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100화
* * *
‘뭐..?’
유석우의 오색찬란한 반점을 훔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훑고 지나간 그의 미래. 그의 미래는 더 참담해질게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나는 마사지하다 말고 손을 들어서 부들부들 떨었다. 유석우의 미래는 그만큼 참혹했던 거다.
늦은 밤, 유석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스산한 거리, 손에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딸과 아내를 위한 치킨 2마리가 들려있었다. 워낙 검소한 삶을 살기로 유명한 유석우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 이후에도 꾸준히 겸손했다.
따라서 외식도 잘 안 하고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어서 딸들에게 제대로 먹을 것도 사주지 못했다.
치킨을 들고 집앞에 도착한 유석우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거다. 심장을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아작날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고통 따위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 쪽에서 몰려오는 고통이 가장 심했던 거다.
그렇게 유석우는 딸들에게 주기 위해 산 치킨 두 마리를 바닥에 죄다 흘린 채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죽어갔다.
공기마저 스산한 새벽이기에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무심한 가로등이 유석우를 가만히 비출 뿐이었다.
국민 MC라 불리며 약 30년 간 대한민국의 예능계를 책임지던 유석우는 그렇게 사망했다.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유석우에게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만약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면 의사에게 조치를 받고 방송을 잠시 쉬는 식으로 몸을 보존했을 거다.
내가 알아서 너무 다행이다.
나는 곧바로 유석우에게 말했다.
“유석우 씨? 제 말 들리시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유석우는 누운 채로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가 내렸다.
“신체에서 약간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서 몸을 뒤집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죠?”
다시 손이 올라갔다 내려가고 유석우는 몸을 돌려서 천장 쪽을 바라봤다. 국민 MC 유석우는 그닥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툭 튀어나온 하관과 특유의 찢어진 눈매. 그러나 확실히 이 유석우는 호감형이기도 했고 신뢰감이 드는 얼굴이었다. 그는 물끄럼 천장만을 응시하다가 내게 말했다.
“서, 선생님... 저한테 무슨 문제라도?‘
녹화 중에 말을 해도 되는 모양이다.
“잠시... 확인을 하겠습니다...”
나는 유석우의 가슴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심장질환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면 반드시 푸른색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몸에는 푸른점이 전혀 없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계획과 어긋난다. 나는 당연히 그의 심장 부근에 푸른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뭔가 이상하다. 심장질환이 없는데 갑자기 쇼크로 사망한다고? 아..!’
그렇다. 반드시 심장질환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하지정맥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굳이 푸른점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하반신이 살짝 푸르게 올라왔을 것이다.
‘...’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처럼 진땀을 뺐다. 머릿속에 있는 공식이 완전 막히자 답이 없었다.
이곳저곳을 잘 둘러보는데도 없다.
“저... 선생님?”
유석우가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물을 때까지도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그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최선이었다.
“음, 전체적으로 이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많이 걸으시나봅니다.”
“아, 맞아요. 제가, 예...”
“걷는것도 좋은데 찬바람은 가급적 피하시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을 삼가시고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제가 혹시 고혈압이라던지 뭐, 그런게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얼마 전에 건강검진 때는 괜찮다고 그랬는데.”
“내과나 외과에서는 찾아낼 수 없는 걸 찾아내는게 저희가 하는 일이죠. 사람의 몸은 때로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기도 합니다.”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심오한 말이네요, 선생님.”
“잠시 팔을 들어주시겠어요?”
그 후에 나는 아까 했던대로 유석우의 몸에 붉은점을 생성한 후에 지우는데 시간을 투자했다.
‘유석우는 실패다. 이 정도 메리트로는 신용섭의 카이로프라틱을 이길 수 없을 거야.’
카이로프라틱은 퍼포먼스적으로도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관절에서 뚜둑 소리가 나고 몸을 뒤틀고 자세를 비틀어서 빠른 속도로 쳐내리는 것도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나 따라하지 못하는 마사지 기술. 그 기술을 도인에게서 배운 신용섭이다. 그런데 그 기술을 남을 치료하는데 쓰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쓰고 있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후... 유석우 씨는 끝났네.”
“나 너무 떨려... 연예인들 마사지 하는거 뭔가 이상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다소 침울하게 말했다.
“유석우는 우리 팀을 선택하지 않을 거야.”
“왜, 오빠? 자신이 없어?”
“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아까 보니까 꽤 신뢰하는 눈빛이었는데.”
“아직 신용섭한테 마사지를 받기 전이니까 그렇겠지. 서아야 이번 워킹맨 컨셉이 뭐겠니?”
“마사지 레이스?”
