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97화
* * *
“어서오세요.”
나는 신이설이 여기에 있다는 것보다도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우리와 대면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실장님! 왜 여기에?”
“그쪽한테 어떤 질문도 받고싶지 않아요.”
냉랭한 대답. 아무래도 지난번 마사지 때 이미 나에게 큰 실망을 한 것 같다.
‘젠장... 신이설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인데?’
그녀가 용천궁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해야겠는데?’
혹여라도 그녀 때문에 신용섭을 망치는 일이 꺼려져서는 안 된다.
아니. 그나저나 어쩌다가 신용섭 밑에서 일하게 된 걸까?
“실장님 왜 여기 계시는 거예요? 나한테는 얘기해줄 수도 있었잖아요!”
“... 이제 그만... 나는 이제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촬영팀은 이미 왔고 메이크업 도와주신다니까.”
나는 조용히 그녀의 눈치를 살피면서 용천궁 내부로 진입했다.
신이설이 입은 치파오는 머발에스에서 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드를 선사했다. 그때는 펑퍼짐한 옷을 입었기 때문에 몸매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치파오는 몸의 맵시를 싹 잡아주기 때문에 숨겨뒀던 맵시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전에 마사지할 때 확인했던 몸매 그대로다. 치파오의 갈라지는 틈 사이로 보이는 허벅지도 내가 때려댔던 그 허벅지와 똑같다.
이렇게 만나니까 감회가 새롭긴 하다. 그런데 뭐라고 말 한번 붙일 수 없다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잘지냈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신용섭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와 나에게 받은 실망감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나는 걷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용천궁이다. 적의 본진에 들어온 거다.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용천궁의 내부는 과할 정도로 중국풍으로 이뤄져있었다. 용천궁이라는 이름답게 용의 문양으로 수놓인 붉은색 카펫과 휘황찬란한 장막들. 촤르르 흐르는 듯한 비단 뒤쪽에서 붉은 조명을 받는 마사지사가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꽤나 야하게 느껴지는 비주얼이었다.
이런 걸 국민 오락프로그램에서 소개해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밀폐된 공간이 없는 듯하네.’
나에게는 꽤 불리한 조건이었다.
신용섭이야 기본적인 실력이 있으니까 상관이 없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니까.
그러나 오늘의 컨셉을 들었을 때, 나는 완벽하게 작전을 세웠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연예인들은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온다. 혹시라도 따로 메이크업을 할 일이 있으면 메이크업 팀이 나서서 메이크업을 해준다.
용천궁의 휴게실은 머발에스의 휴게실과는 전혀 다른 규모였다.
30명 정도가 들어가도 될만한 크기였는데 메이크업팀이 그곳에서 방송에 출연할 일반인들 메이크업을 도와줬다.
그 중에 여자 PD 하나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 그... 강준현 씨 맞으시죠? 기적의 손... 저, 정말 영광이에요!”
그녀는 막내 PD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는데 약간 허당기가 있어 보였다. 이름은 허도하.
안경을 쓰고 있는데 살짝 살집이 있는 몸매였다. 그런데 가슴이 원체 컸다. 딱 봐도 D컵은 무조건 넘어갈 법한 크기였는데 이게 살 때문에 물이 올라있는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피부는 백옥같았고 순수해보이는 눈동자를 연신 껌뻑거리고 있었다.
“네, 제가 강준현이 맞습니다.”
“으, 으... 이미 들으셔서 알겠지만, 제가 이쪽 팀 담당하게 될 PD예요!”
“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모냐... 이번에 컨셉은 알고 계시죠?”
“네. 신용섭 팀이랑 제 팀으로 나눠서 연예인들이랑 미션하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헤헤... 근데 아마 저희 프로그램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예인팀에서 게스트를 선택할 거예요. 그래서 그 선택 조건이 뭐냐면요! 응, 그니까. 블라인드로 선택하게 될 거예요.”
나는 메이크업을 받다가 허도하를 날카롭게 바라봤다.
그녀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던 거다.
“그 말은... 시작하자마자 경연이 시작된다는 뜻이군요.”
“마, 맞아요! 제가 말씀을 드리면 그때 마사지룸으로 들어가서 누워있는 연예인들의 몸을 차례대로 마사지해주시면 되요. 촬영이 다 되고 있으니까 참고하시고요.”
워킹맨은 남자 4명에 여자 4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TV로만 보던 국민MC 유석우를 직접 마사지할 수 있다니. 이런 기회가 세상에 언제 또 올까? 나는 이번 기회를 토대로 삼아 연예인 마사지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연예인들. 그것도 앞으로 내게 마사지를 받을 이 열 명의 연예인들이 얼마나 큰 돈을 만질지는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각종 CF는 물론이고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에서 엄청난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쳐도 무한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팀선정 블라인드 마사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내 정체를 모르는 연예인들을 마사지해서 내 팀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이 기적의 손으로..!
까드득
나는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조금씩 밑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하려면 왼손에는 황금색 반점을 띄워야 했다. 황금색 반점의 지속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생성되기까지 필요한 조건으로는 치욕과 성욕 그리고 고통이 있다.
성욕이나 고통은 그렇다 치는데 치욕은 어떻게 해결하지?
나는 가만히 날 기다리고 있는 허도하의 눈치를 살폈다.
이 여자 정도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촉이었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아티스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허도하에게 물었다.
“혹시 저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뭔데요?”
“음, 저한테 욕 해줄래요?”
“뭐, 뭐라고요? 요, 욕을..? 왜요?”
“제가 좀 그런 징크스가 있어서요. 마사지하기 전에 누구한테 욕 먹으면 잘 하더라고요. 방송이라 긴장을 해서 그런지 좀 걱정돼서 그런데 욕 좀 해주세요.”
