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8화
* * *
쾅!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오로지 나만이 뛰어서 단상 위로 올라가 김정현과 고시훈을 떨어트려놨다.
“김정현 씨! 괜찮아요?”
“아, 예... 뭐... 얼떨떨하네요.”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른 연예인들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시훈을 나무랐다.
“야, 너! 너무 세게 한거 아니야?”
“정현이 안 다쳤어?”
“이거 무서워서 게임 하겠나!”
“김정현이라고 너무 안 봐준다, 진짜.”
“야, 쟤 지금 발목잡고 들었다 놨어. 이거 게임이 안 돼!”
다른 사람들은 전부 얼이 빠졌는지 방송용 리액션을 하기 바빴으나 내가 바라본 시선은 확실히 정해져있었다.
신용섭.
나는 약 10m 거리에 있는 신용섭을 노려보며 그에게 말했다.
“고시훈 씨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러자 신용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뭘? 조금 근육을 풀어줬을 뿐인데. 혹시 강준현 씨는 그런 기술도 없나? 원래 사람이란 밸런스가 맞았을 때, 힘을 200% 사용할 수 있는 법이라고?”
“웃기지마.”
“뭐..?”
“웃기지 말라고. 네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거 같아?”
“이 양반이 돌았나. 어디서 삿대질이야?”
“... 쓰레기같은 자식.”
갑자기 분위기가 과열되자 담당자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말렸다. 어차피 방송에 못 나갈 분량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인데 웃기는 건, PD나 촬영팀은 우리의 과열양상에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분량만큼은 확실히 확보했다는 거다.
내가 씩씩거리며 김정현과 함께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자 땅에 꼬라박혀 어리둥절해진 김정현이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예요? 신용섭 씨가 시훈이한테 뭘 했다는 뜻이예요?”
“마사지할때도 말씀드렸듯이 꼼수를 부린 것 같아요.”
“꼼수..?”
“힘을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거죠. 어떤 방식을 썼는지는 모르지만요.”
“뭐... 스테로이드 도핑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아뇨... 완전 달라요. 김정현 씨는 고시훈 씨의 눈을 보셔서 알겠지만, 평소랑 다를 거예요.”
“쟤 원래 승부욕 생기면 눈 저렇게 바뀌긴 해요. 오늘은 좀 더 흐릿해진 느낌이긴 하지만.”
흐릿해졌다라...
아무튼 유석우와 마찬가지로 죽을 운명이 생겼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쨌거나 신용섭에게 마사지를 받았을 테니까.
불 타는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시훈의 몸.
서아는 걱정스러웠는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준현아... 괜찮아? 저 사람이랑 굳이 붙어야 해? 이번 미션 그냥 지자...”
“아니. 우린 이길거야.”
나는 용천궁에서 내어준 나풀거리는 상의를 벗어서 티 한 장만 걸치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아직 고시훈 씨는 준비 중입니다.”
또 뭔갈 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 역시 나름대로 준비를 하겠다.
우드득
나는 카메라가 안 보이는 각도에서 손가락을 꺾어서 자해했다. 핑 거리면서 꺾인 손가락 주변에 푸른색점이 확 번졌고 나는 재빨리 그것을 훑은 후에 보라색점을 만들어냈다.
고시훈보다 내가 모자란 것은 뭘까.
눈에 보이는 근육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힘. 신용섭의 재앙같은 손길.
나는 그 모든 걸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을 무의식 속에 주입시켰다.
도인. 도인은 오로지 나만이 지금의 신용섭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수련. 도인에게 문제가 생긴 이후에도 나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황금색 반점을 사용하는 법과 더불어 마인드컨트롤하는 법을 배웠었다.
결과는 확실했다.
보라색점은 순식간에 굳어지고 강화되어 내 자격지심을 부각시켰다.
뿌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강화된 보라색점을 제거하자 근육이 불거져 올라왔다. 그것도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랗게 바람이 찼다.
와
처음에는 촬영팀이 고요하게 반응을 했다. 그러다 PD가 눈치를 채고 내 우람해진 팔뚝을 클로즈업했다.
유석우도 대기하고 있다가 훌쩍 올라와서 내 팔뚝을 만지더니 감탄했다.
“선생님, 평소에 운동하시나봐요?”
“아, 예, 뭐... 취미생활로요.”
“확실히 마사지를 하려면 근력이 있어야되니까.”
다른 연예인들도 올라와서 내 탄탄해진 몸을 보며 감탄했다.
“헬스 트레이너라고 해도 믿겠어요.”
“진짜, 와... 운동선수 출신 아니야?”
“시훈이 완전 긴장한거 봐.”
“정현이가 처음으로 나온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힘 빼놓고 진짜 제대로 붙어보겠다는 생각이신거지. 야, 이러면 진짜 모르겠는데?”
“아니야. 아니야. 시훈이가 질 리가 없어. 나는 확신해.”
“뭘 또 확신까지야.”
그렇게 잠시동안 연예오락 특유의 리액션이 끝난 후에 준비가 끝난 고시훈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육중한 소리.