“그래, 맞아. 아마 소제목이 마사지 레이스. 이 용천궁에서 마사지에 관련된 미션을 풀어가면서 레이스를 해나가겠지. 그러면 유석우는 반드시 실력있는 마사지사와 같은 팀이 되려고 할 거야. 신용섭의 마사지를 받으면 무조건 그쪽으로 갈 거야.”
“그럼... 어떡해..? 우리 지는 거야?”
“아니지. 이제 시작이야.”
나는 두 여자를 향해 싱긋 웃어줬다.
“서아야, 너 이 프로그램 잘 알고 있지? 팀선정에서 PD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뭐 같아?”
“어... 음... 아무래도 밸런스?”
“그래! 보는 사람이 쫄깃쫄깃해지는 맛이 있어야겠지. 보나마나 뻔한 그림이라면 기가 차서 채널을 돌릴 거야.”
“아! 그럼 이렇게 되겠다. 아무래도 유석우랑 김정현이 워킹맨 양대산맥이니까.”
“그래도 김정현이 훨씬 잘하지. 이번에 김정현한테 들어가서 제대로 하자고.”
“오예! 오빠 왜케 믿음직스러워? 예뻐 죽겠네, 쪽쪽.”
“일루와. 내 거야.”
두 여자가 나를 가운데 두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마침 허도하가 들어왔다. 허도하는 우리 세사람의 애정행각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그... 지금 시간이 돼서요. 바로 다음 들어가시면 될거 같아요?”
“네. 저희는 김정현 씨 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 김정현 씨 방에 방금 신용섭 씨가 들어갔다 나오셨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찌릿.
나도 모르게 허도하의 어의를 간파하기 위해 날카롭게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해서 주춤하기까지 했다.
“아, 아니! 제 뜻은 그게 아니라...”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나는 씩 웃으며 허도하의 옆을 지나쳐갔다.
아무래도 이 여자랑 자주 마주치는게 조만간 이 여자를 써먹을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 서아가 내 옆으로 빠르게 따라붙으면서 말했다.
“너어... 왜 저 여자분한테 끼 부려?”
“푸핫? 뭐, 뭐? 뭔 끼를 부려 내가!”
“맞잖아. 너 저 여자 좀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이게 방금 섹스를 한 여자의 입에서 나올만한 소린가? 내가 교육을 잘 시키긴 잘 시켰다. 개방되도 너무 개방됐다.
“그렇다면?”
“뭐야아아... 양옆에 여자 끼고 다른 여자한테 눈길 주고오... 넘해.”
“뭘 넘해야 넘해는. 그래서 싫어?”
“아, 아니지, 그건... 가, 가자!”
그래, 가자. 김정현의 방으로.
김정현은 이제 막 서른이 넘었다. 아이돌치고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지만, 그런만큼 예능에서 눈치도 빠르고 연륜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드에 누운 그의 등짝은 그야말로 근육의 덩어리였다. 내가 집에서 하루종일 자해하면서 몸을 키워봤자 이런 순수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을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만져지는 근육의 질감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그만큼 붉은색 점도 많았다.
“보이지?”
나는 연두에게 붉은색 점을 제거하게 시켜놓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적의 손을 이용해 김정현의 등짝에 오색찬란한 빛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한 체력과 육체를 가진 김정현이라도 앞으로의 미래 앞에서는 한낱 작은 인간일 뿐이다.
유석우 때는 예상과 다른 현상 때문에 버거웠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 등짝에 손을 대기도 전에 나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
왼쪽 등근육 쪽에 흐릿하게 뭔가가 보였던 거다. 희미한 푸른 빛깔의 점... 이 점은 피부의 얇은 막을 뚫고 근육 밑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끔씩 이렇게 겹겹이 쌓인 층 밑에서 반투명한 색깔로 빛나고 있는 푸른점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런 경우는 어떻게 확인할 도리가 없어서 넘어갔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어... 라?’
근데 또 뭔가 이상했다.
김정현의 등골. 그러니까 기립근이 있는 계곡 쪽에 어떤 자국같은 게 남아있었던 거다.
‘손바닥?’
그렇다. 모양은 손바닥의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거무스름한 빛깔이 돌았다.
나는 옆에 있는 연두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연두야. 너 혹시 이것도 보여?”
“응?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검은 기운을 내는 손바닥이다. 처음에는 모를 수 있지만, 인식하고 보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는 건.
이 점이 일반색깔과는 다른 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미래를 보는 오색찬란한 빛깔과 맘 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나는 약간의 추론 끝에 바로 생각났다.
‘허도하가 말했었지.’
“김정현 님 방에는 신용섭 씨가 들어갔다 나오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신용섭.
그 자가 무슨 수를 써놓은 게 분명했다.
나는 왼손... 아니, 기적의 손을 다시 발동시켜 그 손바닥 모양의 검은점 위에 손을 포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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