허도하는 내 당혹스런 부탁에 우물쭈물하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래도 단칼에 거절하지 않는걸 보니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PD 입장에서는 내가 최적의 컨디션이어야 방송의 질이 높아지니까.
허도하가 끝까지 망설이길래 나는 도화선에 불을 붙여줬다.
“진짜 부탁해요. 나 욕 안 먹으면 진짜 방송 못할지도 몰라.”
내가 다급해 보이는 투로 말하자 허도하는 다급하게 외쳤다.
“시발! 병신아!”
나는 빵 터져서 웃으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리곤 허도하를 향해 더 해달라는 눈길을 보냈다.
“이 시발! 자지 새끼! 너가 그딴 식으로 하니까 신용섭한테 지는 거야.”
“...”
시켜서 하는거지만, 은근히 치욕스럽다. 진짜 치욕스럽다. 젠장.
그나저나 시발이나 병신까지는 알겠는데 자지 새끼는 또 뭐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계속해서 욕설을 기다렸다.
“병신 꼬삼 새끼! 꼬추 삼센치! 남자 구실도 못하는 새끼! 여자한테 욕이나 쳐먹어야 제대로 일하는 새끼!”
참 다행이다.
연두랑 서아는 여자 탈의실에서 복장을 용천궁에 맞게 갈아입기 때문에 자리를 비웠으니까.
아티스트만 있던 이 방에는 이제 나랑 허도하밖에 남지 않았던 거다.
나는 일어나서 허도하 쪽으로 한걸음 확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요... 해달라고 해서 한 것 뿐인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즐기고 있는거 아니에요?”
“이씨... 그럼 나한테 뭘 어쩌라고...”
나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벽을 짚었다. 허도하는 당황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적은 아마 처음일 거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눈을 감아버리면 확 괴롭혀주고 싶어진다.
나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본 후에 허도하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붙였다.
“뭘 상상하는 거예요?”
“뭐, 무슨!”
“나한테 욕 그렇게 해대서 날 어떻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거 아니냐고요.”
“무, 무슨...”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에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분홍색점은 주로 사타구니쪽을 중심으로 나기 마련인데 허도하는 날 보는 순간부터 이마빡에 분홍색점을 반짝였으니까. 다분히 성욕이 올라오는 거다.
그런데 이런 성욕이 올라오는 경우는 정해져 있다.
지금껏 성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거나 성경험을 한지 아주 오래됐거나.
나는 전자라고 단정지었다.
살집이 있는데다가 수줍어하는 꼴이나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쏠의 향기가 물씬 풍겼던 거다.
나는 다시금 눈을 질끈 감은 허도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내 시선은 벽을 치고 있는 왼손을 향했다. 황금색 반점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빛을 벽에 반사시키고 있었다. 그 정도로 찬란한 색상이다.
한서연과의 뻐근한 섹스 끝에 얻어내린 결론. 고통과 치욕 그리고 성욕. 그러나 성욕은 내 성욕이 아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통과 치욕은 나의 것이지만, 성욕만큼은 다른 사람의 성욕과 관련이 있었다.
아까 전에 우드득거릴 정도로 손가락을 비틀어댔기 때문에 고통은 이미 max. 이제 익숙해져서 자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허도하를 내버려둔 채 왼손의 상처를 자가치료했다. 그녀는 내가 벽에서 멀찍이 떨어진 걸 이제야 확인했는지 크흠하고 헛기침을 했다.
앞으로 1시간.
이 황금같은 시간 내에 블라인드 마사지를 통해 내 편을 늘려야만 한다!
얼마 후에 내가 있는 방으로 연두와 서아가 들어왔다.
두 여자는 아까 신이설이 입고 있던 치파오로 옷을 갈아입었고 방송용 메이크업도 받은 상태다. 나는 섹시한 옷차림의 두 여자를 보고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떼가 타지 않은 갓 성인이 된 여자들을 보는 기분이다. 더럽혀지지 않은 순백의 상태. 나는 그걸 더럽히고 싶어졌다.
연두는 이전에 보라색점을 통해 내 능력을 인계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러나 서아는 구색 맞추기였다. 옆에서 보고 배우라는 거다.
앞으로 녹화까지는 15분 남짓. 우선 연두에게 능력을 인계해야 했다. 물론 핑계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연두야.”
“네, 오빠.”
“전에 했던거 그거 해야되.”
“뭐, 뭐요?”
“그때 했던거 나 마사지해줘.”
“지, 지금요?”
연두는 무슨 얘기인지 즉각 알아듣고는 서아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씨익 웃었다.
“서아가 봐도 상관없잖아?”
“아, 그, 글킨한데.”
“왜? 무슨 마사지길래?”
“좀 특별한 마사지야. 서아 너도 보면 도움이 될 거야. 어... 허도하 씨?”
허도하는 가만히 두 여자의 아름다운 자태를 부러워하며 쳐다보다가 내가 이름을 부르자 화들짝 놀랐다.
“네, 네에? 네!”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음, 아까도 말했지만 녹화 전에 징크스를 풀어야 해서요. 잠깐 나가주시겠어요?”
“아, 예! 예! 저, 저는 그럼 이만... 욕 듣는거 진짜 좋아하시는구나...”
허도하가 쫄래쫄래 나가고나서 연두와 서아는 동시에 눈을 마주치더니 크게 웃었다.
“욕 듣는거?”
“이게 무슨 소리야..? 푸핫... 아, 웃겨.”
“오빠 욕 들으려고 우리 남겼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시작하자.”
내 말에 연두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연두의 얼굴이 바로 내 사타구니 앞에 위치했다.
그리곤 주섬주섬 바지를 내렸다.
서아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갔다.
어서와, 서아야. 이런 건 처음이지?
* * *