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101화
* * *
신용섭.
그 자가 무슨 수를 써놓은 게 분명했다.
나는 왼손... 아니, 기적의 손을 다시 발동시켜 그 손바닥 모양의 검은점 위에 손을 포갰다.
그러자 손 주변이 뜨거워지면서 검은 기운이 내 손바닥으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따갑게 느껴지는 기운과 점점 팔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순간 참을 수 없어서 김정현의 등짝에서 손을 떼고 말았는데 남은 기운이 다시 김정현의 등에 들러붙었다. 마치 껌딱지처럼 쫀쫀하게 붙어버린 것이다.
“크윽...”
내가 신음하자 옆에서 서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 있어? 내가 뭐 도와줘야하나?”
“아니야. 옆에만 있어줘.”
나는 아무 일 없다는 사람치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래서 두 여자가 힐끔거리며 내 손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꿀렁거리는 기운이 핏줄을 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통의 시간이 끝났다. 나는 뭔가 이상해서 이것저것 시험을 해봤고 그에 따라서 증상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증상은 간단했다.
무감각이었다. 붉은색이나 분홍색점을 제거해도 나른해진다거나 시원하거나 성욕이 돋궈지는 일이 없이 말 그대로 무감각.
따라서 김정현은 지금 우리들이 하는 마사지가 전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신용섭이 파놓은 함정이다. 내가 어떤 멤버와도 팀을 맺지 못하도록 손을 써둔거다. 그중에서도 김정현이 가장 우선적인 멤버라고 생각했는지 김정현에게 먼저 수작을 걸어둔 것이고.
하지만 나는 신용섭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검은 기운을 전부 제거하기 전에 우선 그의 미래를 확인하기로 했다.
오색찬란한 점.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검은 기운 바로 밑에 오색찬란한 점을 만들고 그것을 그대로 훔쳤다.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김정현의 미래를 확인했다.
‘후... 역시...’
예상했던대로였다.
몸이 탄탄하고 건강한 김정현 역시 유석우와 마찬가지로 돌연 심장마비가 와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신용섭 이 새끼... 설마... 여기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고?’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마자 바로 또 다른 이유가 떠올랐다. 신용섭이 여기있는 워킹맨 사람들을 다 죽이려는 이유를.
‘나다. 나한테 모든 걸 뒤집어 씌우련느 속셈이다. 미친새끼. 진짜 미친놈이야.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잖아.’
그렇다.
그의 손길이 거친 사람들은 전부 나의 손길도 거치게 된다. 이후에 그가 어떤 방법을 쓰게될지는 몰라도 나를 모함에 빠트리려는 계략이라는 건 상황의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신용섭이라는 자가 영악하다는 얘기다.
어떡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죽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우선 김정현부터 살려야 했다. 아마 신용섭은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거라는 걸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현 씨?”
“... 네?”
배드 밑으로 김정현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또랑또랑했다. 그러니까 배드에서 마사지를 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거다.
“지금 상태가 무슨 상태인지 아시나요?”
“무, 무슨?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저한테?”
“음, 정확히는 지금 어떤 느낌이냐는 거죠. 지금 김정현 씨의 종아리 부분을 강하게 누를건데 아마 느껴지는 바가 없으실 겁니다. 그렇죠?”
“지금 누르고 있는 거라고요?”
“예. 아무래도 무감각증에 걸리신 것 같습니다.”
“아니... 방금까지 잘만 느꼈는데요? 이전에 들어오신 분이 눌렀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고요.”
“그러게요. 대체 그분이 김정현 씨한테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인 겁니다. 마사지의 시원함을 느끼지 않는 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뜨거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죠. 감각은 때로는 위험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용입니다.”
“... 알고 있습니다. 근데 참 이상하네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게 시원하다는 게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먼저 오신 분이 어떤 방법으로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정현 씨가 감각을 못 느끼게 함으로써 고통을 못 느끼게 만들어, 시원하다고 느끼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치명적이에요. 지금부터 저는 김정현 씨가 감각을 느끼게끔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김정현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내 말에 진실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모양인데 결정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뭐, 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실 테니까요.”
나는 김정현의 척추기립근 방향에 따라서 손을 얹어놓고 그의 검은색 기운을 다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 내가 내 입으로 내뱉은 말이니까.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럴수록 기적의 손은 더 빛날 것이다.
내 손은 말 그대로 검은색 기운을 쭈욱 빨아들였다. 커피에 빨대를 꽂고 빨아들이듯이 내 체내로 검은색 기운이 스며들어온다. 이것은 마치 카페인...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성분이 내 몸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이 스며드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이었다. 따끔따끔한 감각이 핏줄을 따라 느껴지고 있었다. 흡사 부분적으로 혈관에 꽂힐 정도로 단단한 주삿바늘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마침내 검은 기운을 전부 흡수하자 이번에는 갑자기 김정현 쪽에서 신음을 토해냈다.
