해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와서..?
그런데 여전히 신용섭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뭔 짓을 하는지 석연찮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눈에는 어두운 기운이 보이지 않을 거다. 오로지 나에게만 그 기운이 보일 것인데, 아무리 그가 심어놨다고 해도 없어졌는지 남아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김정현이나 한소희, 고시훈 전부 그에게 당해서 곧 죽을 운명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게 구원 받았다. 유석우만 제외하면.
유석우는 항상 단상 쪽에서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진행을 맡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막내 PD 허도하에게 들었던대로 방송 중에 유석우에게 가까이 붙으면 안 된다고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생각보다 완벽주의자 성격이 강해서 방송 진행이나 음향에 문제가 생길 법한 일은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사실 음향감독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도 유석우일 터였기에 그에게 접근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본 미래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당장 오늘 밤이라면? 그럼 유석우는 내 치유를 거치지도 못하고 오늘 바로 죽게 되는거다.
‘어떡한다...’
평소 친분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유석우같은 거물급 연예인과 내가 어떤 안면식이라도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대로 놔두면 유석우는 죽을텐데.’
나는 곧바로 어쩔 수 없이 곧바로 유석우 쪽으로 향해갔다.
유석우는 우리팀 진영과 신용섭 팀 진영을 번갈아 가리키며 진행을 하고 있었다.
“자, 그럼 다음 주자는! 한소희! 그리고 신용섭!”
남자와 여자가 붙는 말도 안 되는 그림이다. 하지만 예능이기에 가능했다. 어떻게 해서든 남자에게 패널티를 주는게 프로그램 성향상 어쩔 수 없는 진행방법이다.
그런데 신용섭도 생각보다 피지컬이 좋은쪽에 속했기에 우리 팀의 패배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저기... 유석우 씨?”
“어, 죄송하지만 선생님 지금은 대답해드리기 어려운데요.”
“아, 예...”
아무렴... 다가가자마자 바로 컷 당했다. 안 그래도 어두운 기운을 흡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런 식이면 스쳐지나가면서 지울래야 지울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신용섭 쪽에서 기권을 했다.
“저는 이번 경기를 기권하겠습니다. 여자를 이길 수는 없어서요.”
“아! 그런가요? 역시 선생님, 신념이 또 따로 있으셔서.”
“저는 여자를 함부로 하는 남자를 극히 싫어합니다. 저희 쪽에도 다음 주자가 여자 분이시니까 두 분이서 승부를 가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유석우 씨도 진행을 하셔야 하니까.”
“오, 이쪽에서 너그러운 제안을 해왔습니다. 강준현 씨 팀에서 어떤 대답을 하실지?”
‘어?’
이상했다. 승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신용섭이 왜..?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진실을 깨닫고는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소름이 돋아버렸다.
신용섭은 자신이 남겨둔 어두운 기운을 다시 자기가 흡수할까봐 두려워서 백기를 던진 거다! 합리적 의심에 그칠 수도 있지만, 신용섭의 성격상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추측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끼는 진짜 천하의 썩을 새끼야.’
나는 여러모로 저 놈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다음 주자였던 여자 연예인 하나가 방금 있었던 마사지를 하다가 다쳤는지 손목 쪽에 통증을 호소했다. 그래서 신용섭 쪽에서는 어시스트로 출연한 신이설이 대신 출전하게 됐다는 거다.
나는 얼핏 보기에도 신이설의 몸에 어두운 기운이 잔뜩 서려있다는걸 발견하고 또 한 번 소름이 돋았다.
‘진짜 사람들을 전부 죽일 셈인가..?’
또한 그 말은 곧, 신이설에게도 고시훈에게 했던 짓을 똑같이 함으로써 힘을 급격하게 증가시켜놨다는 얘기다.
나는 유석우를 뒤로한 채 재빨리 우리 팀 쪽으로 향했다.
“자, 준비된 분은 앞으로...”
“잠깐만요! 잠깐! 회의 좀 하겠습니다!”
나는 부리나케 소리 지르며 한소희에게 갔다.
“한소희 씨. 잠깐 저 좀 보실까요? 김정현 씨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주시고요.”
“아, 예... 얼마나..?”
“제가 나올 때까지 절대 이 안으로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아, 예...”
그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에게 은혜 갚을 일도 있고 해서 마사지룸의 커텐 앞을 딱 지키고 섰다.
안으로 들어간 한소희는 또 다시 흥분해서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내 옷을 벗기려고 들었으나, 나는 그녀를 저지하고 배드 위에 눕혔다.
“그거 하려고 데려온거 아니야?”
지금 섹스를 할 시간이 없다. 김정현이야 워낙 근육으로 다져진 몸이어서 다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한소희처럼 여리여리한 몸매라면 신용섭의 농간에 어디 하나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방송에서 그런 불상사를 일으킬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이 팔씨름 시합을 이기고 싶다. 이제 이거만 끝나면 마지막 미션인데 아무런 무기없이 마지막 미션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부터 한소희의 몸을 벌크업시킬 것이다.
그리고 신용섭의 어둠의 기운과 맞서 싸울 것이다.
나는 구병훤을 낫게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섹스의 기회를 져버린 채 마사지에 집중하고자 했다.
내 열정이 느껴졌는지 한소희도 재차 묻지 않고 조용히 내 마사지를 받아들였다.
이제 슬슬 꺼져가는 황금빛 반점. 나는 이 반점의 남아있는 생명을 쥐어짜내어 한소희의 몸에 보라색반점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번 몸을 섞었고 알몸을 본 터라 맨살결에 뭔 짓을 해도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한소희 씨, 한소희 씨가 근육이 많다고 생각하세요?”
“으응... 나는 운동이랑 좀 거리가 멀어서... 그래도 다이어트하면서 필라테스는 꼭 하는데. 그걸로 부족해요?”
“평소에 힘이 세긴 하지만, 금방 지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맞나요?”
“네. 맞긴한데 그게 왜...”
“잘 생각해보세요. 요즘은 슬림한 몸매보다는 약간 근육질있는 몸매가 더 매력적이에요.”
“준현 씨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그래야 섹스할 때 더 맛있거든요.”
“아, 그럼... 뭐, 그게 더 좋을 수도 있고.”
말은 덤덤하게 하고 있지만, 실상 머릿속으로는 그게 아니다. 한소희의 몸에 생긴 보라색점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강화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없애기 전에 우선 그녀의 몸에 불을 질러놨다.
체온이 과열되면서 효과는 상승한다.
이때 보라색점을 제거하자 한소희의 몸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기적의 몸과 신용섭이 만든 어둠의 몸 중 누가 이길 것인지 겨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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