아무리 내가 근육을 키워놔봤자 고시훈의 원래 몸에 비견해봐야 새 발의 피 정도다. 막상 이렇게 마주보고 서니까 위압감이 사뭇 다르다. 몸에서 전율이 흐르고 땀이 뻘뻘 솟아났다.
‘젠장...’
힘 대 힘으로만 붙어도 이길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신용섭의 검은색 기운까지 동반했으니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
우선 나는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 주사위를 굴렸다.
“2!!”
2번이면 목이다. 반면에 고시훈은 가장 최악의 조건인 6번. 그러나 그 6번을 이용해서 김정현을 그대로 쓰러트렸던 걸 감안한다면 최악이라고 볼 수도 없는 조건이다.
이기려면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대치의 힘으로 맞붙어야 했다.
“자, 양 선수 서로의 오른손을 잡아주시고. 지시대로 상대방의 신체부위를 터치해주세요.”
나는 고시훈의 목 뒤쪽을 잡았다. 당연하게도 황금색반점이 있는 왼손으로 그의 뒷목을 잡아 푸른색점을 형성시켜놨다. 기능저하로 인해서 두개골을 지탱하고 있는 목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척추쪽에 신호가 올 거다.
그런데 오른손을 잡은 고시훈의 손에서 힘이 세게 느껴졌다.
“크윽..!”
나는 고시훈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떼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아직 시작도 전인데 힘 주시면 안 돼요!”
유석우도 고시훈이 반칙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말했다. 그런데 고시훈의 표정은 여전히 흐리멍텅했다. 알겠다고 고개는 끄덕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영혼도 없어보였다.
‘젠장할... 진짜 미친 새끼잖아?’
다른 멤버들도 그가 승부욕이 있다고 말했다. 승부욕... 어쩌면 신용섭의 능력으로 그의 승부욕을 일으키고 나머지 감정을 최소화시킨 걸지도 모르겠다.
우선 가장 큰 의문은 이거였다. 검은 기운을 없앨 수 있을까?
고시훈에게 오른팔이 넘어가기 전에 검은 기운을 다 없앤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검은 기운을 없애려면 그걸 흡수한 후에 내 몸에 희석된 기운을 조금씩 없애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고통도 느끼고 나중에는 감각조차 못 느끼게 되니 그 상태로 팔씨름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
그냥 팔씨름으로 고시훈을 이기는 수밖에.
고시훈이 내 발목을 잡았고 유석우가 휘슬을 부는 순간, 곧바로 경기가 시작됐다.
콰직
고시훈은 김정현을 상대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발목을 세게 잡아서 날 들어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힘이 전처럼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거다. 뒷목에 새겨놓은 푸른점 때문이다. 그것도 강화된 푸른점이기 때문에 내가 그 위에 손을 포개고 있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붙잡힌 발목을 사수하기 위해 아예 무릎을 꿇어버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시훈의 육중한 상체를 내쪽으로 끌어당겨 함께 몸을 숙이게끔 만들었다. 고시훈은 내 발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행동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와 시훈이가 딸려 나갔어!”
“정현이도 들어올렸던 시훈이가 이번에는 힘들어 한다!”
“잘하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겠는데?”
“대박인데? 이거 생각보다 엄청 흥미진진하잖아? 생각보다 호각이야!”
평소에 리액션 좋기로 유명한 멤버들이 하나, 둘 외치는 가운데 나는 팔에 있는 온 힘을 다해서 그의 손을 잡고 반대쪽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움찔하지도 않는 고시훈. 그의 팔 역시 펌핑되서 핏줄이 솟구쳐오른 상태였다.
“하아... 하아...”
땀내가 진동을 한다.
마치 ufc에서 서브미션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서로의 몸이 붙어 있었기에 그의 뜨거운 열기가 내 몸에 와닿았는데 피부가 닿은게 아니라 열기만 닿았을 뿐인데도 뜨겁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시훈의 목숨은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시라도 빠르게 이번 미션을 종료시키고 그를 치료시켜야만 했다.
‘가만 있자...’
나는 힐끔 이 경기를 관망하는 PD쪽을 바라봤다.
‘경기가 끝났을 때, 손바닥 자국만 있으면 되는거지?’
나는 그 생각이 끝나자마자 고시훈의 뒷목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곤 그의 손목을 향해 곧바로 손을 옮겼다.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신용섭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내가 뭘 하려는지 보려는 눈치였다.
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동작이었다.
나는 빠르게 고시훈의 손목쪽에 작업을 했다. 누가보면 이상한 주문이라도 외우는 듯하게 보일만한 손동작. 이에 유석우도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탄식을 토해냈다.
“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고시훈의 몸에 힘이 빠졌고 나는 육중한 놈의 발목을 잡아채서 아까 김정현이 당했던대로 그대로 갚아줬다.
번쩍.
그 거대한 고시훈이 일순 공중으로 솟구친 후에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쾅!!
굉음과 함께 떨어진 고시훈.
주변 사위는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졌다.
약 1~2초 간의 침묵이 유지된 후에 곧바로 우리 팀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