“크윽..!”
“김정현 씨, 괜찮으세요?”
마사지를 하던 연두가 걱정스럽게 외쳤다.
“아, 예... 아니... 으윽!”
김정현은 지금까지 쌓인 고통을 한 순간에 다 받아내느라 고통스러운 거다.
나도 저렇게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재빨리 내 몸 곳곳에 퍼진 검은 기운들을 기적의 손으로 만지며 조금씩 지워나갔다. 다행이도 연한 색상의 검은 기운은 황금색 기운에 의해 몰아내지는 듯했다.
“으어... 시원해...”
검은 기운이 사라지면서 김정현의 온몸은 붉은점으로 가득차게 됐다. 따라서 연두가 마사지를 할때마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끼기 시작한 거다.
나 역시 내 몸의 검은 기운을 다 지워낸 후에 김정현의 마사지를 다시 재개했다.
“끄허어어... 어으... 이, 이렇게 시, 시원하다니...”
“제가 말씀드렸듯이 일전에 들어오신 마사지사가 통증을 못 느끼게 해놨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던 사람이 찬물에 들어가면 원래보다 더 차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크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니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긴 한가요?”
“그걸 다시 풀어낼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능력은 분명 마약과도 같은 능력일 겁니다. 마약이 하는 일과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김정현 씨는 건강하고 내츄럴한 몸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마약을 싫어할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맞아요. 제 성향은 좀 그렇죠.”
아까 서아에게 들은 멤버들의 성향 그대로다.
아마 신용섭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을 했더라도 내가 검은색 기운을 없앨 거라고 생각지도 못할 거다. 아마 그는 지금쯤 김정현도 자기 편으로 만들었고 유석우도 자기 편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계산을 끝내놨을 거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검은색 기운은 온데간데 없었고 김정현의 심장부근에 생겨난 푸른색 반점까지도 전부 제거를 해놨다.
따라서 김정현의 꼬리뼈 부근에 만들어놓은 미래를 보는 반점은 다시 생겨날 일이 없었다. 지금부터는 정해진 미래가 없다. 그가 만들어내는 미래가 곧 그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일단 김정현은 살렸다.’
신용섭이 또 어떤 멤버들에게 그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신용섭이 먼저 들어갔다 온 멤버들에게만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목숨을 구원해줄 수 있다. 그러니 유석우가 가장 위험했다.
국민 MC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만큼 개인적으로 유석우에게 접근하기는 힘든 일이다. 거기에 멤버 선정에서 그가 신용섭을 선택한다면 더욱 개인적으로 말을 걸 타이밍을 잡지 못할 것이다. 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최대한 그와 마주칠 일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김정현을 매우 만족시키면서 마사지를 종료시켰다.
심지어 그는 마사지가 끝날 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는 무조건 여기에 붙겠습니다. 진짜 신세계네요! 제가 지향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믿고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 말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었으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김정현은 내게로 온다. 그러면 나머지 목표로 했던 두 사람만 더 잡으면 된다.’
나는 대기실로 가서 쉬지 않고 곧바로 허도하에게 가서 말했다.
“신용섭 씨 마사지 끝나셨죠?”
“아, 예...”
“그쪽으로 안내하세요.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어? 그, 근데 상대분도 잠깐 휴식시간을 드려야 하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요!”
“아, 예! 예! 알겠습니다! 후웅...”
허도하는 상당히 겁을 먹은 채로 빠르게 쪼르르 달려서 마사지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천막을 걷어내고 내게로 달려왔다.
“하으... 드, 들어가셔도 됩니다!”
“누군데요?”
“네, 네? 아... 한소희 씹니다.”
“좋아요. 아주 좋네요.”
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자 허도하는 세상 역겹다는 표정으로 입을 떡하니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곧 현실이 되게 만들어주리라.
나는 한소희에 대한 서아의 정보와 내가 알고있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떻게 그녀를 공략할지 전략을 세워뒀다.
“한소희가 남자들 엄청 밝힌다는거 사실이겠지?”
“음, 내가 알기론 그래. 방송국에 일하는 애들이 다들 그러더라. 근데 엄청 잘생겨야한대. 진짜진짜 왕잘생겨야한대. 쭈니 너로는 어림도 없어!”
나는 그녀를 향해 콧방귀를 껴줬다.
“그거야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거지.”
“아... 그걸로는 너가 최고긴 하다...”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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